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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 ㅣ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 3
박한제 지음 / 사계절 / 2006년 6월
평점 :
이 책의 주제인 '胡漢體制論'은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쾌한 학설일 수도 있다. 중화사상 혹은 중국인 중심의 사고에 젖어 있는 그들에게 오랑캐라고 비하하는 민족과의 융합에 의한 체제란 언어도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중화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며, 자국 중심적인 역사인식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중국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위진남북조시대이다. 이 시기는 중국의 정체성을 확립한 漢제국과 중국 역사상 가장 진취적인 唐제국 사이에 끼어있는 시기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의 중국의 모태가 형성된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들은 한족의 입장에서 서술된 중국의 사서를 보면서 중국사를 이해해 왔다. 이 결과 중국의 장구한 역사는 한족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를 보면 한족이 대륙을 장악한 왕조는 7개 왕조 가운데 漢. 宋. 明 세 왕조 뿐이다. 나머지 隋. 唐. 元. 淸 은 중국인들이 볼 때는 오랑캐의 왕조였다. 원은 몽골, 청은 여진, 당과 수의 경우 왕조의 족보를 살펴볼 때 초원지대에서 장성 이남으로 넘어와 중국적 삶을 살았던 이민족에게로 조상이 연결되는 것을 볼 때 엄밀히 말한다면 한족화한 이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중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민족을 중국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이민족으로부터 오염된 문명을 정화하고 다시 탈환하는 역사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족의 문화는 항상 이민족 오랑캐의 침입과 정복으로 수그러들었다가 한족이 왕조를 다시 탈환하면서 문명이 개화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에게 수. 당. 원. 청은 자국의 순수성이 훼손된 시기일 뿐이라는 점이다. 반면 송. 명은 중국인의 순수성이 회복된 시기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중국인들의 편견과 무지를 오래 전에 백양白楊은 '추악한 중국인'에서 중국의 역사를 고이고 썩은 된장 항아리 문화라고 통박한바도 있다. 사실 백양의 이런 이론은 이 책의 주제인 호한체제론과 결합시키면 절묘하게 중국사를 재해석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즉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회복하였다는 한. 송. 명 시대가 오히려 중국사의 후퇴기이고 이민족 왕조가 그 역사의 쇠락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이민족 왕조는 된장독이란 중국문명에 숨결을 불어 넣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사의 지리적 경계는 언제나 長江과 黃河이다. 이 강 사이를 중국인들은 中原이라 부른다. 황하 이북은 강북-塞外지역-이고, 장강 이남은 강남이 된다. 당연히 중국사의 무대는 중원이지만 위진남북조시대를 기점으로 강남으로까지 확장되기에 이른다. 이 결과 중국에서는 장강을 중심으로 중원에서는 새외이북에서 침입한 오랑캐와 한족이 강남에서는 오랑캐를 피해 내려온 한족과 원주민들이 갈등과 통합을 통해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게 된다. 즉 강북에서는 '호한체제'가 강남에서는 '橋舊체제'가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결실이 위대한 唐제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당의 전성기는 중국사의 정점이었다. 이후 왕조들은 당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 원동력은 바로 혼합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