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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미술 미진신서 31
정미희 / 미진사 / 1989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미술사에서 잊혀진 시기를 다루고 있는 아주 흥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바로 나치시대의 예술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책은 지금 절판이 됬지만 나치와 야만을 동일시하는 우리에게 이들도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예술정책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런 사소한 이유 때문에 이 책은 초판이 나온지 15년이 넘었지만 매우 소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당시의 상황은 오랜 기간 동안 독재에 시달렸던 민중들이  민주화에 대한 기대를 분출시키던 시기였다. 그러면서도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반전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의 유예를 두어야만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치와 파시즘이란 단어 가운데 파시즘은 군사독재의 또 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나치의 예술을  다룬다는 것은 다른 의도로 해석될 수 도 있는 소지가 많았다.


이 책은 나치의 예술관과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을 담고 있다. 독재권력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우상화를 진행시켜야 하며,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이를 뒷받침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고와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예술을 어떻게 탄압하고 말살했는가도 기술되어 있다. 이들의 방식이 책을 다시 읽어보는 지금에도 크게 다르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나치의 공과를 떠나서 이들이 선전을 하나의 정책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아주 시대에 맞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나치는 이 지구상에서 선정성이란 정부기관을 만들어 자신들의 정책을 국가적으로 흥보했던 첫번째 국가였다.  그 전야제가 베를린 올림픽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즘 남과 북의 관계는 군사분계선이란 무력 대치선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낙관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이 책을 읽어보며 북쪽의 선전정책도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예술세계는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정신세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술정책을 이해할 때 그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선과정이 없이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북쪽의 예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단순히 그 시대의 굴절된 사고방식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당당한 예술로 대접할 것인가. 이질적인 체제가 서로를 바라볼 때 그 시각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패전 후 나치 미술처럼 어느 한쪽의 예술작품과 사고방식은 창고속으로 들어가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들 창고의 예술품들은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이 자극될 때마다 하나의 증거물로 선택되어 승리한 체제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전시될 것이다. 나찌미술을 다시 읽으며 이러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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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역사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영국에서 출판된 위인전기 시리즈의 한국판에서 보이스카웃의 창시자인 베이든 파월의 전기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온화하게 생긴 이 사람은 겉모습과는 달리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이익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운 군인출신이었다. 특히 보어 전쟁의 상징인 마페킹 전투에서 보어인들에게 포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군이 올 때까지 끝까지 저항하여 영국이 이 지역에 대한 강한 집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전쟁의 영웅으로 모든 영예를 얻은 이 사람이 왜 아이들을 모아서 보이스카웃을 만들었을까?

그 대답이 야만의 역사에 적혀있었다. 보이스카웃은 어린이들의 심신을 단련하는 것이 제1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뿐이고 숨어있는 진짜 의도는 영국을 위한-또는 백인을 위한-건실하고 냉혹한 제국주의자를 양성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예비 제국주의자들은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겨나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총체적으로 가르친 곳이 보이스카웃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애초부터 걸스카웃이란 무늬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동물이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시튼이 이 과업을 대행했다.)

나는 제국주의에 관계되는 일련의 책들을 읽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서국 제국주의국가-영국.미국.프랑스-들의 집요함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하나의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일관된 정책을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발생하는 작은 실패를 교훈삼아 좀더 큰 승리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미국은 인디언을 좁은 보호구역으로 몰아내어 격리하는 계기를 카스터 장군의 제7기병대가 인디언에 의해 전멸당함으로서 얻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승리는 카르툼에서 고든장군이 마흐디의 반란군에게 장열하게 죽음으로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제국주의자들은 작은 패배를 국가적인 프로파간다로 이용하여 분열된 힘을 응축시켰던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작은 패배를 큰 승리를 향한 발판으로 이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그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시스템의 차이였던 것이다.

야만의 제국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슬픈 역사의 기록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구의 백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까지 우리들은 무엇을 했는가를 반성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대령은 면도날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달팽이가 날카로운 면도날에 두 쪽이 났을 것라는 상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달팽이는 두 쪽이 나지 않는다. 달팽이는 면도날 양면에 자신의 근육을 단단히 붙이고 앞으로 전진한다. 마치 이것은 고난이라는 원죄를 짊어지고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제3세계 국가를 상징하는 것과도 같다. 면도날 위의 달팽이는 패배가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의 야만성에 대한 도덕적 승리의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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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 지음, 이광조 옮김 / 미세기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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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서의 민족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하나의 환상이었다. 60년대 사막을 옥토로 가꾸고, 거대한 아랍의 공격
을 막아낸 이스라엘의 모습은 북과 대치하고 있던 우리에게 하나의 이상적인 국가상이었다. 이 결과 우리들은 이스라엘=선, 아랍=악이란 등식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이러한 등식이 성립될 수 있는가? 고등학교 시절 정치경제시간에 선생님은 이스라엘을 '경찰국가'로 분류하였다. 이 의미는 일당 혹은 일인 독재국가보다는 조금 낮고, 민주국가보다는 못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절충주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뒤 시간이 흐르고 라말라,예닌과 같은 단어가 뉴스에 아주 잠깐 비추고 지나간뒤 이스라엘의 참모습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보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본 모습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역사 속의 피해자일지 모르지만 이제는 가해자의 반열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축하합니다.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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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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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에게 인디언의 이미지는 레드스킨이란 풋볼팀과 미 육군 2사단마크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이들이 인디언을 생각할 단서가 있을까? 오히려 인디언이 자신들의 땅에 있었다는 사실을 없애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 인디언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고는 죠셉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에 나오는 커츠의 한 마디 '야수는 절멸되어야 한다'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야수는 교화될 수 없는 동물을 말한다. 인디언은 정말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교화될 수 없었을까? 아니면 비옥한 땅이 탐나서 의식적으로 교화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러한 두 가지 사고 역시 인디언을 모독하는 발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늑대와의 춤>에서와 같은 낭만성, <솔저블루>에서와 같은 소극적 갈등,인디언의 눈물의 대장정을 단편적으로 묘사한 <샤이안>과 같은 백인중심의 미국 영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 책은 불편함보다는 생경함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편해도 읽어봐야만 한다.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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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지도의 역사 - 지식의재발견 5
안재학 / 새날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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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에서 35년까지 국립 아프리카회사의 사원 겸 서기로 갬비아에서 근무한 프랜시스 무어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란 책을 기술했다. 여기서 무어는 갬비아강의 수심과 약도를 첨부하고 해안에서부터 500마일-대략 800킬로미터-을 거슬러 올라간 내지까지의 모든 도시,왕국,교역소의 위치를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그가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한 것은 숭고한 사명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곧 태동하게될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의 발흥을 준비하는 하나의 서곡이었다.

유럽인들에게 지도는 단순히 평면위에 축소된 그림이 아니었다. 지도는 곧 힘이고 세력이었다. 한 예로 바스크인들은 콜롬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수백년전에 이미 뉴펀들랜드 근처의 대구어장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장소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것은 지도상에 테라 인코그니타-미지의 땅-로 표시된 지역을 탐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인들에게 지도상의 불명확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그곳에 무엇인가 착취할 것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땅은 부와 명예를 보장하는 보험과 같은 것이었다.

제국주의가 확장하던 시절 영국은 다윈의 비글호를 출항시켜 남아메리가를 완벽하게 탐험하였다. 반면 미국은 교양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이란 잡지를 창간하였다. 영국이나 미국은 표면적인 이유로 이들의 탐험과 잡지의 창간을 교양이나 인류의 과학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이란 수식어로 치장했지만 실제로는 자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한 것임을 숨길 수 없었다. 실제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창간되자 마자 자신들의 뒷마당에 대한 철저한 탐색에 들어갔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는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와 자세한 지도를 만드는 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탐험지도의 역사 또한 행간을 읽으면서 이러한 유럽인들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착 농경생활을 하던 동양인들에게 탐험이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어라면 유럽인들에게 이 단어는 대지의 수탈과 파괴의 또 다른 형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930년대 미국 고등학교에서 사용하던 애플턴의 지리부도를 가지고 있다. 이 지도에 지구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라이베리아,에티오피아,일본,중국,몽고,타일랜드만이 독립국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이 지도에는 세계의 모든 나라를 자신들의 색깔로 구분하고 있다. 영국땅은 노란색, 프랑스땅은 파랑색,미국땅은 분홍색....지도 하나에도 이렇게 다양한 역사가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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