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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역사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영국에서 출판된 위인전기 시리즈의 한국판에서 보이스카웃의 창시자인 베이든 파월의 전기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온화하게 생긴 이 사람은 겉모습과는 달리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이익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운 군인출신이었다. 특히 보어 전쟁의 상징인 마페킹 전투에서 보어인들에게 포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군이 올 때까지 끝까지 저항하여 영국이 이 지역에 대한 강한 집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전쟁의 영웅으로 모든 영예를 얻은 이 사람이 왜 아이들을 모아서 보이스카웃을 만들었을까?
그 대답이 야만의 역사에 적혀있었다. 보이스카웃은 어린이들의 심신을 단련하는 것이 제1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뿐이고 숨어있는 진짜 의도는 영국을 위한-또는 백인을 위한-건실하고 냉혹한 제국주의자를 양성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예비 제국주의자들은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겨나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총체적으로 가르친 곳이 보이스카웃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애초부터 걸스카웃이란 무늬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동물이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시튼이 이 과업을 대행했다.)
나는 제국주의에 관계되는 일련의 책들을 읽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서국 제국주의국가-영국.미국.프랑스-들의 집요함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하나의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일관된 정책을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발생하는 작은 실패를 교훈삼아 좀더 큰 승리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미국은 인디언을 좁은 보호구역으로 몰아내어 격리하는 계기를 카스터 장군의 제7기병대가 인디언에 의해 전멸당함으로서 얻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승리는 카르툼에서 고든장군이 마흐디의 반란군에게 장열하게 죽음으로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제국주의자들은 작은 패배를 국가적인 프로파간다로 이용하여 분열된 힘을 응축시켰던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작은 패배를 큰 승리를 향한 발판으로 이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그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시스템의 차이였던 것이다.
야만의 제국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슬픈 역사의 기록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구의 백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까지 우리들은 무엇을 했는가를 반성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대령은 면도날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달팽이가 날카로운 면도날에 두 쪽이 났을 것라는 상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달팽이는 두 쪽이 나지 않는다. 달팽이는 면도날 양면에 자신의 근육을 단단히 붙이고 앞으로 전진한다. 마치 이것은 고난이라는 원죄를 짊어지고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제3세계 국가를 상징하는 것과도 같다. 면도날 위의 달팽이는 패배가 아니라 서구 제국주의의 야만성에 대한 도덕적 승리의 상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