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원 - 학술총서 29
아더훼릴 / 인간사랑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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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8년 무더운 여름날인 8월 4일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2세의 군대는 테베와 그의 동맹이었던 아테네, 메가라, 코린토스, 아카이아의 연합군과 캐로네아에서 접전을 벌었다. 테베군이 주력을 이룬 연합군은 30000명의 장갑보병과 5000명의 용병을 동원하였다. 이에 대항하는 필립포스의 마케도니아군은 30000명의 보병과 2000명의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 기병에는 후일 대왕이라고 불리우는 알렉산드로스가 참가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케로네아 벌판에서 격돌했지만 결과는 마케도니아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마케도니아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라리사라고 불리운 장창으로 무장한 가로 세로 16열의 신티그마란 밀집대형과 기병을 이용한 공격 때문이었다. 필립포스 대왕은 기병과 보병을 망치와 모루라는 개념으로 변화시켜 기병이란 망치에 의한 충격을 신티그마란 밀집대형의 모루가 받아 치는 형식의 작전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 새로운 전술로 인해 그리스는 야만인이라고 불리운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되고 이 전술을 이용하여 필립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저자는 선사시대의 전쟁에서 시작하여 알렉산드로스의 전쟁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모든 군사적 전술개념이 완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유럽을 공포에 떨게하였던 나치 독일의 전격전 역시 필립포스가 창안하고 알렉산드로스가 완성한 망치와 모루 작전의 변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독일군은 기병이란 망치 대신 기갑부대와 항공기라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했을 뿐 전술적 개념은 알렉산드로스 시대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월남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헬리본 작전 개념 역시 독일군이 사용한 전격전의 새로운 버전일 뿐이다. 여기서 사용된 것은 정글의 특성을 고려하여 기갑부대 대신 헬리콥터를 사용하였을 뿐이다.  현대의 전쟁사를 볼 때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충실한 후계자는 이스라엘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은 기갑부대와 공정부대 그리고 공군력을 적절히 혼합하여 고대 마케도니아군이 창안하고 나치 독일군이 발전시킨 개념을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성인 대다수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것으로 치부되는 군사적 개념을 역사와 결합하여 아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군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 일독을 할 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품절이 되었기 때문에 조만간 다시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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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해부 한길그레이트북스 45
노스럽 프라이 지음, 임철규 옮김 / 한길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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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뜻 선택한 이유는 내 자신이 신화학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겁도 없이 선뜻 골랐지만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전문적인 용어가 5백여 쪽 이상 되는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 간다는 것은 고역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내가 관심이 있는 원형비평:신화의 이론부터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와 조셉 켐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등을 참고하였다. 3사람의 앵글로-색슨족이 방대하고 심오한 신화의 세계 속에 나를 잡아 둔 느낌이었다.


이 책은 비평의 해부이지만 비평은 없다. 다만 방대한 해부만이 있을 뿐이다. 수많은 비평가들은 이 책을 교본 삼아 수많은 비평을 감행했을 테지만....


그의 해박함에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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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상 - 자치통감
사마광 지음, 신동준 옮김 / 살림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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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를 읽었을 때 <솥발>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솔밭>의 오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다리가 셋 달린 정鼎이란 단어를 솥의 다리와 같이 삼국이 정립한다는 것을 월탄은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했던 것이다. 나는 삼국지는 많이 읽으면 읽을 수록 좋다는 현혹에 감염되어 월탄의 삼국지를 거의 30번 정도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과하면 체하는 것일까? 나의 삼국지와의 인연은 월탄의 삼국지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여러 삼국지가 신문광고면을 장식했지만 월탄의 문체가 워낙 강열해서인지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도  삼국지를 생각할 때면 솥발이라는 단어와 <蒼頭大敵 夏候淵> <三日 小宴에 五日 大宴> <五關에 六將을 斬>하고와 같은 고풍스런 문체와 장판교상에서 조장룡이 <兒斗>를 품에 안고 장창을 꼰아잡고 조조의 군사를 뚫고 나오는 장면-내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박종화 삼국지의 절정이 아닐까-이 생각난다 . 월탄의 유려한 문체는 삼국지를 낭만적으로 보게 하여 역사적인 삼국시대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였다.

중국의 3국시대는 우리와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대이다. 중국이 통일된 왕조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된 시기에 우리의 역사는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요동을 지나 요서지역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확장했고, 백제는 오는 물론이고 후에 양자강 남쪽에서 일어난 양,제,송,진과도 대등하게 사절을 교환한 시기였다. 우리의 이러한 영광된 시기를 소설로만 기억한다는 것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자연히 소설보다는 정사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다. 다행히 진수의 삼국지를 완역한 것이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진수의 삼국지는 위를 정통으로 삼아 기술하였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삼국지의 많은 인물들이 간단하게 취급되고 있다. 물론 사마광의 자치통감 역시  이러한 기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지만 많은 역사책을 비교하여 가장 사실에 부합된다고 하는 기록을 선택함으로서 좀더 역사적 사실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역사의 기록은 건조한 것이다. 그러나 건조함 속에 지식이란 물기를 스며들게 하면 역사는 생명력을 갖고 나의 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소설 삼국지를 읽은 독자들은 꼭 한번 사마광의 자치통감 삼국지를 읽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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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광순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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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 멜빌의 모비 딕 <15장 잡탕요리>에 보면 대구란 생선이 어부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어부들은 대구요리로 하루 3끼를 해결하고, 식당집 여주인은 대구의 척추뼈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있으며 해변가의 생선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암소에게서는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우유가 나온다는 멜빌의 글을 읽으며 그것은 하나의 문학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내게 대구란 생선에서 연상되는 것은 명태와 비슷한 생선이며 크기도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것이었다. 그 막연한 고정관념은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50여년전 북에서 남으로 월남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함흥, 원산에  살았던 분들의 기억 속에는 한결같이 정어리에 대한 진한 단상이 각인되어 있다. 그 당시 정어리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부두에는 정어리가 산처럼 쌓여있었고, 배고픈 강아지들도 정어리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흔한 생선이었다고 하였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 하에서 총체적인 수탈을 당하던 시기였다. 수산자원인 정어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정어리 기름을 위해 우리의 바다를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은 이런 정어리 풍년에 힘입어 어획량 세계 1위에 올라섰던 정점의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 정어리는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 망각 속의 생선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대구는 지금도 기억되고 있고, 아직도 경제성이 있는 귀중한 자원으로 대접받고 있다. 영국과 아이슬랜드는 대구 때문에 <대구전쟁>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아이슬랜드에게 대구어업이란 식량의 의미보다 유럽이 좁은 땅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훈련장이며 삶의 터전이었다. 그 터전을 사수하기 위해 아이슬랜드는 거대한 제국 영국과도 일전을 불사하려 하였다. 해양민족에게 대구란 자신들의 오늘을 있게해준 바다의 <만나>라고 할 수 있다. 대구를 잡아 건조시키면 얼마든지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 건조 대구를 요리하는 방법은 물에 불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렇듯 대구는 선원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식량이었다. 오대양의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제국주의의 선봉이었던 선원들은 밋밋한 대구요리를 먹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유럽의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은 대구였던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대구는 경제였고, 식량이었고 미래였다. 여기서 부를 축적한 서구 유럽은 대구에서 고래로 다시 석유로 지상의 부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제국주의적 부의 창조에 힘을 기울였다.

대구라는 생선의 이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감상은 바다 역시 개척하는 자의 소유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바다를 갖지 못한 민족은 앞으로 전개될 21세기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뒤쳐진 민족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독도의 문제는 단순히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 터전인 바다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좁은 동해라는 호수에서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이를 벗어나 광활한 태평양으로 나갈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앞으로 서구유럽이 찾아헤멜 새로운 대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야할 대구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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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관 프랑스 현대문학선 23
미셸 폴코 지음, 이인철 옮김 / 세계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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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재미있다. 세계사 출판사의 <책 읽어주는 여자>를 아주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었다. 이 기억이 깊이 각인된 나에게 이 책은 순전히 출판사의 이름을 보고 집어 든 책이었다. 필요가 아닌 한때의 기분으로 구입한 책이기에 얼마 동안 서가에 장식용으로 꽃혀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오후를 몽땅 투자하여 다 읽었다. 그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유럽 역사의 드러나지 않은 한 면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소설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보통 망나니라고 부르는 자들은 유럽 역사에서는 일종의 특권 계급이었다. 이들은 영주의 사설 감옥의 관리인으로부터 한 국가의 사법체계의 틀을 지탱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 망나니 계급은 귀족과 왕의 법률 속에서 필요에 의해 서서히 성장하여 특권계급으로 도약하였다. 이들이 특권화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범죄의 법칙에 따른 것이었다. 중세시대 도시가 서서히 발전되면서 현대적 의미의 범죄가 늘어났지만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근대적인 감옥은 아직 없었다. 그러므로 범죄자는 처벌 위주의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종교의 영향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엇었다. 그래서 영주들은 범죄자나 비천한 집안의 출신들을 선택하여 사형집행인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이 일을 직업으로 하려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래서 영주계급은 망나니들에게 여러가지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대검의 특권이었다. 중세에 대검-검을 허리에 차는 것-은 귀족의 특권이었다. 망나니들은 귀족이 아니면서도 검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던 것이다. 즉 이들은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외형적으로는 귀족과 같은 반열에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장날이면 시장에서 어떤 물건이든지 취할 수 있는 '한줌의 세'도 부여하였다. 즉 자신의 손아귀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수입은 자신들의 직업인 사형집행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형수들의 가족들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뇌물을 받쳤고, 망나니는 시신을 인도하면서 가외돈을 챙겼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 사형수의 옷과 피는 주술적인 효력이 있다고 여겨져 비싼값으로 일반 농민들에게 팔렸다. 이런 수입을 통해 망나니는 천대받는 계급이면서도 특권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이 사형수에게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은 근대에까지 남아있었다. 그 예로 영국의 추리소설작가인 피터 러브세이의 소설 'Waxwork'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사형집행인은 언제나 사형수에 대하여 가장 우선적인 기득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부를 소유하고 권력을 위임받고 있다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주받은 직업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신 앞에 결코 떳떳한 직업이 아니었으며 이들은 항상 성서를 가까이하였다. 이것은 지상의 원치않은 죄를 조금이라도 감해보려는 의도였다. 일반 농민들은 이들 사형집행인 계급을 두려워하면서도 경멸하였다. 그래서 아무도 이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사형집행인들은 사형집행들과의 혼인으로 얽혀질 수밖에 없었다. 즉 사형집행인들은 중세를 거쳐 근세로 접어들면서 세습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와 근세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조명해주는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해박한 중세에 대한 지식과 사형집행인의 가문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이 책이 조세핀 테이의 '시간의 딸'과 같은 역사적 사실감에 충만해 있다는 점이다.  이런점에서 이 책은 중세 혹은 근세의 유럽 사형집행에 대한 훌륭한 지식을 전해준다고 본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책은 전체의 일부분만-사형집행인의 가문이 시작되는 중세부분-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점이다. 이 책은 초판이 1996년에 출판되었다. 거의 10년이 흘러간 이 시점에서 여전히 두꺼운 책이 미완성인채로 남아있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약간 불만스럽다.  언제 완전한 번역본을 접해 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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