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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광순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허만 멜빌의 모비 딕 <15장 잡탕요리>에 보면 대구란 생선이 어부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어부들은 대구요리로 하루 3끼를 해결하고, 식당집 여주인은 대구의 척추뼈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있으며 해변가의 생선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암소에게서는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우유가 나온다는 멜빌의 글을 읽으며 그것은 하나의 문학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내게 대구란 생선에서 연상되는 것은 명태와 비슷한 생선이며 크기도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것이었다. 그 막연한 고정관념은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50여년전 북에서 남으로 월남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함흥, 원산에 살았던 분들의 기억 속에는 한결같이 정어리에 대한 진한 단상이 각인되어 있다. 그 당시 정어리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부두에는 정어리가 산처럼 쌓여있었고, 배고픈 강아지들도 정어리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흔한 생선이었다고 하였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 하에서 총체적인 수탈을 당하던 시기였다. 수산자원인 정어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정어리 기름을 위해 우리의 바다를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은 이런 정어리 풍년에 힘입어 어획량 세계 1위에 올라섰던 정점의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 정어리는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 망각 속의 생선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대구는 지금도 기억되고 있고, 아직도 경제성이 있는 귀중한 자원으로 대접받고 있다. 영국과 아이슬랜드는 대구 때문에 <대구전쟁>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아이슬랜드에게 대구어업이란 식량의 의미보다 유럽이 좁은 땅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훈련장이며 삶의 터전이었다. 그 터전을 사수하기 위해 아이슬랜드는 거대한 제국 영국과도 일전을 불사하려 하였다. 해양민족에게 대구란 자신들의 오늘을 있게해준 바다의 <만나>라고 할 수 있다. 대구를 잡아 건조시키면 얼마든지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 건조 대구를 요리하는 방법은 물에 불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렇듯 대구는 선원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식량이었다. 오대양의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제국주의의 선봉이었던 선원들은 밋밋한 대구요리를 먹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유럽의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은 대구였던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대구는 경제였고, 식량이었고 미래였다. 여기서 부를 축적한 서구 유럽은 대구에서 고래로 다시 석유로 지상의 부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제국주의적 부의 창조에 힘을 기울였다.
대구라는 생선의 이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감상은 바다 역시 개척하는 자의 소유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바다를 갖지 못한 민족은 앞으로 전개될 21세기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뒤쳐진 민족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독도의 문제는 단순히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 터전인 바다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좁은 동해라는 호수에서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이를 벗어나 광활한 태평양으로 나갈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앞으로 서구유럽이 찾아헤멜 새로운 대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야할 대구 또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