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시간 -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10년, 망각의 독일인과 부도덕의 나날들
하랄트 얘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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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영화가 있다. 2008년 막스 파르버뵈크가 감독하고 니나 호스와 예프게니 시디킨이 주연을 맡은 '베를린의 여인'이다. 전후 독일의 치사한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 영화는 전쟁의 피해자인 독일 여성의 이야기이며, 독일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의 폐허속에서 전쟁의 곁가지였던 여성들이 승전국의 여인에서 패전국의 여자로 바뀌었을 때 어떻게 생존해야 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인데 독일적인 감수성과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었다. 

늑대의 시간 역시 개인에서 집단으로 시각이 옮겨졌을 뿐 독일인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저자는 독일의 집단성이 전후에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굵직굵직한 주제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독일의 집단성은 개인의 범죄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큰 장애물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평범한 악'속에 히미하게 존재하는 체제이며 체계였다. 이러한 독일인의 심리는 패전 후 부서진 도시의 잔해를 질서정연하게 옮겨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대이동과 허무함의 발산과 서서히 살아나는 경제 속에서 싹트는 부조리의 용인과 범죄의 대상화와 거리두기를 통해 독일인 자신이 민주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현재 독일에서 나치와 히틀러는 금기어이고 '나의 투쟁'은 여전히 금서 목록에 올라있다. 그러나 정말로 문제인 것은 이런 모든 것을 금기시하고 침묵한다는데 있다. 

늑대란 짐승은 홀로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다. 이들은 언제나 군집을 이루고 이들 사회안에서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질서정연한 삶을 유지한다. 이 늑대의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단결도 복종도 아닌 배타성이다. 새로운 개체가 이 무리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이것이 가능하다면, 제일 말단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새로운 개체는 집단에 들어오기 전에 살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자는 책의 제목을 늑대의 시간으로 정한 것은 독일이 두 번씩 전쟁에 패하였음에도 그 집단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방 전후와 동란 전후의 우리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유추하며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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