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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 테크놀로지와 기술제국 소련의 몰락
로렌 R. 그레이엄 지음, 최형섭 옮김 / 역사인 / 2017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현 중공의 지도자들이 왜 이렇게 청화대 출신의 엔지니어-테크노라트들이 많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제정을 뒤엎은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급속하게 발전시키려 시도하였다. 이 결과 그들은 엔지니어 그룹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이 기술자들이야말로 낙후된 러시아-새로운 쏘비에트 인민 공화국-를 서구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팔친스키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엔지니어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조국을 근대화 시키는데 있어서 기술 입국은 분명히 맞지만 그 방법에는 공산당 지도부와 생각이 달랐다. 이들 엔지니어들은 '기술 시스템'의 신봉자였다. 이들은 경제발전과 개발은 학술적 아마추어 방식이 아닌 다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할 줄 아는 냉정한 현실적 엔지니어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레닌이나 부하린 같은 혁명 초기의 지도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먹혔지만 그들의 후계자인 스탈린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들이 주장하는 기술적 우위는 스탈린의 사상적 우위에 당연히 밀리게 되었던 것이다.
팔친스키로 대표되는 이들 기술 관료들은 소비에트 당국 및 공산당과 산업을 계획하고 러시아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자신들이 속한 부서를 공산당이 장악하는 것에는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리고 팔친스키는 소련의 엔지니어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가나 자본가의 역할을 맡게 되기를 희망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계획은 공산당이 원하는 기능적 계획이 아닌 지역계획으로 부터 수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공산당이 선호하는 거대한 산업체계와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팔친스키는 지역계획의 신봉자가 된 것은 개별 기업의 차이는 설비나 기술력이 아니라 노동자에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미국의 포드 시스템이나 테일러 주의가 주는 효율성과 생산량의 증가에 팔친스키도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노동자의 복지와 교육이라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를 위해 팔친스키는 새로운 체제에서 엔지니어에게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고 중앙집중식 산업화를 추진하던 쏘비에트는 좋은 기회의 장소로 생각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스탈린 주의와 자신의 생각이 충돌하면서 무너지게 된다. 스탈린은 전문가 집단에 자율성을 보장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즉 팔친스키와 스탈린은 정치적 권위를 누가 갖는가에 대한 통제권의 문제였다. 팔친스키는 주어진 범위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주장한 반면 스탈린은 초인적인 노력을 요구하였다. 이런 스탈린의 생각은 드네프르 강의 자포로제 발전소, 마그니토고르스크 제철소와 백해 운하의 건설이란 비국을 탄생하게 한다. 팔친스키는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술사가 아니다'란 중용을 외쳤지만 스탈린은 볼셰비키가 함락시키지 못할 요새는 없다'는 주장을 함으로서 '인간 요인론'과 '기술결정론'이 충돌하였다. 이 결과는 팔치스키의 체포와 처형이었다.
이후의 과정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이다. 침묵하는 엔지니어와 무리한 계획경제는 쏘비에트를 완벽하게 파멸시켰고, 지도체제에 편입된 엔지니어들은 오로지 전문적인 기술만을 배운 테크노라트가 됨으로써 전체적인 안목을 보는 교양을 상실하였다. 이 결과 쏘비에트는 거대한 영토와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계획경제란 낭비의 잔치를 벌임으로써 공산주의가 끝장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에 외골수로 빠진 정치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의 천국을 계획하면서 빵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빵을 어떻게 하는가는 기술적 능력이 아니라 인간적 교양과 가치라는 것이다.
또 하나 문화혁명을 거친 현 중공의 지도자들은 과연 자신의 나라와 세계에 대한 비전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