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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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음식이 갑자기 생각날 때는 그것이 함유한 영양분을 우리 몸이 필요로 한다는 설이 있다. 어느 날 평소에는 찾지 않던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지면 그 음식 속 영양분이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근거 없는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내가 데미안을 손에 집었을 때가 꼭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학을 꽤 오랜 시간 멀리했다가 다시 친해지고자 집에 쟁여둔 세계문학전집(민음사)을 하나씩 읽기로 마음먹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그 첫 번째였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제목을 하도 들어서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어 더욱 익숙했다. 친숙하지만 전혀 모르는 이 책은 독서 구미를 당겼다. 그리고 뒤늦게 읽은 나 자신이 조금 안타까웠다. 딱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었으므로.

 

간략한 줄거리로는, 주인공 싱클레어가 단면만을 가르치는 반쪽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 전체를 인식하면서 세상의 격정을 버티고 사랑을 배우며 주체적인 자아가 되는 성장소설이다. 그의 모든 각성은 데미안으로 시작되어 데미안으로 지속하며 데미안으로 마감한다.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루어지는 거야. 세계의 이 다른 부분이 통째로, 이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는 거야. ()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이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 p.83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체로 이분법적으로 학생을 구분했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모범생과 문제아, 인싸와 아싸 등등. 중간지대가 없었다. 이런 구분은 어릴 적 나를 가르친 말들에서도 존재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착한 짓과 나쁜 짓, 깨끗함과 더러움, 말을 잘 듣느냐 안 듣느냐……. 어린 싱클레어가 어렴풋이 느낀 환한 세계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두 세계는 경계가 맞닿아 있으면서도 경계가 확실했다. 그리고 이런 구분은 다른 한쪽을 말살하려 든다. ‘환한 세계에 있지 않으면 다른 세계의 존재이며, ‘환한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반대도 마찬가지.

 

나에게 있어 세계의 구분은 나 자신을 규정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현실을 영어 가능영어 불가능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치자. 나는 영어를 바라지만 불가능에 있으므로 항상 가능을 보며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발버둥은 쳐보지만 이내 지쳐버리고 심화된 불가능으로 나를 몰아댄다. 결국, ‘영어 가능세계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예는 내 삶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세상이 요구하는 삶을 따르지 못해 여태껏 나를 망치며 지내왔다.

 

그러나 데미안의 말대로 세계를 구분이 아닌 온전한 하나로 인식하면 나의 삶에서 잘못된 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달이 앞면만 보인다고 뒷면을 부정할 수 없듯이, 내가 보는 세계의 앞면만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생각이란, 우리가 그걸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p.85)’기에 내가 따를 수 없는 세계를 떠올리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 p.116

 

무가치함에서 벗어나 보다 온전한 자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건재한다. 산다는 것은 행동의 문제이고, 가능성은 행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행동반경에는 세계 한쪽만 존재하지 않는다. 방황 속에서 목표를 이룩하기 마련이고, 이룩한 결과는 다시 방황의 씨앗이 된다. 이는 합일의 단계이기도 하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정신일도 하사불성(情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환한 세계다른 세계를 하나로 합하여 인식해야 비로소 자아는 굳건해질 준비를 마치게 된다. 새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꿈틀대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23

 

알에서 나오지 않은 새는 새가 아니다. 알 속에서 아무리 새의 형상을 갖추었다 한들 날아오르지 못한다면 과연 새라고 할 수 있을까. 상식이 아니라 본질에서 말이다. 알은 새를 규정한다. 진정한 새가 되기 위해서는 알을 깨고 나와 훨훨 날아가야 한다. 신에게로, 압락사스에게로.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를 규정하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싱클레어는 이렇게 정의했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 p.172

 

압락사스는 세계를 구분 짓는 신이 아니다. 세계 그 자체인 신이고, 어떠한 가능성도 받아들이는 신이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자신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이정표가 되어주는 신이다. 한마디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앞서 근거 없는 설을 언급한 까닭이 여기 있다. 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실리적 목표를 지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신적 버팀목이랄까. 그동안 나는 구분된 세계에 맞춰서 나를 재단하고 조립하려고 했다. 맞지 않는 퍼즐에 억지로 끼워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살아가는 일이라고들 하니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모두가 알 속의 새로 사는 세계에서는, 하나하나가 구분 지어지는 세계에서는 규정된 채로 사는 게 맞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고독도, 고통도 감내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 p.191

 

마지막으로 에바 부인이 과정의 고됨을 하소연하는 싱클레어에게 말했듯이, 지향하는 꿈이 전부라고 집착하거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알을 둘러싸는 일이다. 새 꿈이 생기면 다시 둘러싸려는 알을 깨부수고 날아가야 한다. 결국, 살아가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는 세계와의 투쟁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함의 속성이 빠른 망각임을 감안하면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아직 나는 알 속의 새다. 그리고 어제까지 나는 알 속이 안전하다고 여겼다. 깨부술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알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내 괴로움의 근간이었다. 아마도 내 괴로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부서질 알이라면 애초에 둘러싸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제는 사소하나마 깨뜨리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싱클레어처럼 내가 새로 태어나려는 일은 어렵겠지만, 에바 부인 말대로 내가 충실할 꿈을 찾는다면 길은 쉬워지리라. 그 여정의 첫걸음을 떼었다고 감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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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가가 하는 일 - 도서 편집의 세계
피터 지나 외 엮음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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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편집에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또는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를 붙인 편집가(編輯家)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 책날개에서

 

스스로 책을 좋아한다고 말은 했지만, 저자와 출판사, 표지, 장르 외에는 크게 관심 있지 않았다. 사실 책은 위에 언급한 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그러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보다가 편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저자를 설득하러 다니고, 돈이 되지 않는 장르에 대해 편집가와 대표가 언쟁하고, 유명한 표지 디자이너를 섭외하려 애쓰고, 파쇄되는 책들을 보며 슬퍼하고, 자신이 메인 편집가가 되어 나온 책을 보고 기뻐하고, 그 책의 저자 소개가 잘못되어 분노하고 등등(더 있겠지만 여기까지만 보고 관뒀음). ‘정말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했다. 접한 지는 꽤 됐는데 이유 없이 미루다가 얼마 전에 읽었다. 드라마에서 내가 본 과정은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물론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서 후 편집가에 대해 내가 느낀 점은 출판에 관련된 모든 과정에 관여해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그야말로 책날개에서 언급했듯 단순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가 아닌 하나의 업을 뜻하는 ‘-()’를 붙여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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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따라 편집하는 방식도, 출간하는 책도, 원하는 저자도 전부 다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선 편집가는 하는 일이 엇비슷해 보인다. 저자를 발굴하거나 책을 입수하고, 내용을 검토하면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쪽으로 유도하고, 마케팅, 표지 디자인, 교정교열, 교정쇄 검토, 인쇄, 판매처 공급 등 그 과정에 참여하거나 꿰고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출판의 A부터 Z까지 편집가의 손을 거치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요즘 세상이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인 사람을 원하는 것처럼, 편집가는 자신이 맡은 장르의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출판 전반에 대한, 아울러 시장에 대한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 책과 관련된 일에서 혹시 이런 일도 하나?’ 싶은 생각이 떠오르면 아마도 그런 일까지도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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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란 저자가 자신이 쓴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통과되면 책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편집가가 출판을 기획하고 그에 걸맞은 작가를 찾아 작업하는 일 말이다. ‘원고 청탁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문학에 한정된 관례인 줄 알았다(이래서 아는 만큼 보이는 듯.). 가끔 , 이런 주제의 책도 있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책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책이 편집가가 기획한 도서인 듯하다.

 

또 편집가는 의외로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책과 관련된 직업인데 독서 시간이 부족하다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내져 오는 원고의 양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제출된 원고뿐 아니라 웹에서 떠도는 글도 확인해야 하므로 편집가 입장에서는 볼 게 넘쳐나다 못해 대홍수일 것이다. 그래서 편집가는 퇴근 후 홀로 있는 시간대에 가방에 쟁여둔 원고 뭉치를 꺼내 읽는다고.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일해도 부유해질 수는 없으니, 부자가 되고 싶다면 다른 직업을 고르라는 편집가도 있었다. 독서량이 줄어들고 출판 시장은 타이트해지는 현실이니까. 우리나라 어느 출판사의 블로그에서도 막내 편집가가 비슷한 글을 올렸다. 이쪽에서 일하고 싶다면 돈보다 자부심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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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서 출판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는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책은 사보기에 어려움이 있어 책방을 이용했는데, 요즘은 만화는 웹툰으로, 소설은 전자책으로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의 영역이 더욱 커졌고, 아마존 킨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제는 전자책 시장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글쓰기에 대한 장벽이 매우 낮아져 어디에나 글이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출판사는 시류에 발맞춰 움직여야 한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에 대한 적응은 필수요소이다. 더불어 편집가는 곳곳에 퍼져 있는 글들을 확인하면서 숨겨진 대작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기본값이 되었다. 출판 시장의 디지털화는 기술적인 면도 편집가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가령, 소비가 잘 되는 장르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늘어지고 어느 부분에서 집중하는지에 대한 정보 수집이 중요해졌다. 그런 정보 분석을 할 줄 아는 편집가가 이제는 더욱 중심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앞서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고 했는데, 책과 관련된 직업마저 정말 다방면으로 기술과 지식이 있어야 먹고사니즘이 해결되는 시대가 될 듯하다. 차라리 꿈에 그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얼른 도래했으면 좋겠다. 인간으로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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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가라는 직업은 흥미롭다. 뭔가 시대랑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며 받으니까. 현직으로 종사하고 있다면 괴로움이 상당하겠지만,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대단하고 재밌어 보인다. 자신이 편집한 책이 출간되는 기쁨과 자부심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고 할까. 워낙 게으른 성격에 무기력해서 뭐 하고 싶은 일 따위 없었는데, 출판 쪽은 한번 해보고 싶어진다.

 

책 안에는 26편의 편집가 글이 있다. 내가 너무 뭉뚱그려 감상문을 썼으니 편집가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면 읽어봐서 해되진 않을 듯하다.

 

이 책은 미국의 출판계여서 한국은 어떤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다음 기회에는 한국 편집가가 쓴 책을 읽어봐야겠다. 괜스레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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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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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어서 글쓰기에 관한 책은 수집가의 마음으로 사 모은다. 읽는 책은 대부분 실용서나 자기계발서지만, 가끔 몸서리 처지게 과거의 내가 현재를 사로잡는다. 그럴 때마다 달래주기 위한 방편으로 작법서를 읽는다. 대부분 읽고 나면 두 가지 감정을 갖게 된다. 하나는 공허함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감이다. 전자는 더 이상 과거의 나만큼 상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후자는 아무 글도 못 쓰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선택이었다. 몇 달 전 중고서점에서 눈에 띄어 미련으로 구매했고, 무력하게 지내는 일상을 달래주려 구매한 지 한참 만에 읽었다. 평소라면 역시 공허함과 절망감에 자기비하를 중얼거려야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감정이 생겼다. 두 감정의 지분이 50:50에서 33:33으로 줄고 글쓰기를 시도해보고 싶은 감정이 남은 34를 차지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표현 방법 중 내게 주어진 방법은 말하기와 쓰기 두 가지뿐이다. 어찌 되었든 개발해야만 한다. 34 지분의 감정은 그것을 자극하면서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글쓰기는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동기를 부여했다. 다행히 이 책은 작법서이면서 글쓰기 기술보다는 작가로서의 태도에 중점을 맞춘 터라 나의 동기를 이행하기에 적합했다.

 

글쓰기의 네 가지 어려움

 

그동안 아주 오만방자하게 살았다.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잘 쓰진 못해도 꾸준히 끄적거려왔으므로 기본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쓰고 지우고 쓰고 버리고 쓰고 갈아 없앴기에 남아 있는 습작품이 거의 없지만(당시 작가는 이런 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머저리 과거의 나 자식……).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돌아본 나는 아무런 기본도 없고, 준비도 안 되어 있었다. 아니, 방구석 여포처럼 그냥 머릿속 작가였다. 쓰는 연습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한 자리에서 오래 쓰는 게 좀이 쑤셨고, 그마저도 쓰는 시간이 극히 적었다. 감정 기복이 하단으로 수직하강한 시즌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실천은 하수구에 흘려보낸 멍청이였다!

 

나의 멍청함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끝낸 후, 아주 초보적인 수준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글쓰기 무지렁이 상태로.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처음부터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더 이로울 것 같았다(약간 리셋 증후군 환자 같지만 기우겠지?). 기본적인 전제는 다른 분야와 똑같다. ‘단기간에 높은 진전을 이룰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글쓰기의 네 가지 어려움을 포함한다.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 ‘한 책 작가’, ‘가뭄에 콩 나듯 쓰는 작가’, ‘기복이 심한 작가’.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은 작가는 일필휘지해야 한다는 오류에서 나온다. 물 흐르듯 쓰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쓰지 못하면 작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단정 짓게 된다. 저자는 이 어려움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있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가르침은 소용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어려움은 첫 책 성공 후 다른 책을 쓰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미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술은 있으나 처음만큼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조바심이 낙담으로 바뀌어 절망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길을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어려움이 뒤섞인 형태인 세 번째 어려움은 첫 작품 후 긴 휴지기를 보내고 나서 다음 글을 쓰는 경우이다. 쉬는 기간이지만 쉬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욕구는 넘쳐나나 단 하나의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고통으로 기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어려움은 완벽이라는 거의 도달 불가능한 상태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또 더러는, 드물긴 하지만 일종의 과도한 허영심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p.33)’

 

마지막 어려움인 기복이 심한 작가는 기술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조금 쓰고 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면 도움될 수 있지만, 진짜 어려움은 작가의 자신감 부족, 경험 부족 등이 원인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감을 신뢰하는 법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p.34)’

 

전문성을 빼고 본다면 나는 네 가지 어려움에 다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첫 번째 어려움인 듯하다. 전공으로 배웠어도 쓸 줄 모른다는 압박감에 글쓰기 자신감이 바닥을 기어 다닌다. 나는 글쟁이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야 했다. 그래서 아주 초보적인 수준부터 다시 시작했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시작

 

작가에게는 두 가지 자아가 있다. 하나는 예술가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비평가 자아이다. 글을 쓸 때는 예술가 자아가 활개를 치도록 하고, 수정할 때는 비평가 자아가 나서도록 조절해야 한다. 실제로 글을 쓸 때는 비평가 자아가 곁에 오게 해선 안 된다.(p.62)’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잔소리하기 때문이다.

 

자아를 일단 분리해 두고 내가 먼저 손댄 행동은 눈 뜨자마자 글쓰기이다. 눈을 뜨는 즉시 머리맡에 둔 공책과 볼펜을 들고 생각나는 대로 쭉 쓰는 것이다. 의식이 차츰 각성해 더는 쓸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아무런 글이나 마구 쓴다. 그 후 읽지 않고 바로 덮어둔다. 비평가 자아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글쓰기가 익숙해졌을 때, 그때 돌아봐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다음 단계로 제시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부담이 없어서 15분 글쓰기를 병행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15분 동안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다. 이때는 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성한다. 펜보다는 타자기에 익숙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역시 검토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작성한다.

 

현재 진행하는 마지막은 타자기에 익숙해지는 연장선으로 필사를 하고 있다. 전에는 노트에 펜을 들고 했었는데, 틀리면 지우고 고치는 것도 스트레스고 손가락 아픈 것도 스트레스라 그냥 워드로 옮겨 적고 있다. 기본적인 목적은 타자에 익숙해지는 일이니까 말이다.

 

여기까지가 도러시아 브랜디 선생의 말씀에 따라 내가 행동하고 있는 수준이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차츰 반경을 넓혀야 함은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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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1930년대에 쓰인 작법서라는 사실에 놀랐다. 글쓰기에 대한 개념은 거의 한 세기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법서이면서도 글쓰기 기술이 아닌 작가의 태도가 주제여서 마음을 다잡는 데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글 쓰는 사람이고 싶다면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비록 꿈이 꿈으로써 저버려도, 꿈이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된다. 공상의 여지를 남겨준 달까. 이마저도 없으면 아마 나는 소설이 무슨 소용이야? 책이 무슨 소용이야?’라는 무서운 생각에 침잠할 것만 같다. 단순히 삶의 연장으로라도 이 미련 맞은 꿈을 계속 꿀 예정이다. 여전히 작법서를 모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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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회사의 마케터 매뉴얼
민경주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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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집에서 뒹굴고 있느니 책으로나마 직업 탐방을 시도했다. 그 첫 번째 책은 민경주의 가난한 회사의 마케터 매뉴얼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구직 사이트 희망 직종란에 마케팅을 추가했다. 가장 많이 들어봤던 직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마케팅을 내부에서 상품 파는 직종으로 이해했다. 외부에서 팔면 영업이고. 그러나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두루뭉술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마케터는 뭐 하는 직업이람? 이 질문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관계의 조율을 위해 마케터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 p.19

 

사전에서는 제품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이전하기 위한 기획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중간 과정을 짜는 일이 마케팅인 듯하다. 너무 광범위한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자 역시 마케팅의 정의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분야마다, 사람마다 마케팅의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생각한 마케팅의 정의도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런 모호한 일을 하는 게 마케터이고, 저자는 관계의 조율이 마케터의 역할이라고 한다. 회사와 고객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A라는 회사가 있음을 고객에게 알리고, 고객이 A에는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게 하며, 고객에게 A의 상품을 홍보한다. 그리고 고객의 요구 조건에 A의 상품을 맞춘다.

 

결국 마케터는 쉽게 말해서 고객과 기업을 이어주기 위해 고객에게 끝없이 추파를, 꽤 기술적이고 논리적으로 날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 p.21

 

여기서 더 나아가 상사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자본주의 노예라거나 순종하라는 뜻은 아니고,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서이다. 내 직급이 높다면 내 결정이 곧 회사의 결정이겠지만, 말단이라면 상상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상사가 어떤 생각인지 알아야 방향성을 확실히 잡을 수 있다. 상사의 생각과 마케터의 생각이 따로 놀면 회사생활에 커다란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상사의 마음을 헤아리는 노력은 나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좋다고 한다. 그들에게 질문했을 때,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뭔 소린지 모를 대답을 하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질문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의욕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게 된다. 나도 그렇듯 상사 역시 그냥저냥 일하는 직원보다는 의욕 있는 직원과 일하고 싶을 것이다. 다만, 저자는 이직을 고려해야 할 상사도 있음을 경고한다. 질문했을 때 무시하는 태도로 화를 내는 상사.

 

비단 상사에게 질문하는 행위는 좋은 관계 형성에서 그치지 않는다. ‘뒤탈 방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때 xx(상사)이 이러이러하대서 저러저러했다.’라는 증거가 된다고. 잘 사용하면 강력한 카운터 펀치가 되지만, 남용하면 미운털이 박힌다고 하니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겠다.

 

대충 마케터는 이런 환경 속에서 콘텐츠 제작광고와 홍보를 한다. 전자에는 영상, 카드 뉴스, 정보 글 등 SNS 콘텐츠 제작이 있고 누가 접근했는지 유입 분석 등을 한다. 후자에는 다른 회사와 제휴를 맺거나 기획 기사를 의뢰하거나 고객사에 이메일을 뿌린다. 수월하게 진행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태반이다. 작은 회사의 마케터는 고객의 불만 전화에 시달리기도 하고, 다른 부서와 책임론으로 다투기도 하고, 기껏 열심히 해놓고 대우를 못 받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멘탈 관리 방법도 제시해준다. 마지막 마케터 일의 핵심은 정리에 있다. 콘텐츠와 광고, 홍보의 결과를 정리해두면 연봉 협상 등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힐 수 있고, 다음 작업에도 요긴하게 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듯, 책과 현실은 다르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 현실은 나의 경험이고 책은 저자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케팅 직종을 추가해놓고 하나도 모를 때보다 조금은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기에 나에게 이로운 책이었다. 이제 구직 사이트에 접속에서 희망 직종란의 마케팅을 삭제해야겠다. 나랑 안 맞는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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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MBTI 성격 검사를 했더니 내향성에 쏠린 결과가 나왔다. 예상한 그대로였다. 검사 당시에는 성격 설명과 나의 실제 성격이 일치해서 즐거웠지만, 막상 사회에서는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구직 사이트 탐방이 취미가 된 요즘, 스크롤을 내리면 열정적인’, ‘적극적인등의 단어가 많이 보였다. 나와는 맞지 않는 조건이었다. 비단 구직 사이트뿐만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도 먼저 나서서 행동하고 밝은 성격의 친구들이 교사들의 관심도 높게 샀다. 가끔 나는 내 성격에 결함이 있나하고 생각한다.

 

외향적인 성격이 부러워서 내 성격을 바꾸려는 시도도 나름 했었다. 낯선 곳으로의 무작정 여행도 가보고,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자보고, 낯선 사람과 선뜻 대화도 해보고, 모임도 찾아가 봤다.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쉽게 지쳤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벗어나 혼자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심신이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곧 내가 사회부적응자라는 감각에 빠져들었다. 이래서야 사회생활이 가능하겠는가. 특히 구직에 쫓기게 되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는 순전히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읽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내향성의 인간은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하는지, 어떻게 자녀를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저자 덕분에 나의 가족이 나를 키울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과 내 성격이 결함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안심을 하게 되었다.

 

자극이 싫다

 

내향성은 자극이 과하지 않은 환경을 좋아하는 성향이다. - p.33

 

발달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 교수는 4개월 된 아기들을 여러 자극에 노출했다. 녹음한 목소리, 풍선 터지는 소리, 색색의 모빌, 알코올 묻힌 면봉 냄새 등. 이중 약 20퍼센트는 강하게 팔다리를 휘젓고 크게 울었다(고 반응성). 40퍼센트는 차분했고 때때로 팔다리를 휘저었지만 격하지 않았다(저 반응성). 나머지 약 40퍼센트는 두 반응의 중간이었다.

 

고 반응성으로 분류된 아이들은 내향적으로, ‘저 반응성은 외향적으로 성장할 확률이 높았다. 이유는 파충류 뇌라고 불리는 편도체에 있다. 인간의 뇌 중 가장 오래된 이 부분은 본능적으로 필요한 감정을 형성한다. , 위협적인 것들로부터 투쟁 도피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고 반응성아이들은 새로운 자극에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강하게 반응했다. 편도체의 반응이 강할수록 코르티솔 분비가 강화되고 심장이 빨리 뛰는 등 신체의 긴장이 심해진다. 미지의 것을 경험할 때마다 신경 거슬리는 느낌을 쉽게 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낯을 많이 가리거나 겁이 많은 것은 어딘가에 문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다.(p.165)’

 

내향적인 기질을 가진 내가 그동안 낯선 환경에 준비도 없이 강제 노출하였으니 쉽게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그동안 낯선 장소에 도착하면 쉽게 걸음 하지 못했다. 빙빙 돌다가 최후의 결심을 한 후에야 들어갔다. 일례로, 도서관에서 주관한 독서 모임에 처음 갔을 때도 15시 시작이면 1455분까지 도서관 내외부를 이유 없이 돌아다녔다. 머릿속에서는 내가 시간을 맞춰 온 거겠지? 설마 내일인데 오늘로 착각한 건 아니겠지? 내가 가도 괜찮은 자리겠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난무했다. 두세 번의 모임을 가진 후에 나는 적응하고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끝나고 나서 지쳐 있음은 당연했지만.

 

내향성으로 살아가기

 

자유의지는 우리를 상당히 멀리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유전적 한계를 넘어서까지 무한대로 멀리 데려가 주지는 못한다. - p.187

 

외부 자극에 민감하고 쉽게 지친다고 해서 피하고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는 외향적인 부분에 서야 할 때도 있고, 사회적 교류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성격을 완벽하게 내향성에서 외향성으로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성격을 개조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타고난 기질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든 간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p.186)’ 그러니 어떻게 하면 내향성을 유지하면서 외향적인 환경과 부딪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외향적인 환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적응할 수 있는 환경과 매번 새로운 환경. 전자의 예로는 직장이나 정기 모임 등이 있겠고, 후자는 비정기 강연이나 여행 등이겠다. 먼저 전자의 경우라면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적응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환경이라도 자주 맞닥뜨리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내향성의 강점을 활용하면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 내향성은 대체로 심사숙고하며 관찰을 잘하고 들어주는 데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반면, 감정을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잡담을 싫어하고 철학적인 면모도 있어 다른 사람들이 벽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부분만 살짝 조정한다면 적응에는 문제없을 것이다.

 

후자의 상황에서는 목표를 통해서 내향성을 극복할 수 있다. ‘자유특성이론이라는 심리학 분야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한 성격 특성(이를테면 내향성)을 타고나거나 문화적으로 함양되지만, “개인에게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위해 거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다.(p.319)’ ,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내향성 특유의 민감함을 이겨내고 행동한다. 외향적인 아이가 영화관이나 도서관에서는 조용해지거나 내향적인 소설가가 대중 앞에서 능수능란하게 강연하는 것처럼. ‘자유특성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면 내향적인 성격은 유지하면서 외향적인 환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회복 환경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회복 환경이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낯선 환경에서 내향적인 사람은 쉽게 지치기 때문에 자신만의 회복 공간이나 의식을 갖춰두면 좋다. 나는 사람 많은 곳이나 새로운 환경을 거친 후 혼자서 걷는 편이다. 오래는 아니어도 10~20분 정도 걸으면 정신과 마음이 안정을 찾는다. 또 집에서 혼자 있으면 자연스럽게 회복한다. 만약 걷는 것도, 집돌이로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일단 뭐가 되었든 혼자있는 것이 나의 회복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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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으로 내향성은 이렇게, 외향성은 저렇게 나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향성을 가지고도 외향성을 드러내는 분야가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느 쪽 성향이 더 무게를 가지냐의 문제이다. 그중에서 나는 내향성이 더 무거운 사람이고.

 

외향성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서 그런지, 세상은 외향성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그러나 한쪽으로 쏠린 무게만으로는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외향적인 사람의 업적만큼 내향적인 사람의 업적이 있었기에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다. 비록 이제까지 찾아본 직종은 외향성을 바랐지만, 잘 찾아보면 나의 내향성이 빛을 발할 직종이 있을 것이다. 다시 자신감을 충전하고 내 성격을 한껏 이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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