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맨디블 가족 - 2029년~2047년의 기록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평점 :

2029년 어느 날, 중산층 맨디블 가족은 미국 대통령 알바라도의 연설을 듣고 크게 당황한다. 미국이 중국, 러시아, 동맹국을 상대로 무혈 전쟁을 선포한 것. 하룻밤 사이에 달러 가치는 폭락하고 새로운 통화가 이를 대체하면서 정부는 보복성 채무불이행까지 선언한다. 개인 자산인 금을 나라의 재화로 인정하며 순순히 국가에 내어놓을 것을 종용하고, 무력으로 그들이 숨겨놓았을 금을 찾기 위해 무력으로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맨디블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97세의 더글러스, 73세 소설가 에놀라, 중년의 사회복지사 플로렌스, 늘 경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13세의 소년 윌링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스택하우스 가족은 또한 복작거리는 책들도 모조리 없애버렸다. 캐럴가든스에 위치한 그녀의 지저분한 3층 벽돌 친정집에는 층마다 책들이 정신없이 들어차 있었다. 줄줄이 벽면을 뒤덮은 낡은 책등만큼 고루해 보이는 것도 없었다. 다 읽은 책을 왜 3차원으로 보관해야 한단 말인가? 과시용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손가락 하나로 의회도서관을 둘러볼 수 있게 된 시대에 이미 써버린 물건을 수많은 상자에 욱여넣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계란 껍데기를 싸들고 이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p35
뉴스 보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주택지의 마당이 텃밭으로 개조되고 있다고 했다. 채무 포기 이전에 미국 최대의 작물은 잔디였다. 옥수수의 세 배, 뉴욕 주 전체 면적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러나 잔디는 먹을 수 없었다. 비트 재배로 추세가 바뀐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일이었다. 활력 넘치는 시기. 근면한 시기였다. 나중에 비해 훨씬 나은 시기였다. /p326
일시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경제 불황은 지페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생필품이나 먹거리조차도 구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르고 물가도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자산의 가치가 얼마인지조차 모를 정도의 재력가였던 더글러스도 무너지고 그런 경제 공황상태에서 휩쓸리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바로 보고 흔들리지 않았던 플로렌스가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글의 초반부에서부터 등장했던 책이 짐이 되는 시기, 전자기기로 또는 해적판으로 쉽게 글을 구해서 읽을 수 있지만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 나도 전자기기를 들고 있지만 아직은 종이책으로 읽는 글이 더 좋다. 10년 뒤, 종이책은 얼마나 생존하고 있을까?
"강탈당하는 건 감정적인 경험이야. 그저 갑자기 배를 살 수 없게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감정에 큰 상처를 입는 게 문제지. 게다가 우린 외부인들에게 강탈당한 게 아니고 우리 정부에게 당했어. 채무 포기는 정부와 미국 국민들 사이의 유대, 애초에 그리 탄탄하지도 않았던 그 유대를 결딴낸 거야."
윌링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든 정부는 국민들의 재산을 빼앗아요. 그게 정부가 하는 일이죠. 왕이든 뭐든 그들도 다 그랬어요. 이번에 대통령은 한꺼번에 한 것뿐이에요. 어쩌면 야금야금 강탈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적어도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잖아요."
"오물통이지." /p338
이 부드러운 초록색 통화는 손해와 이익, 성취와 무능, 주의와 경거망동, 계산과 방종, 자비와 악의, 착취와 피착취에 대한 그녀 자신의 경험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었다. 따라서 최근에 그린 에이커 팜에 갔다가 이 조잡하고 가짜 같은 지폐를 거슬러 받았을 때 플로렌스는 약탈당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모욕당한 기분이었고 미국이 걱정되었다. 그저 가치의 상징에 불과한 종잇장의 완전성을 타협함으로써 나라 전체의 가치가 하락하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p353
외부가 아닌, 나라로부터 배신당한 국민들. 치솟는 세금과 이자는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채무를 값지 못해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는 이들도 발생하게 된다. 나라가 책임져주지 않는 국민들의 복지, 나아질 거란 기대로 버티지만 그 시간들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며 체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된다. 통화의 위기가 가족들의 삶까지 덮치면서 맨디블 가족은 플로렌스의 좁은 집에 모이게 되고 위기의 시기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국가가 국민을 책임지려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들을 쥐어짜내는 국가라면 살기 위해서라도 나라를 버리고 살만한 곳을 찾아갈 것이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 라는 소제목이 읽는 내내 계속 떠돌았던 <맨디블 가족> 만약 11년 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시기가 닥친다면 <맨디블 가족>이 그 시기를 관통 한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잘? 그 상황을 더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젊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돈을 갖고 싶어 하지. 옷과 액세서리, 그리고 경험과 전율을 사기 위해서 말이야. 늙은 사람들이 돈을 갖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한 가지야.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지." /p505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