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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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그녀는 죽는다.  나는 그녀의 묘석으로 살기로 했다." 

일본 여행차 왔던 기쿠에 고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로스앤젤레스에 그녀의 사후정리를 하기 위해 방문한 겐야는 올컷가의 변호사에게 자신이 400억 원이 넘는 유산의 상속자이며,  지워진 마지막 몇 줄의 문장의 내용은 겐야를 놀라게 했다.  어릴 적 백혈병으로 죽은 걸로 알고 있었던 고모의 딸 레일라 요코 올컷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니?



"병원에서도 들으셨겠지만, 올컷 씨의 폐에는 물이 조금밖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올컷씨가 몸을 담그고 있던 온천물입니다.  큼직한 편백나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협심증 발작이 일어났고 몸이 앞으로 살짝 기울어 얼굴이 반쯤 물에 잠겼지만,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몸은 편백나무 욕조 가장자리에 기대고 있었고요."  /p8


부호들이 해안가를 따라 고풍스러운 집과 거목들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집들이 모여있는 랜초팔로스버디스로 이사하고 얼마 안 돼 남편 이언 올컷이 췌장암으로 사망하고 홀로 살고 있었던 고모의 죽음은 유산상속과 자산 처리 문제, 고모의 지인들에게 알려야 할 부고 소식 등 웬만한 정리만 하면 떠나려고 했지만 고모의 유언장에 지워진 몇 줄에 의문을 갖게 된다.  '레일라가 살아있다면?' 고모는 찾지 못 했던 걸까?  그러다 고모가 여기저기 숨겨놓은 작은 단서들을 발견하게 되고 사립탐정에게 의뢰해 레일라의 생사 여부를 찾아보기로 결정한다.  미국 전역에서 매년 약 백만 명이 행방불명되고 그중 85%가 아이들이라고 한다.  어쩌면 무거운 이야기 일 수도 있겠는데?



겐야도 모순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과민한 체질인데도 어른이 되고 나서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 적은 없다.  하지만 겐야는 이 올컷가에서 별안간 느끼는 불안한 낌새, 희미한 나쁜 기운이 점차 자신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두려웠다. /p139


대형마트에서 실종됐던 레일라.  하지만 이날 근처에서 대형 사건으로 수사망은 어수선했고 어디에도 레일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모의 장식장으로 쓰이고 있던 비밀상자에서 10통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어쩌면 레일라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진실이 드러날수록 고모의 삶이 비극적으로 다가오며 갑작스러운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선택했다고 하지만 너무 가혹한 운명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그럴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만 했다.  칭찬하고 또 칭찬해주면 나무도 풀꽃들도 마음이 있어 답을 해줄거라는 할머니의 가르침이 기쿠에 고모가 오랜 시간을 외롭지 않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어린 소녀, 유괴, 성적 학대, 가정 내 폭력과 의문의 죽음이 있지만 이  작품은 정원에 가득한 작은 꽃들과 나무를 비추는 햇살처럼 따뜻했다.  바다가 보이고,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는 꽃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있는 카페에서 햇살을 받으며 오랜 시간 읽고 싶은 글이었다.



속삭이는 소리를 전혀 내지 않았던 어젯밤, 겐야는 꽃과 풀들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자 풀꽃들이 답했다.  꽃밭에 은밀한 수런거림이 미풍처럼 일었고, 겐야에게 그것은 풀꽃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로 들렸다.   

"예쁘구나.  너희들은 생명의 혼이야.  우주의 일원도 아니고 우주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야.  우주 그 자체지.  너희들이 우주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어."  ....<중략>....온화한 바다의 파도 소리 속에서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겐야는 젖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의자에서 일어나 짙은 오렌지색 거베라의 꽃잎을 만졌다.  도라지의 줄기에 가까운 부분도 살짝 만졌다.  만지면서 예쁘다, 아름다워, 하며 계속 말을 걸었다.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 겐야가 할머니에게 배운 비밀 의식이었다. 

-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반드시 그러면 응해올 거야.  /157~158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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