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연대기 세트 (반양장) - 전3권 비잔티움 연대기
존 J.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고를 때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현혹되면 돈만 날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 역시 최초에 이 책을 서점에서 보았을때 예쁜 양장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이 이 책을 향하게 되었다. 게다가 세계사에 있어서 비잔티움 제국, 우리 나라에서는 관용적으로 비잔틴 제국이라 표기하는 동로마제국 역사는 거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출판사도 잘 알려진 출판사도 아니었는데다가 책을 보면서 '빈 수레가 요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마음 속 한 편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옮긴이가 남경태라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보게 되었다.(이 서평은 각 단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세트 전체에 대한 것이다.)

 

 일단 이 책 이전에 이른바 '패러다임'을 잡고 있던 책인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먼저 번역과 편집 부분만 서로 비교해 보자. 이 책 번역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는데 '처음 완역한 것으로는 괜찮은 편이나 영어 직역투 번역은 아쉽다.'는 태도가 일반적인 것 같다. 이에 비해 이 책에서 번역 문제를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는바 이는 결정적으로 옮긴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번역자는 단순히 영어에만 능통한 전문번역가인데 비해 <비잔티움 연대기>의 번역자인 남경태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많은 책을 출판하고 번역을 꾸준히 해온 나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 번역의 질에서는 좀 더 나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편집을 살펴보면 <비잔티움 연대기>의 각 권 앞에 지도와 연표, 그리고 주요 인물과 주요 사건을 실어 놓은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가끔 너무 많은 인물과 지역명이 나올 때 마다 맨 앞의 지도와 연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비록 옮긴이의 주석은 각 장 아래에 있는데 비해 원 글쓴이의 주석은 전통적인 편집 방식에 따라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바 주석 나올 때마다 맨 뒤를 살펴보는 일은 굉장히 불편하였다. 읽는이를 좀 더 배려해서 각 장 밑에 주석을 위치시키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에 비해 <로마제국 쇠망사>는 양 옆에 주석을 배치하여 읽는 데 불편이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이 역시 부득이하게 <로마제국 쇠망사>와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1776년에 영국에서 <로마제국 쇠망사>가 먼저 출판되어 로마 역사에 대한 기본 자료로 이른바 '패러다임'을 잡고 있다가 J.J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가 1988년에 그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바탕으로 출판된 책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에서는 반대로 <비잔티움 연대기>가 먼저 완역되어 2007년에 소개된 후 2008년에 <로마제국 쇠망사> 역시 1년 후 완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기존에 <로마제국 쇠망사>가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완역본이 아니라 편집본이었다.)

 

 어찌되었든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간직한 모든 미덕에 대한 배신으로 보았고 이는 로마 제국의 도덕적 타락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J.J 노리치는 비잔티움 제국은 서진하는 이슬람 문화를 막아주는 서유럽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고 학문의 빛이 꺼질 때 콘스탄티노플의 학자들이 그리스 고전을 잘 보전한 덕택에 실전(失傳)되지 않고 서유럽에 전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점은 간단하게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다.

 

 에드워드 기번의 책 제목은 로마제국 '쇠망사'이다. 즉, 로마제국이 어떻게 망해가는지 중심을 두고 서술한 책이고 비잔티움 제국은 단지 로마제국이 멸망하는 과정에 있는 국가라고 보는 것인데 비해 J.J 노리치의 책 제목은 '비잔티움 연대기'이다. 즉, 로마와 다른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전혀 다른 제국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사라고 볼 수 있는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비잔티움 연대기>를 읽어 나가면 시간의 흐름과 무관심 속에 숨겨져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간단 명쾌한 철학 간단 명쾌한 시리즈
고우다 레츠 지음, 이수경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철학이 무엇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이 책을 읽은 분들 중에도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이 직접 도움이 되는 예는 하나도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일에 갑자기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의 삶에 신선한 기쁨과 감동을 준다. 지금까지 알던 세계와 내 생각이 바뀌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반대로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빛을 잃는다. 이처럼 철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철학의 효용-(p.414~415) 
 
   
 흔히 철학에 대해서 드는 생각은 '너무 어렵다.' '실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철학책 읽을 시간에 영어 한 단어라도 더 외우겠다.'라는 생각들이다. 물론 철학은 어렵고 실생활과 관련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우리가 던지는 고민들, 예컨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고민들은 이오니아 시절부터 철학자들이 고민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언젠가는 반드시 접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철학을 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서양 철학의 경우 비교적 번역이 잘 되어 있고 철학자들이 쓴 책들이 설명하듯이 되어 있어 그대로 글쓴이의 흐름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나 대륙 합리론이나 대륙 관념론은 이해하기 매우 어렵고 다양한 철학 사조가 존재하여 접근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동양 철학은 글 자체 보다는 주석이 중요한데 사람마다 해석이 다양하여 누구의 주석을 따라가야 좋을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철학과의 만남에 있어서 도움이 되어줄 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효용이 나타난다. 이 책은 만물의 근원 탐구에서 '선한 삶'의 탐구로 발전한 고대 그리스 철학, 기독교의 탄생부터 근대 개막까지 이어진 중세 철학, 철학의 주제가 신에서 인간으로 바뀐 근대 철학, 실존주의, 기호학, 구조주의 등이 나타난 현대 철학, 그리고 세상의 고통을 제거하고 깨달음을 여는 인도 철학, 이슬람 철학, 중국 철학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명 당 4쪽을 넘지 않는 분량으로 간략히 그들의 철학을 소개해주고 있고 특히 철학자 한 명마다 그들의 사상을 집약한 삽화를 통해 쉽게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한 많은 철학사 책들에서는 빠져있는 현대 철학(예컨대 생명윤리, 페미니즘, 인티그럴 사상)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점은 이 책의 뛰어난 점이라고 하겠다. 다만, 상대적으로 동양 철학에 대한 비중이 너무 작고 마치 윤리책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점은 아쉽다. 일단 이 책을 먼저 읽어 철학에 대한 개념을 잡은 후에 안광복 선생이 쓴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러셀이 쓴 <서양 철학사>, 풍우란의 <중국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를 읽어 나간다면 어렵다고 여겨지는 철학에 접근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페르시아(Persia)하면 단순히 유럽을 침공하던 중에 그리스 연합군에 의해 마라톤 전투에서 완패하고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는 나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페르시아는 아래와 B.C 500년 경 아래와 같은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였다. 그저 단순히 역사에 패배자로 남고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대상에 그칠 나라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 자세히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서술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구입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서는 우리는 영화 [300]을 통해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아래 그림이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도움이 될만한 그림이다. 즉, 초강대국 페르시아는 약 20~50만의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를 공격하였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의 중장보병의 방진의 힘에 의해 경장갑을 입고 있던 페르시아 육군이 괴멸하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해군을 추격하다 살라미스 만에서 괴멸됨으로써 그리스 정복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술적으로 보면 중장보병의 힘이 드러난 마라톤 전투는 그 의미가 크며 페르시아가 보여준 정보력에 대해서는 감탄은 자아나게 한다.


 
 이렇게 글쓴이는 실감나게 페르시아 전쟁을 책을 통해 재현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과거 B.C300~500년 무렵의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거의 헤로도토스에 의지하여야 하며 존재하는 사료 역시 서로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이성적으로 수많은 사료를 서로 비교 분석하여 그 당시의 역사를 비교적 있는 그대로 이 책에 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담되는 책 분량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혀 나가는 역사 소설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서술 방법 역시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읽는 내내 글쓴이의 서구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은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완전히 도식화된 선(그리스)과 악(페르시아)의 싸움 공식에 함몰되어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상대적 약자인 그리스가, 전제정치를 하고 있으며 초강대국인 페르시아에 그들의 놀라운 용기와 지략으로 승리하여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너무도 일방적인 서술에 그치고 있다. 사료 분석에 있어서는 굉장히 공정하고 많은 노력을 한 글쓴이가 어째서 이런 서술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사실상 국내에 페르시아에 대한 책이 없는 상황에서 페르시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글쓴이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읽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렇게 글쓴이는 실감나게 페르시아 전쟁을 책을 통해 재현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과거 B.C300~500년 무렵의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거의 헤로도토스에 의지하여야 하며 존재하는 사료 역시 서로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이성적으로 수많은 사료를 서로 비교 분석하여 그 당시의 역사를 비교적 있는 그대로 이 책에 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담되는 책 분량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혀 나가는 역사 소설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서술 방법 역시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읽는 내내 글쓴이의 서구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은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완전히 도식화된 선(그리스)과 악(페르시아)의 싸움 공식에 함몰되어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상대적 약자인 그리스가, 전제정치를 하고 있으며 초강대국인 페르시아에 그들의 놀라운 용기와 지략으로 승리하여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너무도 일방적인 서술에 그치고 있다. 사료 분석에 있어서는 굉장히 공정하고 많은 노력을 한 글쓴이가 어째서 이런 서술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사실상 국내에 페르시아에 대한 책이 없는 상황에서 페르시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글쓴이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읽기를 바라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처음에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은 차라리 1권과 2권을 함께 묶어서 양장본으로 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그림을 넣기 위해 반들반들한 종이를 사용하였는데 이 경우 양장본이 아닌 경우 쉽게 제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권과 2권 따로 내놓은 것 역시 따로 따로 판매하여 수익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주석 선생 사후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에서 유고를 모아서 출판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하나로 묶어서 내는 것 역시 좋은 모양새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은 유고를 묶어서 낸 것이기 떄문에 1권에 총 12개의 옛 그림이 소개된 데에 비해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 이렇게 6개의 작품만 소개되고 있다.

 

 일단 가장 먼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이미 소개했던 내용이라 특별히 따로 언급할 것이 없지만 글쓴이는 일제 시대 일본의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호랑이 박멸 작전에 의해 한국 호랑이가 멸종된 것은 한민족의 정신, 그 기개와 기상이 허물어졌음을 상징한다(p.22)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과연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호랑이를 그대로 둘 수 있었을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기준은 유전적으로 극히 미비한 것이나 나는 호랑이 보다는 인간의 생명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호랑이의 수난은 굳이 일제 시대가 아니더라도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인다. 또한 글쓴이는 <송하맹호도>의 표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은은한 옥색의 우리 나라 전통 표구가 아니라 화려한 비단으로 치장된 표구로 인해 그림 관람에 적잖은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일본식으로 표구된 옛 그림을 대할 때에는 원래의 여백이 좀 더 넓었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감상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p.55)

 

 그리고 <마상청앵도> 역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이미 살펴본 바 넘어가도록 하고 이 책으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선의 <금강전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금강전도는 한마디로 '이상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원형을 그리고 있으며 이상한 형태로 '제시'를 배열해 쓰고, '기년명' 그리고 '작품 제목'과 '작가 호'를 따로따로 적은 관지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아래 사진은 문화재청 홈피에서 가져온 것인데 제시 윗부분이 짤려있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이를 주역의 심오한 이치가 담긴 그림이라고 평가한다. 즉, 아래 그림을 살펴보면 태극을 세워놓은 모양이고 제시 역시 주역으로 해석하여 조선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다가올 이상세계를 기원하다는 깊은 뜻까지 담았다고 보는 것이다.(p.135) 덕택에 책에 갑작스레 주역 내용이 나와서 당황을 하였으나 같은 그림을 보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그림을 보는 기쁨이 아닐까? 다만 조금 억지로 주역을 꿰맞춘듯한 느낌도 있지만 이런 해석은 나름 일리있고 흥미있다. 





 그리고 글쓴이는 [조선과 이조]라는 글을 통해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한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렵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며,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이 모든 상황을 옛날과 비교해서 누가 조선을 사대주의 국가라 말하는가? 나는 두렵다!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후손의 나라가 과연 백 년이나 가겠는가?"(p.207) 이렇게 아주 열변을 토하시던데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고 남의 춤을 추는 것은 과거 우리의 전통 옷, 음악, 술, 춤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짐에 따른 당연한 결과 아닌가? 시대의 흐름에 뛰쳐진 것에 대해 반성은 없고 단순히 시대 한탄만 하고 있으면 불만만 많은 늙은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또한 현재 우리 나라가 주체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오늘날 젊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인 글쓴이 세대 사람들 잘못에 있다. 마지막으로 나라가 백년 못가도 우리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국민을 위하지 않는 라라라면 차라리 망하는게 좋은 것이다. 이렇게 가끔 맹목적으로 전통에 대한 일편단심 사랑만 보여주는 글쓴이의 글을 읽을 때면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오주석 선생 사후 처음 유고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유고를 책으로 묶는 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문장의 흐름 역시 다듬어 지지 않았는데 과한 손질을 하면 고인에 대한 누를 끼칠 가능성이 높아 그 작업이 굉장히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의 도움과 편집자의 탁월한 능력으로 미리 알지 못하면 유고라고 알 수 없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책이 나온 것에 대해 독자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기쁠 따름이다. 다만, 다시는 오주석 선생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누군가 오주석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도 나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나 역시 가끔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통해 여러 한국 옛 그림을 보아 왔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수 많은 평품을 보면서도 전혀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가 없었다. 그저 멋진 그림이네 딱 이정도 생각 밖에는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은 후에 비로소 옛 그림을 어떻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만큼 그 책은 우리 문화 안내서로는 최고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오주석의 책을 찾아보기 시작하였고 그 중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다. 이 책에는 9명의 화가의 12개의 옛 그림이 담겨 있는데 처음 옛 그림을 만나는 사람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많은 그림과 친절한 설명이 담겨 있는 책이다. 순서대로 김명국의 <달마상>,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시의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이인상의 <설송도>,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담겨 있다.

 

 일단 김명국의 <달마상>에서는 흑색 외에 '색이 없는 이유'에 대해 글쓴이는 설명한다. 불가에서 색(色)은 존재를 가리키고 사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은 정신의 흐름이 치열하게 나타난 달마상에서는 나타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수묵화는 채색화가 완숙 단계에 접어든 이후 나타난 것으로 무채색을 통해 순수하고 검소한 내면의 정신적 깊이를 색이 주는 선입견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기존에 화려한 원색이 아닌 수묵화가 동양에서 발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색깔을 내는 염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나라가 흰색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염료가 없기 때문이지 실생활에서 때가 많이 타는 흰색을 많이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주석 선생은 이와 다르게 해석하는데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안견의 명작 <몽유도원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몽유도원도에 대해 아는 것은 오직 안평 대군의 꿈에 나타난 도원을 안견이 그린 그림인데 현재 일본에 있다는 것 정도만 국사 시간을 통해 알고 있었다. 국사 책에 나온 몽유도원도 그림은 너무 작고 흐릿하여 '이것이 왜 이렇게 명작이라고 칭송받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하였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몽유도원도에는 서양의 일점투시도법과 다른 동양의 삼원법, 즉, 고원법(깍아지른 높은 산을 아래서 위로 쳐다본 시각), 심원법(엇비슷한 높이에서 뒷산을 깊게 비껴 본 시각), 평원법(높은 곳에서 아래 쪽은 폭 넓게 조망한 시각)이 골고루 담겼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다만 글쓴이는 "서양의 일점투시는 일견 과학적인 듯 보이지만 카메라 앵글처럼 포용력이 부족한 관찰 방식이며… 동양의 고차원적 인본주의, 즉 회화적으로는 삼원법에 의해서만 충분히 표현된다."라고 이야기한다.(p.81) 이런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사대주의 혹은 서양중심주의도 문제지만 우리 것만 최고라고 여기는 태도 역시 역겹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윤두서의 <자화상>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흔히 이 그림은 극사실로 그려졌지만 귀, 목, 상체도 없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충격적이라고 부를만큼 지나치게 강하고 날카롭기만 했던 느낌을 받게 되었으나 실제 옛 사진 속의 모습에는 유탄(柳炭)으로 상체가 그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미완성작으로 남겨진 이유는 이 후 표구상이 표구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문지르다가 지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윤두서의 모습은 얼굴만 남은 강하고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었다.

 

 이어서 유명한 김정희의 <세한도>를 살펴보자. 사실 세한도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어왔다. 즉, 작품 속의 집은 그 오른편이 보이는데 둥근 창문을 통해 본 벽의 두께가 어째서 왼편에서 바라본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와 지붕은 뒤로 갈수록 줄어들어 원근법을 쓴 듯 한데 아래벽은 오히려 뒤로 갈수록 조금씩 높아져 역원근법에 가까우며 지붕의 오른편 시선도 앞쪽에 비해 뒤쪽이 훨씬 가파르니 오류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추사는 <세한도>에 집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집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을 그린 것으로 그래서 창이 보이는 전면은 반듯하고, 역원근으로 넓어지는 벽은 듬직하며, 가파른 지붕선은 기개를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옛 그림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p.171) 물론 마음으로 보야야 하는 것도 맞지만 뭔가 궁색한 변명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글쓴이는 동양 옛 그림을 읽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예로부터 그림 감상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하였는바 화첩을 만들어 보관하여 그림 한복판에 세로로 접은 금이 생긴 것이므로 옛 글 읽듯이 즉, 서양처럼 좌상(左上)에서 우하(右下)로 볼 것이 아니라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읽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그림을 볼 때에는 오른편으로 돌게 하는 것이 올바른 그림 감상법이라고 글쓴이는 말하고 있다. 이는 굉장히 좋은 정보이다. 이렇게 감상하지 않으면 글쓴이가 지적한대로 예컨대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를 볼 때 시선이 탁 막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김홍도의 그림은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라는 책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다만 글쓴이가 이야기 하는 '옛 그림 보는 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까 한다. 글쓴이는 옛 그림 보는 방법으로 첫째 좋은 작품을 무조건 많이, 자주 보아야 하며 둘째 작품을 내 손으로 직접, 있는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을 통해 작품 내용을 의식하면서 자세히 뜯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물론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실제 박물관 가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고 실제로 묘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옛 그림을 제대로 보기는 요원한 일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