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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연대기 세트 (반양장) - 전3권 ㅣ 비잔티움 연대기
존 J.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고를 때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현혹되면 돈만 날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 역시 최초에 이 책을 서점에서 보았을때 예쁜 양장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이 이 책을 향하게 되었다. 게다가 세계사에 있어서 비잔티움 제국, 우리 나라에서는 관용적으로 비잔틴 제국이라 표기하는 동로마제국 역사는 거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출판사도 잘 알려진 출판사도 아니었는데다가 책을 보면서 '빈 수레가 요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마음 속 한 편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옮긴이가 남경태라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보게 되었다.(이 서평은 각 단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세트 전체에 대한 것이다.)
일단 이 책 이전에 이른바 '패러다임'을 잡고 있던 책인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와 먼저 번역과 편집 부분만 서로 비교해 보자. 이 책 번역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는데 '처음 완역한 것으로는 괜찮은 편이나 영어 직역투 번역은 아쉽다.'는 태도가 일반적인 것 같다. 이에 비해 이 책에서 번역 문제를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는바 이는 결정적으로 옮긴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번역자는 단순히 영어에만 능통한 전문번역가인데 비해 <비잔티움 연대기>의 번역자인 남경태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많은 책을 출판하고 번역을 꾸준히 해온 나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 번역의 질에서는 좀 더 나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편집을 살펴보면 <비잔티움 연대기>의 각 권 앞에 지도와 연표, 그리고 주요 인물과 주요 사건을 실어 놓은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가끔 너무 많은 인물과 지역명이 나올 때 마다 맨 앞의 지도와 연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비록 옮긴이의 주석은 각 장 아래에 있는데 비해 원 글쓴이의 주석은 전통적인 편집 방식에 따라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바 주석 나올 때마다 맨 뒤를 살펴보는 일은 굉장히 불편하였다. 읽는이를 좀 더 배려해서 각 장 밑에 주석을 위치시키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에 비해 <로마제국 쇠망사>는 양 옆에 주석을 배치하여 읽는 데 불편이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이 역시 부득이하게 <로마제국 쇠망사>와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1776년에 영국에서 <로마제국 쇠망사>가 먼저 출판되어 로마 역사에 대한 기본 자료로 이른바 '패러다임'을 잡고 있다가 J.J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가 1988년에 그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바탕으로 출판된 책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에서는 반대로 <비잔티움 연대기>가 먼저 완역되어 2007년에 소개된 후 2008년에 <로마제국 쇠망사> 역시 1년 후 완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기존에 <로마제국 쇠망사>가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완역본이 아니라 편집본이었다.)
어찌되었든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간직한 모든 미덕에 대한 배신으로 보았고 이는 로마 제국의 도덕적 타락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J.J 노리치는 비잔티움 제국은 서진하는 이슬람 문화를 막아주는 서유럽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고 학문의 빛이 꺼질 때 콘스탄티노플의 학자들이 그리스 고전을 잘 보전한 덕택에 실전(失傳)되지 않고 서유럽에 전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점은 간단하게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다.
에드워드 기번의 책 제목은 로마제국 '쇠망사'이다. 즉, 로마제국이 어떻게 망해가는지 중심을 두고 서술한 책이고 비잔티움 제국은 단지 로마제국이 멸망하는 과정에 있는 국가라고 보는 것인데 비해 J.J 노리치의 책 제목은 '비잔티움 연대기'이다. 즉, 로마와 다른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전혀 다른 제국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사라고 볼 수 있는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비잔티움 연대기>를 읽어 나가면 시간의 흐름과 무관심 속에 숨겨져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