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연대기 1 (양장) - 창건과 혼란 비잔티움 연대기
존 J.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 양장본 Set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서평을 통해 살펴 본 바 여기서는 제 1권에 대해서만 살펴볼까 한다. 1권에서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제국 황제에 오르는 것부터 470년 뒤 샤를마뉴(알고보니 이름이 샤를이고 마뉴는 존칭으로 붙이는 말이라고 한다.) 대제가 800년에 서로마 제국 황제가 되는 것까지의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크게 기독교 분열 문제와 황제 등극 문제 그리고 이민족 침입에 대한 방어 문제이다.
 

 일단 기독교 분열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비잔티움 제국 황제는 언제나 이단 문제로 골머리를 썩여 왔다. 초창기에는 아리우스파 이단 문제가 있었으며 이어서 단성론과 양성론 사이의 문제가 있었다. 먼저 아리우스파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인 아리우스의 견해를 따르는 종파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느님처럼 영원하고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하느님이 특정한 시기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서 창조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완전한 인간이라 해도 '아들'은 '아버지'에게 언제나 복종해야 하므로 그리스도의 본성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삼위일체(Trinity)를 재확인하여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나 이후 계속되는 이단 문제는 제국의 분열을 가져왔다. 사실 상식적으로 보면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삼위일체론은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 그래서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정죄된 이후에도 게르만족에게 널리 퍼졌으며 특히 이슬람교 형성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한다.(참고로 여호와의 증인도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이어서 단성론과 양성론 문제인데 단성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견해이고 양성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뿐만 아니라 인성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결국 단성론이 이단으로 선고받았으나 이는 이단 정죄를 위한 공의회 참석 인원이 양성론자 위주였고 특히 그들을 매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서 제국의 힘이 분열되자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단의론(그리스도는 두 개의 본성을 가지지만 단일한 의지를 가진다는 내용)를 펼쳐 그들의 대립을 조정하려고 하였으나 단의론은 양자로부터 모두 공격을 받았다.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파와 단성론자를 정죄함으로써 종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기던 찰나에 이제는 성상 파괴 문제가 다시 붉어졌다. 십계명에 의하면 우상 숭배를 하면 안되는 것 이었는바 레온 3세 황제는 성상을 파괴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서로마 교황이 이를 비난하면서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분열이 초래되었고 제국은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다. 사실 십계명을 잘 살펴보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당시 만연되어 있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었지 성상도 만들지 말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찌되었건 시도 때도 없이 종교 문제는 황제의 커다란 골치거리 였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결속을 방해하였다. 이를 보면 우리 나라는 종교 문제로 현재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는 점이 축복으로 보인다. 종교 문제는 신념과 연관되어 나라를 분열케 하고 이는 곧 국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2MB는 너무 대놓고 기독교 편향 정책을 펴는 바 멀지 않은 미래에 종교 갈등이 심화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우리도 종교 문제로 피를 보아야 할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2MB는 역사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어서 황제 등극 문제이다. 비잔티움 제국을 보면 언제나 황제 등극 과정이 암살, 쿠테타 등으로 얼룩져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황실 핏줄이 잘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경우 일처다부제를 통해 형제끼리 싸움이 있었을지언정 황실 핏줄이 완전히 끊겨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자가 황제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국교였던 로마 제국의 경우 일처일부제였고 그 결과 황실 핏줄이 끊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게다가 동아시아와 달리 황실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황족으로 여겨 왕위 계승권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황족 여자의 경우 언제나 황제 위를 노리는 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황제가 죽으면 언제나 피냄새가 진동하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문제는 이민족 문제였다. 초창기 문화면이나 군사력면에서 근처에 대적할 상대가 없었던 로마 시절에 비해 비잔티움 제국은 근처에 제국에 위협이 될 만한 적국이 많았다. 동쪽에는 아르메니아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슬람 세력이 있었으며 카타니아 지방에는 '신의 징벌'이라고 불리던 훈족 아틸라 등 이제 군사적으로도 비잔티움 제국은 이를 압도하지 못하였다. 비록 유스티아누스 대제 시절에 벨리사리우스라는 명장의 힘으로 이탈리아를 다시 수복하였으나 이미 비잔티움 제국은 그리스어를 사용한데 비해 이탈리아는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하는 등 이미 문화적으로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하여 결국 이탈리아 지방은 유스티아누스 사후 다시 이민족에게 빼앗기게 된다.

 

 이를 보면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로마/그리스 시절의 모든 영광을 잊어 버리고 악덕만 남은 나라라고 혹평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비잔티움 제국은 종교 문제, 황제 등극 과정에서 얼룩진 피, 끊임없는 이민족의 침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는 바 비잔티움 제국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그리스/로마 문화를 계승하여 이를 보전하였고 동쪽에 있는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제 2권을 통해 비잔티움 제국의 전성기와 몰락을 이어서 계속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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