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뒀다. 어떻게 하다보니 셋째를 낳게 되었는데, 주위의 반응이 하나같이 아들 낳으려고 셋째를 봤구나 하는 것이다. 일일이 사정을 이야기하기가 그래서 예, 그렇습니다 하고 넘어가지만 들을 때마다 속이 편하진 않다.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남아선호사상을 실감할 수 있어서.
그런데 주위의 반응보다 더 심각한 반응이 딸애에게서 나왔다. 시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 제사를 우리집에서 모시고 있는데 셋째가 태어나고 첫 제사때 큰애가 대뜸 그러는 거다.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나면 얘네 집에 가서 제사 모시면 되는 거지? 제사를 모셔야 되는 아들이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어투로.
제사에 대한 형식마저 많이 파괴되고 있는 요즘, 열살짜리 큰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주위에서, 우린 아니라고 하지만 은연중에 비친 부모의 모습에서 아이가 딸이기 때문에 느꼈을 낭패감과 어느새 자리잡은 고정관념 같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임정자의 <당글공주>를 읽은 건 그 무렵이었다. 씩씩한 여자아이를 다루었다는 소개글을 읽고 일단 주문부터 했다. '홍역' 괴물과 싸우는 당글공주의 캐릭터를 보고 여자아이에 대한 인식을 아이가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에서. 책 한 권 읽는다고 아이가 지금껏 받아들여왔던 인식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시선을 바꾸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싶어서.
<당글공주> 속엔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글공주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세 편의 이야기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살아있는 목숨을 존중해 주자고 이야기하는 듯한 '여기에 애벌레 있어요'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다소 억지스러워 보였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엄마와 아이의 화해를 다룬 '당나귀 귀 오리 주둥이'는 마치 우리 모녀를 보는 것같아 공감은 되었지만 역시 이야기전개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소풍때마다 비가 와 속이 상한 담이가 심술을 부리는 이무기를 찾아가는 '담이의 소풍'은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이야기는 독특했지만, 백석의 동화시를 차용한 듯한 형식이 충분히 녹아들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표제작인 '당글공주' 이야기는 홍역과 싸우는 것에 한정하지 말고 좀더 사건을 확대시켜 나가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독특한 이야기였다. 여자아이임에도 보호를 받기보다 남자인 동생을 보호하려고 하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혼자 시련을 이겨낸다는 당글공주의 캐릭터는 확실히 우리 동화에선 독특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생긴 모습마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기보다 맞붙어 싸우면 질 것 같은 중성적인 모습이니.
'당글공주'가 아이에게 심어진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가 재미있게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지. 딸과 함께 읽으려고 <후박나무 우리 집>을 구입했다. 일부러 이런 책들을 골라 읽어야 되는 게 속상하긴 하지만 아이와 나눌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