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책은 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어야 된다고 한다. 글자를 모르더라도 그림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으로 꼽히는 책 중에 라쵸프의 <장갑>이 있다.장갑은 할아버지가 떨어뜨리고 간 장갑 한 짝의 그림에서 시작한다. 어디선가 쥐가 나타나 장갑 속으로 들어가면서 개구리, 토끼, 여우, 이리, 멧돼지, 곰까지 모두 일곱 마리의 동물들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장갑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강아지가 장갑을 되찾기 위해 되돌아오면서 장갑 속의 동물들은 모두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라쵸프가 그린 <장갑>이 뛰어난 그림책으로 꼽히는 가장 큰 까닭은 조그만 장갑 속에 일곱 마리의 동물들이 들어간다는 조금은 무리가 따르는 설정을 말끔히 씻어버린 그림에 있다. 처음 장갑을 거처로 삼은 쥐가 나타난 이래 장갑은 동물이 한 마리씩 늘어날 때마다 그 모습이 조금씩 바뀐다. 나무로 단을 쌓는가 하면 사다리가 놓이고 지붕을 놓은 마루와 쪽문도 만들어진다. 굴뚝과 창문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조금씩 불어나는 동물들 때문에 장갑의 실밥이 벌어지기도 한다. 곰까지 들어간 장갑의 모습을 그리진 않았지만 여기 저기 실밥이 벌어져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리란 짐작은 충분히 간다.라쵸프의 그림은 한 마리씩 동물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사람들의 집을 닮아가는 장갑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일곱 마리의 동물이 장갑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게 만든다. 또한 작은 공간이지만 추운 겨울날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따뜻한 정들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겨울을 이야기한 그림책의 대명사격이라고 하는 <장갑>을 아이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예쁘지는 않지만 따뜻함이 넘치는 그림은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작가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충분히 말해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