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어느날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도시의 사람들이 실명하고 만다는 어느 도시의 이야기. 소설은 자동자 안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던 한 남자의 눈이 갑자기 멀어버리면서부터 시작된다. 실명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갔고, 곧바로 정치권과 군이 나서 눈먼 자들과 '보균자'들을 격리시키고 '실명'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차단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명은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실명을 두려워한 군인이 눈먼 자들을 향해 총을 쏘고, 경찰은 치안에서 손을 떼고... 사회 기능의 마비는 순식간이었다.

'실명'은 사람들에게 변화를 가져왔다. 눈이 멀기 이전의 이름과 가족과 집과 그밖에 소유물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눈먼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먹을 것과 몸을 누일 수 있는 장소,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옷가지뿐. 눈먼 자들은 먹을 것과 잠시 몸을 누일 곳을 찾기 위해 무리지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연약한 연결고리를 부여잡고서. 사람들의 변모에 맞춰 도시도 변하기 시작한다. 하루가 다르게 쓰레기와 배설물들이 거리를 더럽혔고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도시 전역을 메워갔다. 거두어줄 사람없이 거리 여기 저기 방치되어 있던 시체들은 허기진 동물들의 배를 채워주는 한끼 먹이로 전락하였을 따름이다.

지옥처럼 변모해가는 주위를 지켜보면서 안과의사의 아내는 무엇을 느꼈을까. 또렷이 보이는 두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안과의사의 아내는 몇 번이고 차라리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되뇌인다.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변해가는 주변의 모습은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가 단 하나 시력을 남겨놓았던 이 여인의 움직임에서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 듯하다. 자진해서 눈먼 자들의 수용소에 수감된 중년의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여인이 보여주는 행동이 없었더라면 이 책의 결말은 전혀 다르게 내려지지 않았을까.

중년의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안과의사의 아내는 눈먼 남편을 돌보기 위해 수용소로 자진 입소한다. 지옥과 같이 변모해가는 수용소 내부를 보면서 도망칠 수도 있었던 그녀는 다른 눈먼 자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총'과 '먹을 것'을 빌미로 재물과 성(性)을 강탈하는 폭력배를 응징하는가 하면 죽은자를 땅에 묻고 눈먼 자들을 돌본다. 수용소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그녀에게 기대고 있는 눈먼 자들을 돌봐주는 안과의사의 아내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구세주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들이 만드는 지옥과도 같은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고, 그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눈먼 사람들이 마지막 인간성마저 놓아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인물. 안과의사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이 함께 의지하고 베풀면서 보여주는 희망적인 모습은 작가가 우리들에게 돌아가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안과의사의 아내와 눈먼 자들이 서로를 돌아보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작가는 실험을 끝맺는다. 갑작스레 실명이 찾아왔던 어느 날처럼 갑작스레 사람들의 시력이 되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시력을 회복한 기쁨에서 벗어났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까.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 자신이 행한 여러 가지 행태들을 보면서 눈 멀었던 사람들이 느낄 무언가를 추리고 정리해야 될 독자들에게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 인간들이 정말 소중하게 간직해야 될 것은 무엇인지, 물질적인 소유욕 때문에 인간적인 가치를 너무나도 쉽게 내던지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면서도 또한 손에서 쉽게 떼어놓기 힘들었던 책, 단락 구분도 없이 쉼표와 마침표만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문체가 독자들의 시선을 더욱 붙들어매는 책, 미지의 시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보편적인 인간군상의 모습이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전율에 떨게 만드는 책,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뉴욕 스타일 다이어리(알라딘 체험단)
    from ★따즈의 방 2008-12-11 12:40 
    매해 이맘때쯤 되면, 내년 다이어리는 뭘로 할까 고민하게 된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고민이 내겐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 하는데 뉴욕 스타일 다이어리 체험단에 당첨되어 리뷰를 올리니, 조금이나마 다이어리 선택에 도움이 되길. 몰스킨과 파리그라피와 크기 비교 파리그라피보단 얇은 듯 느낌 내가 가지고 있는 다이어리와 크기비교를 해보자면 휴대성이 높았던 몰스킨에 비하면 훌쩍 크고, 같은 포토다이어리인 파리그라피에 비해선 좀 날씬하다. 뭔가 끄적거리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