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1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평점 :
합본절판


'어린아이의 마음과 철학자의 지혜를 가진 작가', '글을 쓰는 작가라기보다 꿈을 쓰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쪽지에 적어 두었던 '어떤 소년이 책을 읽다가 책 속에 있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는 메모를 바탕삼아 쓰여진 이 작품에서 미하엘 엔데는 책 속, 환상세계로 들어간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가 환상세계를 구하고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주위로부터 따뜻한 시선을 받지 못하고 책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위안을 느끼는 바스티안. 어느 날 고서점에서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한 바스티안은 주인 몰래 책을 훔쳐선 수업도 빠진 채 학교 창고에서 책을 읽는다. 아트레유와 행운의 용 푸후르의 모험담인 <끝없는 이야기>가 실은 위험에 처한 환상세계를 구하기 위해 현실 세계의 누군가, 바로 자신을 부르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바스티안은 파괴되기 일보 직전의 환상세계를 구하기 위해 책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린 여제의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환상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현실세계의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바스티안은 소원하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환상세계의 세계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간다. 소원이 이루어질 때마다 현실세계에 대한 기억도 하나씩 사라져갔지만 현실세계로 돌아가야 된다는 사실조차 외면한 채 소원을 꿈꾸고 이루는 일에 몰입한 바스티안에겐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소원은 현실세계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만 이루어지며 현실세계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인간은 더 이상 소원을 이룰 수도 없고 다시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바스티안이 알게 되었을 때 그에게 허용된 소원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진정한 소원을 발견했을 때는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린 상태였던 바스티안은 아트레유와 행운의 용 푸후르의 도움으로 생명의 물을 마시고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생명의 물은 바스티안 자신을 변화시켰고 그의 아버지를 변화시켰으며 주위의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이었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린 여제가 다스리는 환상세계는 책 속에 펼쳐진 세계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의미한다. 점점 커져가는 '무'에 의해 시작된 환상세계의 파괴는 꿈과 이야기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메마른 삶을 표현하는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환상 세계를 구할 임무를 부여받은 바스티안의 여행담은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다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바스티안처럼 우리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는 '끝없는 이야기', 즉 환상과 꿈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꿈과 환상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늙은 황제들의 도시'에 머문 사람들처럼 언젠가는 자신의 진정한 소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시켜야 할지 망각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꿈과 환상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고 함께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엔데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엔데는 독자들이 환상의 세계를 한걸음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두 가지 색깔의 글씨- 현실세계의 바스티안 이야기는 붉은색 글씨로, 환상세계의 이야기는 초록색 글씨로 구분해서 인쇄했다. 알파벳 26개가 들어간 삽화 또한 엔데의 신비로운 이야기처럼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엔데가 원했던 대로 번역본 역시 구릿빛 비단 표지에 놋쇠 단추를 달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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