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레이는 간단히 끝이 났다. 첫날에는 엑스레이를 찍으려고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자세를 잡는 순간 현기증과 구토증과 더해 기분이 몹시 나쁜 복통이 밀려 들었다. 잠시 엑스레이 베드에 누워서 쉰 다음 계속 찍을 수 있었다. 엑스레이 실을 나온 뒤 가까운 곳에 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 대신 복도를 좀 더 걸어들어가 내가 원래 타고 온 엘리베이터를 탔다. 왜냐하면 나는 길치이고 나중에 다시 원래 병동으로 헤메지 않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 엘리베이터나 타버리면 1층에서 돌아갈 엘리베이터를 못찾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1층에 내려 복도를 조금 걸어나가자 광장 piazza가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좁은 골목길을 반신반의 하면서 걸어나갔을 때 마주한 판테온과 판테온 앞의 작은 광장을 연상케 했다. 타짜도로는 아니지만 타짜도로의 미남 바리스타도 없지만 일단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커피 가게인 ***에서 달달한 커피를 1잔 주문했다. 원래는 카페 테이블에서 딱 3모금만 마시고(에스프레소를 털어넣는 이탈리안처럼) 일어날 생각이이었는데 환자복을 입은 채로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카페 테이블 공간은 계단 3개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수액걸이를 끌고 다니는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일부러 환자 출입을 막기 위해서 그랬을까? 테이크 아웃을 한 커피를 소중이 들고(아니 그냥 수액걸이에 있는 선반에 올려 두었다)내가 향한 곳은 인테리어가 다소 카페처럼 꾸며진 나름 뷰도 좋은 10층의 휴게실이었다. 창가에는 스타벅스처럼 바가 설치되어 있고 그 천장에는 길게 늘어뜨린 예쁜 조명들이 달려 있다. 그곳에서 나는 영화 <127시간>의 주인공이 소중한 물 한 모금을 물분자 하나하나까지 음미하면서 마시듯이 커피의 한 모금  한 모금을 소중히 천천히 마셨다. 세 모금! 딱 세모금! 5400원하는 커피를 세 모금 마셨으니 한 모금에 1800원인 셈이다. 커피를 세 모금 마시고 버렸다고 하자 토하는 것도 아까워하는 동생은 "커피를 사먹지 말아야지. 중독이네 중독. 그걸 못참아서 몇 모금 마시고 버리다니. 담배 못끊는 거랑 똑같다 똑같아."라고 했다.


다음 날은 커피를 사먹고 거의 대부분을 버리는 대신 넷플릭스에서 <데드 돈 다이>를 봤다. 개봉했을 때 본 이후로 첨 보는건데 너무 웃겨서 병실에서 혼자 막 웃었다. <데드 돈 다이>를 커피 대용으로 선택한 이유는 당연히 커피 때문이다. 첫 장면에 커피가 나오니까.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아야 해."와 "끝이 좋지 않을 거 같은 예감이 들어."라는 소중한 조언을 받아 적었다. 네네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작은 것은 포르쉐입니다. 카이엔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마칸이면 족하지요. 사람들은 행복, 가족, 자녀, 무병장수를 바라지만 나는 그런 거창한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한심하고 또 한심한 사치품인 자동차를 바랄 뿐이지요. 이 얼마나 가볍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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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스멀스멀 응급실을 예고하는 통증이 밀려 오는 걸 예감했다. 그 즉시 나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만약 입원을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 다음엔 배낭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넣었다. 제일 중요한 건 휴대폰 충전기와 에어팟! 그 다음 마스크 5개짜리 1팩, 치약, 칫솔, 물병, 핸드크림, 카드, 신분증, 읽을 책(명랑한 은둔자), 수첩, 볼펜(옛날 사람이라서 수첩과 볼펜이 필수다), 수건, 양말(양말이라도 새걸로 갈아신자), 항균티슈. 일단 이정도다. 아, 신발은 벗고 신기 편한 슬리퍼로 지난 번 입원 때 병원 옆 매점에서 5천원 주고 구입한 분홍 삼선 슬리퍼이다. 


아무래도 정말 아플건가보다. 또 응급실이다. 응급실의 다른 환자들은 퇴원하는데 나는 입원이었다. 입원 전에 코로나 검사를 한다고 하여 그 결과를 기다리면서 2인실과 다인실 사이에서 고민했다. 회사에서 의무가입 시킨 실비보험이 어디까지 보장해주나 계약서를 읽어봤다. 사실은 1인실에 있고 싶다. 저번에 입원했을 때 2인실에 있었는데 같이 입원한 60대의 맹잠염 수술환자분이 자꾸 말시켜서 정말 피곤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호구조사. 그때는 '아 이럴 거면 다인실이 낫겠다. 군중 속의 속의 무관심!!'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 고민은 다 부질없는 짓이었음이 곧 밝혀졌다. 다인실이든 2인실이든 현재 병상이 없고, 그래서 72시간만 입원 가능한 긴급병동에 입원. 

5인실이었다. 내가 입원함으로써 만실이 되었다. 다른 4명의 환자는 모두 60세 이상이었다. 내 눈에는 다 할머니처럼 보였다. 어쩌면 다들 70세 이상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 연세 많은 환자들은 나에게 질병과 늙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내 침상 왼쪽은 할머니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가 쉬었고, 다른 환자들이 조용히 휴식하면서 잠을 자야 하는 저녁 8시가 지나서도 그 절규는 계속 되어 결국엔 진정실로 실려 나갔다. 침대와 여러가지 장비들과 함께. 할머니는 소리를 질렀고 간병해주는 아들에게, 간호사에게 쌍욕을 했다. 그리고 엄마를 찾으면서 3살 아이처럼 울었다. 나는 귀에 에어팟을 꽂고 사라 장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을 듣기도 했고 테일러 스위프트를 인기순으로 듣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치매 초기였다고 했다. 난 사실 나 자신이든 부모든 간에 치매라면 그냥 안락사를 택하고 싶다. 물론 아닌 사람이 더 많겠지만, 치매든 시체와 다를바 없는 호스피스 병동의 90세 환자든 무조건 살리는 것이 휴머니즘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으나 나는 그런 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착하기 위해서 타인을 괴롭히는 위선. 


할머니들은 링거용 주사바늘을 손등이나 다리에 꽂고 있었다. 주로는 다리. 그러니 더더욱 거동이 불편할 수 밖에. 나도 어쩌다보니 오른팔에 주사바늘이 꽂혀서 불편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밥을 왼손으로 먹고 양치도 왼손으로 하는등등의 불편함. 노화가 진행될수록 가늘어 지는 혈관...주사바늘보다 가늘어져 버리는 혈관...그걸 생각하니 지금 내가  애쓰는 이 삶이라는 것이 한없이 부질없이 여겨졌다. 나약한 육체와 그것보다 더 나약한 정신.


응급실에서 1박을 하고 2박부터는 입원실. 


아...머리도 감고 싶고 카페인 걱정없이 커피도 마시고 싶다. 

대신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머리는 대충 손가락으로 슥슥 빗었다. 새 양말로 갈아 신고. 이정도가 최선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병원 1층 로비에 프렌차이즈 커피가게가 있다는 것을! 간호사에게 **에 가서 커피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니 금식목록에는 없지만 안먹는게 좋다, 그러나 정말 먹고 싶으면 조금만 먹으라고 했다. 지금 내가 있는 병동에서 병원 본관 로비까지 가는 길을 내가 찾을 수 있을지... 하지만 지하의 X-ray 실에 엑스레이 촬영도 해야하니 길을 나서자! 모르도르 화산을 찾아 가는 프로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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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을이다. 샤워물의 온도를 좀 더 높여야 했고, 샤워하고 나와도 에어컨을 찾지 않게 되었다. 쇼핑몰들은 지난 ss시즌 옷을 털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총력전, 무려 75%의 세일에 나는 넘어갔다. 오매불망 직구한 내 옷은 언제 오나? 하는 희망에 가득 차 있다. 다행히도 봄 옷이라 옷이 도착하면 딱 개봉해서 가을에 입으면 될 것이다! 그래서 여름 옷은 사지 않았다. 이 몸 나름 생산년도가 지난 옷을 사는 것을 꺼린다. 적게 사서 부지런히 입고 생산년도에서 2~3년 지나면 미련없이 처분(주로는 기부)해 버린다. 발망이냐 샤넬의 트위드 자켓 정도 된다면 나의 이 의생활 공식에도 예외가 생기겠으나 하하하!!


예전에 한 번은 여동생이 "언니 전에 그 가방은 어쨌어?"라고 하길래, "어, 기부했지."라고 답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왜 자기한테 물어보지 않고 기부해버렸냐는 핀잔을 들었다. 내 대답은 어차피 너는 가방이 많은데 내가 줘봤자 몇 번 들겠냐고. 그런데 기부를 하면 그런 가방이 꼭 필요한 주머니가 가벼운 10대 후반(혹은 20대 초반) 아이가 잘 들고 다니지 않겠냐는 거였다. 여동생은 "하긴 그렇지."라고 대화를 종결이었다. 나는 소히 말하는 명품 브랜드 가방도 지겨워지면 동생 줘버린다. 남녀공용이면 남동생, 여성용이면 여동생. 


딱 내가 가진 드레스룸에 적당히 보기 좋게 수납 전시 될 정도로만 의류(가방 포함)를 소유하고 후순위로 밀려난 것들은 나눔해버린다. 그래서 가끔 내 집에 방문하는 지인들은 식겁하기도 한다. 내가 어느날 갑자기 죽었을 때, 내 물건들을 정리하고 처리해야할 누군가가 한숨 짓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기에 그렇다. 죽을 고비를 1번 넘긴 나는 언젠가 느닷없는 죽음이라는 삶의 전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죽음(인생)은 과오를 정리하고 바로잡고 죽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줄 정도로 자비롭지 않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과오를 청소하고 지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신(조물주, 악마?)에게 기도할 시간에 그 대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일기장을 불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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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5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9호 태풍 마이삭은 새벽에 찾아왔다. 비바람 소리에 잠시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당으로 나가서 피해상황을 살폈다. 화단에 식물들이 쓰러져 있었다. 밤사이에 133mm의 폭우가 내렸으나 아침의 골목엔 비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강력한 바람에 의한 증발현상!

9호 태풍으로부터 약 5일 후 10호 태풍 하이선은 오전9시 전후 출근시간에 찾아왔다. 일단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비바람의 피크타임을 끝이 났다. 아직도 공공안전경보는 간간히 온다. 어느 도로가 통제중인지 알려준다. 다행히도 나는 피해가 없다. 다른 곳도 피해가 없길 바래본다. 


p.s. 태풍의 발생과 소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태풍이 오면 약간은 두근거린다. 대자연! 나약한 인간! 오늘 같은 날 길고양이들은 어디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을지... 나는 길냥이들에게 사료를 주는데 반려견을 키우는 옆 집 아주머니는 그걸 좋게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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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듣는 것을 좋아한다. 청소하는 것도 좋아한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청소를 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하는 일은 다양하겠으나 나의 경우 청소(집안일)를 하면서 팟캐스트를 들을 때가 제일 몰입이 잘되고 재미있다. 그래서 나는 청소를 하려고 팟캐스트를 아껴두고, 팟캐스트를 들으려고 매일 청소를 한다. 


예전에는 주말에 몰아서 청소를 했었다. 몰아서 하는 청소도 나름 즐겁긴하지만 긴 시간하다보면 좀 힘들어진다. 그래서 겸사겸사 1일 1공간 청소로 청소계획을 변경했다. 침실, 서재, 거실, 주방, 화장실(손님방과 손님화장실은 손놈이 사용하고 난 후에만 청소하므로 패스)을 매일 1공간씩 청소하는 것이다. 침실, 주방, 서재 청소는 좀 오래 걸린다. 이때는 바닥을 쓸고 물걸레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있는 잡동사니들도 정검하고 버릴 건 버리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날은 방 1개를 치우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의 모든 인간 쓰레기들을 다 치워버리고 싶은데,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니까. 또한 무엇이 쓰레기인지 구분하는 것도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를 테니까. 그래서 나는 수신제가까지에만 집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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