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이다. 샤워물의 온도를 좀 더 높여야 했고, 샤워하고 나와도 에어컨을 찾지 않게 되었다. 쇼핑몰들은 지난 ss시즌 옷을 털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총력전, 무려 75%의 세일에 나는 넘어갔다. 오매불망 직구한 내 옷은 언제 오나? 하는 희망에 가득 차 있다. 다행히도 봄 옷이라 옷이 도착하면 딱 개봉해서 가을에 입으면 될 것이다! 그래서 여름 옷은 사지 않았다. 이 몸 나름 생산년도가 지난 옷을 사는 것을 꺼린다. 적게 사서 부지런히 입고 생산년도에서 2~3년 지나면 미련없이 처분(주로는 기부)해 버린다. 발망이냐 샤넬의 트위드 자켓 정도 된다면 나의 이 의생활 공식에도 예외가 생기겠으나 하하하!!


예전에 한 번은 여동생이 "언니 전에 그 가방은 어쨌어?"라고 하길래, "어, 기부했지."라고 답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왜 자기한테 물어보지 않고 기부해버렸냐는 핀잔을 들었다. 내 대답은 어차피 너는 가방이 많은데 내가 줘봤자 몇 번 들겠냐고. 그런데 기부를 하면 그런 가방이 꼭 필요한 주머니가 가벼운 10대 후반(혹은 20대 초반) 아이가 잘 들고 다니지 않겠냐는 거였다. 여동생은 "하긴 그렇지."라고 대화를 종결이었다. 나는 소히 말하는 명품 브랜드 가방도 지겨워지면 동생 줘버린다. 남녀공용이면 남동생, 여성용이면 여동생. 


딱 내가 가진 드레스룸에 적당히 보기 좋게 수납 전시 될 정도로만 의류(가방 포함)를 소유하고 후순위로 밀려난 것들은 나눔해버린다. 그래서 가끔 내 집에 방문하는 지인들은 식겁하기도 한다. 내가 어느날 갑자기 죽었을 때, 내 물건들을 정리하고 처리해야할 누군가가 한숨 짓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기에 그렇다. 죽을 고비를 1번 넘긴 나는 언젠가 느닷없는 죽음이라는 삶의 전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죽음(인생)은 과오를 정리하고 바로잡고 죽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줄 정도로 자비롭지 않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과오를 청소하고 지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신(조물주, 악마?)에게 기도할 시간에 그 대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일기장을 불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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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 2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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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1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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