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스멀스멀 응급실을 예고하는 통증이 밀려 오는 걸 예감했다. 그 즉시 나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만약 입원을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 다음엔 배낭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넣었다. 제일 중요한 건 휴대폰 충전기와 에어팟! 그 다음 마스크 5개짜리 1팩, 치약, 칫솔, 물병, 핸드크림, 카드, 신분증, 읽을 책(명랑한 은둔자), 수첩, 볼펜(옛날 사람이라서 수첩과 볼펜이 필수다), 수건, 양말(양말이라도 새걸로 갈아신자), 항균티슈. 일단 이정도다. 아, 신발은 벗고 신기 편한 슬리퍼로 지난 번 입원 때 병원 옆 매점에서 5천원 주고 구입한 분홍 삼선 슬리퍼이다. 


아무래도 정말 아플건가보다. 또 응급실이다. 응급실의 다른 환자들은 퇴원하는데 나는 입원이었다. 입원 전에 코로나 검사를 한다고 하여 그 결과를 기다리면서 2인실과 다인실 사이에서 고민했다. 회사에서 의무가입 시킨 실비보험이 어디까지 보장해주나 계약서를 읽어봤다. 사실은 1인실에 있고 싶다. 저번에 입원했을 때 2인실에 있었는데 같이 입원한 60대의 맹잠염 수술환자분이 자꾸 말시켜서 정말 피곤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호구조사. 그때는 '아 이럴 거면 다인실이 낫겠다. 군중 속의 속의 무관심!!'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 고민은 다 부질없는 짓이었음이 곧 밝혀졌다. 다인실이든 2인실이든 현재 병상이 없고, 그래서 72시간만 입원 가능한 긴급병동에 입원. 

5인실이었다. 내가 입원함으로써 만실이 되었다. 다른 4명의 환자는 모두 60세 이상이었다. 내 눈에는 다 할머니처럼 보였다. 어쩌면 다들 70세 이상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 연세 많은 환자들은 나에게 질병과 늙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내 침상 왼쪽은 할머니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가 쉬었고, 다른 환자들이 조용히 휴식하면서 잠을 자야 하는 저녁 8시가 지나서도 그 절규는 계속 되어 결국엔 진정실로 실려 나갔다. 침대와 여러가지 장비들과 함께. 할머니는 소리를 질렀고 간병해주는 아들에게, 간호사에게 쌍욕을 했다. 그리고 엄마를 찾으면서 3살 아이처럼 울었다. 나는 귀에 에어팟을 꽂고 사라 장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을 듣기도 했고 테일러 스위프트를 인기순으로 듣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치매 초기였다고 했다. 난 사실 나 자신이든 부모든 간에 치매라면 그냥 안락사를 택하고 싶다. 물론 아닌 사람이 더 많겠지만, 치매든 시체와 다를바 없는 호스피스 병동의 90세 환자든 무조건 살리는 것이 휴머니즘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으나 나는 그런 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착하기 위해서 타인을 괴롭히는 위선. 


할머니들은 링거용 주사바늘을 손등이나 다리에 꽂고 있었다. 주로는 다리. 그러니 더더욱 거동이 불편할 수 밖에. 나도 어쩌다보니 오른팔에 주사바늘이 꽂혀서 불편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밥을 왼손으로 먹고 양치도 왼손으로 하는등등의 불편함. 노화가 진행될수록 가늘어 지는 혈관...주사바늘보다 가늘어져 버리는 혈관...그걸 생각하니 지금 내가  애쓰는 이 삶이라는 것이 한없이 부질없이 여겨졌다. 나약한 육체와 그것보다 더 나약한 정신.


응급실에서 1박을 하고 2박부터는 입원실. 


아...머리도 감고 싶고 카페인 걱정없이 커피도 마시고 싶다. 

대신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머리는 대충 손가락으로 슥슥 빗었다. 새 양말로 갈아 신고. 이정도가 최선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병원 1층 로비에 프렌차이즈 커피가게가 있다는 것을! 간호사에게 **에 가서 커피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니 금식목록에는 없지만 안먹는게 좋다, 그러나 정말 먹고 싶으면 조금만 먹으라고 했다. 지금 내가 있는 병동에서 병원 본관 로비까지 가는 길을 내가 찾을 수 있을지... 하지만 지하의 X-ray 실에 엑스레이 촬영도 해야하니 길을 나서자! 모르도르 화산을 찾아 가는 프로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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