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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푸리에...는 설탕을 증오하고 공포슬러워하기까지 한 유럽 사회의 공식적 도덕에 대하여 상상력의 차원에서 당당히 싸움을 걸었던 것이다. 미식을 탐하는 쾌락과 에로스의 쾌락을 긍정하고 거기에 이상적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두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이들이야말로 미식가로서 활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
완전한 욕망의 실현이야말로 유토피아라고 설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문명사회에서 가장 비참하다고 할 수 있는 빈곤의 특징짓는 것은 신맛이다. 다가 올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그 반대인 단맛이 그 중심이 되고 사회의 질서와 진리는 시럽과 같은 것이 된다. 어린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은 '품질 좋은 잼과 설탕이 들어간 크림, 레모네이드'(<네 가지 운동의 이론>)가 될 것이다. 이 영원한 몽상가의 머릿속에는 마침내 온 지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온 인류가 완벽한 행복에 도달할 때면 바닷물이라는 바닷물은 모두 레모네이드가 되고 미식이야말로 종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푸리에는 자신의 시체를 설탕에 재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프루스트의 그 유명한 마들렌 체험...
푸리에가 인류의 미래를 과자의 비전을 주장하며 묻어버리려고 했다면 프루스트는 반대로 과거의 모든 일들이 마들렌의 기억으로 환기되고 과자는 분광기로서 언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택했다. 두 사람 모두 요리에 관한 글을 쓰려는 자들을 지켜주는 수호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행복이란 '눈에 보이는 모든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의 앞머리에 나오는 말이지만 그들은 유년시절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된 행복을 그야말로 플라톤 식으로 상기할 수 있었던 행복한 인종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