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요즘 이곳 시골에서/ 혼례를 올리기 위해서는/ 바다 건너/ 사막 너머/ 먼 데서 신부를 데려와야 한다 

예식은 읍내 식장까지 갈 필요가 없다/ 창밖 지붕 너머 들판과 냇가 건너/ 멀리 앞산까지 온통 뿌연 예식장 

드디어 신부가 온다/ 누우런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산 넘어 신부가 날아온다 

신부의 가는 허리에서 방울 소리 울리고/ 속눈썹은 회초리처럼 길고/ 양털 가죽신을 신은 걸 보아/ 신부는 유목의 바람 세찬 곳에서 오나 보다 

혼례는 하루 종일 계속된다/ 이 잔치를 거들고 즐기느라/ 목력과 산수유도 종일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다 

그런데, 혼수용으로 신부를 따라온/ 염소구름은 어떻게 한다지?/ 이 뿌우연 봄날, 고삐를 매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버릴 터인데 

<반달곰이 사는 법> 

지리산 뱀사골에 가면 제승대 옆 등산로에서 간이 휴게소를 운영하는 신혼의 젊은 반달곰 부부가 있다 휴게소는 도토리묵과 부침개와 간단한 차와 음료를 파는데, 차에는 솔내음차, 바위꽃차, 산각시나비팔랑임차, 뭉게구름피어오름차 등이 있다 그중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것은 맑은바람차이다 

부부는 낮에는 음식을 팔고 저녁이면 하늘의 별을 닦거나 등성을 밝히는 꽃등의 심지에 기름을 붓고 등산객들이 헝클어놓은 길을 풀어내 다독여주곤 한다 

그런데, 반달곰 씨의 가슴에는 큼직한 상처가 있다 밀렵꾼들의 총에 맞아 가슴의 반달 한쪽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일전에 반달보호협회에서도 찾아왔다 그대들, 곰은 사라져갈 운명이니 그 가슴의 반달이나 떼어 보호하는 게 어떤가 하고, 

돌아서 쓸쓸히 웃다가도 반달곰 씨는 아내를 보자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산열매를 닮아 익을 대로 익은 아내의 눈망울이 까맣다 머지않아 아기 곰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는 하늘을 아장아장 걷는 낮에 나온 반달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험한 산비탈 오르내리며 요즘 반달곰 씨는 등산 안내까지 겸하고 있다 오늘은 뭐 그리 신이 나는지 새벽부터 부산하다 우당탕 퉁탕......, 어이쿠 길 비켜라, 저기 바위택시 굴러 온다 

<빈집> 

지붕밑 다락에 살던 두통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그 집은 빈집이 되었다 

가구를 들어내 휑하니 드러난/ 벽들은 오랜 망설임 끝에/ 좌파로 남기로 결심했고 

담장이덩굴들이 올라와 넘어다보던/ 아름답던 이층 창문들은/ 모두 천국으로 갔다 

그리고, 거실에 홀로 남은 낡은 피아노의/ 건반은 고양이들이 밟고 지나다녀도/ 아무도 소리치며 달려오는 이 없다/ 이미 시간의 악어가 피아노 속을/ 다 뜯어먹는 늪으로 되돌아갔으니 

구석에 버려져 울고 있던 어린 촛불도/ 빈집이 된 후의 최초의 밤이/ 그를 새벽으로 데려갔을 것이었다 

벌써 어떻게 알았는지/ 노숙의 구름들이 몰려와/ 지붕에 창에 나무에 떼처럼 들러붙어 있다 

이따금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그들의 퇴거를 종용해보지만, 부력을 잃고/ 떠도는 자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 있으랴/ 철거반이 들이닥칠 때까지/ 한동안 그들은 꿈쩍도 않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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