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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잠든 뒤> 

... 

내부순환도로를 달려가는 차량 소음이 새소리를 대신하고, 매일 키가 자라는 동네 가로등 불빛이 한결 밝아지면, 불쌍한 것은 길가의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들이다. 밤새도록 가로등과 자동차 전조등과 아파트촌으 불빛에 시달리면서 매일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이 가로수들은 어둠마저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오복빌딩> 

... 

옥상에는 키 작은 향나무 몇 그루와 저수 탱크와 붉은 벽돌집이 있다. 문패 없는 이 옥상옥에서 빌디으이 주인이 산다. 

그 위로는 하늘이다. 

이 하늘이 아까워 건물주는 매일 밤 고층 아파투를 짓는 꿈을 꾸는 것이다. 

<처음 만나던 때> 

조금만 가까워져도 우리는 

서로 말을 놓자고 합니다 

멈칫거릴 사이도 없이 

-너는 그 점이 틀렸단 말이야 

-야 돈 좀 꿔다우 

-개새끼 뒈지고 싶어 

말이 거칠어질수록 우리는 

친밀하게 느끼고 마침내 

멱살을 잡고 

싸우고 

죽이기도 합니다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경어로 인사를 나누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앞으로만 달려가면서 

뒤돌아볼 줄 모른다면 

구태여 인간일 필요가 없습니다 

먹이를 향하여 시속 140km로 내닫는 

표범이 훨씬 더 빠릅니다 

서먹서먹하게 다가가 

경어로 말을 걸었던 때로 

처음 만나던 때로 우리는 가끔씩 되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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