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1

젊은이들이 승리를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승리를 계속 유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젊은이들의 약점이다. 우리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위해 죽도록 싸웠노라고 마구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늙은이들은 정중한 태도로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평화조약을 맺어버렸다. 

 

 

 

 

 

 

 

p.15-6

사람이 성숙하면 사고는 무르익고 기술은 능숙해지며 재능도 완성되지만, 삶을 그 마지막 극단까지 치열하게 살게 하는 젊은 시절의 낭만은 사라지고 마는 법이다. 

p.95-102 <아랍인의 성찬> 

"검은 것으로 드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연 것으로 드시겠습니까? 

그것은 커피나 차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권유하는 말이었다. 나시르 셰리프는 언제나 '검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하인은 곧바로 한 손에는 기다란 주둥이가 달린 커피포트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서너 개의 하얀 도자기 찻잔이 놓여 있는 쟁반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찻잔에 커피를 약간 부은 후에 그것을 나시르 셰리프에게 내밀었다. 하인은 두 번째 찻잔에 커피를 붓더니 나에게 건넸다. 그런 다음에 다시 세 번째 찻잔에 커피를 부어서 네시푸에게 주었다. 우리가 향기로운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즐기기 위해 첫잔을 손에 들고 빙빙 돌리면서 조심스럽게 홀짝이는 동안, 하인은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가 찻잔을 다 비우자마자, 하인은 즉시 손을 뻗어서 빈 찬잔들을 회수했다. 그리고 순서에 따라 다음 차례의 손님들에게 찻잔을 건네주었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서 이윽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다 차를 마시고 나면 하인은 다시 나시르 셰리프를 향해 돌아섰다. 우리는 다시 두 번째 차를 마셨다. 두 번째 마시는 커피는 첫 번째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그 맛의 비결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커피포트의 밑바닥에 농축되어 있던 커피가 우러나오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에 마신 사람들이 남긴 커피가 잔 바닥에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요리가 지연되어서 음식이 아주 늦게 나오는 경우에는 커피 잔이 서너 차례까지 돌았다. 그럴 때마다 커피의 맛은 조금씩 달랐으며, 놀날 정도로 맛이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두 명의 남자가 쌀밥과 고기가 가득 담긴 구리 쟁반을 들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때로는 얕은 욕조처럼 생긴 그릇을 들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몹시 흥분한 군중들 사이로 비틀거리면서 다가왔다. 그긋은 지름이 5피트나 되었으며, 커다란 화로처럼 다리가 달려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부족에게는 이만한 크기의 식기가 하나밖에 없었다. 커다란 식기의 주위에는 화려한 아랍 문자로 '신의 영광을 위하여. 최악의 순간에 신이 자비를 베풀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당신의 가엾은 탄원자 아부 타이가 이 그릇을 소유한다'라고 적힌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에 우리를 접대하게 된 주인은 아우다 아부 타이로부터 이 그릇을 빌린 것이 분명했다. 몸과 마음 모두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나는 좀처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가끔씩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가끔씩 이 거대한 식기를 어디론가 운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 식기의 행선지를 보면서 나는 그날 우리가 어디에서 식사를 하게 될 것인지를 미리 짐작했다. 

이 커다란 그릇 위에는 흰 쌀밥이 가장자리를 따라서 거의 넘칠 듯이 둑을 이루고 있었다. 그 폭은 1피트 정도였고 깊이는 6인치 정도 되었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양의 다리와 갈비들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예법에 규정된 대로 이 거대한 식기의 한가운데에 맛있게 요리한 고기 피라미드를 세우기 위해 서는 무려 두세 마리의 양을 잡아야만 했을 것이다. 이 고기 더미의 중앙에는 삶은 양의 머리가 뒤집힌 채로 놓여 잇었다. 마치 낙엽처럼 갈색으로 변한 양의 귀는 쌀밥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활짝 벌리고 있는 턱 사이로 속이 텅 비어 있는 목구멍과 아직까지도 연분홍색을 띠고 있는 혀가 이빨에 착 달라붙은 모습이 보였다. 고기 더미의 꼭대기는 바늘처럼 날카로운 코털과 음산하게 비웃고 있는 입술 위로 솟아 있는 기다란 앞니들로 하얗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 무거운 그릇은 우리들 한가운데 깨끗하게 치워진 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음식이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는 동안에도 몇 명의 시중꾼들이 조리된 음식이 들어 있는 작은 솥과 구리 통을 들고 줄지어 들어왔다. 그리고 에나멜 칠을 한 철제품이긴 하지만 여기 저기가 많이 손상된 국자로 양을 비롯한 온갖 고기를 넣어서 조리한 육수를 펴내더니 요리에 골고루 끼얹었다. 비교적 작고 노란색을 띠는 내장 조각들과 기름투성이인 희고 연한 꼬리살, 갈색을 띠고 있는 근육 부위의 고기, 빳빳한 살갗 등이 걸쭉한 버터와 바짝 조려진 기름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곧이어 즙이 많은 작은 고기 조각들이 부글거리면서 바닥으로 가라앉아 구경꾼들은 자못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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