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오, <무언가 찾아올 적엔>, 창작과비평사 2003


누군가 살고 있기에


새가 와서 잠시 무게를 부려보기도 하고

바람이 와서 오래 힘주어 흔들어보기도 한다

나무는 무슨 생각을 붙잡고 있는지 놓치는지

높은 가지 끝 잎사귀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다

잎이 다 시드는 동안 나무는

가슴을 수없이 잃고 찾고 했나보다

그의 둘레가 식었다가 따스해졌다가 반복하는데

내가 왜 이리도 떨릴까

아직 가까이하지 않은 누군가의 체온 같기도 하고

곁으로 빨리 오지 못하는 누군가의 체온 같기도 한

온기가 나를 감싼다

그의 속에는 누가 살고 있기에

외롭고 쓸쓸하고 한없이 높은 가지 끝에

잎사귀들 얼른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그의 생각을 끊어놓고 이어놓고 하는 걸까

나무가 숨가쁜 한 가슴을 꼬옥 품는지,

나도 덩달아 가슴이 달떠지는 것이어서

내 몸속에도 누가 살고 있기는 있는 것이다

가만히 서서 나무를 바라보는데도 나는

무슨 생각을 그리움처럼 놓쳤다가 붙잡았다가 하고

여전히 그는 잎사귀들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

새가 부려두고 간 무게를 견뎌야 생각이 맑아지는지

바람이 흔들어대던 힘을 견뎌야 생각이 맑아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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