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리 와 있네


                   임영조


어딘가에 떨어뜨린 단추처럼

어딘가에 깜박놓고 온 우산처럼

도무지 기억이 먼 유실물 하나

찾지 못해 몸보다 마음 바쁜 날

우연히 노들나루 지나다 보네

다잡아도 놓치는 게 세월이라고

절레절레 연둣빛 바람 터는 봄 버들

그 머리채 끌고 가는 강물을 보네

저 도도하게 흐르는 푸른 물살도

갈수록 느는 건 삶에 지친 겹주름

볕에 보면 물비늘로 반짝이는 책

낙장없이 펼쳐지는 大藏經이네

어느 한 대목만 읽어도 아하!

내 생의 유실물이 모두 보이고

어영부영 지나온 산과 들이 보이네

내 마음속 빈터에 몰래 심어둔

홀씨 하나 싹트는지 궁금한 봄날

거룻배 노 저어가 찾고 싶은 날

오던 길 새삼 뒤돌아보면 이런!

나는 너무 멀리 와 있네.


*『시인의 모자』(2003,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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