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민음사 2003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채우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 만큼이 인생이다



저녁 일곱시


만약 네가

저녁 일곱시에 온다면

그 시간에 온다면

나는 어쩔 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을 확정하고

네가 온다면 정말 그렇다면

나는 아침부터 초롱꽃을 따

네가 올 길가의 가로수를 따라

가지런히, 보기도 아름답게

등 길을 만들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의 손놀림은 빨라지고

마음도 조금씩 들뜨겠지

그 들뜬 마음을 점점 흥분되겠지

꽃초롱이 한 둘 만 만들어질수록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저 하늘에 핀 태양을 바라보며

왜 그리 걸음이 더디더냐 원망할 거야

너를 그리는 내 숨 가쁜 마음이라면

분명히 원망하고도 남을 거야

그러나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고

온종일 바쁜 마음으로 만든

등꽃이 불을 밝히면 거의 미쳐버릴 거야

왜냐하면 일곱시가 되어가기 때문이지

네가 올 일곱시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나 이젠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야

너를 맞이하는 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지

나의 기다림은 무척 행복할 거야

인생에서 기다림처럼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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