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꽃보다 마음을 주었네, 열림원 1999

<돌점 치는 여자>

그 여자와 나는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만났습니다
이스크쿨이라는 이름의 호수가
천산의 맑은 눈망울을 떨구고 있는 땅
그 여자가 돌 몇 개를 굴려
내 인생의 앞날을 읽어주었습니다
나 두 귀 쫑긋거리며
또르르 또르르 물방울처럼 굴러 나가는
내 인생의 마른 풀숲 하나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썩어 문드러질 육신
죽어 지옥을 방황할 영혼
그 여자의 점괘들이
비비새의 울음소리가 되어
저물녘 사과나무 가지에 걸렸습니다
그날 밤 이스크굴 호수의 수면 위에
육탈이 덜 된 한 사내의 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람도 되지 못하고
꽃도 되지 못하고
더더욱 새는 꿈꾸지 못한
한 사내의 이름이 작은 물살 되어
천산의 기슭까지 천천히 밀려 나갔습니다

<선유도>
섬과
섬 사이
새가 날아갔다
보라색의 햇살로 묶은
편지 한 통을 물고

섬이 섬에게
편지를 썼나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