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외 라 로셀,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춘>, 중앙일보사 1982
p.523
질은 샹토를 볼 때마다 마굿간에서 수도원으로 옮아간 중세의 수도승, 최근에 배운 단어들에 대해서 자신만만 하지만 아직도 말똥이 온통 엉겨붙은 라틴어를 휘드르는 수도승이 생각났다. 한데 농부의 아들들도 이젠 교회로 뛰어들지 않고 고등사범학교로 뛰어든다. 그들은 부르달루(17세기의 유명한 설교가)의 설교보다는 죠레스의 연설을 열심히 파본다. 삼위일체보다는 비례 대표제에 대해서 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