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존재에게 말한다. 나는 너의 뒤에서 너를 늘 완벽하게 만들어주었고, 늘 너를 따라다녔으며 때로 밟히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그런데 너는 단 한번도 나에게 감사한 적이 없다고. 너의 영광은 나의 것이었고, 너의 행복 역시 나의 것이었는데 너는 빛을 향해 있을 뿐 어두운 내 모습에 대해서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고. 나는 이제 너의 영광과 행복을 모두 앗아버리겠다고 그림자 없는 너의 존재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너의 추락을 통해 보여주겠다고. 늘 빛나는 사람이었던 니콜라 파브리에게 보내는 에드워드 램의 차가운 복수 속에서 나는 그림자가 존재에게 건네는 이 소리없는 외침을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에드워드는 니콜라에게서 반짝임을 보았고, 그래서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격하게 질투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니콜라를 완성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그것을 알면서 외면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은 독자가 판단하기 나름이겠지만. 철저히 램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글을 읽으면서 니콜라가 정말로 그를 그토록 무시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램처럼 질투와 복수심에 사로잡힌데다 자기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인물은 당연히 상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테니까. 그러나 니콜라가 곤경에 처했을때 주변의 사람들 특히, 피터나 파르망티에가 보여주는 반응을 살피자면 니콜라는 램이 설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주변을 외면하는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자의식이 남들보다 좀 더 강했을뿐. 그러나 램에게는 이러한 사실 역시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터이다. 그림자였던 그가 존재에게 무기를 들도록 만든 원동력이 다름아닌 사랑의 복수였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야스미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니콜라 역시 사랑했다. 그가 복수의 수레바퀴를 돌리면서 자신을 향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이유는 그가 지독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으면서도 니콜라에 대한 증오에 빛나는 애정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복수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번 니콜라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가 자신을 열렬히 환영했다면, 그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었다면, 그렇다면 그는 복수를 실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물어가면서. 니콜라가 야스미나에 대해 고백했다면 용서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앞서 자신을 알아봐줬더라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램은 이미 스스로 니콜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니콜라의 죽음 이후 에드워드는 어윈 브라운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발굴해 낸 작가 어윈 브라운의 그림자가 될 것이다. 이제는 존재가 희미하니 그림자의 가치가 더욱 빛날지도 모른다. 니콜라의 부재로 힘들었던 에드워드의 해방은 이렇게 새로운 존재의 탄생으로 결말지어진다. 스스로 존재가 되지 못하고 그림자를 자처하는 램의 행복한 뒷모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쓸해보이는 것은 아마도 그가 결국은 존재로 남지 못한 탓일 터이다. 편집된 죽음은 추리 소설이지만 에드워드 램의 심리를 중심으로 서술되어있다. 역자도 말했지만 그래서 심리소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심리 추리 소설쯤 되려나. 그래서 추리 소설이 갖는 사건의 견고함과 심리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 본성의 이해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책을 무기로 한 에드워드의 복수가 치밀하면 치밀할 수록. 그가 갖는 증오심과 복수심의 칼날이 다져지면 다져질 수록 독자들은 긴장하게 된다. 나는 니콜라가 결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야스미나를 죽게 한 책임은 있겠지만 사건의 진실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어쩐지 이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 오랜만에 즐거운 책읽기. 생각하는 책읽기를 가능하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를~
최근에 쓰인 작품은 아니지만 최근에 알게된 작품인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 3권이다. 홈즈나 포와로의 날카로운 추리력을 내세우는 인물은 아니지만 거대한 풍채와 그에 걸맞은 우직한 수사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는 매그레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단비가 아닐까 생각된다. 1,2권에서와 달리 3권의 사건은 매그레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이동 중 수상한 남자를 발견했고, 형사의 직감으로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예감했고, 그래서 그의 가방을 슬쩍 바꿔치기했는데 그가 미친듯이 불안해하다 결국 자살해버렸다. 놀라운 것은 그가 그토록 불안해하며 찾아다녔던 가방 안에 낡고 피뭍은 정장 한 벌이 있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죽어야 할 이유라고는 없어보이는 이 정장 한 벌에(비교 결과 그의 것도 아닌)목숨을 건 사내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일까. 사건의 발생이 독특하고, 자칫 매그레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어떻게 이 사건이 풀려나가게 될 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누가 의뢰한 것도 아니고, 아직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은 시점에서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단서는 자살한 시체와 가방 속의 옷 한벌, 그리고 그가 목격한 사내의 이상한 행동 뿐이다. 인간이 과거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래서 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도록 망각이 존재하는 것일테고. 미래를 계획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선량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청춘을 과시하며 저지른 치기어린 행동이 그들의 안정적 중년을 어떻게 방해했는지 이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죄책감이 사람을 어떻게 벼랑끝으로 몰아가는지도. 줄줄이 나오는 그의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동안 장마도 그치고 집중호우도 그쳐간다. 아직 비가 오는 중이니 한동안은 집에서 그의 소설 속에 더 파묻혀도 좋겠다. 그가 우직하게 궂은 날씨 속을 헤쳐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바지선이라는 것이 있다. 말의 힘으로 가는 배를 말한다. 그래서 배와 수문의 이야기로 가득한 이 소설에서 마부와 말의 이야기역시 필수적이다. 그리고 매그레는 사건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비가오는 질척질척한 진흙탕 속을 뚫고 60km이상을 끊임없이 달리는 매그레의 모습은 우직한 형사의 모습 그대로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읽고 있으며 그대로 감정이입이 되어 육중한 몸임에도 헐떡일 수밖에 없는 그의 형편을 떠올리며 읽는 독자 역시 숨을 헐떡이게 되리라. 배 위에서의 삶은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바다 한 가운데를 항해하는 것보다 일정한 속도로 수문을 이동하는 바지선과 요트가 안정적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지루한 여행 같기도 하고, 따분한 일상 같기도 한 묘한 삶의 경계를 살고 있는 인물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 여인의 시체가 느닷없이 나타난다. 이 곳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옷차림과, 당시의 날씨와 땅바닥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깨끗한 상태에다, 전혀 나타나지 않는 단서, 불가능한 시간 설정, 게다가 아무런 증거가 없어 사건 당시의 배들이 모두 수문을 지나가버리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불상사까지 도무지 매그레에게 친절하지 않은 상황들 뿐이다. 게다가 수사 진행 과정에서 또 하나의 시체가 생겨나기까지 한다. 동일범에 의한 것이 분명한 두 사건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실제로 심농이 자신의 배 <오스트로고트>호 선상에서 집필했다는 이번 작품은 그래서 그런지 배 위에서의 삶이 매우 자세하고 실감나게 표현되어있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독자 역시 배 위에서의 한적한 삶과, 때로 수문을 먼저 지나기 위한 배 주인들의 떠들썩한 목소리들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에 낯설지만 흥미로운 장면에 빠져보는 것은 이번 작품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굉장히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던 책이다. 당시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이 쌓여있었던지라 은근히 순위에서 밀려났었다고나 할까. "내 딸을 죽인 범인은 우리반에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문구가 많은 독자들의 손길을 불렀을 것이 분명한 '고백'. 제목답게 이 작품 안에는 수많은 '고백'이 들어있다. 시작은 초등학교 교사의 고백이다. 냉정하고도 담담하게 딸의 죽음을 밝히는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끔찍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범인 두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잊지 않은 치밀한 고백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법의 심판이 아닌 자신의 심판이 있었음을 알렸다. 확실하지 않은 확률로 그들은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될 것이다.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도 남을 질병. 스스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질병에. 교사는 교직을 떠나버렸지만 학급은 학생들의 이동이 전혀 없는 채로 한 학년 진급한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인 열혈청년샘은 이전의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채 고군분투하고, 이에 억지로 동참하게 된 여학생의 고백이 이어진다. 선생님이 떠나고 난 뒤의 학급에서 일어난 아이들의 어두운 면들에 대해서. 두 명의 범인 중 나오키는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집에서 점점 이상행동을 보이던 그는 급기야 어머니를 살해하게 되는데, 이 사건과 관련해 나오키의 누나의 고백, 엄마의 일기, 나오키의 고백이 이어진다. 슈야는 아무렇지 않게 등교하지만 그의 내부는 여전히 범상치 않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겠다는 집착은 결국 유코 선생님에 의해 저지되고 만다. 나는 특히나 그녀가 슈야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인상깊었다. 그의 인생에 엄마와 자신밖에 없는 거라면, 엄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거라면 엄마를 죽이라는 말.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놓고 난 뒤에 그것이 진정한 갱생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도. 얼음처럼 차가운 말이지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키와 슈야 모두 그들의 어머니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고 그 때문에 그토록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인정받게 되었다는 자신감마저 잠시 가졌었으니. 일본의 소년법에 대해서는 '천사의 나이프'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미래가 창창한 소년들이 가혹한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오히려 피해자보다 더 안전하게 보호받게 되는 이 법 때문에 어떤 피해자들은 더욱 고통받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덕분에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소년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 무엇이 보다 정의로운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보였다. 이번 작품도 그러한 토대 위에서 서술된다. 애초에 아이를 죽인 두 소년을 법의 심판에 맡길 수 없었던 이유. 그것이 바로 소년법이기 때문이다. 대단한 처벌을 받을리 없다. 그렇다면 내가 처벌하겠다는 어머니의 소리없는 절규가 이 소설의 시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청소년 범죄에 매우 관대한 편이다. 해마다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아이'라는 이유로 덮어주기 어려운 범죄들을 저지르고도 미래의 삶을 보장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가해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방식의 대응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똑똑한 아이, 현명한 아이, 착한 아이. 모든 엄마들이 바라는 아이의 '상'이 있다면 그런 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로 키우고 싶은 엄마 마음의 이면에는 우리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성공'했으면, 그리고 그 '성공'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행복한 아이로 기르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좋아하는 것만 하게 하면 행복하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좋아하지 않더라도 억지로 해야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미래를 위해 참아야 하는 일도. 그런 엄마들의 고민에 아이의 자존감이라는 답을 내 놓은 것이 이번 책이다. '자존심'과는 다른 '자존감'. '자존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힘'이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가치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라고 하는 신뢰감이 바로 아이의 자존감의 핵심이다. 때로 엄마는 아이를 옳게 기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서 무심코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것밖에 못하느냐' 하거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아이를 주눅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려는 목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말해서라도 아이가 조금 더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으리라. 하지만 그런 말들이 아이의 자존감을 꺾고 스스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도록 만들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려다 '불행'한 아이를 만들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서 무조건 아이를 추켜세우라는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 대신 아이를 인정해주는 말을 하자는 것이다. 아이의 의견이 미숙하니 어른의 의견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대신에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고 되도록 타협하는 방안을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안된다고 하는 것을 단호하게 하되 그것이 아이의 본질적인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육아서를 읽으면서 나는 조금 놀라운 발견을 했다. 저자는 자존감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저자가 사용한 육아 방법의 기본이 바로 이 자존감을 세워주는 방식이었다. 어쩌면 많은 말이나 이론이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먹고 자고 싸는 일만 할 때에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귀중했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가치있었던가. 자라면서 이 아이가 못하는 일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존재가치는 상하지 않는다. 게다가 점차로 잘 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그것을 믿어주고 아이에게 심어주기만 하면 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원칙은 그것이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행복한 미래를 선물하고 싶은 엄마라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자존감의 비밀을 알게되면 아이의 존재로부터 행복감을 선물받을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