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은 꽃 - 개정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파도가 친다. 높게 일어나 엄청난 속도로 밀려오는 물결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와~' 감탄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파도에 머물러 있다. 이 때 한 작가가 파도 곁으로 다가가 물결에 밀려 온 모래알을 집어 올린다. 이 모래는 저 파도를 타고 아주 깊은 곳에서 저 높은곳까지 다니다 결국 이리 밀려왔다고 말한다. 그게 이 소설이다.
이야기거리가 가득한 시대. 작가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는 시대가 있다. 천천히 변화되어왔던 것이 급격하게 바뀌었던 시대. 몇 세기 동안 고정되어있었다고 느꼈던 국가가 한 순간 사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시대. 발전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거대한 속임수가 가능했던 시대. 알아내지 못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시대들이다. 작가는 이 굽이치는 역사의 파도 속에 흩날리다 사라진 모래알들을 생각했다. 파도의 움직임만큼 격렬했던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국가를 잃었기에 뭉쳐도 뭉쳐질 수 없었던 부질없음에 대해서.
읽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 모래바람이 불었다.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작가는 '자기가 창작한 세계의 명예시민이 되었다'고 표현했는데, 독자역사 그러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과 손을 스치는 날카로운 에네켄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주인공들이 겪는 어려움의 순간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력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방책을 세우는 부분에서도 여전히 답답했다. 모래알은 모래알일뿐. 그들이 파도를 어쩔 수 있으랴.
이들이 살아내야했던 시기가 역사적으로 고난의 때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난'했기 때문이다. 땅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마야의 유적지를 보면서도 발 디딜 '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난을 이유로 떠나왔었기에 그렇게나 '돈'에 민감해졌을 것이다. 영민함과 순수함을 지녔던 소녀 연수가 어느 것도 믿지 않고 오로지 '돈'을 믿는 여인으로 변해버린 것은 그다지 놀라운 결과도 아니다. 오늘날 '땅'이 없는 자들은 어떻게 밀려가고 있을까.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어디로 사라져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