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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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에 살고 있는 모든 가구가 가족을 부양하고, 성경을 읽으며 금요일 밤에 받는 빈약한 급료에서 얼마씩 돈을 각출하여 언젠가는 브루스터플레이스를 희미한 추억거리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 " p.142

 

브루스터플레이스는 정치력때문에 생겼으나 정치와는 무관하게 자라나 결국 흑인 여인들의 삶의 터전이 된 '늙은' 지역이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노쇠한 곳이지만 여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삶을 알뜰하게 꾸미며 결코 이곳을 떠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곳을 떠나려는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들어올 때부터 약간의 절망을 품고, 그리고 해가 거듭되면서 잠깐 돌아왔던 희망이 다시 절망이 되고, 그리고 그걸 다시 극복하는 과정을 파도타기처럼 반복하면서.

이 파도타기의 주인공인 일곱 여인들은 각각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결국 같은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마치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이라고 지정된 것처럼.

매티 마이클은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이자, 나중에 나오는 여인들 모두에게 어머니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자신이 삶에서 이룩했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잃고 이곳에 들어왔다. 목숨과도 같았던 아들과, 그 아들때문에 가꾸었던 집. 언제 돌아올 지 모를 아들을 마음에 품고 들어온 그녀의 이야기는 자녀를 기르는 모든 어머니들의 처량한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 뒤를 따라 친구 에타가 등장한다. 에타는 매티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녔으며 그만큼 삶 역시 전혀 달랐다. 여전히 생동감있는 여인이었던 그녀는 오자마자 그곳 목사를 유혹해내지만 결국 모두와 다르지 않은 남자라는 것을 알게된다. 매티가 젊었을 때 그녀를 도와주었던 노파인 이바의 손녀 시엘 역시 이곳에 있다. 이바가 죽으며 친부모에게 가게 된 꼬마가 어떻게 자라난 것인지 그녀 역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 아이를 잃는 고통을 당하게 되고, 그로 인해 깊은 절망에 빠진다. 매티는 그런 그녀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이다. 어릴적부터 기저귀 찬 인형만 가지고 놀다 이후에도 여전히 아기만 사랑하고 집착하게 된 코라 리 역시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모든 여자들 중에서도 동성애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된 테레사와 로레인은 심한 괴로움 속에 있다. 그녀들은 흑인 여자이면서 성적소수자로서 브루스터에서마저 배척당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견실하고 강한 테레사와 달리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로레인은 매순간 힘들어했다. 그런 그녀가 비극의 정점을 찍게 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해야할까. 마지막 구역 파티에서 벽돌을 한장한장 날라서 브루스터플레이스 밖으로 내던지는 장면은 이 비극의 정화와도 같았다. 벤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한 애도이면서 동시에 로레인의 절망에 대한 위로였다. 누구도 비난의 몇 마디로 흘려보낼 수 없는.

작가는 누군가 한 인물이 흑인 여성의 삶을 대변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러 여인을 등장시킨 것은 그러한 의도였다고. 누군가는 키스와나처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의지를 불태웠고, 누군가는 조용히 남을 도우면서 위로했고, 누군가는 절망했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살아냈다. 그녀들처럼. 그리고 우리도 매일매일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살아내면서 조금씩조금씩 어떤 꿈은 유예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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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6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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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보다 2권에서는 멜러즈와 코니의 연애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코니는 이제 두려울 것도 없이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멜러즈의 남성성은 갑갑하게 살아왔던 그녀의 삶을 다시 되찾아주고, 그녀에게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두 사람이 허름한 오두막에서 맺는 친밀한 육체적 관계는 자세한 묘사 때문에 에로티시즘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물론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클리퍼드의 거대한 집에 맞선 자연스럽고도 평화로운 공간에서 살아넘실거리는 생명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제 그녀는 다시 클리퍼드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여자가 되었다. 그를 떠날 생각은 없었던 여인이 멜러즈와 살기 위해 과감하게 클리퍼드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그것은 클리퍼드 자신으로부터의 독립일 뿐 아니라, 그녀가 몸 담아왔던 지배계급으로부터의 분리, 산업사회와의 분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선택 때문에 베네치아에서 들었던 경고처럼 사회 모두가 달려들어 그녀를 사장시켜버리려고 할 지도 모른다.  

 

로렌스는 이 두 사람을 통해 당시 사회가 건강한 삶을 잃어버리고, 돈에 얽매인 채로 삶을 버리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지배계급을 위해 노동을 착취당하는 이유를 단지 노동자가 돈애 얽매였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멜러즈는 작은 돈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 그렇게 아둥바둥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을 소유한 자들의 위선과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에 대한 비판 역시 가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해서 그저 혀를 끌끌 차는 정도일 뿐 그다지 큰 저항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역시 그 시대에 살아온 사람이 넘을 수 없는 벽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산업사회에 대항한 그의 자연주의가 보다 분명한 메세지로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약간은 미지근한 그 태도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오해속에 있지만,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표현해 내는 작가의 필력에는 늘 감탄하게 된다. 인물의 내면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섬세한 표현들을 통해 독자들은 그가 만들어 낸 인물들의 숨소리까지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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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5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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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턴트는 처녀적부터 예술가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자유롭게 성장했다.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고 성문제에 있어서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 클리퍼드가 전쟁에서 하반신마비라는 부상을 안고 돌아온 후 그의 아내로서, 남작부인으로서 품위있게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남편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조력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그녀도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남편 클리퍼드는 귀족으로서의 자아가 매우 강했고, 명성을 얻고 싶어했으며 그러기 위해 그녀로서는 불필요하다고 혹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행했다. 점점 그녀는 그에게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혼은 그의 성 안에 갖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처녀적에 누렸던 자유로움에 비한다면 영국 광산을 운영하는 채털리부인의 삶은 꽉막힌 것이었다.

 

그녀를 속박하는 남편으로부터 그녀가 적극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데에는 한때 그녀가 그를 지켜주는 역할에 매우 만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그녀는 그의 옆자리를 비워버리고 싶을만큼 그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다. 때로 아주 귀찮기는 했지만, 그녀가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아는 한 그녀는 그를 떠나버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사냥터지기에게 몸을 주고 그의 열정과 함께 자신의 내면 속 간직하고 있던 열정을 알게 된 순간. 어쩌면 남편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그녀의 일탈이 일견 이해되는 이유는 남편이 그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를 충분히 사랑해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하반신 마비가 모든 접촉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요컨대 그가 너무나 정신적으로만 그녀를 원했다는 점은 한편으로 그녀의 여성성에 대한 학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옛 영국에 속해있는 그녀가 과연 연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소설이 부인의 연애담을 골격으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전쟁 후 영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계급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이행되는 시기에 나타나는 갈등과 불안감. 전쟁 후의 정신적인 공황상태. 젊은이들의 의미없는 토론과 논쟁. 시간의 허비. 노동자들의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니고 있는 건강한 원천들을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다. 오히려 작가는 노동자 계급의 정신상태가 지배 계급의 그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료하며 삶에 가까운 듯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세대를 생산하지 못하는 클리퍼드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당연시되는 마을 사람들의 삶이 일종의 상징이라면 말이다.

 

이제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이들의 대립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연인은 사냥터지기이니까. 육체가 없는 귀족과 육체를 긍정하는 평민의 대립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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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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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또 체호프 같은 러시아의 문호들의 작품을 만나다보면 그들을 배출 해 낸 러시아의 바탕이 무척이나 부러워진다. 어떻게 그들은 이렇게 세계적인 작가들을 품 안에 품고 키워낼 수 있었을까. 대학시절 들었던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햄릿을 '즐긴다'고.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즐기는 수준에 이르러있는 그 초등학생들에게 교수님은 큰 감명을 받으신 듯 했다. 나 역시 그런 바탕에서 이렇게 거물 작가들이 탄생하는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와 그녀의 만남. 혹은 스침. 

이 단편선에 등장하는 남녀의 만남은 참으로 다양하다. <공포>에서 실린은 그의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삶을 공포스럽게 여긴다. 끊임없이 구애를 계속해야하는 그의 고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아내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보고서도 그저 떨며 나갈 뿐 화를 표현하지 않는다. 친구가 떠난 후에도 그는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만났으나 늘 평행선일 뿐인 남녀의 결혼은 <공포>가 아닐런지. 
<베짱이>에 나오는 올가는 두 남자와 만나게 된다. 하나는 그의 순수하고도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남편 드이모프이고, 하나는 화가 랴보프스키이다. 그녀는 드이모프와 결혼하면서 그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에게 충실한 아내가 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천성은 예술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기에 파티와, 예술가, 화려한 의상에 신경쓰느라 남편은 언제나 뒷전이 되고 만다. 그러다 만난 랴보프스키는 얼마나 대단한지! 그에게 푹 빠진 그녀는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그에게 온통 마음을 쏟다 남편이 죽음에 임박한 때에야 진정 남편이 훌륭한 인물이었음을 깨닫는다. 올가의 만남은 어느쪽도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한쪽은 평가절하되었고, 한쪽은 지나치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드이모프와의 사이가 좋던 시절에 그는 다음처럼 말했었다. 그녀가 그의 말에서  교훈을 얻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 친구들은 자연과학도 의학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잖아. 모두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어. 나는 풍경화나 오페라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런 생각은 해. 만약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면 다른 똑똑한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거금을 지불하지.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니까. 나는 이해를 못해. 하지만 이해를 못한다고 해서 거부한다는 건 아니잖아.
 
페이지 :  41-42쪽  

<베로치카>에서의 남녀는 그야말로 스친다. 통계 때문에 시골 마을에 머물렀던 주인공은 마을을 떠나던 날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마을 자치회 의장의 딸 베로치카에게서 사랑 고백을 듣게 되지만 어떤 답도 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사랑고백을 듣자마자 그는 그토록 멋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던 그녀가 순식간에 빛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여인의 고백이 이렇게 단순하고 소박하게 거부당할 수 있다니. 그에게는 그토록 찬란했던 마을이 그녀에게는 그가 있어야만 찬란해지는 것이었다. 

독특한 발상, 인간 내면의 고찰.
반면에 그의 독특한 발상이 명료하고 깔끔한 구성으로 표현된 작품들도 있었다. 
<관리의 죽음>은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집착하던 인물이 그로 인해 죽는 과정을, <드라마>에서는 엉터리 희곡을 읽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던 주인공의 분노를, <내기>에서는 호기에 일어난 15년간의 감금과 그간 벌어지는 인간 내면의 변화를, 아름다운 여인 두 명을 예로 들어 아름다움의 기준을 새롭게 그려낸 <미녀>, 결혼을 오매불망 꿈꾸던 여인이 꿈에서 남편의 죽음을 경험하는 <거울>, 중병에 걸렸다 살아나 누이동생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맛보는 인물을 그린 <티푸스> 그리고 살아있을 때보다 죽음이 가까웠을 때 더 행복감을 느꼈던 <주교> 등. 스토리도 그렇지만 세세한 인물 묘사와 대사, 장면의 전환등 그야말로 깔끔한 단편구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독특한 상황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느끼는지 어찌보면 뻔뻔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정신이 나간것 같은 인물의 내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낱낱이 해부되어 있다. 

단편선을 읽으면 작가의 특징을 찾아내거나, 각 단편들에 들어있는 공통된 부분들을 찾아내는 데에서 묘미를 느껴볼 수 있다. 그의 수많은 단편들을 찾아 오늘 그만의 독특한 인물탐색에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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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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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이 병이었던 그.

베르테르는 정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주변의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에 자신의 감성을 불어넣었다. 가난한 한 가정의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인정을 베풀었으며 주인마님을 사랑하는 하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여러 동생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며 마치 어머니처럼 챙겨주던 로테의 모습에 반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로테에 대해서 그가 가진 열정도 열정이지만, 이웃의 아픔을 마치 자기의 아픔처럼 느끼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세상은 이런 젊은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다수가 아니라 소수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는 자신의 생각을 계속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늘 소수편에 속하게 된다. 그는 세상이 모두 인정하는 권위나 권력을 배척했으며, 교회가 부정하다고 말하는 자살을 긍정했다. 주인을 사랑한 하인의 경우에도 그가 살인을 저지르자 모두가 살인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하인의 마음 그대로 변론하다 곤경에 처하기까지 한다. 제도권에 머무를 수 없었던 젊은이 자기의 생각이 너무 뚜렷하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외치려했던 젊은이. 그래서 그토록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나보다.

사랑을 위해 죽다.

로테가 그를 사랑했을까. 마지막에 가서야 그녀는 그가 자신의 옆에서 사라진다면 큰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절감했지만,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삶의 일부분이 사라져도 인생은 계속되니까. 그리고 남편과 이미 견고하게 쌓아올린 그녀의 가정은 그렇게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테와 알베르트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으로부터 이어진 질긴 끈으로 연결된 사이가 아닌가. 베르테르가 그들의 사이에 끼어드는 일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로테가 베르테르에게 권총을 보냈던 것은. 로테의 이기심으로 보아야할까. 아니면 또 다른 자기. 자기의 마음을 동일하게 품고 있는 다른 '나'를 죽이고자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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