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쓰인 작품은 아니지만 최근에 알게된 작품인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 3권이다. 홈즈나 포와로의 날카로운 추리력을 내세우는 인물은 아니지만 거대한 풍채와 그에 걸맞은 우직한 수사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는 매그레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단비가 아닐까 생각된다. 1,2권에서와 달리 3권의 사건은 매그레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이동 중 수상한 남자를 발견했고, 형사의 직감으로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예감했고, 그래서 그의 가방을 슬쩍 바꿔치기했는데 그가 미친듯이 불안해하다 결국 자살해버렸다. 놀라운 것은 그가 그토록 불안해하며 찾아다녔던 가방 안에 낡고 피뭍은 정장 한 벌이 있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죽어야 할 이유라고는 없어보이는 이 정장 한 벌에(비교 결과 그의 것도 아닌)목숨을 건 사내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일까. 사건의 발생이 독특하고, 자칫 매그레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어떻게 이 사건이 풀려나가게 될 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누가 의뢰한 것도 아니고, 아직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은 시점에서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단서는 자살한 시체와 가방 속의 옷 한벌, 그리고 그가 목격한 사내의 이상한 행동 뿐이다. 인간이 과거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래서 과거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도록 망각이 존재하는 것일테고. 미래를 계획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선량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청춘을 과시하며 저지른 치기어린 행동이 그들의 안정적 중년을 어떻게 방해했는지 이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죄책감이 사람을 어떻게 벼랑끝으로 몰아가는지도. 줄줄이 나오는 그의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동안 장마도 그치고 집중호우도 그쳐간다. 아직 비가 오는 중이니 한동안은 집에서 그의 소설 속에 더 파묻혀도 좋겠다. 그가 우직하게 궂은 날씨 속을 헤쳐가는 것을 지켜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