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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평점 :
'동창이 밝았느냐~' 로 시작되는 시조는 평화로운 농가의 모습을 읊은 시조로 해석되는 권농가이다. 하지만 이를 좀 삐딱하게 읽자면, '은퇴한 양반이 시골에서 지내며 한가로운 생활중에 새벽부터 일어나 매일 고된 일을 하느라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단한 아이를 깨워 논밭갈라고 채근하는' 노래로 읽히기도 한다. 요는. '일'하는 것을 권하는 이는 직접 '일'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하는 자는 일 자체를 권한다기 보다는 일하는 '요령'을 권한다. 어떻게 하면 빨리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번에 많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일이 즐거워서가 아니다. 되도록 나머지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다. (물론 경영자들도 일을 빨리 하길 바라지만 이 경우 나머지시간도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므로 노동자들의 목적과 다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그래서 필요하다. 일을 왜 하는가. 우리에게는 그런 질문이 필요하다. 왜 놀아선 안되는지.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은 것이 본성이라면 그 시간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어째서 비도덕적인 일이 되는 것인지. 우리는 자꾸 질문해보아야 한다.
최근, 우리가 보내는 여가시간의 질이 떨어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놀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제대로 놀 줄도 모른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들을 향유하며 그나마 여가를 보내고 있다고 여길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잉여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유있는 시간은 사람을 여유롭게 만들어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생각하는 인간은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만났을 때 급히 쫓기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많은 일거리, 높은 임금이 아니라 보다 많은 시간과 보다 여유로운 장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