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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 세상에서 너를 지우려면 ㅣ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황지영 지음 / 우리학교 / 2022년 11월
평점 :
황지영 작가님의 글 <리얼 마래>를 아이와 함께 읽은 적이 있어서 이번 새 작품이 궁금했습니다. <리얼 마래>는 블로그와 함께 자라온 아이의 내면과 친구들간의 갈등이 잘 그려져 있는 소설이었는데요. 저희 아이도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초상권에 대해 궁금해 하더라고요. 당시 주인공은 초등학생들이었는데, 이번엔 중학생입니다. 주인공이 조금 컸어요. ^^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영상이 남다.
블랙박스는 문명의 이기라고 하는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존재가 고마울만큼 편리하고 또 중요한 물건이기도 하죠. 교통사고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던 비합리적인 룰에서 벗어나 정확한 근거로 잘잘못을 따지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블랙박스가 1인미디어와 결합하면서 생각지 않던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사고가 아무렇지 않게 남들 손에 의해 퍼날라지기 시작한 것이죠. 아름다운 추억도 아니고, 사람이 죽은 끔찍한 사건인데, 제 3자들은 이 사건에서 교훈을 얻었다는 속편한 소리나, 죄 없는 피해자가 이러저러하더라는 가십을 댓글로 달아댑니다.
이대로 좋은 걸까.
이런 사회엔 문제가 없을까.
이 소설의 출발점은 거기에서 시작해요.
지워주세요.
친구의 죽음에 달린 냉정한 댓글들을 보며 고울이는 '지워달라'고 요구합니다. 그건 아마도 고울이 나름의 '애도'였을 거예요. 예담이는 돌아올 수 없고, 그래서 요구할 수도 없으니까요. 친구의 죽음을 맞았던 그 순간에는 하지 못했던 '애도'를 하면서 고울이는 점점 나아져요.
보호한다는 것. 마주한다는 것.
고울이의 부모님은 끔찍한 기억에서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장례식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어떤 외부 소문과도 닿지 않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멀쩡하게 중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그건 외형뿐. 고울이는 멀쩡하지가 않았죠 바삭거리며 입 안에서 사라져버리는 과자처럼 쉽게 바스라졌으니까요.
골키퍼가 골대 앞에서 공을 막을 수 없어도, 골대 앞에 서 있어야 언젠가 돌아설 수 있는 것처럼 당장은 감내할 수 없을 것 같던 슬픔이라도 마주 대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조차 없습니다. 고울이의 부모님은 아이가 아주 긴 시간을 '애도'에 쏟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빼앗긴 '애도'의 시간을 다시 가져야 했던 것뿐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모가 되어보니, 고울이의 부모님이 왜 그랬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역시. 부모는 참. 어려워요.
아이들의 미성숙함을 잘 담아낸 글.
이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민서처럼 또래보다 야무지고 자기 주장 강한 아이도 있고, 태린이처럼 마음을 알 수 없는 아이도 있고, 고울이처럼 아픔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지요. 이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겪는 갈등은 당연히 미성숙함에서 비롯되는데요. 얘가 위로가 되어주는구나. 다행이다. 싶을 때 엉뚱한 행동을 하는 걸 보면서, 이거 참 사실적이네.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거든요. ^^ 그래서 더더욱 몰입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골키퍼'라는 소설도 어딘가 있을 것 같네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