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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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이 작품의 주인공 맥베스는 아마 비극의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동정을 받기 어려운 인물이 아닐까싶다. 그가 마녀들의 예언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그의 의지는 예언의 성취에만 목적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코도의 영주가 되자마자 자신에게 왕위가 올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이 사실이라고 믿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예언이 사실이라면 그가 현재의 왕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시 실현되리라. 

처음 그가 살인을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에는 그나마 그에게는 동정심이 있었다. 자기에게 무한한 신임을 보이고 따뜻한 온정을 베푼 왕을 살해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런 그에게 좀 더 욕망을 실현시킬 용기를 가지라고 요청한다. 결국 이 살인을 기점으로 맥베스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아내마저도 말리는 살인들을 끊임없이 계획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요점은 처음 멕베스가 왕을 살해할 때에는 분명 예언이 그의 편이었는데, 그 이후의 살인은 예언이 그의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그는 예언에 반하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살인을 하기 시작한다. 뱅코와 그의 아들을 살해하려는 계획은 그가 마녀들이 뱅코에게 한 예언 - 그는 왕위에 앉지 않겠지만 그의 아들이 왕위에 앉을 것이라는 - 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살인이 그의 후손을위한 것이 된다는 생각은 그를 앞뒤 재지 않고 그 예언을 실현시킬 인물들을 모두 없애는 것으로 막아서도록 했다. 뱅코를 죽인 후 맥더프를 살해하고자 그의 성으로 자객을 보내 그 아들과 아내를 살해한 것 역시 현재의 왕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왕위에 앉은 후에도 여전히 예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때로는 예언을 신뢰했으나 때로는 예언대로 되지 않기를 바랐다. 

결국 그를 움직인 것은 예언으로부터 시작된 그 자신의 욕망이었다.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악’은 그의 ’선량한 양심’으로 막아서기에 워낙 거대했다. 마녀들은 바로 이 부분을 건드렸을지 모른다. 대개 마귀는 그런 식으로 인간에게 침투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맥베스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영혼의 파멸이다. 극의 마지막으로 가면 맥베스는 어두운 곳에서 사람 죽이는 일을 계획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물이 되어간다. 피는 피를 부르고 결국 자신의 피로 씻을 수밖에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맥베스의 비극성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의 파멸이 그로부터 나와 그를 삼키고 말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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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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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후안 쁘레시아도는 '내 어머니의 남편'으로 생각될 뿐인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 어머니의 고향 꼬말라를 찾는다. 그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알 수 없는 마을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간헐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지나고 나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자신의 발소리 이외에는 사람의 흔적도 나무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황폐한 곳. 그곳은 유령의 마을이었다. 

쁘레시아도는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가 이미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를 찾아가라고 했던 어머니의 속삭임을 떠올리며 그의 기억을 찾아다닌다. 뻬드로는 꼬말라의 실제적 소유주나 마찬가지였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땅을 차지했고, 차지한 후에는 마을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였으며 결국은 꼬말라 자체를 말라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는 단 하나 수사나를 향한 그의 사랑때문이었다. 그의 사랑은 깊고 집요했으며 긴 시간에 걸쳐 지속된 것이었으나 모든 것 위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다. 

꼬말라에서 유령들을 만나던 중 그 자신도 죽어버린 후안 쁘레시아도. 그의 죽음 이후에는 그가 땅 밑에서 주변에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것은 사실 이이기라고 하기에는 좀 모호하다. 그에게 직접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마치 그들의 과거를 보는 것처럼 표현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장면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는 방식으로 잘려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추출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막연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꼬말라에 살았던 인물들의 비참함을 느낄수는 있다.  렌떼리아 신부는 자신의 형을 죽이고 조카인 아나를 욕보인 뻬드로의 아들 미겔을 용서할수 없다. 그러나 신부라는 직함은 그를 용서와 화해로 이끌기를 요구한다. 그는 직업적으로 고해성사를 듣고, 사람들이 죽어서 어떻게 될 것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야말로 과연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결국 그도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에 뛰어들게 되지만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결국 그분도'라며 걱정하게 된다. 

도로떼아는 아이가 있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상은 아이를 잃은 여인이다. 그녀는 미겔 빠라모에게 여인을 대주는 일을 했고 결국 꼬말라의 황폐함과 더불어 굶어죽게 되었다. 풀고르는 뻬르고의 검사로서 혁명군에게 살해당했고, 뻬드로의 마부였던 아분디오는 아내의 비참한 죽음에 절망한 나머지 자신에게 인색했던 뻬드로를 찌르고 그의 시종을 들었던 다미아나까지 살해한다. (초반에 쁘레시아도를 만나 뻬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것이 아분디오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하다. 살해한 본인이 그가 죽었음을 뻬드로의 아들에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작가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내용보다 구조가 더 중요한 작품이다. 그가 거기에 중점을 두고 썼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신중한 구조 덕택에 내용은 오히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작가 스스로 작품 해석에 대해 몇가지 정답을 내놓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품 속 여러가지 의문점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작가가 그렇게 의도하고 썼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해석해야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그가 이미 내놓은 해답. 쁘레시아도는 꼬말라로 갔을 때 죽은 것이 아니라 가서 죽은 것이라는 해석이나, 수사나가 전혀 결혼한 적이 없다는 해석 말고 꼬말라에서 이미 죽었으며 이후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여지, 수사나가 결혼을 실제 했거나 혹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녀를 안았던 남자가 사실은 그녀의 아버지나 다른 어떤 남성이고 그 때문에 수사나가 실성을 했다거나 하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논란들은 독자들에게 텍스트를 자꾸 읽게 만드는 중독성을 갖게한다. 자꾸 읽게 만드는 텍스트보다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어떤 책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책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싶은 책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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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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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즐겁게 잘 지낼 겁니다. 우리는 시작부터 잘 통하는 데가 있으니까요. 결혼이란 건, 상대를 잘 만나기만 하면 퍽 즐거운 일입니다. ... 나는 이 모험을 감수할 의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비록 네번째이긴 하지만, 이 결혼은 나에게 운명적이고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p.46

 

- 본문 중에서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의 결혼.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이 페이지에 이르러 이현이 얼마나 이진과의 결혼을 순수한 마음으로 갈망했으며, 그가 얼마나 순진하게도 이 모험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기대헀었는지를 떠올려보면 마음이 쓰라리다. 네번째의 결혼임에도 그가 소년의 감성으로 도전하게 했던 그녀 이진. 제목이 이현의 결혼이 아니라 연애인 것은 아마도 그의 이러한 열정이 결혼이라기보다 연애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현의 연애'는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인 이진과 이현의 계약결혼 이야기를 전면에 다루면서 사이사이에 이진이 기록하는 영혼들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마지막에 가서는 이진이 이현의 상사인 부총리의 영혼을 기록하면서 이현과의 실제 이야기와 부총리의 영혼의 기록이 연결된다. 결국 이 연결고리는 이현이 이진을 배반하고 이진을 파괴하는 도화선이 된다. 이진의 아버지였던 이세공이 짐작했던대로 그저 순진하기만했던 이현은 이세공보다도 훨씬 더 짧은 기간에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파괴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이현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총리의 영혼은 이현을 사랑했으니까, 그의 실체가 이현에게 그녀의 기록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면에는 그가 사랑하는 이진에 대한 묘한 질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총리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한 영혼의 시기심 말이다.

 

두 사람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지만, 이진이 기록하는 영혼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한 책이었다. 이를 이끌어가는 서사구조 역시 독특하다. 실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이현에 대한 서술이 사실은 이현의 영혼을 기록한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총리의 영혼이 자신의 치부를 서슴없이 드러내도록 만드는 이진의 기록이라면 이전의 이현에 대한 서술이 이현의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현은 영혼이 기록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을 이진 앞에서 감출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이진의 냉정한 시선이 이현을 두렵게하고 분노하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이리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한편 이진은 이현을 사랑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그의 영혼을 붙잡고 있었을만큼. 그녀가 기록하는 영혼은 그녀에 의해서 끌려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영혼이 그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영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이현을 기록하는 것도, 그와 관련된 인물인 부총리를 기록하게 된 것도 그녀가 이현을 마음에 품게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그래서 그를 기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단지 그녀의 기록에 심장이 없었을 뿐은 아닐까. 그게 결국 그녀의 서툰 표현 방법은 아니었을까. 끔찍한 결과만을 남긴 둘의 연애가 슬픈 이유는 이 서사구조를 통해 짐작하게 된 이진의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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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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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단순한 농담에서 시작되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 p.51

 

이 말은 루드빅의 진심이었을까.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는 마르게타가 연수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 자신의 부재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느꼈고. 그에 대해 질투했다. 그녀가 그토록 열성적으로 옹호하는, 그녀에게 주입되고 있는 정신에 찬동하지만 그녀의 즐거움에는 분노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충격을 주는 엽서를 보내고 싶었다. 그것이 전부였던 루드빅에게 공산당원들은 검은표지를 붙인 채 광산노동을 할 것으로 지시한다. 이제 그는 공산당원이 아닐 뿐더러 그가 그 전의 인생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길 위에 놓이게 된다.

 

사실 대개의 청춘들은 자신의 외적, 또는 내적인 준비상태와 별 관계 없이 어느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신이 거부했던 길에 놓인 루드빅처럼. 남자친구를 탄광에 가게 만들어버린 마르게타나, 젊은 나이에 중대장의 짐을 져야 했던 어린 중대장이나 어떤 이유로든 아버지를 부정해야 했던 알렉세이. 이들 모두 역사 속에 던져진 청춘들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그 역사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아 수행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했으며, 또 누군가는 버려져 역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농담이었다.

 

루드빅은 자신이 그토록 추앙했던 공산주의에서 추방되었고, 추방된 이후에는 그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은근히 자신의 편에 서 주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당시 차기 조직 위원장이었던 파벨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우연히 만나게 되자 그간 쌓아왔던 분노와 보복의 기운이 한꺼번에 일어나기 시작한다. 헬레나를 정복하여 그의 남편 제마넥을 욕보이자는 계산은 분명 처음부터 실행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점점 그의 안에서 구체적으로 자라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장소가 하필 그의 고향인데다가 거기서 그가 정복하고자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여인 루치에를 만나고, 거기다가 헬레나가 제마넥에게 그렇게 소중한 아내는 아니라는 사실까지를 알게 되어 그녀에 대한 관심마저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더욱이 제마넥은 그가 부러워 마지않는 젊은 애인을 대동하고 나타나 그가 전에 알던 그의 모습인 채로 그러나 그가 알던 그의 정신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교수가 되어있다. 루드빅이 15년간이나 품고 살아왔던 분노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토록 분노하고 부당하다고 외쳐왔지만 결국 그가 제마넥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작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그러나 그것도 이미 그의 아내에게 저지른 부정때문에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게다가 루드빅은 제마넥이 현재 자신의 생각과 상당히 유사한 생각을 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는 그의 반대편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무엇을 그의 혁명으로 삼을 것인가.

 

헬레나의 자살소동은 그야말로 기막히게 서글픈 농담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딱 알맞은 상대라고 느꼈던 루드빅이 사실은 자신의 남편 때문에 일부러 접근해 그녀의 육체를 가진 것인데다 (그녀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더 서글프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 그녀에 대한 눈꼽만큼의 애정도 없어졌고, 그 통보를 받은 후 그녀가 겪은 마음의 고통을 생각해보라. 그런 상태에서 진지하게 썼던 편지와 죽음마저 불사하려는 결심으로 먹은 한 알 한 알의 진통제들이 그녀의 목을 넘어갈 때의 진지함까지. 그런데 그녀가 먹은 약이 진통제가 아니라 변비약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그 비극적이어야 할 장면에서 자기를 버린 남자이며 그토록 잡고 싶어했던 남자 앞에서 팬티를 내린 채로 변기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버린데다, 그 상태로 그에게 붙잡혀 ‘더러운 자식!’이라고 소리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외침이 얼마나 그럴싸한지.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이 절묘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다.

 

“나는 문득 내가 당에서 축출당했던 그 사건을 불가피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그것이 아득히 멀고 너무도 문학적인 이야기로만 비추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시간의 물결, 그것은 루이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시대들 사이의 차이들마저 다 씻어가 버리는데, 하물며 보잘것없는 두 개인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쉽게 씻어가겠는가.”p.378

 

제마넥은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가르치면서 자신은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철학은 혁명이 아니다.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다른 여러 생각들과 공유되는. 이제 그들의 혁명은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루드빅이 말했듯이 이제 젊은 세대는 루드빅과 제마넥이 대단한 차이를 가진 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야로슬라브가 그의 아들에게 <왕들의 기마행렬>에서 왕 역할을 시킬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역시 브로조바 양에게 왜 자신이 제마넥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상태인지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잊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면에서 애써 외면했던 야로슬로브를 루드빅이 찾아가고. 그렇게 함께 연주를 하면서 그가 야로슬로브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친구라고 여기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 둘은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묘하게 같은 고집을 갖고 있었다.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 자신이 지키고자 생각한 것들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 그리고 이제야 자신들은 잊혀지는 역사의 한 켠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사랑역시 잊혀져간다. 한때는 모든 것을 걸만큼 사랑했던 여인 (물론 다양한 상황들이 뒷받침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루치에를. 그녀를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보지 못한 그녀의 나체를 하나하나 열거할 수 있을 정도로 상상했던 그녀를 어떻게 그리 잊을 수 있을까. 한때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넘겨줄 정도로 사랑했던 헬레나를. 그 징표와 함께 깡그리 잊고 손쉽게 헤어지는 일이 어떻게 제마넥에게 가능했을까. 한때는 함께 민속의식으로 결혼하는 일에 완벽한 행복을 느꼈던 야로슬라브의 아내 블라스타는 어떻게 그렇게도 잔인하게 모든 민속적인 것을 그의 남편앞에서 부정할 수 있었을까. 단순하다. 사랑도 잊혀지는 것이기에. 그리고 잊혀지기 때문에 또 새로운 사랑을 할 것이기에. 그리고 새로운 사랑 역시 잊혀질 것이기에.

 

사랑도 역사도 이렇게 흘러간다. 잊혀지고 또 새롭게 시작되고. 그리고 잊혀질 것이다. 마치 한 마디의 농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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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3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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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발파라이소. 미스 로즈는 한 여자아이를 집 앞에서 주워 기르게 된다. 그녀는 이미 한 차례의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뒤였고 사랑은 포기했지만 아이는 갖고 싶었던 터라 주저없이 이 아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 아이가 주인공 엘리사이다. 

엘리사가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1권에서는 엘리사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미스 로즈가 결혼을 부정하고 혼자 사는 생활을 선택한 까닭이라든지. 큰 삼촌인 제레미의 성품과 작은 삼촌 존 소머스 선장의 일. 친구가 되는 타오 치엔이 어떻게 중국에서 칠레까지 넘어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 제이콥 토드라는 수수께끼의 미국인이 칠레에 어떻게 들어왔다가 나가게 되었는지 등. 이 다양한 인물들은 엘리사의 성장기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 역시 각각 하나의 이야기를 갖고 있음을 알게 해 주며. 그래서 그들이 엘리사를 대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독립적으로 성장한 엘리사의 성격과 미래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제 엘리사는 충분히 자라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그러나 대개의 첫사랑이 그렇듯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에게 푹 빠져 그 때의 여자들이 그렇듯이 모든 것을 그에게 걸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녀를 자라게 하고 살게 했던 칠레를 떠나 황금을 찾아 간 남자친구 호아킨을 찾아 떠나갈 것이다. 이제 그녀를 둘러 싼 방어벽들은 사라졌다. 과연 그녀는 거친 황야. 그것도 황금에 눈 이 멀어 보이는 것이 없는 사람들 사이를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가. 2권의 내용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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