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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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즐겁게 잘 지낼 겁니다. 우리는 시작부터 잘 통하는 데가 있으니까요. 결혼이란 건, 상대를 잘 만나기만 하면 퍽 즐거운 일입니다. ... 나는 이 모험을 감수할 의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비록 네번째이긴 하지만, 이 결혼은 나에게 운명적이고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p.46

 

- 본문 중에서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의 결혼.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이 페이지에 이르러 이현이 얼마나 이진과의 결혼을 순수한 마음으로 갈망했으며, 그가 얼마나 순진하게도 이 모험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기대헀었는지를 떠올려보면 마음이 쓰라리다. 네번째의 결혼임에도 그가 소년의 감성으로 도전하게 했던 그녀 이진. 제목이 이현의 결혼이 아니라 연애인 것은 아마도 그의 이러한 열정이 결혼이라기보다 연애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현의 연애'는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인 이진과 이현의 계약결혼 이야기를 전면에 다루면서 사이사이에 이진이 기록하는 영혼들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마지막에 가서는 이진이 이현의 상사인 부총리의 영혼을 기록하면서 이현과의 실제 이야기와 부총리의 영혼의 기록이 연결된다. 결국 이 연결고리는 이현이 이진을 배반하고 이진을 파괴하는 도화선이 된다. 이진의 아버지였던 이세공이 짐작했던대로 그저 순진하기만했던 이현은 이세공보다도 훨씬 더 짧은 기간에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파괴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이현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총리의 영혼은 이현을 사랑했으니까, 그의 실체가 이현에게 그녀의 기록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면에는 그가 사랑하는 이진에 대한 묘한 질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총리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한 영혼의 시기심 말이다.

 

두 사람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지만, 이진이 기록하는 영혼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한 책이었다. 이를 이끌어가는 서사구조 역시 독특하다. 실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이현에 대한 서술이 사실은 이현의 영혼을 기록한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총리의 영혼이 자신의 치부를 서슴없이 드러내도록 만드는 이진의 기록이라면 이전의 이현에 대한 서술이 이현의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현은 영혼이 기록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을 이진 앞에서 감출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이진의 냉정한 시선이 이현을 두렵게하고 분노하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이리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한편 이진은 이현을 사랑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그의 영혼을 붙잡고 있었을만큼. 그녀가 기록하는 영혼은 그녀에 의해서 끌려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영혼이 그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영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이현을 기록하는 것도, 그와 관련된 인물인 부총리를 기록하게 된 것도 그녀가 이현을 마음에 품게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그래서 그를 기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단지 그녀의 기록에 심장이 없었을 뿐은 아닐까. 그게 결국 그녀의 서툰 표현 방법은 아니었을까. 끔찍한 결과만을 남긴 둘의 연애가 슬픈 이유는 이 서사구조를 통해 짐작하게 된 이진의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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