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한 솜씨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살인을 다룬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면, 물론 실제 현실에서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때도 있지만, 이런 장면들이 소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에 안심이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살인자의 입장에서는 이 장면들을 현실에 그대로 재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나보다. (이야 말로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긴 한데.. ^^;;;) 이 소설은 그런 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형사 베르호벤은 알렉스를 읽고 먼저 알게 되었다. 키 작고 시니컬한 이 형사.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렉스에 나와있었기 때문에 아내 이렌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도대체 이 여인이 무엇때문에 왜 어8떻게 죽게 되는 걸까. 궁금했다. 참혹한 살인 현장과 아내와 아이를 겹쳐 보는 카미유의 모습이 불길한 복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약간의 스포일러 덕분이었다.

 

아무튼. 알렉스를 먼저 읽었더라도 이 소설이 주는 흥미를 반감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카미유를 알고 있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리소설이 제대로 된 문학적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작가의 생각을 읽어보는 것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알렉스를 읽으면서는 르 구엔 서장의 능글맞음에 감탄했었는데, 이 작품에는 그 못지않게 수완좋은 카미유를 만나볼 수도 있다. 다만 슬픈 결말이 마음아플 뿐이다. 베르호벤 시리즈 마지막 작품일 다음 소설<희생>도 곧 만나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생활이 너무 무료할 때, 무슨 일인가 해야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답답할 때, 집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노선이 제일 긴 버스를 탔었다. 뒷자리에 자리잡고 앉아 한 두시간을 보내고 나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거리를 바라본다. 흘러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리라. 어떻게 살아오다 지금 이 순간에 여기서 그들과 거리에서 찰나를 스쳐가게 된 것일까. 각자의 탄생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빠르게 돌려 여기 이자리를 마지막장면으로 하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람들을 쳐다보았었다.

 

이 소설은 지나가다 누군가와 툭. 마주치고는 그를 상상해보는 이야기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다 만난 여인을 보고 그에게 누군가가 접근하는 상상을. 그런데 그 남자가 로봇을 사칭한다면 하는 상상을. 여자는 그동안 삶을 견디느라 지쳐있었다는 상상을. 그렇다면 둘의 만남은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긴 시간동안 서로의 배우자를 두고도 매 해 만나왔던 밀회의 장소에서 죽은 남자의 영혼이 자기를 만나러 오는 여자를 뒤따라온다면, 그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물론 이렇게 독특한 순간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먹어왔던 아이스크림의 맛이 이상하다고 여겨 불만 접수를 하고 난 뒤 문제 해결을 위해 찾아 온 중년 남성을 만난 일이나, 대학 시절에 좋아하던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는 그 비슷한 일 정도는 누구나 겪었을 법 하다.

 

우리가 살아오는 모든 과정은 평범한 일상이지만 또한 드라마틱한 순간이들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상상과 만나기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를. 

 

작가가 작정하고 쓴 장편에는 그가 창작한 세계에 흠뻑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는 반면, 틈틈이 영감을 받아(?) 쓴 단편들에는 가벼운 위트에 퐁당퐁당 발을 담가보는 재미가 있다. 개울물을 건너듯이 즐겁게 건널수 있는 책이니 장편에 살짝 지쳐있을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제과회사의 소비자 상담실에 모여 있는 중년의 남자들... 관리직 모집이란 말에 혹해 이력서를 들고 찾아왔던 우리의 박부장은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묵묵히 두 개의 가방을 받아들고 신고가 들어온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파도가 친다. 높게 일어나 엄청난 속도로 밀려오는 물결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와~' 감탄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파도에 머물러 있다. 이 때 한 작가가 파도 곁으로 다가가 물결에 밀려 온 모래알을 집어 올린다. 이 모래는 저 파도를 타고 아주 깊은 곳에서 저 높은곳까지 다니다 결국 이리 밀려왔다고 말한다. 그게 이 소설이다.

 

이야기거리가 가득한 시대. 작가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는 시대가 있다. 천천히 변화되어왔던 것이 급격하게 바뀌었던 시대. 몇 세기 동안 고정되어있었다고 느꼈던 국가가 한 순간 사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시대. 발전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거대한 속임수가 가능했던 시대. 알아내지 못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시대들이다. 작가는 이 굽이치는 역사의 파도 속에 흩날리다 사라진 모래알들을 생각했다. 파도의 움직임만큼 격렬했던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국가를 잃었기에 뭉쳐도 뭉쳐질 수 없었던 부질없음에 대해서.

 

읽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 모래바람이 불었다.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작가는 '자기가 창작한 세계의 명예시민이 되었다'고 표현했는데, 독자역사 그러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과 손을 스치는 날카로운 에네켄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주인공들이 겪는 어려움의 순간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력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방책을 세우는 부분에서도 여전히 답답했다. 모래알은 모래알일뿐. 그들이 파도를 어쩔 수 있으랴.

 

이들이 살아내야했던 시기가 역사적으로 고난의 때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난'했기 때문이다. 땅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마야의 유적지를 보면서도 발 디딜 '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난을 이유로 떠나왔었기에 그렇게나 '돈'에 민감해졌을 것이다. 영민함과 순수함을 지녔던 소녀 연수가 어느 것도 믿지 않고 오로지 '돈'을 믿는 여인으로 변해버린 것은 그다지 놀라운 결과도 아니다. 오늘날 '땅'이 없는 자들은 어떻게 밀려가고 있을까.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어디로 사라져가고 있을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itty99 2015-09-2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연수가 에필로그에서 왜 그랬는지 알겄네요~ 잘 읽었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출처를 기억할 수 없는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개성을 지닌 인물을 창작해낸 후 그 창작해 낸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는 소설 작법. 처음에는 자기가 상황을 통제하지만 점차 인물들이 자기 특성에 따라 상황을 장악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쓰여질 텍스트는 이미 쓰여진 텍스트에 지배당한다는 당연한 이야기인데, 읽으면서는 '우와~' 했던 기억이 난다. 인물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니. 정말 멋진데. 라고.

 

외로운 이는 외로운 이를 알아본다. 고통을 겪어본 자는 남의 고통에 공명할 줄 안다. 제이가 물체의 고통을 읽을 수 있다고 했던 건. 그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겪어버린 외로움과 두번이나 버려져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고통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실제로 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어차피 느끼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주인공은 제이이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아이들이 사실은 외롭고 고통스럽다. 타인을 괴롭히는 아이들도 자기 자신의 고통을 어쩌지 못하고 타인에게 전가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이들의 고통은 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제이처럼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인가. 아니면 어디쯤에선가 자기도 모르게 다른 중요한 무언가에 의해 밀려나버린 때부터인가. 장애인에 대해 비장애인으로서 갖는 힘 정도의 말도 안되는 수준의 권력으로도 타인을 지배하고자하는 욕구. 그렇지 않을 때의 그들이 그저 음식점 배달 수준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약한 노동자임을 생각하면 평생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권력의 단맛을 보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구의 표출일 것이다. 가진 것이 많거나, 능력이 많은 이들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욕구일테지만. 

 

사실 더 위험한 것은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무기력이다. "이게 사람 사는 거냐?"(p.105)라고 말하면서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무기력. 제이가 아이들에게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래서 제이의 '추락'은 '비상'으로 보였다. 절대 추락해버려서는 안되는 희망이었기에.

 

마지막에 이 소설이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듯한 작가의 장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읽는 내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 '있음직한 일'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에 이처럼 충실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작가가 머리를 잡고 고개를 돌려 니가 지나쳤던 그 아이들을 돌아보도록 만드는 느낌이었다. 버려지는 아이들을. 부모가 떠난 집에 남아 자기들의 법칙대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낮에는 배달을 하고 밤에는 그 울분을 위험함으로 풀어내는 아이들을 한번 바라보라고. 그들이 진짜 존재하지 않느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2
이유명호 외 지음 / 궁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길담서원의 한글자 인문학 책을 주욱 읽어가면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한글자들이 참 많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에서 '몸'을 주제로 한 이 책은 태어나고 자라고 살며 죽는 모든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이렇게 읽고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내 '몸' 덕분이니 절대로 과한 평가가 아니다.

 

책에서는 '몸'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성'과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가 물론 실려 있다. 그러나 그 뿐 아니라 '생명', '소통', '사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 중 나의 마음을 끌었던 이야기는 '늙음'에 관한 것이었다.

 

'늙는다는 것'처럼 서러운 일이 없다. 우리는 '늙는 것'이란 '대비'해야 할 것. 되도록 늦춰야 할 것. 소모된 상태. 로 생각한다. '늙음'의 최후는 '죽음'이므로. 이것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젊을 대의 어떤 상태가 늙을 때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겪을 것을 다 겪었으니, 설렘도, 부끄러움도, 없으리라. 짐작한다. 겪은 이들이 설명하기에는 이미 지나버렸고, 겪지 않은 이들은 그저 추측할 뿐인 모두의 미래. 강의자는 치매인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천천히 보내고 있는 자기의 생활을 이야기해준다. 노인을 위한 공연. 노인을 위한 시설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 없으니까. 라는 말은 왜 경제논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해서는 안되는지를 설명해준다.

 

누구나 늙는다. 몸은 서서히 소모된다. 하지만 인간은 소모품이 아니다. '몸'이 없다면 무엇도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소홀할 수 있을까. 나의 몸을 소중히 하는 것과 남의 몸을 소중히 하는 것 젊은 몸이든 늙은 몸이든 존재로서 가치있게 대할 수 있는 것. 이 책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