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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생활이 너무 무료할 때, 무슨 일인가 해야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답답할 때, 집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노선이 제일 긴 버스를 탔었다. 뒷자리에 자리잡고 앉아 한 두시간을 보내고 나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 같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거리를 바라본다. 흘러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리라. 어떻게 살아오다 지금 이 순간에 여기서 그들과 거리에서 찰나를 스쳐가게 된 것일까. 각자의 탄생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빠르게 돌려 여기 이자리를 마지막장면으로 하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람들을 쳐다보았었다.
이 소설은 지나가다 누군가와 툭. 마주치고는 그를 상상해보는 이야기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다 만난 여인을 보고 그에게 누군가가 접근하는 상상을. 그런데 그 남자가 로봇을 사칭한다면 하는 상상을. 여자는 그동안 삶을 견디느라 지쳐있었다는 상상을. 그렇다면 둘의 만남은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긴 시간동안 서로의 배우자를 두고도 매 해 만나왔던 밀회의 장소에서 죽은 남자의 영혼이 자기를 만나러 오는 여자를 뒤따라온다면, 그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물론 이렇게 독특한 순간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먹어왔던 아이스크림의 맛이 이상하다고 여겨 불만 접수를 하고 난 뒤 문제 해결을 위해 찾아 온 중년 남성을 만난 일이나, 대학 시절에 좋아하던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는 그 비슷한 일 정도는 누구나 겪었을 법 하다.
우리가 살아오는 모든 과정은 평범한 일상이지만 또한 드라마틱한 순간이들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상상과 만나기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를.
작가가 작정하고 쓴 장편에는 그가 창작한 세계에 흠뻑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는 반면, 틈틈이 영감을 받아(?) 쓴 단편들에는 가벼운 위트에 퐁당퐁당 발을 담가보는 재미가 있다. 개울물을 건너듯이 즐겁게 건널수 있는 책이니 장편에 살짝 지쳐있을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제과회사의 소비자 상담실에 모여 있는 중년의 남자들... 관리직 모집이란 말에 혹해 이력서를 들고 찾아왔던 우리의 박부장은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묵묵히 두 개의 가방을 받아들고 신고가 들어온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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