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 심재휘



후회는 한 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편지를 부치러 가는 오전에는 삐걱거리는 계단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누군가는 짙은 향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슬픈 일이었지만



오후에는 돌아온 편지들을 태우는 일이 많아졌다
내 몸에서 흘러나간 맹세들도 불 속에서는 휘어진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불꽃이 '너에 대한 내 한때의 사랑'을 태우고
'너를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나'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



내가 건너온 시장의 저녁이나
편지들의 재가 뒹구는 여관의 뒷마당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향해 있는 것들 중에 만질 수 있는 것은 불꽃밖에 없다
는 것을 안다 한 평생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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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너는 나였다. 너도 두려워 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반응을 기다리기만 하는 이였다.
그러나,
나또한 그러했으므로
시간은 먼지처럼 쌓여갔어도
불꽃은 내/네 안에서만 잦아들어갈 뿐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보내지 못한 편지의 재가 두꺼워질수록
미련의 두께는 엷어지고
가슴속으로 깊게 가라앉아
또다시 꺼내 볼라치면
꽤나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널 이해하라는 말에도
끄덕임으로 넘어간다.
널 이해하라는 말이
나의 폐부와 심장을 상처내기엔
무뎌져 버려
그런 모양이다.

안녕...
이젠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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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클림트> 개봉!

 


 

6월 22일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시네코아에서 하는 것을 알아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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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열한 거리'를 봤다.

유 하의 비관주의를 진하게 맛보다.

비전형적인 주인공이 정형화되며 정해져 있는 운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같이 한솥밥을 먹는 입구멍을 의미한다는 '식구'라는 말은

이젠 더이상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말임을 알게 되다.

'식구'들 또한 각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먹이사슬 속에서

철저하게 해체된다.

  이 영화 속에서 비전형적인 주인공을 굳이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그의 몫은 '의리를 중시 여기는 진한 건달 영화 한 편 찍기를 바란다.'라는

꿈 한자락을 심어주는 일 뿐인가?

그러나, 현실속 비열한 거리속에서 '의리' 등 정신적인 가치는  이미 힘을 잃었다.

그것은 영화속에서나 그려질 환타지일 뿐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영화에 대해선 다음에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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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의사는 새로운 백내장 수술법을 고안해 냈다. 종래에는 백내장에 의해 흐려진 렌즈를 인공렌즈로 갈아 끼울 때 절개한 상처를 봉합해야 했기 때문에 환자가 수술 후에 난시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P 의사가 고안한 방법대로 눈의 특정 부위를 절개하여 수술하면 봉합할 필요없이 상처가 낫는다. P 의사는 이 수술법을 특허출원했다. 특허청은 이 수술법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했다. S 의사가 P 의사와 같은 방법으로 백내장 수술을 했다. P 의사는 S 의사를 상대로 법원에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P 의사는 S 의사와 S 의사가 일하는 병원을 상대로 동일한 수술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처분도 신청하였다. 형사처벌을 받게 하려고 S의사를 특허권침해죄로 검찰에 고소도 하였다.
S 의사를 찾은 환자들은 법원의 가처분결정으로 인하여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같은 방법으로 수술을 받으려면 P 의사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P 의사는 높은 수술비용을 요구한다. P 의사로부터 허가를 받아 같은 방법으로 수술을 하는 Q 의사를 찾았다. Q 의사는 P 의사에게 지불할 높은 로열티 때문에 P 의사와 비슷한 비용을 요구한다.”

 

사람의 치료방법에 대한 특허가 허용될 경우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위 사례가 허구만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Pallin이라는 의사가 위와 같은 백내장 수술법에 대한 특허권을 취득하여 이 수술법을 사용한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였다. 비록 Pallin이 패소하기는 하였으나 이 사건은 미국 의료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특허가 되려면 새롭고 진보하고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있는 발명이어야 한다. 사람을 수술하거나 치료 또는 진단하는 방법 등 의료행위는 그 동안 발명이 아니라거나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특허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다. 인간 또는 동물의 치료, 수술 방법을 명시적으로 불특허사유로 규정한 국가도 많다. WTO 지적재산권협정(트립스협정) 제27조 제3항에서도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특허법은 의료행위를 불특허사유로 규정하지 않으나, 특허청과 대법원은 특허법 해석상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행위에 대해 특허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명이 아니라거나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의료행위에 대해 특허를 부여하지 않기 위한 표면적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치료방법을 특정인이 독점하게 하는 것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행위는 그 특성상 긴급을 요하는 것이 많은데, 그 때마다 특허권자와 라이센싱 계약 체결을 강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치료방법에 독점권이 인정되므로 의료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고 환자는 때맞춰 적절한 치료를 받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의사의 교육방식을 봐도 의료행위에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의사는 도제식으로 길러지므로 그 교육 방식에 이미 의사들 간에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한 독점을 인정한다면, 의사를 교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결국 의료분야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에서의 논쟁 과정
미국은 인간의 수술, 치료, 진단 방법에 대하여 모두 특허를 허용한다. 미국도 1953년까지는 특허를 허용하지 않다가 그 해 특허항소부가 처음 특허를 인정했다. 그 후로 한동안 특허권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본격적으로 행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의사들은 특허의 존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다가 Pallin 사건이 터지면서 특허에 반대하는 의사들과 찬성하는 의약산업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의사들은 특허를 받은 치료방법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되고, 의료비가 증가하며, 새로운 치료방법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는 특허로 보호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이유를 내세웠고, 의약산업 쪽에서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의료분야의 산업화, 인센티브 제도로서의 특허의 효용성을 내세웠다. 그 후 미국 의회에서는 치료 방법에 관한 특허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다만 그 특허를 침해하였더라도 의사에 대하여는 침해금지청구나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특허법에 추가하였다.

 

그래도 문제는 남았다. 의사협회와 의약산업계 사이의 어정쩡한 타협의 결과, 의사에 대해 면책규정을 넣기는 했으나,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서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생명공학 특허를 침해하는 방법이나 의약품, 의료기기의 특허에 위반되는 형태의 사용인 경우에는 여전히 의사에 대해서도 금지청구나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가령 유전자 치료법을 시행하는 경우 의사도 면책되지 못한다. 유전적 소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의 경우에는 일정한 유전자배열이 존재하는지를 추적하여 질병을 쉽게 진단할 수 있는데, 이때도 생명공학 특허의 위반 소지가 높아, 그 유전자배열에 관한 특허권자나 특수한 추적 기술을 가진 특허권자가 의사나 병원을 상대로 침해금지나 로열티 지불을 요구할 수 있다. 의료기술이 점점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미 FTA와 미국의 요구
미국은 FTA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 국가에 대해 치료방법을 특허대상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태국에 제안한 미국의 FTA 협상안에도 치료방법을 특허대상에서 제외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이 치료방법에 대한 특허허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도 치료방법의 특허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다. 의료기술의 혁신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근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술은 특허제도 없이도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고, 학문적 업적이나 명예, 직업적 성공만으로도 충분한 인센티브가 되었다. 특허제도를 옹호하는 많은 이들이 특허가 기술혁신에 이바지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거나 ‘증명’되었다고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증명의 자료를 제시하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술의 진화’라는 책을 쓴 조지 바살라는 GNP의 증가와 특허수의 증가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경제학적 연구결과를 들어, 경제발전과 특허 사이에 직접적 관련이 없고, 사회적, 역사적으로 특허가 기술혁신에 기여한다는 것이 증명된 예가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의료행위의 당사자이면서 의료기술을 직접 발전시켜 온 주역인 의사들 스스로 특허와 같은 인센티브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만 보아도, 인센티브 제도의 필요성이 치료방법의 특허 인정 근거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치료방법의 특허 인정이 주장되고 미국 내에서 힘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약산업계가 의료행위의 특허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약회사들은 많은 유전자특허 및 기타 생명공학 분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유전자를 직접 주입하거나 줄기세포를 만들어 주입하는 등의 유전자치료법을 특허화하는 것은 그들의 이윤을 넓히는 데 득이 될 것이다. 벤쳐기업 육성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으나, 결국 거대 제약기업의 배불리기를 가리는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벤쳐가 성장할 수 있다면, 이는 더 많은 기술력을 확보한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가 얻는 이익의 떡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치료방법 특허인정은 생명공학 기술에 기반한 의약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 개개인의 건강권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이든 팔고 사는 세상이라고 하여, 생명을 담보로 장사하는 것까지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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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을 판매하려면 품목별로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의약품이 안전한지, 약효가 유효한지를 검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이러한 의약품의 검사와 허가 제도를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아래 식약청)이 이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미국은 FTA를 통해 식약청이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할 때 다른 자의 특허권을 침해했는지를 조사하여 특허권 침해인 경우에는 의약품의 판매허가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칠레, 싱가포르, 중남미, 모로코, 호주, 바레인 등과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예외없이 이런 규정을 두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타인의 특허권을 침해한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해 주지 않는 것이니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제네릭 제약사(원 의약품과 효능이 동등한 복제 의약품을 만드는 제약사)의 경쟁을 제한하여 의약품의 독점을 강화하려는 수단의 하나이다. 또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자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식약청을 통해 특허권을 행사하여 결과적으로 특허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특허와 관련된 어떠한 조약에도 특허청과 식약청이 업무를 연계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오히려 국제조약이나 특허법은 특허권을 개인의 권리로 정하고 있으므로, 어느 의약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는지는 특허권자 스스로 조사하여 권리 행사를 해야 한다.

 

식약청이 의약품 허가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특허 침해 여부를 조사할 수 없는 이유는 식약청의 고유 업무에 비추어 너무나 당연하다. 식약청의 고유 업무는 제약사가 만들어 판매하려는 의약품이 안전한지 약효가 제대로 나오는지를 조사하는 것이고, 특허 침해 여부는 식약청의 고유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따라서 식약청은 그러한 업무를 할 능력이 없으며 특허 침해를 판단할 업무 능력을 갖출 필요도 없다. 어느 의약품이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는 특허청은 물론 법원조차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더 큰 문제는 특허권의 유효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즉, 특허청에 의해 등록된 특허권 중 상당수가 나중에 무효로 판정나며, 특허권자가 제기한 침해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등록된 특허권 중 약 30% 정도가 사실은 잘못 등록된 것이다. 또한 특허권자가 권리침해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특허권자가 패소한 사건이 훨씬 더 많다.  이와 같이 등록특허의 유효성과 특허권자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점은 미국이 더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1989년부터 1996년까지 18년 동안 239건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다룬 299건의 특허 중 무려 46%가 무효로 되었다. 또한 의약품 특허의 침해소송 사건 중 무려 73%의 사건에서 특허권자가 패소하였다. 이러한 통계를 볼 때 특허가 등록되었다는 사실만 가지고, 식약청이 제네릭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해 주지 않는 것은 잘못 등록된 특허권으로 인한 비용을 제네릭 제약사에게 전가하는 꼴이 된다. 그 결과 제네릭 제약사의 시장진입을 막아서 환자들이 값싼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를 제한한다.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특허침해 여부를 조사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 미국에서는 특허권자가 제공하는 정보에 기초하여 식약청이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하는데, 특허권자는 허위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의약품과 관련도 없는 정보를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다국적 제약사들은 새로운 기술이 추가되지도 않은 것을 특허출원하여 동일한 의약품에 여러 개의 특허권을 등록받고 의약품의 시장독점을 강화해 오고 있는데, 의약품 허가와 특허 연계 제도는 이러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행태를 조장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약품 특허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특허권의 침해 염려가 있는 의약품이 판매 허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특허 심사를 제대로 하여 부실 권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부실 권리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국이야말로 잘못된 권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특허품질을 높이는 데에 노력해야 한다.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 huri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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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는 80년대 이후 오히려 평균수명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에이즈와 결핵, 말라리아의 재출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짐바브웨와 케냐의 평균수명은 80년대 초중반까지 52~3세까지 꾸준히 올라갔으나 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떨어져 2002년에는 40세 밑으로 떨어졌다. 유엔에이즈계획이 지난 6월 3일 밝힌 바에 의하면 25년후 아프리카 에이즈 사망자는 1억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 인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에이즈 감염자 수가 지난해 약 830만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인도는 세계에서 에이즈 감염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인데 인도의 에이즈 환자 중 7%, 에이즈에 감염된 임신여성 중 1.6%만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 등 치료를 받고 있다. 1분에 한명의 어린이가 에이즈로 사망한다.
- 63억의 세계 인구 중 80% 정도는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개도국 중 2/3의 국가는 국민소득 3,255달러 이하인 국가이다. 밥을 먹을 돈도 없는데 약을 살 돈이 있을 리 없다. 생명공학이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이나 재해에 대처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보건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4~5만원 정도 드는 에이즈 치료비 전액을 정부가 지원한다. 아직은 에이즈 환자가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의 수가 적은 만큼 제약사들이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아, 2000년 이후에 개발된 치료제는 대부분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지 않다. 국내에서 시판하지 않는 치료제는 희귀의약품센터에 ‘자가치료의약품’으로 신청을 하면 희귀의약품센터에서 구입해주지만 비용은 전액 환자부담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엄두도 못 낸다. 전염성 질환은 바이러스나 세균이 계속해서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또는 항바이러스제나 항균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 새로운 약을 처방해야 하므로, 신약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인 퓨제온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지 않은데, 미국에서의 환자1인당 연간 비용이 2만5천 달러이다.
정부의 지원이 가능한가, 보험제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 있는가에 따라 의약품 복용 가능성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의약품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세계적인 공통점이다. 원인은 특허권이다.

 

세계무역기구가 1994년 출범한 이후, 특허는 의약품의 수급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 달리 특허가 의약개발에 기여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의약품에 접근하는 데 장벽이 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계속되었다. 20년이라는 특허보호기간 만료 전후의 가격차이나, 특허보호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의 의약품의 가격차이는 100배가 넘는 것도 있을 지경이다. 반면 특허약의 마진율은 2,000%에 달하는 것도 있다. 특허권을 가진 독점기업은 가격을 낮추려고 정부가 개입하면, 시장 진입 거부로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싸고 정부와 제약사인 노바티스 간의 협상에서 정부는 노바티스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가격을 낮추면 팔지 않겠다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의약품 접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지구적 차원에서 노력해 왔다. 2002년 이후로 잠비아, 모잠비크, 짐바브웨, 말레이시아가 특허권이 걸려있는 에이즈 치료제에 대해 강제실시를 강행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미국의 반대로 좌절되었지만, 에이즈의 심각성이 점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들 국가는 미국과 제약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실시를 강행할 수 있었다.

 

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정부나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가 특허발명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각국의 특허법 대부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나 국가 긴급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한 경우에 강제실시를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특허법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원자력이나 보건, 환경 관련한 개별 법규에서 일정한 경우 강제실시를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점규제를 위한 목적으로 미국에서는 수천건에 달하는 강제실시를 이미 허용한 바 있다. 의약발명의 경우 강제실시를 허용하면, 국영기업이 약품을 생산하여 무상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고, 제3의 제약회사가 정부 허락을 얻어 저가의 카피약품 판매가 가능하다. 강제실시를 하는 경우에도 특허권자에게 합당한 보상은 하게 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의약품 접근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는 글로벌펀드의 설립과 세계보건기구의 각종 결정을 들 수 있다. 2002년에는 G7 국가에 의해 에이즈·말라리아·결핵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가 설립되었고,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3by5 계획, 즉 2005년까지 에이즈 치료가 필요한 600만명 가운데 300만명에게 치료제를 제공한다는 계획이 채택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각국 정부가 보건의료정책의 추진을 위해 특허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협정(아래 트립스협정)이 보장하는 융통성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아래 FTA)에 의해 우회적으로 금지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각국의 강제실시를 방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세계적 차원의 노력에 대해서도 계속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은 세계보건기구의 회의에 참석할 대표들을 보건 전문가가 아닌 제약회사의 전직, 현직 임원으로 구성하여 제약회사의 이익을 제한하는 어떠한 결정에도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해 왔다. 미국 주요 기업들이 재정을 지원하고 기업의 전현직 대표들이 그 이사로 있는 허드슨연구소는 미국 정책결정자와 정치가를 상대로 교육활동을 전개하는데, 이 연구소는 특허약품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카피약의 안전성이나 효능이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의도적으로 유포하고 있다.

 

FTA는 미국의 방해 전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과 미국이 체결한 FTA 협정문을 보면 강제실시권은 트립스협정이 인정하는 범위보다 지나치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도 그 특허발명의 실시가 비상업적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강제실시를 허용한다.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의 실시가 가격이 저가라도 상업적이라고 인정될 수 있음을 감안하면, ‘비상업적’이라는 제한은 강제실시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급이 불충분한 경우에는 특허권자의 권리남용으로 보아 강제실시를 허용하는 것이 1880년대 ‘산업재산권 보호에 관한 파리협약’ 이래 보장되었다. 그러나 미국식 FTA는 이를 금지한다. 따라서 제약회사가 국내 시장이 소규모라거나 정부에서 가격을 통제한다는 이유로 의약품 공급을 거부할 경우,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강제실시가 가능하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나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특허보호기간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특허보호기간이 20년이라는 원칙은 그대로 두 되, 특허출원의 심사과정에서 심사가 지연되는 기간만큼 특허보호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허출원을 심사하는 특허청 입장에서는 심사기간 단축의 부담이 커서 신중하게 심사할 수 없게 되고, 부실한 특허권을 양산할 우려가 높다. 부실한 특허권은 동종업계 내의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어 분쟁해결 비용이 증가할 것이고, 분쟁비용을 감당할 자본력이 우세한 기업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에서도 이와 같은 요구를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1차 본협상이 마무리되고 지적재산권분야 통합협정문이 작성된 지금 아마도 이미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한미FTA에 우리는 찬성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특허권을 기술의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제도로 인정하고, 특허권자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것이 기술발전, 이에 따른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도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도식은 특허제도가 어느 누구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한 중립적인 제도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런 통념에 의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가 특허권자에게 정당한 보상인가의 문제는 늘 남아있기 때문에, 특허권은 사회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다는 중도적 입장이 항상 대안처럼 제시된다. 중도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한미FTA는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 강제실시권과 같은 사회 정책상 필수적인 수단들을 FTA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나아간 통찰력이 필요하다. 특허제도는 먼저 발명하여 상품화한 사람에게 일정한 시장 독점력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 특허제도에 의해 기술혁신이 추동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명백히 증명된바 없다. 오늘날의 특허제도는 초기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자본주의 성장과 더불어 점차 견고해지고 강력해졌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어 온 6·70년대 이후 특허제도는 세계적으로 통일화되면서 더욱 강력한 수준으로 진화했다. 이 모든 흐름을 이끌어 온 것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정부이지만, 그 뒤에는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버티고 있다. 트립스협정만 해도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와 IBM 등이 초안을 만들었다. 이러한 특허제도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때 적어도 오늘날의 특허제도는 이미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경제성장의 이익을 배분하는 중립적인 제도가 아니라 미국의 주요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맞게 리모델링한 편파적 제도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다. 미국 정부의 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거대 기업들의 전·현직 대표나 이사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정부관료가 되거나 이익단체를 만들어 정책이나 법률을 만들고 정부가 반영하도록 로비한다. 한미FTA는 미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를 앞세워 한국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장으로 조성하기 위한 전략이며, 특허권의 강화는 그 주요한 전술이다. 한미FTA체결로 특허권이 점차 강화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생활과 생명을 갉아먹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방식과 속도의 문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에이즈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이것이 우리가 한미FTA를 반대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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