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의사는 새로운 백내장 수술법을 고안해 냈다. 종래에는 백내장에 의해 흐려진 렌즈를 인공렌즈로 갈아 끼울 때 절개한 상처를 봉합해야 했기 때문에 환자가 수술 후에 난시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P 의사가 고안한 방법대로 눈의 특정 부위를 절개하여 수술하면 봉합할 필요없이 상처가 낫는다. P 의사는 이 수술법을 특허출원했다. 특허청은 이 수술법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했다. S 의사가 P 의사와 같은 방법으로 백내장 수술을 했다. P 의사는 S 의사를 상대로 법원에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P 의사는 S 의사와 S 의사가 일하는 병원을 상대로 동일한 수술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처분도 신청하였다. 형사처벌을 받게 하려고 S의사를 특허권침해죄로 검찰에 고소도 하였다.
S 의사를 찾은 환자들은 법원의 가처분결정으로 인하여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같은 방법으로 수술을 받으려면 P 의사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P 의사는 높은 수술비용을 요구한다. P 의사로부터 허가를 받아 같은 방법으로 수술을 하는 Q 의사를 찾았다. Q 의사는 P 의사에게 지불할 높은 로열티 때문에 P 의사와 비슷한 비용을 요구한다.”

 

사람의 치료방법에 대한 특허가 허용될 경우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위 사례가 허구만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Pallin이라는 의사가 위와 같은 백내장 수술법에 대한 특허권을 취득하여 이 수술법을 사용한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였다. 비록 Pallin이 패소하기는 하였으나 이 사건은 미국 의료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특허가 되려면 새롭고 진보하고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있는 발명이어야 한다. 사람을 수술하거나 치료 또는 진단하는 방법 등 의료행위는 그 동안 발명이 아니라거나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특허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다. 인간 또는 동물의 치료, 수술 방법을 명시적으로 불특허사유로 규정한 국가도 많다. WTO 지적재산권협정(트립스협정) 제27조 제3항에서도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특허법은 의료행위를 불특허사유로 규정하지 않으나, 특허청과 대법원은 특허법 해석상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행위에 대해 특허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명이 아니라거나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의료행위에 대해 특허를 부여하지 않기 위한 표면적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치료방법을 특정인이 독점하게 하는 것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행위는 그 특성상 긴급을 요하는 것이 많은데, 그 때마다 특허권자와 라이센싱 계약 체결을 강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치료방법에 독점권이 인정되므로 의료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고 환자는 때맞춰 적절한 치료를 받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의사의 교육방식을 봐도 의료행위에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의사는 도제식으로 길러지므로 그 교육 방식에 이미 의사들 간에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한 독점을 인정한다면, 의사를 교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결국 의료분야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에서의 논쟁 과정
미국은 인간의 수술, 치료, 진단 방법에 대하여 모두 특허를 허용한다. 미국도 1953년까지는 특허를 허용하지 않다가 그 해 특허항소부가 처음 특허를 인정했다. 그 후로 한동안 특허권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본격적으로 행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의사들은 특허의 존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다가 Pallin 사건이 터지면서 특허에 반대하는 의사들과 찬성하는 의약산업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의사들은 특허를 받은 치료방법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되고, 의료비가 증가하며, 새로운 치료방법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는 특허로 보호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이유를 내세웠고, 의약산업 쪽에서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의료분야의 산업화, 인센티브 제도로서의 특허의 효용성을 내세웠다. 그 후 미국 의회에서는 치료 방법에 관한 특허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다만 그 특허를 침해하였더라도 의사에 대하여는 침해금지청구나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특허법에 추가하였다.

 

그래도 문제는 남았다. 의사협회와 의약산업계 사이의 어정쩡한 타협의 결과, 의사에 대해 면책규정을 넣기는 했으나,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서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생명공학 특허를 침해하는 방법이나 의약품, 의료기기의 특허에 위반되는 형태의 사용인 경우에는 여전히 의사에 대해서도 금지청구나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가령 유전자 치료법을 시행하는 경우 의사도 면책되지 못한다. 유전적 소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의 경우에는 일정한 유전자배열이 존재하는지를 추적하여 질병을 쉽게 진단할 수 있는데, 이때도 생명공학 특허의 위반 소지가 높아, 그 유전자배열에 관한 특허권자나 특수한 추적 기술을 가진 특허권자가 의사나 병원을 상대로 침해금지나 로열티 지불을 요구할 수 있다. 의료기술이 점점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미 FTA와 미국의 요구
미국은 FTA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 국가에 대해 치료방법을 특허대상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태국에 제안한 미국의 FTA 협상안에도 치료방법을 특허대상에서 제외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이 치료방법에 대한 특허허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도 치료방법의 특허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다. 의료기술의 혁신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근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술은 특허제도 없이도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고, 학문적 업적이나 명예, 직업적 성공만으로도 충분한 인센티브가 되었다. 특허제도를 옹호하는 많은 이들이 특허가 기술혁신에 이바지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거나 ‘증명’되었다고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증명의 자료를 제시하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술의 진화’라는 책을 쓴 조지 바살라는 GNP의 증가와 특허수의 증가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경제학적 연구결과를 들어, 경제발전과 특허 사이에 직접적 관련이 없고, 사회적, 역사적으로 특허가 기술혁신에 기여한다는 것이 증명된 예가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의료행위의 당사자이면서 의료기술을 직접 발전시켜 온 주역인 의사들 스스로 특허와 같은 인센티브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만 보아도, 인센티브 제도의 필요성이 치료방법의 특허 인정 근거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치료방법의 특허 인정이 주장되고 미국 내에서 힘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약산업계가 의료행위의 특허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약회사들은 많은 유전자특허 및 기타 생명공학 분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유전자를 직접 주입하거나 줄기세포를 만들어 주입하는 등의 유전자치료법을 특허화하는 것은 그들의 이윤을 넓히는 데 득이 될 것이다. 벤쳐기업 육성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으나, 결국 거대 제약기업의 배불리기를 가리는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벤쳐가 성장할 수 있다면, 이는 더 많은 기술력을 확보한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가 얻는 이익의 떡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치료방법 특허인정은 생명공학 기술에 기반한 의약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 개개인의 건강권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이든 팔고 사는 세상이라고 하여, 생명을 담보로 장사하는 것까지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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