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 심재휘
후회는 한 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편지를 부치러 가는 오전에는 삐걱거리는 계단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는데 누군가는 짙은 향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슬픈 일이었지만
오후에는 돌아온 편지들을 태우는 일이 많아졌다
내 몸에서 흘러나간 맹세들도 불 속에서는 휘어진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불꽃이 '너에 대한 내 한때의 사랑'을 태우고
'너를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나'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
내가 건너온 시장의 저녁이나
편지들의 재가 뒹구는 여관의 뒷마당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향해 있는 것들 중에 만질 수 있는 것은 불꽃밖에 없다
는 것을 안다 한 평생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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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너는 나였다. 너도 두려워 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반응을 기다리기만 하는 이였다.
그러나,
나또한 그러했으므로
시간은 먼지처럼 쌓여갔어도
불꽃은 내/네 안에서만 잦아들어갈 뿐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보내지 못한 편지의 재가 두꺼워질수록
미련의 두께는 엷어지고
가슴속으로 깊게 가라앉아
또다시 꺼내 볼라치면
꽤나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널 이해하라는 말에도
끄덕임으로 넘어간다.
널 이해하라는 말이
나의 폐부와 심장을 상처내기엔
무뎌져 버려
그런 모양이다.
안녕...
이젠 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