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예전 마라톤을 하면서 헥헥~ 숨 넘어가게 들숨날숨을 쉬던 것이 갑자기 그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채찍질, 달리기 등등에 항상 매혹되는 것을 보니 전생에 말(馬)이 아니었나 싶다.-_- 물론 그것보다는 번쩍거리는 무기류-특히 검-에 더 흥분되기는 하지만...) 아니..그것보다도 땀방울을 흘리고 난 후 시원한 우유를 한잔 들이키고 하는 시원한 샤워가 그리웠다.  날씨도 많이 풀렸고 해서 뛸 때 부담스럽지 않을 거 같다.

다행히 집 근처에 좋은 공원이 있다. 아침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구 질주해 줄테다..(아니다..마구 질주는 우아한 나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 경쾌하게 폴짝폴짝 뛰어줄테다. 하하~)

목표는 4월 17일(일요일)

4.19기념 삼각산 우이령 마라톤대회
http://www.gangbukmarathon.com/

이젠 겨우내 이불속을 구르던 돼지에서 날렵한 종마로 변신할 때 !!

모든 마라톤 일정에 대해서는 http://www.run114.com/main/main.asp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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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귀한 손님께서 직접 집을 방문해 주었다. 그녀는 예전 함께 봤던 영화전단지 2개를 챙겨서 들고 와주었다. 올해 본 영화들은 빠짐없이 영화평을 쓰고 싶다는 나의 말을 기억했었던 모양이었다.

그 중 하나가 짐캐리가 나오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었다. 얼떨결에 고른 영화였으나(원래는 '말아톤'을 보려고 했는데 '조승우'가 직접 나와서 팬 싸인회 및 관객인사를 하는 조조영화를 보겠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급선회하여 보게 된 영화였거든.)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반지의 제왕','해리포터'등 환타지 물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이들 책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영화로 보면서 무척 만족했던 것이 기억난다.환타지 물의 상상력은 항상 나를 자극시키는 뭔가가 있다. 마술..특이함..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사이에 숨겨진 키워드..또는 일상적인 것들이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되는 생각의 전환등등,그리고, 환타지 물 속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대립구조는 극적인 긴장감을 더해주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며 집중하게 만든다. 거기다 시각적인 볼거리는 얼마나 풍부한가? 이 영화 속에서도 그런 요소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으며, 아동영화 속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람과의 대립, 그 대립을 극복하며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그 후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는 잠자리 동화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첫 시작부터 착한 요정들이 노래하는 영화가 잠시 소개되더니 이 영화의 작가(주드 로 분)가 타자기 앞에 나와 글을 치면서 나레이션을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옆 상영관으로 옮겨서 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착한 이야기가 아니라 갑작스런 의문의 화재로 부모를 잃은 삼남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던 작가의 모습을 나는 여기서 보게 되었다. 얼굴은 어두운 작업실내의 그림자 때문에 절대로 보이지 않으나 끊임없이 타자기를 쳐대고 있는 옆모습의 씰루엣과 조명을 받아서 오로지 그의 손만 하이라이트를 받고 있는 풍경.. 종이위에 자신이 많들어 놓은 주인공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은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을 평탄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들에게 그 길을 넘어갈 수 있는 하나하나의 능력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런 능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씨실과 날실이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옷감처럼 주인공들의 대화와 그들이 능력이 함께 얽히고 설켰을 때만 그들 앞에 놓여있는 문제를 풀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오~ 작가 당신,,너무 자비심이 없다고!!' 라고 책을 읽다 말고 외치고 싶어도 책 속의 재미를 반감시키면 안되기 때문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마는 어린시절의 나의 손...그런것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났다.

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다. (항상 옆길로 새는 것이 주특기인지라..흠흠..) 갑작스럽게 집이 전소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바이올렛(15살,천재적인 발명가, 창의력의 대가, 머리속으로 꿍시렁거려서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첫째딸), 클라우스(14살,천재적인 암기력의 대가, 아버지의 거대한 책장의 책을 모두 암기하고 있으며 머리 속의 책장 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 내어서 그 내용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둘째아들.)써니(1살을 조금 넘김, 아기말의 통역이 절대 필요함. 모든 것을 깨물어 버리는 튼튼한 이를 가진 세째딸.)는 부모를 잃게 된다. 이 아이들을 맡아줄 후견인으로 겁나먼 친척 울라프 백작(짐 캐리분. 연극배우이면서 변장의 천재. 그러나, 그가 노리는 것은 단하나..아이들의 유산뿐!)이 지명되고 울라프 백작은 아이들을 처치하고 아이들의 유산을 가로채려고 한다. 그의 의도를 간파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에게서 벗어나고 다른 친척 몽티 삼촌(파충류 학자, 그 또한 의문의 화재사고로 아이들과 아내를 잃은 적이 있었다.), 조세핀 숙모(문법을 사랑하는 신경과민한 미망인, 거머리에게 남편이 당하고 말았다..-_- 신경과민할 수 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벼랑끝 집에 살고 있다.)에게 자신들의 후견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들의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어야 할 것 같은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더 단순하게 울라프 백작에게 속아넘어가 죽임을 당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아이들과 울라프 백작의 대결은 더욱 치열한 구도로 가게 된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영화가 끝나고 스탭롤이 흐르는 와중에도 앤딩롤 배경에는 세 아이들(바이올렛, 클라우스, 써니)의 그림자 인형과 그 뒤를 쫓는 울라프 백작(짐캐리 분)의 그림자 인형들이 끊임없이 추적씬을 펼치고 있는 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울라프 백작이 탈출했다는 나레이션에 맞추기 위해 한 것이겠지만, 아이들이 커나가는 과정 속에 '울라프 백작'과 같은 시련이 끈임없이 그들을 괴롭힐 것이란 것을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아이들의 시련을 대표하는 '울라프 백작'과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 사이의 끈임없는 대결을 만들어내면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들이 커가면 '울라프 백작'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와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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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본다


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2


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나는 까닭 없이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가운 나무들, 혹은

곧 유리창을 쏟아버릴 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낮은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걸어오는 것이다

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른다. 또다시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감각이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투명한 저녁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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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 속의 상상력에서 예전에 보았던 '혹성탈출'을 떠올린 것은 내가 작가의 의도에 제대로 걸려 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약간 억지스러운 결말이 전체적인 소설의 느낌을 반감시켰지만 우리의 모습을 다시 살피게 되었다. 내 주위에서 일어난다 하더라도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어느 먼 별나라의 일'처럼 생각되는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방관자, 구경자 일 뿐이다. 그러나, 그 먼 별나라와도 같은 척박한 세상의 한 구석에도  생명(또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이 파괴되는 것을'그저 그들의 운명, 또는 신의 섭리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에...

(The Star)

바티칸 교황청까지 아직 3천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신이 창조한 자격이 있다고 굳게 믿어온 것처럼, 나는 한때 이 광활한 우주도 신앙의 위대한 힘은 어쩔 수 없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역시 신의 영광을 받고 탄생했을 어느 피조물의 운명을 알게된 뒤, 그동안 흔들림없이 지켜왔던 나의 믿음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우주선 객실 안(마크 6) 컴퓨터 위에 걸린 예수의 십자가상을 바라보면서, 난생 처음으로 저것은 그저 공허한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에 잠겨 있는 것이다.

아직 아무에게도 이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를 속이거나 할 수는 없다. 문제의 자료들은 끝없이 긴 마그네틱 테이프와 수천 장의 사진에 담겨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과학자들은 손쉽게 그 자료들을 분석해 낼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는 기독교 신학사의 오점으로 남아 있는 몇몇 기록들처럼 그 자료들에 담겨 있는 진실을 왜곡하거나 숨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른 승무원들도 허탈한 심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난 그들이 도대체 이 엄청난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신앙을 갖고있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게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차마 이 일을 거론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주선 안에서는 지구를 떠나는 순간부터 비록 사사롭고 어디까지나 점잖은 것이지만 꽤나 심각했던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이 있었다. 우주선의 수석천체물리학자인 내가 예수교(Jesuit)의 신부라는 사실은 그들 무신론자 승무원들에겐 몹시 재미있는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특히 선내의사인 챈들러 박사같은 경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대개 의사들은 왜 그렇듯 철저한 무신론자일까?) 이따금 나는 그와 관측실에서 마주치곤 했다. 관측실은 조명이 어둡기 때문에 바깥의 별빛들이 마치 무한한 영광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찬란한 별빛으로 가득찬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곤 했다. 몸으로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우주선이 천천히 자전하고 있었으므로 창 밖의 우주는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저어, 신부님."

그는 머뭇거리다 말을 꺼내곤 했다.

"저 우주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존재해 나가겠지요. 그리고 분명히 무언가가, 또는 누군가가 이 우주를 창조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 창조주가 우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과연 창조주가 이 보잘것 없는 우리를 각별히 돌보아 주겠습니까? 솔직히 저는 이 점이 가장 궁금합니다."

논쟁은 이렇게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창밖에는 수많은 별들과 성운들이 우주의 침묵 속에서 천천히 우리를 스쳐가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승무원들에겐 심심치 않은 화제거리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매우 곤혹스런 입장이었다.

나의 논문이 [천체물리학회지]에 세 편, 그리고 [왕립천체물리학회보]에 다섯 편이나 수록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예수교 신부로만 여길 뿐, 과학자로는 대접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오랜 동안의 연구 생활과 학문적 업적이 나를 저명한 과학자로 알려지게 했다는 사실을 말하곤 했다. 물론 성직자가 동시에 뛰어난 과학자인 경우는 드물지만, 18세기이후 나와 같은 인물들이 천문학과 지구물리학에 기여한 바를 고려해 보면 그 적은 수에 비추어 보아 결코 과소평가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불사조(Phoenix)]성운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돌아가면, 과연 수천년에 걸친 기독교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일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처음에 그 성운에 그런 이름을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몹시 어울리지 않는 이름임엔 틀림없다. 만약 그 이름에 어떤 예언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수십억년 동안은 입증될 수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성운]이란 말조차도 오해될 여지가 있다. [불사조]성운은 글자 그대로 우주에 퍼져있는 거대한 먼지 구름이 아니라, 아주 작디 작은 잔해에 불과하다. 성운이란 원래 은하계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먼지 구름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장차 태어날 별들의 원재료가 되는 이 거대한 먼지 구름들과는 달리, [불사조]성운은 우주적인 규모에서 바라보면 정말로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어느 별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엷은 가스막에 지나지 않았다. 또는 이전에 한때 별이었을지도 모를 흔적이거나.....

분광측정기의 관측기록들을 놓아 둔 곳 위 벽에, 루벤스가 조각한 로욜라(예수교의 창시자)의 상이 나를 비웃듯이 내려다 보고 있다. 성인이시여, 당신이 겪은 세상은 이 우주에서 지극히 작은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여 그처럼 깊은 신앙 세계를 만들어 내셨나이까? 당신이 이룩한 신앙이 나의 모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신심은 몹시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녕 우리의 신앙에 위기가 닥친 것입니까?

당신꼐서는 물론 세상을 널리 살펴보셨겠지만, 저는 당신이 천여년 전 처음으로 예수회를 세울 때 상상했던 세계보다도 훨씬 더 멀고 색다른 곳들을 여행했습니다. 이처럼 먼 곳까지 날아왔던 지구의 탐사선은 한 척도 없습니다. 인류가 뻗어나가고 있는 우주에서 우리들은 최선두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불사조] 성운으로 진로를 잡아 마침내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귀로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중입니다. 전 솔직히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싶지만, 그저 속절없이 당신의 이름만을 되뇌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일천 년의 시간과 수천 광년의 거리를 둔 채.

당신이 들고 있는 책에 새겨진 글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DEI GLORIAM: 예수회의 모토)]
그러나 이제 저는 더 이상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발견했던 것들을 당신도 보셨다면, 그래도 당신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물론 우리들은 [불사조]성운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은하계 안에서만 해도 일년에 백여개가 넘는 별들이 푹발하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 보통 때보다 수천배나 밝아진 채로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 동안을 빛나다가 이윽고 폭발한 잔해들이 흩어지면서 우주의 암흑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흔히 우리들이 신성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별의 최후는 우주에서는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달의 천문관측소에서 일하고 난 뒤부터도 이러한 현상을 열 번이 넘게 관측하여 분광사진자료로 기록해 왔다. 그러나 3백 년, 또는 4백 년에 한번 꼴로 신성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매우 밝게 빛나는 별이 나타날 때도 있다.

이것은 이른바 수리샛별(초신성)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자기가 속한 은하계 전체의 다른 모든 별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수도 있다. 서기 1054년에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당시 수리샛별이 나타났음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5백년 뒤, 1572년에 카시오페아 자리에서도 수리샛별이 나타나 밝게 빛났다. 그 별은 너무나도 밝았기에 대낮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 뒤에도 모두 세 변에 걸쳐 수리샛별이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탐사대의 임무는 그런 별의 잔해를 찾아서 폭발과정을 거슬러 추정해보고, 가능하면 그 원인까지도 알아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둥그렇게 겹겹이 싸여 있는 가스층을 천천히 통과하여, 이미 6천년전에 폭발했지만 아직도 팽창을 계속하고 있는 [불사조]성운의 중심부로 다가갔다. 가스층의 온도는 매우 뜨거웠고 강력한 자외선까지 내뿜고 있었지만 우리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었다. 별이 폭발하게 되면 표면을 덮고있던 외곽층은 별의 인력을 뿌리치고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태양계보다 수천배나 큰 거대한 가스구가 되어 폭발한 별의 잔해를 들러싸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폭발하여 불타버린 잔해들 가운데엔,우리가 백색왜성이라고 부르는 환상적인 별이 생겨나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 하얀 난장이별은 지구보다도 작은 크기이지만, 질량은 오히려 수백만 배나 더 나가는 밀도가 매우 높은 별이다.

우주선 주변을 둘러싼 가스층들은 밝게 빛나면서 우주공간의 영원한 밤을 서서히 몰아내주었다. 우리들은 우주의 시한폭탄이 폭발한 잔해 한가운데로 계속 접근했다. 폭발은 수천년 전에 발생했지만 그 잔해와 가스들은 아직도 눈부신 불꽃을 내며 계속 우주공간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워낙 천문학적인 규모의 엄청난 폭발로 말미암아 이미 파편들은 수십억 마일이 넘는 거리를 날아갔기 때문에,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10년 정도는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겨우 파편의 움직임이나 가스층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폭발의 규모는 상상만 해도 너무나 압도적인 것이었다.

우주선의 추진장치들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우리들은 작지만 엄청난 인력을 가진 중심부의 하얀 난장이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 별은 한때 우리의 태양과 같은 평범한 항성이었지만, 폭발과 함께 단 몇 시간만에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그 잔해를 백만 년 정도 계속 흩뜨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한순간에 날려버린 에너지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지금은 잔뜩 웅크리고 있는 욕심장이처럼 조그마한 난장이별이 되어 있었다.

행성을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설사 별이 폭발하기 전에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최초의 폭풍으로 이미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며, 혹 찌꺼기가 남아있더라도 곧이어 닥친 별의 잔해들에 쓸려 온전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우리들은 낯선 태양계에 접근할 때면 항상 그러듯이 자동 탐색장치를 가동시켰는데, 뜻밖에 매우 먼 거리에서 공전하고 있는 작은 행성 하나를 발견했다. 이 무명 행성은 우리 태양계의 명왕성처럼 쇠락해버린 이 별의 가장자리를 외롭게 돌고 있었다. 태양에서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기에 생명이 피어날 수도 없었겠지만, 그 대신 파국의 운명으로부터는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폭발의 화염은 이 행성의 표면을 불태우면서 이전에 행성의 표면을 덮고 있던 얼어붙은 대기층을 모두 우주공간으로 날려버린 듯했다. 우리는 그 행성에 착륙했고, 그리고 동굴을 발견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동굴은 반드시 눈에 뜨이도록 되어 있었다. 동굴 입구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선돌은 별이 폭발할 때 윗부분이 녹아 무너져 내렸으나, 아무튼 우리가 그 행성에 접근하여 처음 찍은 사진을 보면 지성을 가진 어떤 존재가 구조물을 남겼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잠시 뒤 우리들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것을 포착했다. 그 방사선들은 지표 밑에 어떤 물체들이 파묻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설사 동굴 위에 세웠던 안내탑 같은 것이 날아가 버린다 해도, 이 방사능만큼은 절대로 없애버릴 수 없는 확실한 표식이 된다. 가없는 우주공간으로 언제까지나 퍼져나가는 메아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주선을 마치 과녁 한가운데 꽂히는 화살처럼 정확히 그 지점에 착륙시켰다.

동굴 입구의 안내탑은 아마도 처음 세워졌을 때에는 일 마일 정도의 높이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다 타고 녹아내린 양초처럼 바닥에 뭉개져 붙은 모습이었다. 마땅한 장비가 없었으므로 녹아붙은 암석을 뚫고 들어가는 데에는 꼬박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들은 대부분 고고학자라기보다는 천문학자였지만 아무튼 큰 어려움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우리들은 애초의 탐사 목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태양에서 엄청나게 먼 이 외딴 행성에 이처럼 방대한 유적을 남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어었을 것이다. 이 외로운 유적이 의미하는 바는 따라서 오로지 하나뿐일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의 태양이 머잖아 폭발할 것임을 미리 깨달은 어느 발달된 지성종족이, 스스로 문명과 문화와 존재의 흔적을 영원히 남기고자 최후로 건설해 놓은 거룩한 비명(碑銘)인 것이다.

동굴에 남아있는 모든 유적들을 낱낱이 조사하려면 아마도 앞으로 몇 세대 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 했다. 이들의 태양은 폭발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파국의 조짐을 드러내며 경고를 했을 것이므로, 유적을 건설한 자들은 그나마 넉넉한 준비기간을 가졌던 모양이었다. 그들이 보존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과 그들의 지성이 남긴 모든 업적들을 종말의 날이 닥치기 전에 이 머나면 변경 행성으로 날라온 것이다. 누군가 다른 외계의 지성인들이 유적을 발견하기를, 이 우주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비장한 안타까움으로 이 유적을 남긴 것이다. 과연 우리 인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들처럼 흔적을 남기려 애썼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운명에 절망하여 체념한 나머지 결코 누려보지 못할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을까?

그들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들은 자신의 태양계 안에 있는 행성들로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안타깝게도 항성간의 머나먼 우주공간을 건너가기에는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과 가장 가까운 태양계는 100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하긴 항성간 우주 여행 기술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대피할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몇 백만 정도였을 것이 오히려 그들로서는 다 같이 최후를 맞는 것이 덜 가슴아픈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각 등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과 놀라울만큼 닮았지만 설사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문명에 감탄하고 또한 그들의 운명에 몹시 슬퍼했을 것이다. 그들은 수천 개의 화면기록 레코드와 영사장치를 남겨 놓았으며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들로 장치의 사용법을 설명해 놓고 있었다. 또한 그다지 어렵게 보이지 않는 그들의 문자로도 설명을 달아 놓았다. 우리들은 레코드들 중에서 여러 개를 직접 틀어 보았다. 근 6백여년만에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그 기록들은 그들이 여러모로 우리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따뜻한 종족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네 문명의 좋은 면만을 모아다가 남겨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라도 흠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보더라도 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평화와 행복이 충만했던 것 같았다. 그들의 도시는 어떤 인간이 보더라도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일하는 모습과 노는 모습을 보았으며, 여러 세기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들리는 그들의 음악소리같은 말소리들을 들었다.

한 장면은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신비한 파란 색의 모래로 뒤덮인 해변가에서 지구에서처럼 한 무리의 아이들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하는 파도와 어울려 노는 모습이었다. 마치 회초리처럼 생긴 신기한 나무들이 해안을 따라 줄지어 서 있고, 매우 커다란 동물 하나가 아무의 주목도 받지 않은 채 앝은 물에서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 속으로 점점 저물어가고 있는 태양이 있었다.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언제까지나 친근하고 따뜻하게 감싸줄 것만 같았던 태양이 비치고 있었다. 그 태양이 어느날인가 무서운 배반자로 둔갑하여 이 순진무구하고 행복한 종족들을 일순간에 멸망시켜 버린 것이다.

우리들이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향수에 민감한 상태만 아니었어도 그토록 깊게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탐사대원들 중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미 멸망해버린 외계문명의 유적같은 것을 접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이 종족의 비극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다. 지구에서처럼 어떤 나라나 민족이 흥하고 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우인 것이다. 지성을 가진 한 종족 전체가 생존자 하나없이 완전하게 멸절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쌓아 올린 모든 문명과 유산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과 조화시켜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탐사대의 동료들은 내게 이 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고,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답을 했다. 성인 로욜라시여, 아마 당신이라면 저보다 좀 더 나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당신이 남긴 책[심령수업 (Exercitia Spiritualia)] 에서 도움이 될만한 구절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악마의 종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종교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과연 어떤신을 섬겼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수천년의 시간을 넘어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그들 삶의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던 모습을 보고나니, 폭발해 버리고 만 그들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감동이 북받쳐 오릅니다. 그들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들은 멸망해 버려야만 했습니까?

이제 지구로 돌아가면 동료들이 내게 뭐라고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우주는 애초부터 아무런 목적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생겨난 것이며, 우리 은하계만도 일년에 백여개의 별들이 폭발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서 이름모를 외계 종족이 순식간에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종족이 역사가 평화롭고 착한 것이었든 악행과 부덕으로 가득찬 것이었든 파국적인 종말을 맞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며, 처음부터 신이 심판하는 정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물론 우리가 본 것들은 그런 논의와는 수평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성격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지, 엄정한 논리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신은 자신의 행위를 인간에게 정당화시켜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파괴를 할 수도 있다. 신의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신을 향해 그럴 수 있다, 없다고 따지는 것 자체가 오만한 태도이다. 신을 모독하는 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애써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이 행복한 세계가 순식간에 불덩이 속으로 사라져 버린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나의 신앙심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할 즈음, 계산 결과 한 가지를 앞에 놓고 나는 마침내 새로운 사실에 직면했음을 알게 되었다.

별이 폭발한 뒤 그 잔해가 퍼져나가 성운이 된 경우, 직접 그곳에 가보지 않고서는 과연 그 별이 언제 폭발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불사조]성운에 도달한 뒤, 치밀한 관측 결과와 외곽에 홀로 남은 외딴 행성의 암석들이 녹은 연대를 측정하여 그 별의 폭발시기를 매우 정확하게 추정해 낼 수 있었다. 나는 그 별이 폭발하는 섬광이 지구에는 과연 언제쯤 도달했는지 정확히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우주공간으로 희미하게 흩어져 버렸지만, 처음 지구의 하늘에 나타났을 때에는 얼마나 밝게 빛났을 것인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의 동쪽 밤하늘에 아주 낮게 떠서, 마치 동방의 새벽을 알리듯이 아주 밝게 빛났을 당시의 그 별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젠 아무것도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옛부터 내려오던 신비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오오, 하나님. 정녕 당신께서는 다른 수많은 별들중에서 하나를 택하실 수는 없었단 말입니까?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다 길을 잃은 동방박사들에게 방향을 인도하기 위하여, 이 평화롭고 행복한 외계종족을 송두리째 파멸로 이끌면서까지 베들레헴의 밤하늘에 동방의 별이 빛나도록 만드셨단 말입니까?

* 참고: 이 소설의 부제는 `동방의 별'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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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알몸, 블로그가 보여준다

가공되지 않은 중동의 민심과 함께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한 토론도 진행되는 ‘대안언론’으로

▣ 김동문/ 중동전문가 yahiya@hanmail.net

“중동 ‘블로그’를 아는가?” 요즘 중동 지역의 최대 화두는 블로그다. 아랍에도 이라크에도 블로그(blog)가 있고 블로거(blogger)들이 있다. 블로그 공간은 아주 사적인 것에서부터 민감한 정치, 종교 현안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역 안팎의 네티즌들의 의사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 나빌의 블로그, 메소포타미안, 빅 파라오, 카림 사아드, 바그다드 블로그, 쿠르드의 세계 등 다양하다. 바그다드가 함락되자 이라크는 유선 인터넷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곧장 위성 인터넷 시대로 직행했다. 그들도, 중동 여타 국가의 네티즌들도 블로그를 통해 가공되지 않는 중동 민심을 보여준다.

전후 바그다드의 생생한 일상

“B-52 폭격기가 출격했다는 뉴스 보도를 듣는 순간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한다. 폭격기는 출격 뒤 6시간이면 바그다드에 도착한다. 폭격 첫날에는 도착 시간이 정확했다. 어제 우리는 깜짝 놀랐다. 6시간이 지난 뒤에도 폭격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개전 4일째, 2003년 3월23일 오후 8시30분)

“2시간 전 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려움이라는 말로는 적절하지 않다. …이라크 정부나 미국 정부는 그들이 국민들을 위해 이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멈춰야 한다.”(개전 14일째, 2003년 4월2일)

이라크 전쟁 당시 보다 더 주목을 받은 한 블로그에 실린 내용의 일부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이라크인 살람 팍스(Salam Pax·32)라는 필명의 ‘라에드는 어디에 있나?’(Where is Raed?·http://dear_raed.blogspot.com)는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중동 블로그다. ‘이라크판 안네의 일기’라는 명예로운 애칭을 얻은 그의 사이트에는 전쟁 전후 바그다드의 생생한 일상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중동의 블로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연구 결과는 없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중동 블로거의 활동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람 팍스의 예에서 보듯 중동의 블로거는 중동 토박이보다 해외파들에 의해 시작되고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동 언론에서 블로그에 주목한 것도 최근 블로그가 급증하면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대표적인 아랍 언론 <알하야>에서 블로그에 대해 보도한 것이 지난해 10월의 일이다.

후발 주자의 장점이라면 선발 주자들의 단점이나 시행착오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중동의 블로그들은 중동 밖의 네티즌들의 경험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블로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랍 자체의 블로그 서비스 전문 사이트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구글 등의 블로그 무료 개설 사이트(http://www.blogger.com/start)와 일부 아랍 포털사이트가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동 블로그의 특징은 개인적인 미니홈페이지의 기능과 온라인 미디어 기능이 잘 결합돼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적거나 일상생활 사진을 올리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서의 블로그의 자리는 기본적이다. 여기에 더해 중동의 블로그는 이미 대안언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중동의 온라인 미디어는 정보가 실리는 공간이 오프라인이나 종이에서 웹으로 바뀌었다는 정도였다. 쌍방향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온라인 공간에서 댓글 문화도 거의 자리를 잡지 못했다. <알자지라> 등이 자유언론을 주창하지만 대개의 언론들은 자유로운 보도와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에서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었지만 대안언론을 표방한 온라인 저널의 활동도 눈에 띌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기자 개념은 물론 네티즌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대안 미디어의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트랙백 기능 강화로 건전한 댓글 문화

그런 와중에 최근의 중동 블로그는 이런 한계를 단번에 넘어서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블로그는 개인 블로그 성격을 넘어 특정 주제에 대한 활발한 토론 공간으로서 쌍방향 소통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닉 버그 피살 사건의 진위 논쟁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 사망, 이라크의 새로운 총리 후보 알 자파리의 등장을 둘러싼 찬반 논쟁도 이어졌다. 해외 언론이 담지 못한 이라크 선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생활 현장 가까이에서 기성 언론이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던 소재들을 뉴스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최근 가장 뜨고 있는 이라크인 블로그 ‘IRAQ THE MODEL’(http://iraqthemodel.blogspot.com/)은 바그다드 출신의 모함메드(35·치과의사), 오마르(24·치과의사) 두 형제가 꾸미고 있다. 언론이 바그다드 함락 이후 이라크 내의 사건사고에 집중하고 있는 데 반해, 이 블로그는 이라크의 긍정적 변화들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라크의 미래가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블로그는 또 동남아시아에서 쓰나미 재난이 발생하자 발빠르게 현지 상황을 전하면서 중동 네티즌들의 신속한 지원을 이끌어냈다. 쓰나미 재앙을 ‘신의 진노’로 규정한 일부 이슬람 성직자의 쓰나미 망언에 대한 논쟁도 벌였다. 최근에는 중동의 독재 풍토에 대한 블로거들의 논쟁이 치열하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와 중동 여타 국가에 지금도 권력의 정점에 있는 다른 지도자들에 대한 찬반 논쟁이 댓글 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밖에서 이집트 내의 반정부 시위를 접하는 이들은 대다수의 이집트인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이 더는 집권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그러자 “이집트의 경우 많은 국민들이 동기나 의욕을 상실했다. 그들은 일어날 수도 있는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는 반박 주장도 이어진다.

중동 블로그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남기는 답글을 자신의 블로그 안에서 쓰면 상대방 블로그에 그 주소와 내용이 기록되는 트랙백 기능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이는 건전한 댓글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동 포털사이트의 토론방이 지나친 익명성으로 인해 혼미한 쓰레기 글들이 난무하던 것에 견주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투명한 토론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를 확산하기도

중동의 블로그는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중동 블로그들이 다른 블로그들을 링크로 연결해주는 링 블로그가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블로거들의 경쟁과 협력 공간도 만들어졌다. 최고의 중동이나 아랍 블로거를 찾는 사이트 ‘아랍 블로거’(http://arablogger.com/)나 ‘중동 아프리카 블로거’(http://2004weblogawards.com/archives/000058.php)도 있다. 이런 사이트는 블로그 확산에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동 블로그의 또 다른 특징은 아랍어 블로그와 영어 블로그는 물론 북아프리카권에서는 프랑스어 블로그도 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살람 팍스의 블로그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블로그 내용이 영어로 기록됐기 때문일 것이다. 중동의 블로그는 서방 언론이나 관제 언론을 통해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가공되지 않은 중동 아랍인들의 다양한 일상으로 초대하고 있다. <알자지라>가 서구 편향의 언론 관행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면 이제 중동 블로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블로그 공간에서 중동 블로거들은 세계인과 소통하고 있다. 머지않아 중동도 정보의 개방과 공유, 쌍방향성이 바탕이 된 제3세대 인터넷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에도 휩싸일 것이다. 뒤늦은 블로그 문화, 그러나 이미 중동은 블로그 열풍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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