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알몸, 블로그가 보여준다
가공되지 않은 중동의 민심과 함께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한 토론도 진행되는 ‘대안언론’으로
▣ 김동문/ 중동전문가 yahiya@hanmail.net
“중동 ‘블로그’를 아는가?” 요즘 중동 지역의 최대 화두는 블로그다. 아랍에도 이라크에도 블로그(blog)가 있고 블로거(blogger)들이 있다. 블로그 공간은 아주 사적인 것에서부터 민감한 정치, 종교 현안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역 안팎의 네티즌들의 의사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 나빌의 블로그, 메소포타미안, 빅 파라오, 카림 사아드, 바그다드 블로그, 쿠르드의 세계 등 다양하다. 바그다드가 함락되자 이라크는 유선 인터넷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곧장 위성 인터넷 시대로 직행했다. 그들도, 중동 여타 국가의 네티즌들도 블로그를 통해 가공되지 않는 중동 민심을 보여준다.
전후 바그다드의 생생한 일상
“B-52 폭격기가 출격했다는 뉴스 보도를 듣는 순간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한다. 폭격기는 출격 뒤 6시간이면 바그다드에 도착한다. 폭격 첫날에는 도착 시간이 정확했다. 어제 우리는 깜짝 놀랐다. 6시간이 지난 뒤에도 폭격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개전 4일째, 2003년 3월23일 오후 8시30분)
“2시간 전 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려움이라는 말로는 적절하지 않다. …이라크 정부나 미국 정부는 그들이 국민들을 위해 이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를 멈춰야 한다.”(개전 14일째, 2003년 4월2일)
이라크 전쟁 당시 보다 더 주목을 받은 한 블로그에 실린 내용의 일부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이라크인 살람 팍스(Salam Pax·32)라는 필명의 ‘라에드는 어디에 있나?’(Where is Raed?·http://dear_raed.blogspot.com)는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중동 블로그다. ‘이라크판 안네의 일기’라는 명예로운 애칭을 얻은 그의 사이트에는 전쟁 전후 바그다드의 생생한 일상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중동의 블로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연구 결과는 없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중동 블로거의 활동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람 팍스의 예에서 보듯 중동의 블로거는 중동 토박이보다 해외파들에 의해 시작되고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동 언론에서 블로그에 주목한 것도 최근 블로그가 급증하면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대표적인 아랍 언론 <알하야>에서 블로그에 대해 보도한 것이 지난해 10월의 일이다.
후발 주자의 장점이라면 선발 주자들의 단점이나 시행착오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중동의 블로그들은 중동 밖의 네티즌들의 경험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블로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랍 자체의 블로그 서비스 전문 사이트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구글 등의 블로그 무료 개설 사이트(http://www.blogger.com/start)와 일부 아랍 포털사이트가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동 블로그의 특징은 개인적인 미니홈페이지의 기능과 온라인 미디어 기능이 잘 결합돼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적거나 일상생활 사진을 올리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서의 블로그의 자리는 기본적이다. 여기에 더해 중동의 블로그는 이미 대안언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중동의 온라인 미디어는 정보가 실리는 공간이 오프라인이나 종이에서 웹으로 바뀌었다는 정도였다. 쌍방향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온라인 공간에서 댓글 문화도 거의 자리를 잡지 못했다. <알자지라> 등이 자유언론을 주창하지만 대개의 언론들은 자유로운 보도와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에서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었지만 대안언론을 표방한 온라인 저널의 활동도 눈에 띌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기자 개념은 물론 네티즌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대안 미디어의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트랙백 기능 강화로 건전한 댓글 문화
그런 와중에 최근의 중동 블로그는 이런 한계를 단번에 넘어서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블로그는 개인 블로그 성격을 넘어 특정 주제에 대한 활발한 토론 공간으로서 쌍방향 소통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닉 버그 피살 사건의 진위 논쟁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 사망, 이라크의 새로운 총리 후보 알 자파리의 등장을 둘러싼 찬반 논쟁도 이어졌다. 해외 언론이 담지 못한 이라크 선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생활 현장 가까이에서 기성 언론이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던 소재들을 뉴스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최근 가장 뜨고 있는 이라크인 블로그 ‘IRAQ THE MODEL’(http://iraqthemodel.blogspot.com/)은 바그다드 출신의 모함메드(35·치과의사), 오마르(24·치과의사) 두 형제가 꾸미고 있다. 언론이 바그다드 함락 이후 이라크 내의 사건사고에 집중하고 있는 데 반해, 이 블로그는 이라크의 긍정적 변화들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라크의 미래가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블로그는 또 동남아시아에서 쓰나미 재난이 발생하자 발빠르게 현지 상황을 전하면서 중동 네티즌들의 신속한 지원을 이끌어냈다. 쓰나미 재앙을 ‘신의 진노’로 규정한 일부 이슬람 성직자의 쓰나미 망언에 대한 논쟁도 벌였다. 최근에는 중동의 독재 풍토에 대한 블로거들의 논쟁이 치열하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와 중동 여타 국가에 지금도 권력의 정점에 있는 다른 지도자들에 대한 찬반 논쟁이 댓글 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밖에서 이집트 내의 반정부 시위를 접하는 이들은 대다수의 이집트인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이 더는 집권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그러자 “이집트의 경우 많은 국민들이 동기나 의욕을 상실했다. 그들은 일어날 수도 있는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는 반박 주장도 이어진다.
중동 블로그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남기는 답글을 자신의 블로그 안에서 쓰면 상대방 블로그에 그 주소와 내용이 기록되는 트랙백 기능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이는 건전한 댓글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동 포털사이트의 토론방이 지나친 익명성으로 인해 혼미한 쓰레기 글들이 난무하던 것에 견주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투명한 토론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를 확산하기도
중동의 블로그는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중동 블로그들이 다른 블로그들을 링크로 연결해주는 링 블로그가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 블로거들의 경쟁과 협력 공간도 만들어졌다. 최고의 중동이나 아랍 블로거를 찾는 사이트 ‘아랍 블로거’(http://arablogger.com/)나 ‘중동 아프리카 블로거’(http://2004weblogawards.com/archives/000058.php)도 있다. 이런 사이트는 블로그 확산에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동 블로그의 또 다른 특징은 아랍어 블로그와 영어 블로그는 물론 북아프리카권에서는 프랑스어 블로그도 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살람 팍스의 블로그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블로그 내용이 영어로 기록됐기 때문일 것이다. 중동의 블로그는 서방 언론이나 관제 언론을 통해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가공되지 않은 중동 아랍인들의 다양한 일상으로 초대하고 있다. <알자지라>가 서구 편향의 언론 관행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면 이제 중동 블로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블로그 공간에서 중동 블로거들은 세계인과 소통하고 있다. 머지않아 중동도 정보의 개방과 공유, 쌍방향성이 바탕이 된 제3세대 인터넷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에도 휩싸일 것이다. 뒤늦은 블로그 문화, 그러나 이미 중동은 블로그 열풍에 휩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