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귀한 손님께서 직접 집을 방문해 주었다. 그녀는 예전 함께 봤던 영화전단지 2개를 챙겨서 들고 와주었다. 올해 본 영화들은 빠짐없이 영화평을 쓰고 싶다는 나의 말을 기억했었던 모양이었다.
그 중 하나가 짐캐리가 나오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었다. 얼떨결에 고른 영화였으나(원래는 '말아톤'을 보려고 했는데 '조승우'가 직접 나와서 팬 싸인회 및 관객인사를 하는 조조영화를 보겠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급선회하여 보게 된 영화였거든.)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반지의 제왕','해리포터'등 환타지 물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이들 책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영화로 보면서 무척 만족했던 것이 기억난다.환타지 물의 상상력은 항상 나를 자극시키는 뭔가가 있다. 마술..특이함..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사이에 숨겨진 키워드..또는 일상적인 것들이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되는 생각의 전환등등,그리고, 환타지 물 속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대립구조는 극적인 긴장감을 더해주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며 집중하게 만든다. 거기다 시각적인 볼거리는 얼마나 풍부한가? 이 영화 속에서도 그런 요소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으며, 아동영화 속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람과의 대립, 그 대립을 극복하며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그 후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는 잠자리 동화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첫 시작부터 착한 요정들이 노래하는 영화가 잠시 소개되더니 이 영화의 작가(주드 로 분)가 타자기 앞에 나와 글을 치면서 나레이션을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옆 상영관으로 옮겨서 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착한 이야기가 아니라 갑작스런 의문의 화재로 부모를 잃은 삼남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던 작가의 모습을 나는 여기서 보게 되었다. 얼굴은 어두운 작업실내의 그림자 때문에 절대로 보이지 않으나 끊임없이 타자기를 쳐대고 있는 옆모습의 씰루엣과 조명을 받아서 오로지 그의 손만 하이라이트를 받고 있는 풍경.. 종이위에 자신이 많들어 놓은 주인공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은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을 평탄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들에게 그 길을 넘어갈 수 있는 하나하나의 능력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런 능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씨실과 날실이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옷감처럼 주인공들의 대화와 그들이 능력이 함께 얽히고 설켰을 때만 그들 앞에 놓여있는 문제를 풀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오~ 작가 당신,,너무 자비심이 없다고!!' 라고 책을 읽다 말고 외치고 싶어도 책 속의 재미를 반감시키면 안되기 때문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마는 어린시절의 나의 손...그런것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났다.
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다. (항상 옆길로 새는 것이 주특기인지라..흠흠..) 갑작스럽게 집이 전소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바이올렛(15살,천재적인 발명가, 창의력의 대가, 머리속으로 꿍시렁거려서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첫째딸), 클라우스(14살,천재적인 암기력의 대가, 아버지의 거대한 책장의 책을 모두 암기하고 있으며 머리 속의 책장 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 내어서 그 내용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둘째아들.)써니(1살을 조금 넘김, 아기말의 통역이 절대 필요함. 모든 것을 깨물어 버리는 튼튼한 이를 가진 세째딸.)는 부모를 잃게 된다. 이 아이들을 맡아줄 후견인으로 겁나먼 친척 울라프 백작(짐 캐리분. 연극배우이면서 변장의 천재. 그러나, 그가 노리는 것은 단하나..아이들의 유산뿐!)이 지명되고 울라프 백작은 아이들을 처치하고 아이들의 유산을 가로채려고 한다. 그의 의도를 간파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에게서 벗어나고 다른 친척 몽티 삼촌(파충류 학자, 그 또한 의문의 화재사고로 아이들과 아내를 잃은 적이 있었다.), 조세핀 숙모(문법을 사랑하는 신경과민한 미망인, 거머리에게 남편이 당하고 말았다..-_- 신경과민할 수 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벼랑끝 집에 살고 있다.)에게 자신들의 후견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들의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어야 할 것 같은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더 단순하게 울라프 백작에게 속아넘어가 죽임을 당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아이들과 울라프 백작의 대결은 더욱 치열한 구도로 가게 된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영화가 끝나고 스탭롤이 흐르는 와중에도 앤딩롤 배경에는 세 아이들(바이올렛, 클라우스, 써니)의 그림자 인형과 그 뒤를 쫓는 울라프 백작(짐캐리 분)의 그림자 인형들이 끊임없이 추적씬을 펼치고 있는 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울라프 백작이 탈출했다는 나레이션에 맞추기 위해 한 것이겠지만, 아이들이 커나가는 과정 속에 '울라프 백작'과 같은 시련이 끈임없이 그들을 괴롭힐 것이란 것을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아이들의 시련을 대표하는 '울라프 백작'과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 사이의 끈임없는 대결을 만들어내면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들이 커가면 '울라프 백작'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와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