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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 - 대중사회론
- 바람구두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M. 아널드
대중사회의 출현
1900년에 이르러 18세기 계몽사상에 의한 과학 ․ 이성 ․ 진보의 힘은 유럽의 체제를 크게 바꿔놓았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발명(증기기관, 내연기관, 무선통신, 사진, 영화 등), 철도와 기선의 출현(미 대륙 횡단철도, 유라시아 횡단 철도, 대양 운송)으로 인해 낡은 농업사회의 자급자족제도를 파괴하고, 도시로 유입된 다수의 노동자 계층을 생성시켰다. 농민에게는 전통적 생산수단을 현대화하도록 강요(문화적 재생산의 차단)했고, 인구의 이동성을 높여 도시의 거대화를 초래한다. 자유주의, 자유자본주의 모델은 그 물질적 장점으로 인해 정치적인 틀을 크게 변모시킨다. 언론, 상거래, 과학적 탐구의 자유, 노동의 유동성과 확대된 선거권에 기반한 민주적 자치(自治)에 대해 각성한(영국의 경우 1867년 도시소시민, 노동자, 1884년 광산노동자, 농민, 1918년 남성 보통선거, 1928년 보통선거 확립) 시대이다. 이 시기에 지구상의 인구는 1900년 당시 16억 3천만 명에서 2000년 무렵 60억으로 폭발적인 증가세(1820년대 영국 리즈, 버밍엄, 브래드퍼드는 각각 47%, 40%, 65%의 인구 증가)를 보였다. 산업화와 도시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대중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 교육받은 중산층과 소수 기술노동자 계층의 출현으로 새로운 형태의 매스 미디어들(신문 - 1700년대부터 인쇄되어 구독되었던 소책자나 정보지로 출발, 18세기에 이르러 일간지가 일반화됨, 1840년대 대중잡지, 1920년대 라디오, 1940년대 TV)의 출현을 가속화시켰다.(1843년 영국 카툰 잡지 <펀치 Punch>, 사진의 출현, 포르노그라피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대중사회론자들의 몇몇 특성에 따른 범주들
산업화와 도시화(대중사회의 중요한 특징들)에 의해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해왔던 지적 엘리트들의 문화에 대한 지도력이 상실되어간다는 문제를 지적한 대중사회론은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 논의에서 가장 오랫동안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대중사회론은 산업화된 사회가 종래의 도덕적 규범, 전통적인 가치 상실, 사회를 통합하는 사회적 규범의 위협의 원인을 대중문화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대중사회론은 대체로 위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각각의 특성에 따른 몇 가지 범주를 보인다.
(1) 문화이론가(매튜 아널드, T.S.엘리엇, F. 니체, 오르테가 이 가세트), 정치이론가(J.S.밀, A.토크빌), 대중심리학(르 봉, W. 라이히, 한나 아렌트), 사회학자(V. 파레토, K. 만하임, D.리스먼) 등 여러 방면의 이론가들이 대중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은 대중사회의 출현이 역사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사건임을 반증한다.
(2) 사회학적 관점의 대중사회론은 반자본주의적 낭만주의에 기반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F.퇴니스는 “공동사회-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전통, 관습, 종교에 의해 지배되며, 정서적 일체감을 이룬 사회)”가 산업화 ․ 도시화로 인해 합리적·계약적 성질의,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이 항상 분리되어 있는“이익사회-게젤샤프트(Gesellschaft)”로 변화해간다고 주장했다. F.퇴니스, E. 뒤르켐 등은 산업사회의 도시화(대중사회)된 대중문화, 대중매체가 개인을 원자화하고, 소외(고립 ․ 분산)시킨다고 생각해 대중사회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3) 엘리트와 대중의 사회 불평등을 정치, 경제, 문화적인 과정을 통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는 대신, 사회 성원들의 선천적인 능력의 차이로 바라본다. 즉,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는 생득적이며, 필연적인 것이며, 엘리트는 지배자로, 대중은 피지배자로 표현한다.(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사회진화론-허버트 스펜서가 진화론을 사회과학적으로 받아들인 이론)
(4) 대중사회론의 시각은 이념적으로 분화되는데, 우파(보수주의자, 엘리트)는 대중의 타락과 일탈을 기존 사회에 대한 도전(혹은 반역)으로 보는 반면, 좌파(마르크스주의 대중사회론자)들은 대중문화에 포섭된 대중이 계급적 본성을 상실하여 혁명의 기회가 상실된다고 보았다.
대중사회론의 네 가지 전통
1. 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대중문화론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전제주의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민사회의 출현을 통해 자유주의의 이상을 실현했다. 자유주의는 독재와 절대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신, 자유롭게 선출된 정부와 의회에 의한 법치주의 실현, 연설, 출판, 집회의 자유 비롯한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인정을 그 가치관으로 했다. 자유주의는 대중을 시민(공중)의 연장된 개념으로 받아들였으나 점차 대립하는 별개의 개념으로 인식한다(C.W.밀즈). 자유주의 사상가 J.S.밀과 A.토크빌은 대중사회가 확대된 민주주의(보통선거)에 의해 수적으로 증가한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한)대중을 오도하여 선출된 소수 개인의 의지에 따라 민주주의가 변질되는 것을 새로운 전제주의적 횡포로 생각했다.
교육에 의해 계몽된 시민 개념을 상정하고 있던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산업화된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대중교육은 하향평준화를, 대중매체는 개인의 사회적 ․ 문화적 ․ 도덕적 획일화를 가져와 개인은 축소된 대중이 될 것으로 염려한다. 대중문화가 힘을 얻는 민주주의 시대에는 세련되지 못한 이들에 의해 문화가 주도되고, 향수하며, 예술 창조자들은 상업 행위에 나서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개인(대중)으로 구성된 사회가 다수의 폭정이나 전체주의 정부에 대한 복종을 야기할 것이라는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2. 대중/엘리트론
대중/엘리트론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대중들(정치적, 문화적인 무자격자인)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표시하는 사회론, 문화론을 의미한다. 대중/엘리트론을 주장하는 이론가들 대부분은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지녔으며, 사회진화론, 반(비)합리적인 사유의 연장에서 인간은 생득적으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며, 강자는 스스로의 의지를, 약자는 다른 사람의 의지의 대상일 뿐이라고 보았다. 오르테가는 예술의 특성은 비통속성에 있으며, 그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 ․ 숙명적으로 그러하다고 보았다. 니체와 오르테가는 대중이라는 무자격자의 정치적인 지배를 맹렬히 반대했고, 니체는 사람들은 지고(至高)의 가치나 목표를 잃어 왜소화(矮小化)되고 노예화하여 대중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엘리트에 의한 지배의 종언과 대중에 의한 통치였으며, 대중을 ‘masses’가 아닌 군중, 어중이떠중이 ‘rabble’로 보았다(린 스피겔은 ‘mass’라는 말도 20세기의 폭도/군중(mob)이라는 말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해석). J.S.밀은 사회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대중에 의한 지배를 고칠 수 있다고 본 반면, 니체와 오르테가 등 엘리트론자들은 계몽주의 사상을 이성의 발달, 진보로 보지 않았다. 이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대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완전한 이성의 실현이었다. 오르테가는 『대중의 반역』에서 사회는 소수 엘리트 집단과 다수의 대중, 두 집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역사 이래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를 지배해왔다고 주장한다. 오르테가는(볼셰비즘의 발호에 위협을 느끼고, O.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에서 영향을 받아) 대중이 피지배계급으로 원래의 사회적 위치를 벗어나 자유를 증대시키고, 문명 발전의 열매(문화, 예술)를 모두 다 누리려 한다는데 불만을 토로했다. 지고(至高)의 선과 미를 깨우치지 못한 대중의 예술적 취향을 사회에 퍼뜨리려는 것(대중문화)은 문화적으로 자격이 없는 대중들이 만들어 낸 비지성적이고 충동적이며 문화적으로 가치가 없는 낮은 수준의 문화가 사회 전체를 주도하는 ‘대중의 반역’으로 보았다.
3. 문화와 문명론(혹은 아널디즘 Arnoldism)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류의 절대 다수는 농촌에 살면서 식량을 생산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들 대부분은 몇 백 년 동안 삶의 형태에 거의 변화가 없는 삶을 살았으나 산업화와 도시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도시에서의 익명성과 전문화된 활동은 농촌 사회(게마인샤프트)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윤리적 규범이나 규제를 뿌리째 흔들면서도 그것을 대신할 분명한 규율을 제공하지 못하는(문화의 공유영역이 사라지고 피지배계급만의 문화라는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는) 경향을 보였다.
1) 매튜 아널드
아널드는 문화를 ‘지식체계이면서 이성과 신의 의지가 힘쓰게 만드는 것’ 이라고 규정하였다. 즉, 문화란 최선의 것을 찾는 것이고, 그러한 노력으로 배출된 최고의 것이며, 그것이 다시 생활에 적용되어 사회적으로 나쁜 것을 척결하는 것이다. 아널드는 이를 위해서 교육하고, 창조적인 행위들이 보호받아야 하며 지식인들이 적절한 비평을 가해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M.아널드의 문화론은 고전적 인문주의 전통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교양(敎養, Bildung)의 의미를 담고 있다.(빅토리아 시대인 1880년대 이후 영국 노동 계급의 생활수준은 많이 향상되었으나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이들은 여전히 빈곤층이었다. M.아널드는 “문화와 무질서”에서 런던의 이스트엔드가 ‘저들 수많은, 비참하고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영락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며 노동계급에 대해 적대적으로 묘사한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자선사업조차 몰락한 문벌 출신인 사람들, 소위 ‘도움 받을 자격이 있는 빈민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행위로 한정되었다.)
아널드는 대중문화(노동계급의 문화)가 사회 질서를 위협하고, 최선의 것을 찾으려는 종래의 문화적 노력에도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산업화, 도시화된 사회에서의 대중이 인문주의적 교양(문화)를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물질적인 기계문명에 의존하여 금전적이고 개인적인 성공에만 치중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널드는 사회를 귀족, 중간, 평민층으로 구분하였는데, 중간층과 귀족층에선 인간 본성이 비교적 잘 유지된 반면 평민층(노동자 계급)은 이를 잃어버렸거나 보살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 대중문화를 즐기는 노동계급이 진정한 의미의 문화를 익히게 되면 정치적인 선동도 줄어들고 예전의 복종의 미덕을 되찾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국가가 앞장서 대중(노동계급)에 대한 문명화 작업에 나설 것을 주장한다. M.아널드의 문화론은 지배질서 속에서 소외된 노동계급의 저항(아래로부터의 질서에 대한 도전, 예를 들어 1838-1938년 차티스트 운동)을 사회적 위협(무질서)으로 간주한 당시 중간 계층 지식인(동시에 제국주의 시대 유럽 지식인의 유럽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2) 공유학파 : 리비스와 엘리엇
리비스와 그 주변 학자들은 1930년대를 문화적으로 하향화 ․ 평준화되고, 규격화(대량생산, 표준화)되는 위기의 시대로 파악하고, 아널드의 인식을 1930년대 문화현상에 적용시켜 보려는 시도를 한다. 이들이 보기에 산업화가 초래한 것은 공유하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의식 없는 군중의 출현이었다. 대중문화는 사회적 질서에 이바지하는 한 용인될 수 있으나 현 상태로는 사회적 무질서를 야기하므로 교육 혹은 교양에 의해 적절히 가꾸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산업화 이전의 문화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대중사회로 접어들면서 서로 다른 집단의 문화가 경쟁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엘리엇은 문화의 다양성에는 자연히 여러 층위가 있으나 다양한 문화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내용(질서)을 지닌 문화(엘리트적 문화)가 존재한다고 상정했다. 엘리엇은 인간적인 가치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문학 교육이 도덕적 회복의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비스는 문화란 항상 소수에 의해 지켜져 왔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 소수는 귀족층이나 특정계급에 의한 것이 아닌 선의의 문화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문제는 산업화로 인한 대중민주주의가 그런 소수의 문화적 지위와 권위를 점차 붕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문명(civilization, 시민)과 문화(culture, 대중)가 충돌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리비스나 엘리엇은 산업혁명 이전의 영국 사회에는 국민문화(공유문화)라 부를 만한 공유된 도덕률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하나는 소수의 문화,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로 분리되었고, 과거 아널드가 정의했던 진정한 문화의 모습은 소수의 문화 속에 살아 있다고 보았다.
그에 비해 대중문화는 대량생산, 표준화에 의해 하향 평준화되었고, 대중의 감수성은 약화되어 상업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진 대중문화에 중독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리비스는 1930년대 발흥하는 대중 매체들(소설, 영화, 라디오, 광고, 신문, 등. 리비스는 특히 광고의 언어 오용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의 생산물들은 대중을 환상에 빠져들게 할 뿐인 자위행위로 보았다. 공유학파 학자들은 영국의 문화적 황금시기로 셰익스피어 시대를 순수한 민족문화로 파악하고, 이 시기의 문화는 누구에게나 호소력을 지니는 진정한 공유문화라고 생각했다. 문화적 황금시기의 유기적 공동체, 노동 안에서 즐거움을 찾던 시절이 사라지고, 노동과 생활, 노동외 시간이 분리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공유문화 역시 소멸되었다고 보았다. (1920-30년대 영국의 노동계급에게는 번영의 시대였다. 전기와 기계 부문에서 증가하는 소비재 수요의 혜택을 받아 전축, 라디오, 전기다리미, 진공청소기 등과 같은 신제품들이 소비 무드를 촉진시키고, 1년에 한 번 정도 해변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907년 세계최초의 영화관 랭커셔 콜른에서 개장, 1932년 영국왕 조지5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는 최초로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BBC를 통한 방송의 힘은 대중에게 오락과 교육을 주었으나, 농촌 지역은 침체되었다. 이후 대공황)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민족문화 역시 위로부터 아래로 주어져 공유하는 문화였고, 대중은 위(뛰어난 이들)로부터 베풀어지는 문화의 혜택을 누리는 존재들로 규정되어, 문화적 위계질서가 강조되었다.
공유학파는 사람들이 대중문화에 탐닉한 결과, 소수 문화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될 것을 염려하긴 했으나 문화를 통한 사회의 통합이 교육 프로그램의 마련으로 가능하며, 문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엘리트를 키워내 문화의 성취가 가능하다고 보았다.(ex. 국풍 81 - 한국신문협회가 주최하고 KBS와 MBC 양 방송사가 행사준비와 운영을 맡아,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한 문화행사 - 개막행사, 민속제, 전통예술제, 젊은이 가요제, 연극제, 학술제 등의 행사를 진행함)
4. 대중사회와 전체주의
대중참여를 통해 다수가 소수를 압박했다고 보았던 대중사회론과 달리 전체주의론은 소수 엘리트들에 의한 대중조작과 대중동원의 증대를 염려한다. 이 관점은 대중을 야만성을 띠거나 후진성을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무정형의 고립된 존재로 파악한다. 원자화된 사회에서 고독한 군중으로 고립된 개인은 단지 국가라는 공동 권력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사회 속의 관계를 파악한다. 계급도 사라지고, 가족이나 지연을 바탕으로 한 1차적인 집단마저 사라진 20세기의 대중은 개개인의 개성이나 주장은 중요하지 않고, 전체주의적 당이나 정치 세력에 쉽게 동조해버린다. 이들은 소수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상징적 조작(허구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상상의 공동체”)에 과잉 충성하게 된다.
사회적 고리의 부재, 소외감, 불안감, 그로 인한 엘리트에 대한 과잉 충성은 전체주의의 토양이 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조작된 권위에 복종하여 가상의 약자들을 공격함으로써 불안에서 도피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받는다. 엘리트들의 선전수단으로 동원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는 상징적 조작의 수단이며 허구적인 세계의 생산자에 해당한다. 소외감을 거짓으로 충족시켜주며 궁극적으로는 전체주의 사회로 이르게 하는 주요 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ex. 미국: F. 루스벨트-노변담화(爐邊談話), 독일 : 라디오 보급을 위해 1934-35년엔 국가 보조금을 사용하여 노동자들의 일주일분 평균 급료인 35마르크만 있으면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싼 라디오였고,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괴벨스의 입'이라 불렀다.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들, “의지의 승리, 미의 제전” 등)
5. 미국의 대중문화찬반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지식인들은 대중, 대중문화의 의미에 대해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리며 대중문화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공통적으로 미국이라는 사회가 합의의 사회이며, 안과 밖으로부터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하나된 사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논의에서 대중문화의 위협은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농촌 ․ 공동체문화가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는 것, 외부의 위협인 공산주의의 위협에 비견되는 내부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중문화의 위협은 1) 고급문화를 포기하고 2.3류급 문화를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현상 - 미학적 자유주의론, 대중문화 반대론 2) 대중문화가 급변하는 산업사회에 사람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순기능론 3) 대중문화가 사회적 통치를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도구론적 견해의 세 가지 측면을 지녔다. 1950년대 매카시즘 이후 3)의 급진적 논의는 점차 사라지고, 1)과 2)의 견해가 주종을 이루었다.
대중문화 반대론은 대중사회의 문화 현상을 ‘그래샴의 법칙’에 따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으로 보았다. 획일적인 내용과 표준화된 생산 배경을 지닌 대중문화가 고급문화가 들어설 자리를 위축시킨다는 예측이다. 대중문화 찬성론은 대중문화란 고급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는 기제로 보았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공연하고, 라디오가 고급 음악을 제공하는 등, 대중매체는 문화적 민주화를 성취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긍정론자인 E. 쉴스는 미국 문화는 정제되고 뛰어난 문화, 중간쯤의 문화, 투박한 문화의 세 계층을 이룬다고 보았는데, 중간, 투박한 문화의 중요성은 점차 증대하는 반면, 정제된 문화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문화적 분화 현상(대중문화의 빈곤 해소, 문화적 융통성)을 가져와 대중으로 하여금 미적인 것에 눈뜨게 하고, 사회적 활력을 북돋울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에서의 대중문화찬반론은 이론적인 논의이기 보다는 학자들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따라 미국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 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의 토론(대결)이었다. 사회 구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보다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지녔으며, 동등한 복지 혜택을 누린다는 점을 강조하여,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계급적 갈등, 엘리트/대중간의 갈등보다는 문화적 용광로로서의 미국 문화를 전제하고, 그 안에서 대중문화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살펴본 기술적 논의에 가까웠다.
원용진은 3장 “대중사회론”의 결어에 해당하는 글에서 우리 사회 구성체에 대한 천착 없이 미국식 기능주의적 인식론 틀로 수입된 대중사회론은 대중문화의 기능을 순기능과 역기능과 같이 간단한 기능적 측면으로만 바라본 실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문화란 다른 사회적 제도와의 관계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부분이고, 그것이 경제 제도의 반영이든, 독립적인 것이든 개념이 과학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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