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미국의 정치문명, 소망의 거울
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립 지음 / 삼인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문명(civilization)은 시민을 뜻하는 라틴어 '키비스(civis)' 와 도시를 뜻하는 '키빌리타스(civilitas)' 에서  유래한 말이다. 문화비평가 김창남은 "문화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개념으로 인간의 사고와 표현의 뛰어난 정수로 본다면, 여기에는 예술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한 정신적 완성의 추구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종종 문화(culture)와 문명은 서로 대치되는 개념으로 파악되거나 문화의 특수한 한 형태로 파악되어 서로 연결되거나 혼용되어 사용되는 등 실제 사용에 있어 매우 다양한 뜻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문화가 정신적인 발전 상태(가치)를 의미하는 말이라면, 문명은 물질의 발전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인류학의 영향으로 문화 가운데 도시적인 요소, 고도의 기술, 작업의 분화, 사회 계층 분화를 갖는 복합문화(문화의 복합체)를 큰 단위로 파악한 총체를 문명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권용립 선생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어서 마침 가지고 있던 이 책 "미국의 정치문명"에 저자의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 사회와 미국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보니, 나의 서재에는 미국 관련 서적들이 책꽂이 두어 칸을 빼곡이 채울 정도가 되었다. 하워드 진, 리처드 O. 보이어, 노암 촘스키, 이냐시오 라모네, 리오 휴버만, 마이크 데이비스 같은 외국 학자들과 국내 학자들의 책들이 그것이다. 책 많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그 같은 책들과 권용립의 이 책은 상당히 다른 책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책들이 미국의 역사, 경제, 사회, 외교 정책 등등에 대한 책이라면 권용립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미국의 정치 문명에 대해 규명하고, 분석하려 한 책이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권용립은 미국과 우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이 미국과 수교한 것은 1882년이지만 미국이 한반도의 정치적 운명과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이후부터다. ...<중략>... 해방 이후의 한국에 엘리트를 공급하고 재생산하는 본거지였으며, 한국의 지배계층은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살아본 사람들이었고 미국과 어떤 종류든 내연의 커넥션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미국은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타인의 나라'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피안'이었고 '세계'로 나가는 거의 유일한 출구였다. <본문 29쪽>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사회 내연의 커넥션에 "이산 가족"이 존재했다면,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인 1970년대 우리 사회 내연의 커넥션 안에는 "이민 가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민족 공동체인 북한보다 심정적으로 미국이 더 가깝게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닌 내연의 깊은 속사정이 있다.

서유럽과 다른 정치 문명 - 미국

권용립은 책 머리에서 서구적 비전으로 바라볼 때, 대개의 학자들 슈펭글러, 소로킨, 토인비 등의 문명론에서 서유럽과 미국을 동일한 문명권으로 상정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최근 우리에게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새무얼 헌팅턴의 '문명충돌' 역시 미국을 별도의 문명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선 토인비 등과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권용립은 미국과 서유럽의 정치 문명은 분명한 차이를 가진 별도의 문명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이 서유럽의 정치 문명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농축된 기억의 유무이다.

역사시대의 긴 세월을 수많은 굴절과 변화 속에서 보낸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국가를 설계한지 불과 150여년 만에 세계 최강의 공화국 아메리카 제국을 건설해냈다. 서유럽 국가들이 상상의 공동체든, 아니든 간에 실제 피를 나눈 역사적 민족과 그 집단적 기억이 교직되면서 형성된 민족국가인데 반해 미국은 먼저 국가와 이념을 설계해놓고 그런 뒤에 받아들인 여러 인종의 이민을 통해 건설된(기억을 제조해낸)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국가 설계 과정을 담당한 담론이 미국의 건국 신화가 되고, 이것이 미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을 제공해준다. 즉, 이것이 미국의 이데올로기이고,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현재의 미국 속에서 정치적 응집력을 제공해주는 담론이 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현재의 미국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므로, 이데올로기를 제거할 때 미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류의 보편적 정치 체제를 가진 나라

저자는 미국의 역사와 역사학의 계보를 엮어내면서 19세기 미국 애국주의 역사학의 대부 뱅크로프트의 주장을 보여준다. 뱅크로프트는 미국을 전 세계 문명을 융합한 결정판으로 미화하며 미국의 건국 과정을 "이탈리아의 콜럼버스와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가 합작한 신대륙 탐험과 발견, 프랑스가 지원한 독립전쟁, 인도에 기원을 둔 영어, 팔레스타인에 그 뿌리를 둔 기독교, 그리스 문명에서 기원한 문화, 로마에서 기원한 법, 영국으로부터 전수받은 대의 제도, 네덜란드 연방으로부터 받아들인 연방제 원리와 사상적 관용의 정신"을 하나로 녹여 인류의 보편적 정치 체제를 가진 나라로 묘사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 가 의미하는 상상이 만약 담론에 의해 구축된 고도의 상징 체계를 의미한다면, 정치적 담론과 정치적 자의식의 산물이란 점에서 미국 국민(American Nation)은 이 정의에 가장 정확하게 부합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전세계의 인권과 자유를 노래한 측면에는 이런 미국인들의 자의식이 녹아들어 있다. 즉, 미국의 국가 정체는 인류의 정의를 담보한 가장 보편적인 정치 체제이기 때문에 타자(민족, 국가)들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식 문명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신념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현대 외교사를 살펴보면 비합리적일 정도로 도덕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모두 '도덕주의적 외피'를 뒤집어 쓰고 나타난다. 실제로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힘의 정치(power politics)'를 추구하는 현실주의 외교를 수행하면서도 끊임없이 교의(doctrine, 이 말은 정치학의 주의, 공식 외교 정책을 뜻하지만 그보다 먼저 종교의 교의(敎義), 교리를 의미한다)를 선포하면서 미국의 외교를 정당화하려 한다. 물론 역사 이래 모든 강대국들이 자국의 힘을 합리화하기 위해 애써왔고, 이런 선민 의식은 다른 나라와 민족을 계도할 소명을 타고났다는 확신 속에 극단적 개입주의의 함정에 빠져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구대륙의 타락으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도덕적 국가로 태어난 미국이야말로 국제 정체 세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도덕을 솔선수범한다고 믿었다. 즉, 다른 국가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자격과 능력을 지녔다고 확신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이런 자의식은 제국주의 혹은 사회진화론적이다. 거기에 캘빈주의적 소명의식이 곁들여지면서 미국의 강자중심주의는 다시 도덕주의적 절대주의가 된다. 즉, 미국의 외교적 행위(전쟁을 포함한)는 도덕적인 것이며, 신의 섭리에 부합하는 행위이지만, 미국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국제 정치 행위는 반도덕적인 것이며,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자유주의는 스스로를 "구세주의 나라(Redeemer Nation), 해방자로서의 힘, 세계의 십자군"으로 표현된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독립전쟁 직전의 잠시를 제외하곤 봉건성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미국은 태생부터 자유롭게 태어났기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봉건 잔재와 투쟁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미국은 스스로가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 - 봉건성과 싸워야 하는 나라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바깥 세계의 소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분리된 지리적 혜택 등으로 인해 마치 배부른 부자가 가난한 이들의 배고픔을 절실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미국이 자신들의 체제를 얼마만큼 모방하는지 그것을 척도로 해서 다른 나라들을 평가하는 경향으로도 알 수 있다.

결어 - 우리 대미 인식의 이중성을 버려라!

권용립은 정치 문명으로서 미국의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은 결국 하나의 지적 구조물(intellectual construction) 즉, 가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이 미국 국민 개개인의 개별 정신 영역에 일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대다수 미국인들이 믿는 그 무엇, 미국 국민이나 아메리카 합중국의 자의식에 편승한다고 본다. 그러나 먼저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건국된(설계된 국가)의 정신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설계의 이념을 밝혀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석의 얼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미국의 독자적 정치문명을 이해하고 그 집단 정신의 내면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그래야만 브레진스키나 헌팅턴(혹은 조지 W. 부시, 라이스와 같은 네오콘)이 보여주는 너무나 미국적인 사고, 즉 한국을 미국의 파트너가 아닌 외교적 액세서리로 보는 브레진스키의 태도나 미국의 어떤 정책도 한국의 자유를 무조건 신장시킬 것이라는 헌팅턴의 아전인수격 메시지에 충격을 받거나 분노하는 새삼스러운 일도 없어질 것이라 말한다.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대하다가는 다시 배신감을 토로하는 우리 대미 인식의 이중성이 사라져야만, 우리는 미국에 대해 정신적으로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환멸조차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거울, 기대에 따른 미국의 모습이지 실재하는 미국의 모습이 아니란 것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는 "소망의 거울"이 등장한다. 주인공 해리 포터는 마법의 학교에서 소망의 거울을 발견하고 그 앞에 선다. 해리가 찾아낸 거울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신이 소망하는 행복한 기억들만을 보여주는 거울에 빠져 인생을 허비해버린다. 해리가 거울 앞에서 선지 삼일 째 되는 날 덤블도어 교수가 나타나 말한다. "너도, 앞서 다녀갔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소망의 거울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한 게로구나. 꿈에 집착해서 현실의 삶을 잊어버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소망의 거울을 보통 거울처럼 이용할 수 있단다. 즉 그것을 들여다 보면 정확히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소망 바로 그것을 보여준단다." 지금 우리들에게 비춰지는 미국의 모습, 혹은 그 거울에 비춰보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혹시 그와 같은 것은 아닐런지....

* 권용립 교수의 "미국의 정치문명"과 이삼성 교수의 "세계와 미국"은 지금껏 내가 읽은 한도 내에서 우리나라 학자의 미국학 저서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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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5-03-18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녹색평론' 속에서도 '세계의 십자군'을 자처하면서 세계의 분쟁의 주역으로 등장하며 속으로는 군수산업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올리고 그것으로 '제국'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벤치 마킹'할 대상을 찾아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제국주의적'인 미국의 모습의 아류로 남아선 안될 것이다. 좋은 것을 배워야지 않겠는가? 우리..우리는 현재 어떤 모습인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이다.
 

텔레비젼을 멀리하고 살다보니 이런 좋은 구경을 못했었군요. -_-;;

파란여우님께서 이거 붙이시려고 시도하시는 것을 보다가 제가 아는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동영상으로 보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토론을 보고 관전평을 붙이신 어떤 분의 이야기에서 그날 분위기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한 거 같습니다.^^;; (보고 혈압 오르신 분들도 많을 거 같더군요..하하~)

여러갈래로 갈라져 있는 생각들을 "이것이 맞다.나를 따르라~"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요. 더구나 상상할 수 없는 경직된 머리를 가지신 분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그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비교할 수 있는 통로가 우리사회에선 너무나 부족했었고, '권위'가 아닌 '논리'로서 의견을 이끌어가는 것은 더욱더 부재한 현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사고,자신의 환경 속에서만 맴도는 자폐적인 모습의 지식인들,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결여된 지식인들의 궁색한 모습과 '역사의식'과 '사회의식' 과 함께 '분야의 전문성'을 획득한 지식인들의 모습이 날 것으로 드러나는 TV토론을 통해 우리들의 눈이 좀 더 열리고 '권위'보다는 '논리'로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흐~

그럼, 지만원 vs. 진중권 토론 대격돌에 한번 빠져 보시겄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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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김구는 빈라덴" vs 진중권 "망명해라"

[CBS 토론] 진중권, 지만원에 일방적 논박 “성취향 공개 삼가라”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 소장은 10일 “한승조 교수의 ‘일제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은 한 문장만을 빼서 마타도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는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시더군요. ^^;;

이에 대해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이번 한승조 사태는 한국 우익들의 멘털리티가 어느 정도 썩어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일본에서도 포기한 일본 우익세력들의 주장을 그대로 설파하는 ‘앵무새’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승조 살리기’에 나선 지 소장은 이날 오후 CBS TV 시사 프로그램인 ‘CBS 저널’을 통해 진 교수와 ‘친일 비판자는 좌익?’이라는 주제로 붙었다. 이전에 안티조선으로 붙은 적이 있는 두 사람은 격정적인 토론을 기대했지만 진 교수의 예견대로 ‘2+2=4’이냐 ‘2+2=5’ 이냐는 식의 논쟁에 머무르고 말았다.

▲ CBS 저널 '친일 비판자는 좌익?'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한국 우익 세력의 적나라한 실상에 대해 진 교수가 몰아쳤지만 지 소장은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왜 자꾸 과거를 들추냐며 반박논리를 펼치지 못하고 중언부언을 반복했다. 사회자마저도 지 소장의 왜곡된 논리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결국 ‘한승조 살리기’에 나섰던 지 소장은 “한 교수의 글을 제대로 꼼꼼히 읽어본 것은 어제 저녁”이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김근상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오후 3시 CBS 목동 사옥 지하 3층 공개홀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진중권 “말도 안되는 것을 키워주는 것이지만...”

토론 시작 전 데일리 서프라이즈와의 즉석 인터뷰에서 진 교수는 “이 토론은 어찌보면 2+2=4, 2+2=5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랑 똑같다”며 “말도 안되는 것을 키워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왜 이런 망언들이 계속 나오는지 사회 문화적, 역사적인 것들을 짚어줄 것이라면서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그는 지 소장과는 예전에 안티 조선 문제로 토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토론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지 소장은 “국민들에게 입장을 전하겠다”며 “구체적인 자세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박정희를 때리면 얻는 것이 무엇인가라며 박정희를 국부라 여기는 사람이 국민의 80%인데 분열을 일으키는 과거사 규명은 전혀 영양가가 없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오후 3시 토론에 들어간 두 사람은 우선 한승조 교수의 발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지 소장은 “한승조 교수의 ‘일제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은 한 문장 들어가 있다”면서 문장 하나만 빼서 사회가 마타도어하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한 교수의 글에 돌을 던지는 이유는 전체는 보여주지 않고 자극적인 부분만 떼어내어 논란하는 것”이라며 이는 국제 정세를 모르는 사람에게 국가 A가 국가 B를 아무런 이유 없이 강제로 점령해서 욕을 보이고 고통을 줬는데 그 나라가 좋은 나라냐, 나쁜 나라냐고 물어보는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 진중권 교수와 격돌한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그러나 지 소장은 한 교수의 글에서 잘못된 점이 20% 있다면서 위안부 언급을 지적했다. ‘위안부 사죄 요구’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좌파들이 반미를 선동하는 것과 똑같다며 그는 할머니들을 앞세워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교수가 용기 있게 지적했지만 구태여 그런 이야기까지 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잘못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국 사정을 뻔히 아는데 ‘축복’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 것도 또한 작은 잘못”이라고도 덧붙였다.

“ 한승조 지만원 발언으로 일본 우익들만 신났다”

지 소장은 그러나 "80%이상은 배울 점이 있다"면서 "잘난 사람에게 역사를 배워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왜 이 시점에서 과거를 따지는지 모르겠다"며 과거사 진상 규명의 정치적 의도를 주장했다.

이 같은 지 소장의 ‘침소봉대’ 주장에 대해 진 교수는 우선 “한 교수의 기고문은 전문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고 있고 국민들도 다 읽어보고 판단하고 분노하고 방송이나 신문도 다 읽어보고 기사 쓴 것”이라고 정정했다.


-> 조선 동아 중앙도 한 입으로 한교수의 발언을 비난하고 있는데 그러면 조선 동아 중앙도 주사파 386이냐...는 반문에 지 박사님 침묵하시더군요. 연로하신 석학을 이렇게 몰아세우다니 진중권 그 사람 참 몹쓸 사람입니다. ^^;;;

이어 진 교수는 "당시 러시아는 반정시위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취약한 나라였다"며 러시아 지배 가능성을 일축한 뒤 “일본 식민지 아니면 미국 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럴듯하다”고 속내를 꼬집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 소장은 “1860년에 미국은 흑인의 인권을 놓고 자기들끼리 싸웠다”며 인권국가인 미국이 어떻게 한국을 먹겠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 civil war의 이유가 단지 흑인의 인권 만을 위한 사움이었을까요? 이 이야기 꺼내시는데 지 박사님 아미스타드 이야기 부터 하시더군요.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애초에 흑인 노예들을 미국으로 안 데려왔으면 그런 내전 안 벌여도 되는 거 아니었나요?   

이같은 지 소장의 거침없는 ‘사대주의’에 진 교수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일본 보고 먹어버리라고 했던 미일간의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지적하며 미국도 식민지를 가질 수 있는 나라였다고 반박했다.

이어 진 교수는 한승조 씨가 미국, 중국도 있었는데 왜 러시아를 지목했는가 자문한 뒤 이는 러일 전쟁의 추억에서 나온 것이며 일본 우익들의 대동아공영권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일본이 당시 러시아를 이겨 아시아의 열등을 극복했고 이는 아시아의 승리이고 일본이 아시아를 구원했다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로 파시즘의 맥락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번 한 교수와 지 소장의 ‘커밍아웃’으로 일본 우익들이 신났다고 하더라면서 진 교수는 “일본이 점령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점령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수천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따라서 원자폭탄은 일본의 축복인 ‘원자 복탄’”이라고 꼬집었다.

-> 원자폭탄... 원자복탄... 아 이 사람이 바로 진중권이었지~ 라는 생각이 번뜩 다시 들더군요. ㅎㅎㅎ

이러한 진 교수의 주장에 지 소장은 논리 대결은 하지 않고 “한 교수의 연구 방법이 있고 진 교수의 연구 방법이 있다”며 “가쓰라 테프트 조약을 보는 것도 다르다, 서로 존중돼야 한다”고 물러섰다.

“하이에나, 메뚜기, 들쥐로 비유하는 사람이 인권을 알겠는가”

지 소장은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세계 열강들이 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는데 한국은 궁전 돌담 안에 앉아서 노론, 소론하며 문닫고 귀양 보내고 모함하고 그랬다”며 “그런 모습으로 36년을 지냈다면 일본이 없었다면 철로나 항만, 발전소, 법률, 행정이 지금같이 발전했겠는가”라고 개발주의론을 펼쳤다.

▲ 프로그램 녹화 스튜디오에 진중권 씨가 들어서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이에 대해 사회자마저도 “국권의 중대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말”이라며 “식민지가 국가에 도움이 됐다는 아니 제국주의도 도움이 되는 제국주의, 식민주의도 올바른 식민주의가 있다는 주장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지 소장은 “100% 좋은 것만 있는 것, 100%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없다”며 “이념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혼재돼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는 일본하고 앞으로 잘 살면 되는데 왜 자꾸 과거를 따져서 증오심을 부추기느냐며 여기에는 분명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 교수는 지 소장의 글에는 민족비하 발언이 여러 번 나온다며 한국인을 들쥐 근성으로 비유하고 언론을 ‘후레인간’ ‘메뚜기떼’ ‘하이에나 떼’로 묘사한 것을 지적했다. 그는 이는 한국 민족은 안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 소장과 한승조 씨의 망언은 임상심리학적 연구 대상이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몰아쳤다. 그는 또한 “메뚜기떼, 들쥐떼, 하이에나떼 발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인권을 존중하냐”고 꼬집기도 했다.

먹힐 만하니까 먹혔다는 지 소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진 교수는 “정말 먹힐 짓 하는 사람을 을사오적이라 한다”며 “김구 선생은 먹힐 짓 안했다”고 정면 반박했다. 그는 지만원, 한승조는 먹힐 짓 한 사람이라고 몰아붙인 뒤 당시 조선 민족이 먹힐 짓을 한 것이 아니라 조선민족 일부 사람들이 먹힐 짓을 했으며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 다시 망언을 퍼붓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 교수의 김구 주장에 대해 지 소장은 이승만을 내세우며 이승만은 국력을 키우는 외교에 주력한 사람이지만 김구는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지 소장은 김구가 안중근, 윤봉길 같은 젊은이들에게 무기를 줘서 죽이라고 했다며 무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면 애시당초 먹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극우세력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지적에 대해 지 소장은 “일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잘 모른다”며 “내가 당했으면 물론 나쁘지만 본인에게는 잘못이 없겠느냐”고 한국민의 반성을 주장했다.

일본 우익에 관심없다는 발언을 낚아 채 진 교수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안가진다는 발언이 바로 먹힐 짓”이라 꼬집기도 했다.

“ 김구가 빈라덴이면 우리 헌법은 테러리즘 헌법인가”

김구는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진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한국은 빈라덴의 테러리즘의 헌법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라며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가 몰아쳤다. 또한 그는 정작 테러리스트는 김구를 죽인 이승만이라면서 지 소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친일파 청산은 좌파 주사파들의 신앙이라는 논거에 대해 지 소장은 386 주사파들 역시 공산주의자인데 일본이 공산주의를 탄압하자 386 주사파도 일본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나 미국은 한국에 유익한 존재라며 포항제철을 먹여 살리는 100% 기술이 선진국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지 소장은 노무현 정권은 386 주사파가 정권을 잡았다며 이들이 사회 주도 세력을 바꿔나가는데 기득권 세력은 다 일제에 동조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과거사 청산 주장, 박정희·박근혜 때리기는 기득권 죽이기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위안부로 반일 감정을 부추겨서는 안된다며 일본과 협력해서 새지평을 열어야 국민 앞날에 도움이 된다고 ‘친일 외교’를 거듭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 교수는 “친일을 비판하고 한 교수를 비판하면 다 386 주사파냐”며 “국민 대부분이 비판하고 조중동도 소극적이지만 비판한다”며 이들이 몽땅 노 정권이 사주한 주사파냐고 꼬집었다

이어 지 소장(<- 진 교수겠죠? ^^;;; 민기자님 수정 좀 하시지~♡)은 한국 우익 세력들의 극단적인 주장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지 소장의 ‘친일보다 더 나쁜 것이 친북이다’는 주장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음이 깔려 있다며 빈 라덴이 아랍의 자결권을 위해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테러라는 수단이 옳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고 설파했다.

“과거만 들추지마라, 피곤하다”

이어 진 교수는 한미일 동맹 강화와 북한 고립을 위해 민족도 내버려야 하고 일본 식민지배를 축복이라며 참아야 한다면 그 사람은 어느 국적의 사람인가라며 지 소장은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 나라 밖 사람이라고 몰아쳤다. 진 교수는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극단주의가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지 소장은 한국의 좌파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며 그 신념은 북한은 친일파를 깨끗이 피로 숙청하고 세운 정권이기에 정통성이 있고 남한은 친일파로 세운 정권이기에 하루 빨리 친일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빨간 세력 속에서 살고 있다”며 그것이 자신이 무서워하는 좌익이라고 말했다.

지 소장의 좌파 운운에 진 교수는 "대한민국에는 좌익이 거의 없다"며 "사회적 안전망, 사회 복지 등을 주장하는 나 같은 사람을 좌익이라고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다 우익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대 공화국이었고 지금 노 정권은 삼성공화국이지 좌우파 대립이 아니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한 교수의 망언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고 일어나는데 다 주사파냐며 현 정권도 선거라는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 형성됐는데 빨갱이 정권이라고 하면 어떻게 사는가, 망명하라고 몰아치기도 했다.

진 교수가 박정희 정권도 전두환 정권도 김영삼 정권도 북한 유화 정책을 썼다면서 현대사를 제시하자 지 소장은 왜 자꾸 과거 얘기를 하냐며 ‘sick and tired’라고 영어까지 써 가며 지긋지긋함을 드러냈다.

이어 지 소장은 진 교수를 향해 “친일과 친북 중 뭐가 나쁘냐”고 질문하자 진 교수는 “친일 친북 둘다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여기서 지 소장님 갑자기 말 문이 턱 막히시더군요. 애처로왔습니다.) 이어 진 교수는 “두개의 나쁜 점이 하나의 올바른 점을 만들지를 않는다(two wrongs doesn't make a right.)”는 속담을 영어로 받아친 뒤 친일을 했으면 그것대로 나쁜 것이지 친북을 안했다고 옹호를 하니까 비판하는 것이라고 지 소장의 논리 허점을 찍어냈다.

이때 사회자가 우익세력들도 한 교수의 주장에 다 동감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익을 대표하는 발언은 아니라고 지적하자 지 교수는 “사실 한 교수의 글을 꼼꼼히 읽어본 것은 어제 저녁”이라고 실토했다. 그는 한 교수를 욕하는 사람에게 하도 전화를 많이 받아서 다 읽어봤냐 했더니 안읽어봤다고 대답했다며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안 읽어보거나 수용능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과서 문제와 관련 한국 우익은 왜 자꾸 비하적으로 보느냐는 일본우익의 주장에 대해 지 소장은 “비하가 아니라 반성”이라며 자신은 “경계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주장했다. 즉 “코스모폴리탄적”(제 조언이 먹힌 것은 아니겠지만 '차라리 세계 시민을 자처(클릭)'했군요. ㅋㅋㅋ)으로 양국의 입장을 분석해야 제대로 나오지 일방적으로 한쪽의 시각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 교수는 “자학사관”이라며 이는 독일 우익들이 과거를 반성하는 것을 자학이라고 폄훼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우리에게 하면 가학증이고 우리가 하는 것은 자학증이라며 한국의 일부 멍청한 우익들이야말로 자학증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헉헉대며 개인적 성취향으로 자위 행위하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성취향을 표현하는 것은 삼가 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지 소장을 비꼬았다.

그러나 지 소장은 과거 집착은 자폐증이라며 일본도 깨인 나라인데 반성하건 안하건은 그들 문제이지 우리가 요구한다고 고개 숙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더럽고 미국이 아니꼬우면 미국 일본 학생보다 더 공부하고 일을 해야지 맨날 인터넷 두드리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뻘에게 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한교수 글은 어제야 꼼꼼히 읽었다” 실토

이러한 왜곡된 외교 주장에 대해 진 교수는 외교 관계는 공통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왜곡된 역사관으로 한일 관계가 제대로 맺어질 수 없으며 또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과도 관련된 문제인데 한국 우익은 외교 카드를 다 내보이고는 우리는 못났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이 뭘 하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주장이 바로 먹혀버릴 짓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 소장의 ‘일본 우익에 관심없다’는 주장을 꼬집었다.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진교수의 손가락... 의미심장합니다 ^^)
이어 진 교수는 한승조, 조갑제, 지만원 등이 ‘커밍아웃’을 하며 일본 우익 망언에 놀아난 발언을 하고 있다며 이는 박정희 찬양론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즉 조선민족은 자립할 능력이 없어서 일제 통치를 통해 발전을 이룩해줬는데 일본에게 감사하지는 않고 보상을 하라고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 사람은 자립할 능력이 없으며 박정희가 없었으면 여전히 보릿고개 시대일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에게 감사는 안하고 과거사 청산하자고 주장한다는 논리라는 것"이다.

-> 지 박사님의 기술 하나가 누락되었군요. 우선 진 교수에게 묻습니다. "진 선생. 헤이그 밀사 이준 열사 존경하세요?" 진 교수 '이 사람이 무슨 기술을 쓰나' 의아해하면서 머뭇거립니다. 지 박사님 다시 거듭 묻습니다. '존경해요?' 마지못해 진교수 '예 존경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 박사님 "그 이준 열사가 조선 사람들은 정말 답 안나오는 민족이다. 라고 말했어요. 춘원 이광수는 뭐라 했는지 아세요? 할수만 있다면 조선민족을 맷돌에 갈아 다시 빚고 싶다고 했어요. 구한말 조선이 조선민족이 그랬었습니다."라고 공격을 가하시더군요. 이준 열사를 꺼내시길래 무슨 대다한 공격을 하시나 했는데... 실망이었습니다.   

그는 일제 식민주의자들이 이광수 같은 사람들에게 계속 주입을 했고 그러자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하거나 지식인이라고 자처했던 사람들도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고 친일을 하게 됐다며 바로 지 소장 같은 생각들을 갖고 있었기에 친일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제가 퍼트린 민족 자족론(제가 듣기로는 이광수가 주장했던 것은 '민족 개조론'이었습니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미래 지향적이냐며 한국 우익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이에 대해 지 소장은 “나는 미국 가서 일등하고 미국인들도 못맏드는(못 만드는) 수학 공식을 만들었고 수학 논리를 정리했던 사람”이라며 “이런 것이 미국을 이긴 것”이라고 억울해 하자 진 교수는 “다음부터 성적표 가지고 나와라”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 정말 억울해하셨습니다. 그 억울함을 얼굴로 말씀하시더군요.

현 정권을 빨갱이라고 비판한 지 소장은 그러나 “난 대한민국을 고치는 사람이지 치사하게 망명하지는 않는다”고 하자 진 교수는 “아직 살만하다는 얘기네”라며 냉소로 받아치기도 했다.

진 교수는 “내 아내도 일본 사람”이라며 “일본에도 배울 점 있지만 우리보다 훨씬 뛰떨어진 점도 있는데 기껏 배우는 것이 일본 우익 사상을 배우느냐”며 비판했다. 그는 일본 우익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아느냐며 조직의 90% 이상이 야쿠자이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려고 옷 차려 입고 신사참배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배우는 것이 바로 잡아먹힐 짓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치사하게 망명않는다”에 “ 아직 살만하단 얘기네”

지 소장이 거듭 과거사 규명은 증오심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주장하자 진 교수는 일본 관광객들 몰려들고 한류 열풍 있는데 증오심 없다며 단지 외교 관계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과거사 반성은 안하고 망언을 할 때는 용납하지 말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 외교이지 친하게만 지내자고 하는 것이 외교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우익들이 원하는 것이나 미국이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을 다 받아 주는 것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이해 갈등을 오해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외교라고 한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진 교수는 한국 보수 우익들은 이에 대한 전략이 전혀 없고 대책도 없다며 일본에서도 포기한 사람들이 하는 망언을 대단한 이론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정신차려야 한다고 성토했다.

진 교수의 외교 주장에 대해 지 소장은 외교란 예의바르고 논리로 무장되고 정중하게 지가 의견을 관철하는 것이지 노 대통령이라는 대표 선수는 수준 이하라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올바른 외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진 교수는 이번 사건은 한국 우익들의 멘털리티가 어느 정도 썩어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우익은 국익을 위해 발언해야 하는데 국익을 배반하는 발언들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을사오적’ ‘임상심리 연구 대상’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면서도 지 소장은 이날 토론회의 소감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다”고 자평했다. 그는 한 교수의 식민지배 축복은 마타도어라며 그 분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2005.03.10/민일성 기자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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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열 받았잖아요....의사가 열받으면 안된다고 했는데....흐미...--;;;
아, 그리고 전 푸른여우가 아니라 파란여우랍니다. 호호호^^
퍼갑니다....

클레어 2005-03-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웁스...-_-;; 어제는 제정신이 아니었군요. 파란여우님을 푸른여우님으로 보다니..앞으로 눈 똑바로 뜨고 살겠습니다. 하하~

로드무비 2005-03-1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
 

 

 항상은 아니지만 요일에 붙어 있는 의미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휴식과 노곤함을 보장받는 빛나는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갈 때, 일요일의 여파때문에 손에 잡히지 않는 일거리는 산적해있지만 또다시 뭔가를 시작해야한다...는 주문아닌 주문을 외며 다시한번  손바닥으로 얼굴에다  쫙~ 기합을 넣습니다. 기합의 날, 월요일을 무사히 넘기고 나면 월요일날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들을 해치우느라 머리에 스팀을 피워대며 달리고, 또 달리고...그러다 수요일...요일 중에 중간. 그리고 벌려놓은 일들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것 같아서 안도하면서 조금은 느긋해진 손을 바라보게 됩니다. 목요일...오늘처럼 안개낀 날이면 창 밖으로 눈길이 자꾸 갑니다.  보이지 않는 사이 조금씩 나이테를 만들어가는 나무들처럼 나또한 그렇게 하루를 살면서 나의 경력이랄지 노력이랄지 하는 것들을 제대로 키워가고 있나? 하는 쓸때없는 생각...내가 바라보는 나무들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그렇게 키워가고 있는데, 난 너무나도 소란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예~ 오늘은 쬐금 우울한 느낌이 듭니다.(목요일이니까..)

그래도 내일은 반짝이는 금요일..

모든 반짝이는 것이 금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시간이 다시한번 내 앞에 주어진다는 것이 그저 지겹지만은 않은 것은 오늘 참 못 살았구나~그래서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나아져야지..라는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헛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실이라는 발판에서 좀 더 나아가려는 청사진마져 헛되다 하지는 말아주십시오.

그것으로 버티고 있으니까요.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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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들으며 봄밤을 하릴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내일은 반짝이는 금요일....
육체는 피로하지만 무작정 잠 자기는 아까운 밤이군요^^

클레어 2005-03-17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가비얍게 오늘은 우울에 퐁당 몸 담갔다가 내일은 승질부리며 또 일어나겠죠..
지랄같은 세상에 또 던져졌네..하면서.

아까운 밤이군요. 여우님말씀처럼...
 
 전출처 : 바람구두 > 문화연구 - 대중사회론

문화연구 - 대중사회론

- 바람구두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M. 아널드

대중사회의 출현
1900년에 이르러 18세기 계몽사상에 의한 과학 ․ 이성 ․ 진보의 힘은 유럽의 체제를 크게 바꿔놓았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발명(증기기관, 내연기관, 무선통신, 사진, 영화 등), 철도와 기선의 출현(미 대륙 횡단철도, 유라시아 횡단 철도, 대양 운송)으로 인해 낡은 농업사회의 자급자족제도를 파괴하고, 도시로 유입된 다수의 노동자 계층을 생성시켰다. 농민에게는 전통적 생산수단을 현대화하도록 강요(문화적 재생산의 차단)했고, 인구의 이동성을 높여 도시의 거대화를 초래한다. 자유주의, 자유자본주의 모델은 그 물질적 장점으로 인해 정치적인 틀을 크게 변모시킨다. 언론, 상거래, 과학적 탐구의 자유, 노동의 유동성과 확대된 선거권에 기반한 민주적 자치(自治)에 대해 각성한(영국의 경우 1867년 도시소시민, 노동자, 1884년 광산노동자, 농민, 1918년 남성 보통선거, 1928년 보통선거 확립) 시대이다. 이 시기에 지구상의 인구는 1900년 당시 16억 3천만 명에서 2000년 무렵 60억으로 폭발적인 증가세(1820년대 영국 리즈, 버밍엄, 브래드퍼드는 각각 47%, 40%, 65%의 인구 증가)를 보였다. 산업화와 도시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대중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 교육받은 중산층과 소수 기술노동자 계층의 출현으로 새로운 형태의 매스 미디어들(신문 - 1700년대부터 인쇄되어 구독되었던 소책자나 정보지로 출발, 18세기에 이르러 일간지가 일반화됨, 1840년대 대중잡지, 1920년대 라디오, 1940년대 TV)의 출현을 가속화시켰다.(1843년 영국 카툰 잡지 <펀치 Punch>, 사진의 출현, 포르노그라피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대중사회론자들의 몇몇 특성에 따른 범주들
산업화와 도시화(대중사회의 중요한 특징들)에 의해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해왔던 지적 엘리트들의 문화에 대한 지도력이 상실되어간다는 문제를 지적한 대중사회론은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 논의에서 가장 오랫동안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대중사회론은 산업화된 사회가 종래의 도덕적 규범, 전통적인 가치 상실, 사회를 통합하는 사회적 규범의 위협의 원인을 대중문화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대중사회론은 대체로 위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각각의 특성에 따른 몇 가지 범주를 보인다.

(1) 문화이론가(매튜 아널드, T.S.엘리엇, F. 니체, 오르테가 이 가세트), 정치이론가(J.S.밀, A.토크빌), 대중심리학(르 봉, W. 라이히, 한나 아렌트), 사회학자(V. 파레토, K. 만하임, D.리스먼) 등 여러 방면의 이론가들이 대중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은 대중사회의 출현이 역사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사건임을 반증한다.

(2) 사회학적 관점의 대중사회론은 반자본주의적 낭만주의에 기반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F.퇴니스는 “공동사회-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전통, 관습, 종교에 의해 지배되며, 정서적 일체감을 이룬 사회)”가 산업화 ․ 도시화로 인해 합리적·계약적 성질의,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이 항상 분리되어 있는“이익사회-게젤샤프트(Gesellschaft)”로 변화해간다고 주장했다. F.퇴니스, E. 뒤르켐 등은 산업사회의 도시화(대중사회)된 대중문화, 대중매체가 개인을 원자화하고, 소외(고립 ․ 분산)시킨다고 생각해 대중사회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3) 엘리트와 대중의 사회 불평등을 정치, 경제, 문화적인 과정을 통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는 대신, 사회 성원들의 선천적인 능력의 차이로 바라본다. 즉,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는 생득적이며, 필연적인 것이며, 엘리트는 지배자로, 대중은 피지배자로 표현한다.(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사회진화론-허버트 스펜서가 진화론을 사회과학적으로 받아들인 이론)

(4) 대중사회론의 시각은 이념적으로 분화되는데, 우파(보수주의자, 엘리트)는 대중의 타락과 일탈을 기존 사회에 대한 도전(혹은 반역)으로 보는 반면, 좌파(마르크스주의 대중사회론자)들은 대중문화에 포섭된 대중이 계급적 본성을 상실하여 혁명의 기회가 상실된다고 보았다.

대중사회론의 네 가지 전통
1. 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대중문화론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전제주의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민사회의 출현을 통해 자유주의의 이상을 실현했다. 자유주의는 독재와 절대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신, 자유롭게 선출된 정부와 의회에 의한 법치주의 실현, 연설, 출판, 집회의 자유 비롯한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인정을 그 가치관으로 했다. 자유주의는 대중을 시민(공중)의 연장된 개념으로 받아들였으나 점차 대립하는 별개의 개념으로 인식한다(C.W.밀즈). 자유주의 사상가 J.S.밀과 A.토크빌은 대중사회가 확대된 민주주의(보통선거)에 의해 수적으로 증가한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한)대중을 오도하여 선출된 소수 개인의 의지에 따라 민주주의가 변질되는 것을 새로운 전제주의적 횡포로 생각했다.

교육에 의해 계몽된 시민 개념을 상정하고 있던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산업화된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대중교육은 하향평준화를, 대중매체는 개인의 사회적 ․ 문화적 ․ 도덕적 획일화를 가져와 개인은 축소된 대중이 될 것으로 염려한다. 대중문화가 힘을 얻는 민주주의 시대에는 세련되지 못한 이들에 의해 문화가 주도되고, 향수하며, 예술 창조자들은 상업 행위에 나서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개인(대중)으로 구성된 사회가 다수의 폭정이나 전체주의 정부에 대한 복종을 야기할 것이라는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2. 대중/엘리트론
대중/엘리트론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대중들(정치적, 문화적인 무자격자인)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표시하는 사회론, 문화론을 의미한다. 대중/엘리트론을 주장하는 이론가들 대부분은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지녔으며, 사회진화론, 반(비)합리적인 사유의 연장에서 인간은 생득적으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며, 강자는 스스로의 의지를, 약자는 다른 사람의 의지의 대상일 뿐이라고 보았다. 오르테가는 예술의 특성은 비통속성에 있으며, 그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 ․ 숙명적으로 그러하다고 보았다. 니체와 오르테가는 대중이라는 무자격자의 정치적인 지배를 맹렬히 반대했고, 니체는 사람들은 지고(至高)의 가치나 목표를 잃어 왜소화(矮小化)되고 노예화하여 대중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엘리트에 의한 지배의 종언과 대중에 의한 통치였으며, 대중을 ‘masses’가 아닌 군중, 어중이떠중이 ‘rabble’로 보았다(린 스피겔은 ‘mass’라는 말도 20세기의 폭도/군중(mob)이라는 말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해석). J.S.밀은 사회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대중에 의한 지배를 고칠 수 있다고 본 반면, 니체와 오르테가 등 엘리트론자들은 계몽주의 사상을 이성의 발달, 진보로 보지 않았다. 이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대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완전한 이성의 실현이었다. 오르테가는 『대중의 반역』에서 사회는 소수 엘리트 집단과 다수의 대중, 두 집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역사 이래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를 지배해왔다고 주장한다. 오르테가는(볼셰비즘의 발호에 위협을 느끼고, O.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에서 영향을 받아) 대중이 피지배계급으로 원래의 사회적 위치를 벗어나 자유를 증대시키고, 문명 발전의 열매(문화, 예술)를 모두 다 누리려 한다는데 불만을 토로했다. 지고(至高)의 선과 미를 깨우치지 못한 대중의 예술적 취향을 사회에 퍼뜨리려는 것(대중문화)은 문화적으로 자격이 없는 대중들이 만들어 낸 비지성적이고 충동적이며 문화적으로 가치가 없는 낮은 수준의 문화가 사회 전체를 주도하는 ‘대중의 반역’으로 보았다.

3. 문화와 문명론(혹은 아널디즘 Arnoldism)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류의 절대 다수는 농촌에 살면서 식량을 생산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들 대부분은 몇 백 년 동안 삶의 형태에 거의 변화가 없는 삶을 살았으나 산업화와 도시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도시에서의 익명성과 전문화된 활동은 농촌 사회(게마인샤프트)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윤리적 규범이나 규제를 뿌리째 흔들면서도 그것을 대신할 분명한 규율을 제공하지 못하는(문화의 공유영역이 사라지고 피지배계급만의 문화라는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는) 경향을 보였다.

1) 매튜 아널드
아널드는 문화를 ‘지식체계이면서 이성과 신의 의지가 힘쓰게 만드는 것’ 이라고 규정하였다. 즉, 문화란 최선의 것을 찾는 것이고, 그러한 노력으로 배출된 최고의 것이며, 그것이 다시 생활에 적용되어 사회적으로 나쁜 것을 척결하는 것이다. 아널드는 이를 위해서 교육하고, 창조적인 행위들이 보호받아야 하며 지식인들이 적절한 비평을 가해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M.아널드의 문화론은 고전적 인문주의 전통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교양(敎養, Bildung)의 의미를 담고 있다.(빅토리아 시대인 1880년대 이후 영국 노동 계급의 생활수준은 많이 향상되었으나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이들은 여전히 빈곤층이었다. M.아널드는 “문화와 무질서”에서 런던의 이스트엔드가 ‘저들 수많은, 비참하고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영락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며 노동계급에 대해 적대적으로 묘사한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자선사업조차 몰락한 문벌 출신인 사람들, 소위 ‘도움 받을 자격이 있는 빈민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행위로 한정되었다.)

아널드는 대중문화(노동계급의 문화)가 사회 질서를 위협하고, 최선의 것을 찾으려는 종래의 문화적 노력에도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산업화, 도시화된 사회에서의 대중이 인문주의적 교양(문화)를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물질적인 기계문명에 의존하여 금전적이고 개인적인 성공에만 치중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널드는 사회를 귀족, 중간, 평민층으로 구분하였는데, 중간층과 귀족층에선 인간 본성이 비교적 잘 유지된 반면 평민층(노동자 계급)은 이를 잃어버렸거나 보살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 대중문화를 즐기는 노동계급이 진정한 의미의 문화를 익히게 되면 정치적인 선동도 줄어들고 예전의 복종의 미덕을 되찾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국가가 앞장서 대중(노동계급)에 대한 문명화 작업에 나설 것을 주장한다. M.아널드의 문화론은 지배질서 속에서 소외된 노동계급의 저항(아래로부터의 질서에 대한 도전, 예를 들어 1838-1938년 차티스트 운동)을 사회적 위협(무질서)으로 간주한 당시 중간 계층 지식인(동시에 제국주의 시대 유럽 지식인의 유럽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2) 공유학파 : 리비스와 엘리엇
리비스와 그 주변 학자들은 1930년대를 문화적으로 하향화 ․ 평준화되고, 규격화(대량생산, 표준화)되는 위기의 시대로 파악하고, 아널드의 인식을 1930년대 문화현상에 적용시켜 보려는 시도를 한다. 이들이 보기에 산업화가 초래한 것은 공유하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의식 없는 군중의 출현이었다. 대중문화는 사회적 질서에 이바지하는 한 용인될 수 있으나 현 상태로는 사회적 무질서를 야기하므로 교육 혹은 교양에 의해 적절히 가꾸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산업화 이전의 문화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대중사회로 접어들면서 서로 다른 집단의 문화가 경쟁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엘리엇은 문화의 다양성에는 자연히 여러 층위가 있으나 다양한 문화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내용(질서)을 지닌 문화(엘리트적 문화)가 존재한다고 상정했다. 엘리엇은 인간적인 가치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문학 교육이 도덕적 회복의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비스는 문화란 항상 소수에 의해 지켜져 왔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 소수는 귀족층이나 특정계급에 의한 것이 아닌 선의의 문화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문제는 산업화로 인한 대중민주주의가 그런 소수의 문화적 지위와 권위를 점차 붕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문명(civilization, 시민)과 문화(culture, 대중)가 충돌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리비스나 엘리엇은 산업혁명 이전의 영국 사회에는 국민문화(공유문화)라 부를 만한 공유된 도덕률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하나는 소수의 문화,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로 분리되었고, 과거 아널드가 정의했던 진정한 문화의 모습은 소수의 문화 속에 살아 있다고 보았다.

그에 비해 대중문화는 대량생산, 표준화에 의해 하향 평준화되었고, 대중의 감수성은 약화되어 상업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진 대중문화에 중독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리비스는 1930년대 발흥하는 대중 매체들(소설, 영화, 라디오, 광고, 신문, 등. 리비스는 특히 광고의 언어 오용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의 생산물들은 대중을 환상에 빠져들게 할 뿐인 자위행위로 보았다. 공유학파 학자들은 영국의 문화적 황금시기로 셰익스피어 시대를 순수한 민족문화로 파악하고, 이 시기의 문화는 누구에게나 호소력을 지니는 진정한 공유문화라고 생각했다. 문화적 황금시기의 유기적 공동체, 노동 안에서 즐거움을 찾던 시절이 사라지고, 노동과 생활, 노동외 시간이 분리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공유문화 역시 소멸되었다고 보았다. (1920-30년대 영국의 노동계급에게는 번영의 시대였다. 전기와 기계 부문에서 증가하는 소비재 수요의 혜택을 받아 전축, 라디오, 전기다리미, 진공청소기 등과 같은 신제품들이 소비 무드를 촉진시키고, 1년에 한 번 정도 해변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907년 세계최초의 영화관 랭커셔 콜른에서 개장, 1932년 영국왕 조지5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는 최초로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BBC를 통한 방송의 힘은 대중에게 오락과 교육을 주었으나, 농촌 지역은 침체되었다. 이후 대공황)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민족문화 역시 위로부터 아래로 주어져 공유하는 문화였고, 대중은 위(뛰어난 이들)로부터 베풀어지는 문화의 혜택을 누리는 존재들로 규정되어, 문화적 위계질서가 강조되었다.

공유학파는 사람들이 대중문화에 탐닉한 결과, 소수 문화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될 것을 염려하긴 했으나 문화를 통한 사회의 통합이 교육 프로그램의 마련으로 가능하며, 문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엘리트를 키워내 문화의 성취가 가능하다고 보았다.(ex. 국풍 81 - 한국신문협회가 주최하고 KBS와 MBC 양 방송사가 행사준비와 운영을 맡아,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한 문화행사 - 개막행사, 민속제, 전통예술제, 젊은이 가요제, 연극제, 학술제 등의 행사를 진행함)

4. 대중사회와 전체주의
대중참여를 통해 다수가 소수를 압박했다고 보았던 대중사회론과 달리 전체주의론은 소수 엘리트들에 의한 대중조작과 대중동원의 증대를 염려한다. 이 관점은 대중을 야만성을 띠거나 후진성을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무정형의 고립된 존재로 파악한다. 원자화된 사회에서 고독한 군중으로 고립된 개인은 단지 국가라는 공동 권력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사회 속의 관계를 파악한다. 계급도 사라지고, 가족이나 지연을 바탕으로 한 1차적인 집단마저 사라진 20세기의 대중은 개개인의 개성이나 주장은 중요하지 않고, 전체주의적 당이나 정치 세력에 쉽게 동조해버린다. 이들은 소수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상징적 조작(허구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상상의 공동체”)에 과잉 충성하게 된다.

사회적 고리의 부재, 소외감, 불안감, 그로 인한 엘리트에 대한 과잉 충성은 전체주의의 토양이 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조작된 권위에 복종하여 가상의 약자들을 공격함으로써 불안에서 도피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받는다. 엘리트들의 선전수단으로 동원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는 상징적 조작의 수단이며 허구적인 세계의 생산자에 해당한다. 소외감을 거짓으로 충족시켜주며 궁극적으로는 전체주의 사회로 이르게 하는 주요 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ex. 미국: F. 루스벨트-노변담화(爐邊談話), 독일 : 라디오 보급을 위해 1934-35년엔 국가 보조금을 사용하여 노동자들의 일주일분 평균 급료인 35마르크만 있으면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싼 라디오였고,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괴벨스의 입'이라 불렀다.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들, “의지의 승리, 미의 제전” 등)

5. 미국의 대중문화찬반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지식인들은 대중, 대중문화의 의미에 대해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리며 대중문화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공통적으로 미국이라는 사회가 합의의 사회이며, 안과 밖으로부터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하나된 사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논의에서 대중문화의 위협은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농촌 ․ 공동체문화가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는 것, 외부의 위협인 공산주의의 위협에 비견되는 내부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중문화의 위협은 1) 고급문화를 포기하고 2.3류급 문화를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현상 - 미학적 자유주의론, 대중문화 반대론 2) 대중문화가 급변하는 산업사회에 사람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순기능론 3) 대중문화가 사회적 통치를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도구론적 견해의 세 가지 측면을 지녔다. 1950년대 매카시즘 이후 3)의 급진적 논의는 점차 사라지고, 1)과 2)의 견해가 주종을 이루었다.

대중문화 반대론은 대중사회의 문화 현상을 ‘그래샴의 법칙’에 따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으로 보았다. 획일적인 내용과 표준화된 생산 배경을 지닌 대중문화가 고급문화가 들어설 자리를 위축시킨다는 예측이다. 대중문화 찬성론은 대중문화란 고급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는 기제로 보았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공연하고, 라디오가 고급 음악을 제공하는 등, 대중매체는 문화적 민주화를 성취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긍정론자인 E. 쉴스는 미국 문화는 정제되고 뛰어난 문화, 중간쯤의 문화, 투박한 문화의 세 계층을 이룬다고 보았는데, 중간, 투박한 문화의 중요성은 점차 증대하는 반면, 정제된 문화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문화적 분화 현상(대중문화의 빈곤 해소, 문화적 융통성)을 가져와 대중으로 하여금 미적인 것에 눈뜨게 하고, 사회적 활력을 북돋울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에서의 대중문화찬반론은 이론적인 논의이기 보다는 학자들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따라 미국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 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의 토론(대결)이었다. 사회 구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보다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지녔으며, 동등한 복지 혜택을 누린다는 점을 강조하여,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계급적 갈등, 엘리트/대중간의 갈등보다는 문화적 용광로로서의 미국 문화를 전제하고, 그 안에서 대중문화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살펴본 기술적 논의에 가까웠다.

원용진은 3장 “대중사회론”의 결어에 해당하는 글에서 우리 사회 구성체에 대한 천착 없이 미국식 기능주의적 인식론 틀로 수입된 대중사회론은 대중문화의 기능을 순기능과 역기능과 같이 간단한 기능적 측면으로만 바라본 실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문화란 다른 사회적 제도와의 관계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부분이고, 그것이 경제 제도의 반영이든, 독립적인 것이든 개념이 과학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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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검을 만듦에 있어 백번 두드리고 물에 넣어 다시 두드려서 만들었다.

그리고 반드시 피를 잔뜩 담은 양동이에 검을 넣어 목을 축인다 하여 검이 피맛에 굶주리지 않게하였다. 만일 피를 먹이지 않으면 나중에 피에 굶주려 생명있는 바를 가려서 살생할 수 없다고 한다. 

요즘은 용광로에 쇠를 넣고 끓여내어 찬 물로 식히는 일련의 과정을 한번에 처리하니, 훌륭한 쇠를 만들어 내는데는 이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한다. 

달아오른 쇠를 치고 물에 식힌다 함은 대기중의 탄소를 철 분자와 엮어내어, 이를 빠르게 식혀서 탄소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야, 강도가 오래 지속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예전 방식의 쇠를 두드리는 법을 궁구하여 이치를 알고, 쉽고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킨 좋은 바라 하겠다. 거기에 석회를 넣으면 철의 불순물이 빠져나간다 하니, 예전에 비해 철의 순수하고도 강직한 성품을 많이 살렸다 하겠다. 

그러나 요즘 쇠로 진검을 만들고 오래 전에 만든 진검과 승부하게 되면 신검은 구검에 반드시 부러지는 바가 되고야 만다. 어찌하여 그러한가?기술의 오묘함이 서로 차이가 나거니와 요즘 세상엔 갖은 강도의 쇠를 많이 필요로 하는데 어찌 새로운 방식의 기술로 단련한 쇠가 옛 검을 따르지 못하는 것일까. 

용광로는 단 한개의 목적을 위해 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하지만 그 쇠는 순도가 높아야 하고 다시 강도도 있어야 한다.그리하여 큰 솥에 석회를 몰아 넣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 수만톤의 쇠를 만들어 꼬아놓아,이 코일로써 여기 저기 나라와 백성이 필요로 하는 바에 범용으로 쓰는 것이다. 

옛 검은 검을 만들기 위해 단 한덩이의 쇠를 두드려 물에 식힌다.분명 여기까진 요즘 방식의 제련법과 크게 다를게 없다. 되려 요즘 방식보다 못하다.그리하여 접는다.쇠를 두드리고 한번 접고, 다시 달구어 두드려 이에 식힌다. 

이에 처음 두드린 한 겹의 쇠는 약할지 몰라도 이러한 지수긋함과 몰두의 과정을 거치면 열 번 접힌 쇠가 요즘의 방식으로 만든 한겹의 강철과 같은 내구성을 가진다.거기에 접힌 쇠가 열겹의 쇠를 맞대놓은것처럼 서로 의지를 해서 탄력이 붙는다.다시 이 검에 녹이 슨다 하여도 겹쳐진 쇠의 단단함에 막혀 녹이 안까지 파고들어 갈 수가 없다.

이에 비록 녹이 슬고 무뎌진다 하여도 불에 들어가고 숫돌을 만나면 가을물과 같이 날이 서는 것이다.그리하여 신검은 진검의 이를 뺄 순 있어도 구검을 부러트리진 못한다. 진검은 탄력이 있어 강도 대 탄력이 극한 조화를 이루어 이는 빠지더라도 기어코 신검을 눕히는 바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요즘의 모든 쇠들을 두드리고 접는 방식으로 만들어 뭘 만들고자 하면 수고는 백배로 들고 효율은 열배로 줄게 되니, 어느 한 방식을 고집하고자 함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심성을 다스리는데는 필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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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제련법을 적용하다보면
저도 탄력적이고 단단해질까요?
무엇보다 녹이나 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클레어 2005-03-1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파란여우님~!! 이미 많이 스스로를 두드리고 접었던 분, 아니셨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