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아바
키란 데사이 지음, 원재길 옮김 / 이레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

 

며칠 전 '온스타일'이라는 케이블 티브이를 시청하게 되었다. 패션과 관련된 프로그램이었고, 이승연이 게스트와 함께 나와서 요즘 계절에 유행이 될만한 아이템을 쇼핑하는 프로였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이승연이 게스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 전세계적으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한국의 동대문 시장과 인도의 실리콘 벨리라지요? 멋스러운 아이템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동대문 시장에서 그럼 몇 가지 소품을 구입해 보도록 할까요?"


인도의 실리콘 벨리가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인도가 정보 기술및 소프트 웨어 산업에서 높은 수준을 차지 하고 있다는 사실, 인도정부가 발벗고 나서서 인터넷 보급율을 올리기 위해 저가 PC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언젠가 스쳐 지나가듯 봤던  기억이 나면서 역동적으로 산업화, 근대화 되고 있는 인도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와 같이 정부 주도로 산업화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 인도는 여전히 카스트의 신분제도에 묶여 계층에 따라 다른 부와 교육, 일자리가 주어지고 있는 불평등, 반민주적인 나라라는 사실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마치 낡은 기둥과 서까래를 고려하지 않고 건물 층수를 무리하게 올리는 건물처럼 불안요소가 도처에서 풍기는 인도.


인도의 한 젊은이가 '구아바'라는 소설을 써서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고 한다. 27세에 최연소 '부커상' 수상이라는 타이틀 또한 '구아바'라는 이 소설을 읽기도 전에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 '구아바'라는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소설은 '풍자소설'이다.  구아바 속 인물들의 정신없는 소동들을 읽고 있노라면 "낄낄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무 생각 없는 듯  살다가 어느 날 구아바 나무 위로 쪼르르 올라간  주인공 삼파드의 행동뿐 아니라 그런 아들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그의 아버지, 먹는 것에 삘~이 꼿혀서 온갖 동, 식물로 요리를 하고 그것을 아들에게 먹이려는 어머니, '누군가가 날 따라 다닌다.' 라고 말하며 허영에 들떠 꽃단장 한 채 시내 나들이를 하던 삼파드의 여동생이 아이스크림 장수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심지어 '시네마 몽키'라고 불리는 원숭이들이 술주정에다 인간들이랑 한판 싸움을 하는 것은 또 어떻구.. 각각의 인물들이 그만큼 생동감이 넘치고  재미가 있다. 거기다, 그 인물들이 나타내는 은유를 파악하게 되면 젊은 작가의 재기에 무릎을 딱 하고 치게 될 것이다. ' 어... 이 소설이 이런 뜻이었어? ' 라고 생각하면서.


1. 내이름은 '삼파드'


삼파드라는 이름은 '행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랜 가뭄 속에서 고통받던 마을에 삼파드가 태어나는 날, 비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 구호식량은 그의 앞날에 항상 행운이 있을 것 같은 확신을 주는 듯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경쟁하는 것이 싫어 언제나 성적은 바닥이었고 직장이었던 우체국에서는 빠릿빠릿 하지 못해 직장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하고 결국 직장 상사의 딸 결혼식에서 결혼식 준비나 얌전하게 돕지 못하고 혼자의 생각에 취해 옷을 사람들 앞에서 홀딱 벗으며 자유를 느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이름이 주는 아이러니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왜 삼파드는 이다지도 현재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리버리하고 멍청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다가 '삼파드'라는 이름대신에 '인도'라는 이름을 넣어 보았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 생활로 피폐해졌던 인도가 독립을 할 때만 해도 인도인들은 뭐든 다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과 함께 후발 후진국의 위치에서 세계 질서속에 참여하게 된 인도는 세상과 경쟁하기에는 사회적, 인적, 자본적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을 뿐 아니라  꿈을 꾸는 듯한 독특한 사색과 내적 충만을 위해 사는 인도인들의 삶의 방식은 서구의 이성적이고 합리성, 결과를 중요시 하는 잣대로 본다면  뒤떨어져 보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꼭 서구의 기준에 맞추어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래야만 행복해지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작가는 가졌던 것 같다. 인도의 은유로 삼파드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필연적으로 그를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의 틀 밖으로 나가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삼파드는 남들의 말에 순순히 따르며 사는 것이 자신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구아바 나무위의 삶에서 찾고자 한다.

 

삼파드의 위치 이동... 이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가 예언처럼 이야기 하는 것들도 이웃들의 편지에서 훔쳐본 내용이었으며 그의 지식도 별다를 것이 없이 삶 속에서 접했던 것을 말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상은 그를 ‘나무 위의 도사’라고 부르며 그를 추종하고 아버지는 삼파드에게 부드럽게 땅으로 돌아오라고 유혹하는 한편 그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어머니는 억누르고 있던 요리의 욕구를 마음껏 발휘하며 요리를 했다. 또한 그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여성상에 머무르고 있던 누이조차 사랑하는 남자에게 열정을 표현하며 애정공세를 보이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간다. 즉, 그가 억지로 세상의 틀을 따라가던 위치에서 벗어나자 마자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작가는 인도의 행운은 인도인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믿음은 실제로 삼파드처럼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으로 옮겼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음에 분명하다.

 

2. 삼파드와 '시네마 몽키'

소설속에서 '시네마 몽키'는 꽤나 중요한 비중으로 나온다. 그저 어슬렁 거리며 시내 극장 주변에서 관람객들이 던져주는 땅콩이나 음식물 부스러기를  먹던 그들이 삼파드가 구아바 나무로 자리를 이동하고 난 후 삼파드 주변에 모여들어 삼파드의 추종자 뿐 아니라 삼파드의 가족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모습은 당황스럽기 까지 하다.

 

인도가 자립의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자본과 산업화는 인도의 고위 관리들과 연합을 해서 삼파드 주변에서 말썽만 피워대는 그들을 구아바 숲 주변에서 쫓아내려는 계획을 꾸민다. 그럼 '시네마 몽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구아바 나무 위로 올라간 삼파드에게 공물로 많은 음식과 술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시네마 몽키들'은 삼파드 주변으로 몰려드는데, 삼파드는 그들을 쫓지 않고 함께 생활을 하면서 '몽키 도사'라는 명성을 떨치게 된다. 삼파드로 비유되는 인도가  인도의 자연과의 공존을 꿈꾸고 그 특유의 자연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를 통해 명성을 얻는다 하여도  개발 도상국 특유의 개발 의지와 인도의 삶 전체를 뒷받침 해주는 자연과의 공존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소설 속에서는 몽키들을 진압하려는 군인들에게 쫓겨 몽키들은 다른 숲으로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 중에서 삼파드는 결코 내려오려고 하지 않던 구아바 나무에서 떨어져 어머니가 삼파드를 살찌우기 위해 특별 요리를 준비하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단지'에 빠져 죽게 된다.

 

이쯤되면 작가가 현 인도의 산업화와 개발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비판적이고 비관적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가? '행운'이라는 이름의 삼파드를 자연탄압의 상황에서, 그를 살찌우기 위해 끓여대던 솥단지에 빠뜨려 죽임으로서 인도의 행운은 자연을 고려하지 않고 산업화가 진행될 때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를 강력하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3. 그 외 에피소드..

작가는 인도의 결혼문화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성 작가인만큼 인도의 불합리한 중매문화에 대해서 할말이 많았나 보다. 삼파드의 영향을 받아 열정적으로 '헝그리 홉'에게 두 사람만의 사랑을 갈구하는 삼파드의 여동생은 아이스크림 장수인 '헝그리 홉'에게 사랑의 도피여행을 제안한다. 그러나, '헝그리 홉'은 도피여행 전날,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그에게 전통적인 미녀와 선을 주선하게 된다. 전통적인 미녀와의 중매를 통한 안정된 결혼과 삼파드 여동생과의 사랑의 도피 중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희극적으로 그려지는데 전통적인 결혼관과 연애를 통한 결혼이 충돌하고 있는 인도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에필로그...

 

풍자소설, 희극의 묘미는 아마도 한참 웃은 다음 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송곳에'정곡을 찔렸군!'하는 생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구아바 나무에 올라간 삼파드처럼 세계질서라 불리는 숨막히는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꿈꾸는 나라에서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기를 바라는 젊은 인도 작가의 입심을 즐겁게 읽으며 재기발랄하고 젊은 인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인도와는 다른 입장에 있지만 우리또한 같은 고민을 짊어지고 있지 않은가?

남들이 만들어낸 틀 속에서 숨막혀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세상의 질서를 새로 만들어 가길  꿈을 꾸는 자들에게 노래 한 곡을 선사하고자 한다.

 

"얘들아~ 애들아~ 오늘도 밤샘이다. 딱 걸렸다. 코피가 대박이네~ . "

 (-_-)/~(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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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유하-

붉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문득
그대 이름을 불러볼 때
단숨에 몰려오는, 생애 첫 가을
햇살의 길을 따라 참새가 날아오고
바람은 한짐 푸른 하늘을
내 눈 속에 부려놓는다.
마음 닿는 곳이 반딧불일지라도
그대 단 한 번 눈길 속에
한세상이 피고 지는 구나

나 이 순간, 살아있다.
나 지금 세상과 한없는 한몸으로 서 있다.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먼 곳의 새가 나를 통과한다.
바람이 내 운명의 전부를 통과해낸다.

 

1.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마치 아무도 찾지 않는 퇴기(退妓)의 이부자리처럼.

2. 요즘 드라마 '황진이'에 빠져 살고 있다. 친구와의 오랜만의 술자리도 허겁지겁 접고 올 정도로.  지금 황진이의 역을 맡고 있는 하지원을 좋아한다. 예전 함께 드라마 동무를 했던 방친구는 "하지원은 얼굴에 독기가 서려 있어서 난 싫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독기(毒氣)라... 모든 생물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  날 함부로 했다가는 넌 죽는다...라는 의미를 은연중에 느끼게 만드는 것이 독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쉬운 예로 '장미'를 들 수 있으리라.  아름다움에 비장미를 더하는 가시를 가진 장미의 자존심(自尊心 )은 장미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아무나 타넘을 수 있는 천한 기생의 신분으로,  대우받지 못하던 조선시대의 여인으로만 보여지는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황진이에게는 분명 독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생존 전략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면으로 따지자면 하지원의 '황진이'는 안성마춤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독기가 황진이의 독기와 공명해서 오래전 주체적으로 살고자 했던 여인의 모습을 실재화(實在化)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황진이이야기를 하면서 유하의 시를 서두에 끄집어 낸 것은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황진이에선 그와 같은 주체성을 가지게 된 배경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그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별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신분의 벽 앞에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사랑의 나약함, 생사로 갈리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으므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극복할 수 없는 세상의 벽에 치여 그저 울부짖고 아파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으리라..또한 동정을 받으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굽히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리 살 지 않겠다고 자신과 다짐한 이의 삶은 또 어떠한 것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예상은 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한몸이었던 것을 억지로 뜯어내듯 찢어지는 아픔 속에서 혼자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고통을 세상에다 되갚아 주겠다 했던 한 여인의 분노가 그녀에게 예인으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예인의 벗이 고통이라 했던 행수의 말과도 연결이 되는데 이는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삶과는 반대로 걸어가면서도 그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인의 본령(本靈)이 유하의 시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속에서도 보이는 것 같아 함께 소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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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소통·공유·행복 ‘인터넷 나르시시즘’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르키소스’라는 미소년 이야기가 있다. 그는 어느 날 숲으로 사냥을 하러 갔는데 옹달샘에 비친 자신의 몸에 반해 먹지도 않고 자기 얼굴만 보다 말라 죽은 후 한 떨기 수선화가 되었다. 19세기 말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는 나르키소스의 신화를 차용해서 리비도의 대상이 자신이 되는 심리상태를 ‘나르시시즘’으로 명명했다. 한 마디로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말이다.

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는 오늘날 인터넷에서 자기 과시에 몰입하는 네티즌들의 원형 서사 같아 보인다. 나르키소스의 옹달샘이 자기도취의 거울이었다면 네티즌들에게 그것은 바로 ‘블로그’ 혹은 ‘미니홈피’쯤 될 것이다. 나르키소스가 멋진 자신의 얼굴을 옹달샘에 비추듯,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만든 멋진 콘텐츠를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린다.

자신이 만든 특이하고 맛깔난 음식 정보를 블로그에 올리는 ‘가정주부들’. 디지털 카메라로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직접 찍어 미니 홈피에 올려놓은 ‘셀카족들’. 취미가 유사한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정보를 제공하며 즐거워하는 네티즌들. 이들이 우리 시대 인터넷 나르시시즘의 주인공들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익명의 네티즌들과 공유하길 원하는 이들은 자생적인 공간에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생비자들’(prosumers)이다.

디지털 시대 콘텐츠 생비자들은 근대적, 물리적 공간에서의 자기도취자들과는 다른 욕망을 꿈꾼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사모님들’이나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며 주말에 고급 사교파티를 즐기는 ‘문화귀족들’의 자기과시는 오로지 폐쇄적이고 독선적이다. 일반 서민들이 이들을 재수 없게 보는 것도 타인과의 소통과 공유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인터넷 유저들의 나르시시즘은 소통과 공유를 원칙으로 한다. 맛있는 해물 떡볶이, 내가 만든 가구, 알콩달콩한 우리가족 이야기, 이 모든 정보는 내가 잘났다는 과시이기에 앞서, 익명의 네티즌들과 소통의 기쁨을 공유하려는 소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자기만족을 위해 만든 콘텐츠라 해도, 타인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댓글의 행복’이 없으면 인터넷 유저들의 나르시시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터넷에서 자기과시는 하나의 게임이다. 마치 고대 원시 부족사회에서 행해졌던 ‘포틀래취’(potlach) 선물 게임처럼,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도전과 응수를 위한 반복적인 게임이다. 내가 맛있는 ‘해물 떡볶이’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면, 누군가가 더 맛있어 보이는 ‘치즈 떡볶이’로 응수하고, 다시 나는 최고로 맛있어 보이는 ‘카레 떡볶이’로 도전하는 게임 말이다. 게임의 장에 참여한 유저들의 도전과 응수는 배타적, 폐쇄적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개방적, 다방향적 나르시시즘이다. 오로지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다른 유저들과 소통하기 위해 고통과 헌신을 감내하는 것은 블로그가 주는 일상의 행복과 천상의 기쁨 때문이다. 어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한 ‘해피해피 라이프’라는 네티즌 참여 코너의 사례처럼, 아기자기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저들의 나르시시즘은 탈권위적이면서 자기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다.

물론 유저들이 만든 콘텐츠가 모두 사심 없는 것은 아니다. 네티즌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특정 연예인들을 조롱하고 희화화한다거나 아니면 스스로 연예인이 되고 싶어 댓글 자작극을 벌이는 현상들도 일어난다. 인터넷 자기과시 행동이 지나칠 경우 오직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 인터넷 감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어떤 정치인들은 애초부터 진정한 정보 소통에는 관심이 없고, 의정활동을 위한 홍보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적인 정보들이나 미니홈피의 ‘디카놀이’ ‘일촌 놀이’들이 사이버 커뮤니티를 지극히 개인화하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로부터 도피하려는 정치적 불감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자신을 뽐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직하고 열정적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자생적 콘텐츠는 무기력증에 빠진 가정주부들에게 생활의 활력소를 준다. 이제 부엌과 거실은 가사노동의 현장에서 풋풋하고 따근따근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스튜디오로 전환된다. 인터넷 나르시시즘이 가정주부들에게는 가사의 불평등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자기 최면술일 수도 있지만, 가사의 반란을 꿈꾸는 쾌락의 에너지일 수도 있다.

소비 자본주의 시대 상품화된 나르시시즘은 결핍에 대한 편집 증세를 보인다. ‘명품중독’과 같은 상품 나르시시즘의 욕구는 끝이 없다. 소통과 공유를 위한 인터넷 유저들의 대중 나르시시즘은 비록 폭력과 집착의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타인에 대한 에로스의 열망을 담고 있다. 자신이 만든 정보를 미치도록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은 에로스적 욕망, 물질적 보상은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인터넷 나르시시즘은 행복하다.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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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타인의 시선을 갈망한다, ‘UCC시대’
[경향신문 2006-11-09 10:36]    
(위) 다음 카페에 기타연주 장면을 올린 뒤 광고까지 출연한 조래은양. (아래) 가요 립싱크 동영상으로 화제를 모은 정호성씨.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자기 과시와 노출을 즐기는 시대, ‘UCC(User Created Contents)’는 그 중심에 있다. UCC는 말뜻 그대로 사용자가 손수 제작한 콘텐츠를 말하지만, 최근 주목받고 있는 UCC는 주로 동영상이다.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 편집 프로그램의 보급으로 누구나 쉽게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게 되면서, 블로그와 미니홈피 등의 ‘1인미디어들’은 텍스트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인터넷 업계는 물론 공중파 방송국, 심지어 정치권까지 동영상 UCC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UCC에서는 나도 스타

‘UCC 세상’에선 버릴 것이 없다. 갈고 닦은 연주실력도 자랑할 수 있고, 나만 아는 다이어트 비법, 요리법을 소개할 수도 있다. 길거리와 노래방, 교실, 심지어 야근 중인 사무실에서 맘껏 노는 모습이라도 사람들의 공감만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콘텐츠’ 대접을 받는다. 다음의 UCC 사이트 ‘TV팟’에는 ‘어깨 길이의 머리를 예쁘게 묶는 세 가지 방법’이 인기동영상으로 올라와 있다. 제목 그대로 머리를 묶는 방법을 알려준다. 글로 설명하긴 애매하고 공중파 TV에서 보여주기도 어려운 소재지만 인터넷에는 꽤 유용한 정보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동영상 UCC 전문 사이트 ‘판도라 TV’에는 고3 남학생 3명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고3의 발악’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인기다. 화면도 흔들리고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까지 그대로 들리는 등 질은 다소 떨어지지만 고3을 보내고 있거나 경험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유명 가요를 코믹하게 립싱크한 정호성씨(23)의 동영상도 후속작을 탄생시킬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UCC를 통해 이미 스타도 탄생했다. 11살 때부터 기타를 연습해 온 조래은양(16)은 기타 관련 카페에 자신의 기타연주 동영상을 올렸다가 화제가 됐다. 조양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동영상 UCC 광고에도 모델로 출연했다. 왕의 남자, 괴물 등 영화 OST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한 양승구군(18) 역시 ‘OST치는 남자’로 유명해졌다. 미국 동영상 UCC 사이트 ‘유투브’에 기타연주 동영상을 올린 임정현씨(23)는 뉴욕타임스의 극찬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고, 그가 연주한 캐논변주곡은 기아자동차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UCC 사용자들은 프로와는 다른 시각과 참신한 소재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며 기발한 아마추어리즘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UCC를 잡아라

동영상 UCC가 높은 관심을 끌면서 국내외 기업들도 UCC를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구글은 ‘유투브’를 16억5천만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유투브를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국내 포털 사이트들도 검색 기능에 동영상 검색기능을 추가하고 ‘TV 팟(다음)’, ‘네이버 플레이(네이버)’, ‘야미(야후)’ 등 동영상 UCC 사이트를 열었다. 싸이월드도 동영상 업로드 기능을 추가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정지은 팀장은 “95년 인터넷 초창기에는 메일과 카페, 2000년대 초반에는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인터넷의 대세였다면 지금은 UCC가 업계의 메가 트렌드”라며 “모든 사이트들이 동영상 UCC 이용자들과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SBSi는 지난달 27일 자사 사이트내에 동영상 UCC 채널인 ‘핫콘(Hot Con)’을 열었다. 핫콘에는 촬영장 스케치, 화제의 장면, 가상 결말, 패러디 영상 등 SBS에서 방영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관련 동영상을 올릴 수 있다. SBSi는 이를 위해 7월부터 50여명의 활동인단(Icon)을 모집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SBSi 김민정 과장은 “방송국이 대중들의 빠른 트렌드에 부응하기는 힘든 점이 있다”며 “동영상 UCC의 활용을 통해 더욱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BS는 드라마 ‘서동요’ 방영때 누리꾼이 올린 ‘서동생활백서’로 인기를 끌었듯, 동영상 UCC 활용을 위해 시청률 상승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사이트 오픈 2년 만에 일평균 방문자수 85만명, 1천8백만건의 페이지뷰를 기록하고 있는 동영상 UCC 전문 사이트 ‘판도라 TV’는 다음달 ‘월드와이드’ 버전을 출시할 계획이다. 외국의 사용자들도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도록 해당국 언어를 지원한다. 김경익 사장은 “무한대의 동시접속이 가능하도록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했다”고 밝히고, “동영상 콘텐츠만큼은 대한민국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동영상 UCC의 활용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판도라 TV에 ‘희망채널’을 열어 청와대의 활동상황을 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포털 사이트의 한 관계자는 “몇몇 국회의원들도 동영상 UCC 이용문제를 협의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넷 선거전’으로 불렸던 2002년 대선에 이어 2007년 대선에서는 동영상 UCC가 새로운 변수로 주목된다.

◇수익은 누가 어떻게, 저작권 책임도 문제

동영상 UCC는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수익모델 개발 속도는 아직 더디다. 현재 동영상 UCC를 통한 수익은 동영상 앞뒤로 붙는 광고와 사이트 광고로 인한 수익 정도다. 기업들은 수익의 일부를 사용자와 함께 나누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싸이월드는 미니홈피에 광고를 연계하고 이를 통해 도토리를 얻을 수 있는 ‘해피클릭’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고, 판도라 TV도 동영상 클릭수가 늘어날 때마다 마일리지인 ‘큐피’를 적립해 쌓이면 무료 영화를 볼 수 있고 쇼핑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판도라 TV 김경익 사장은 “웹 2.0시대에는 콘텐츠와 수익을 사용자와 함께 나누는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문제 해결은 더 어렵다. 지난달에는 공중파 방송 3사가 동영상 UCC 사이트에 대해 방송사의 프로그램 게시를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사이트들은 각자 필터링을 통해 저작권에 위배되는 동영상을 걸러내고 있지만, 사실상 완벽한 제재는 불가능하다. 미국, 일본 등의 인기 드라마들은 자막서비스까지 된 동영상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도다. 프로그램 전체를 방영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일부 장면을 캡처하거나 편집하는 것은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웹서비스기획자 박모씨(27)는 “저작권은 아직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만일 문제가 불거지면 UCC로 돈을 버는 사이트들은 빠지고, 책임은 사용자들만 지게 된다”며 “아직까지 사이트와 사용자들 간의 약관은 노예계약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장은교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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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UCC관련 용어 “알아둡시다”
[경향신문 2006-11-09 10:36]    

◇UCC(User Created Contents)=사용자가 제작한 콘텐츠. 넓은 범위에서 보면 카페나 블로그, 미니홈피 등에 게시하는 모든 종류의 게시물을 포함하지만, 현재 주목받고 있는 UCC는 텍스트 위주의 창작물보다는 동영상 창작물을 일컫는다. 최근 포털사이트들이 동영상 검색기능을 추가하고 UCC 관련 채널을 늘리는가 하면, UCC 전문 사이트들도 높은 방문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용자 중심’이 기본인 ‘Web 2.0’ 시대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Web 2.0=다음 세대 인터넷의 새로운 패러다임. ‘블로그’와 ‘검색’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인터넷 환경을 ‘Web 1.0’으로 보고 ‘UCC’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인터넷 환경을 ‘web 2.0’으로 본다. 지금보다 더욱 ‘사용자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모든 정보는 개방되고 원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초기의 정신으로 회귀한다는 분석도 있다. Web 2.0 시대에서 사용자들은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인터넷 문화의 주인이자 중심이다.

◇퍼블리즌(Publizen)=Publicity(공개, 홍보)+Citizen(시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사람들. 타인에 의해 사진이 찍히는 등 제3자에 의해 인터넷에 정보가 공개됐던 예전과 달리, 자기 의지로 자신의 장기나 표현하고 싶은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공개한다. 이들 중 일부는 연예인 못지 않는 인기와 유명세를 얻는 ‘인터넷 스타’가 되기도 한다. 한편, 지나친 사생활 노출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프로슈머(Prosumer)=Producer(생산자)+Consumer(소비자). 전문가 못지 않는 지식과 관심을 갖고 기업의 경제활동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소비자들을 말한다. 인터넷 환경에서 프로슈머의 개념은 보다 ‘주(主)’에 가깝다. 인터넷 안의 모든 콘텐츠와 문화는 사실상 사용자들이 만들어 나간다. 사용자들은 서버를 제공하는 기업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심지어 새로운 콘텐츠를 손수 창작해 새로운 수요와 트렌드를 만들어 나간다. 인터넷의 프로슈머는 단순히 ‘진화된 소비자’의 수준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장은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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