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유하-

붉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문득
그대 이름을 불러볼 때
단숨에 몰려오는, 생애 첫 가을
햇살의 길을 따라 참새가 날아오고
바람은 한짐 푸른 하늘을
내 눈 속에 부려놓는다.
마음 닿는 곳이 반딧불일지라도
그대 단 한 번 눈길 속에
한세상이 피고 지는 구나

나 이 순간, 살아있다.
나 지금 세상과 한없는 한몸으로 서 있다.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먼 곳의 새가 나를 통과한다.
바람이 내 운명의 전부를 통과해낸다.

 

1.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마치 아무도 찾지 않는 퇴기(退妓)의 이부자리처럼.

2. 요즘 드라마 '황진이'에 빠져 살고 있다. 친구와의 오랜만의 술자리도 허겁지겁 접고 올 정도로.  지금 황진이의 역을 맡고 있는 하지원을 좋아한다. 예전 함께 드라마 동무를 했던 방친구는 "하지원은 얼굴에 독기가 서려 있어서 난 싫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독기(毒氣)라... 모든 생물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  날 함부로 했다가는 넌 죽는다...라는 의미를 은연중에 느끼게 만드는 것이 독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쉬운 예로 '장미'를 들 수 있으리라.  아름다움에 비장미를 더하는 가시를 가진 장미의 자존심(自尊心 )은 장미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아무나 타넘을 수 있는 천한 기생의 신분으로,  대우받지 못하던 조선시대의 여인으로만 보여지는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황진이에게는 분명 독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생존 전략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면으로 따지자면 하지원의 '황진이'는 안성마춤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독기가 황진이의 독기와 공명해서 오래전 주체적으로 살고자 했던 여인의 모습을 실재화(實在化)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황진이이야기를 하면서 유하의 시를 서두에 끄집어 낸 것은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황진이에선 그와 같은 주체성을 가지게 된 배경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그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별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신분의 벽 앞에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사랑의 나약함, 생사로 갈리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으므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극복할 수 없는 세상의 벽에 치여 그저 울부짖고 아파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으리라..또한 동정을 받으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굽히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리 살 지 않겠다고 자신과 다짐한 이의 삶은 또 어떠한 것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예상은 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한몸이었던 것을 억지로 뜯어내듯 찢어지는 아픔 속에서 혼자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고통을 세상에다 되갚아 주겠다 했던 한 여인의 분노가 그녀에게 예인으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예인의 벗이 고통이라 했던 행수의 말과도 연결이 되는데 이는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삶과는 반대로 걸어가면서도 그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인의 본령(本靈)이 유하의 시 -그리움을 견디는 힘으로- 속에서도 보이는 것 같아 함께 소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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