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할 기운도 없고 입맛도 없고 자꾸만 쓰러질 것 같다고 하는 한 환자가 왔다.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데도 해결이 되지 않는 증상들....이 쭉 적혀있는 환자 이력이 내 책상에 환자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자그마한 여자분이 딸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로 들어왔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

딸은 엄마가 최근 힘이 들었는데 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있고 난 후 말도 못하신다며 영양제를 놔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라 불리는 여자는 슬픈 눈만 껌뻑거리고 있으니 영양제로 해결이 될까? 란 생각이 들어서 말을 붙였다.

" 힘드시죠? 어휴...이렇게 힘드셔서 어떻해요? "

이 한마디에 엄마라 불리는 여자는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눈물은 말보다 많은 것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제대로 내가 짚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이자 슬픔을 견디어 내던 방어선이 이젠 아슬아슬하니 도와달라는 표현이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죠?"

딸도 엄마가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을 몰랐다며 놀라고 있었고, 엄마라 불리는 여자는 주책없이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를 입원시키고 좀 지켜보기로 했다. 머리 속을 꽉 채운 생각들이 그녀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그 생각이 뭔지, 그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또한 어떤 것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일단 그 문제들을 풀기 전에 그녀를 좀 잘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과 ventilation(마음 속의 감정를 밖으로 내놓을 수 있도록 이야기 하는 것)을 위해 그녀의 말벗이 되어주어야 겠다고 치료 계획을 세우고는 입원장에다 싸인을 했다.

병원에서 그녀는 2일간 주로 잠을 자고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나야 아침, 저녁 회진시간에 그녀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오래 입원하고 있으면 의존하게 되니까 슬슬 퇴원도 생각하라는 말을 입원 3일째 저녁에 그녀와 그녀의 딸에게 했다.

그리고, 퇴원...  3일간의 입원으로 식욕은 없지만 이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기운이 없지만 걸을 수는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기가 싫단다. '이 사람에게 집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러는 걸까?' 집이 그녀의 불면과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는 장소라는 것은 짐작이 되었으나 그녀를 병원까지 데리고 오고 그녀를 걱정하는 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외래날짜를 잡아주고 퇴원을 시켰다.

그녀가 오늘 외래로 왔다. 이젠 이야기는 잘하는데 식욕이 없단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겠냐? 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피하고 싶은 집의 이미지 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가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사건건 참견하는 남편과 부딪히는 것이 싫고 지금 시댁에 며느리로서 해야할 일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데다 직장에서 과장직급인지라 해야할 일들과 프로젝트들이 목을 죄고 있고 이번주 토요일에는 방통대 기말시험이 있다는 이야기 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술술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며 그녀는 얼마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만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그녀, 그녀가 맡고 있는 삶의 무게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을 그녀, 이해받고 싶었을 그녀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측은하게만 여기면 그녀가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의 기억과 감정을 재구성하기로 마음 먹었다. 재구성이라고 하니 조작의 냄새가 폴폴 풍기기는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생각에 다른 면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만 해도 그녀 스스로 자신의 생활과 삶을 재구성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어서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퍼서 현재 휴가를 내고 있으니 지금 당장은 회사일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시댁문제도 대소사가 없으시면 일단은 좀 미뤄 두셔도 될 거 같구요. 그래도  방통대 기말시험이 코앞에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입니다. 힘드시면  따님에게 집안일을 좀 분담시키고 공부에 매진해도 되는 껀수가 생긴 거잖아요. 그리고,  스스로를 재평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거는 지금 본인의 여러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겁니다. "

"공부를 하려고 해도 머리속에 글이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아요. 머리 속이 터져버릴 것처럼 많은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아직 기력이 완전히 돌아온 것이 아니니까 많이 힘드시면 누워 계시구 딸들에게 시험범위를 읽어달라고 하셔요.  사람의 목소리는 들을 당시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더라도 시험시간 같이 절박할 때 갑자기 생각이 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이번 기말시험도 잘 통과하셔야 앞으로 졸업 후 하실 일들에 대한 다음 단계의 계획이 세워지니까 많은 생각을 한꺼번에 하시는 거 보다 바로 앞에 것부터 수습하시는 것이 필요할 거 같네요."

"그러게요. 걱정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어렵게 방통대 공부하고 있는데 밀리면 안되겠죠? 그래도 애들에게 미안해서 어떻해요."

"엄마가 아프면 참 곤란하죠. 그런데, 기댈때는 확실히 기대고 빨리 몸을 추스리는 것이 더 나아요. 오래 아프시면 가족들 전체가 엉망진창이 된다니까요. 확실히 기대고 빨리 일어나셔야 예쁜 딸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도 해주시고 감정도 보듬어 주실 수 있잖습니까?"

"그렇겠죠? 시험 공부하고 빨리 일어나고... 그래야 하는데.."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요. 도와줄 사람들이 많은데 뭐가 걱정이세요?"

"......."

 

엄마라 불리는 그녀가 이번에 심하게 넘어졌다. 어렸을 때야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주며 일으켜 세워주는 엄마라도 있지 다 큰 지금, 인생길에서 넘어지게 되니 일으켜 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돌뿌리에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넘어질 때의 아픔만 느끼던 내 몸이  쉴 기회도 함께 모색하게 되니 조금은 넘어지는 것이 덜 두렵지 알겠는가? 

뭐.."난 평생가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나를 받혀줄 수 있는 버팀목은 있는지, 그것들은 얼마나 든든한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짐만으로 살아가기엔 인생길에는 숨겨진 부비트랩이 너무나 많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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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11-23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어진 김에 쉬고 있는 저는 여기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편이구나 생각하고 위로 받고 갑니다. 넘어졌으니 쉴수 있겠다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환호를 불렀으니...

클레어 2006-11-24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자신의 길을 가야한다..라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쉬어간들 어떻겠습니까?
결국 다시 옷을 여미고 갈 길 갈테니 말이죠.

바람구두님/ 추천 감사합니다. 이런 상황들이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라면 받아들여야겠죠..
 

[말들의 풍경] <19>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가시내… 서리서리… 내 영혼 적시는 울림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은 세대와 계급에 따라, 더 나아가서 개인에 따라 다르다. 각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자.

김수영 시인

누구에게나 모국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그 심판관의 편견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선 먼저 깊이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라서 외국어로 배운 언어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겠으나, 그 아름다움에는 문화적 허영이라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쉽다. 프랑스 바깥에서 프랑스 문화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제 몸뚱어리에도 이물감을 주는 프랑스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꼽는 것 따위가 그 예다. 마흔일곱 해 동안 한국어를 써온 한 남자에게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낱말 열 개를 벌여놓는다.

하나, 가시내. 컴퓨터 모니터 속 활자 ‘가시내’에는 붉은 밑금이 그어져 있다. 그것은 이 낱말이 규범 한국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한국어 사전에 올라있지 않다. 그것이 표준어 ‘계집애’의 서남 방언이기 때문이다. ‘가시내’라는 말에 깊은 울림을 입힌 이로 서남 출신의 시인 서정주가 있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입마춤’)이나, “눈물이 나서 눈물이 나서/ 머리깜어 느리여도 능금만 먹?杵底? 어쩌나… 하늬바람 울타리한 달밤에/ 한 집웅 박아지꽃 허이여케 피었네”(‘가시내’) 같은 시행에서, 가시내는 순애와 애욕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다. 사랑과 관련된 정서적 소구력의 크기에서, 표준어 ‘계집애’는 도저히 ‘가시내’에 다다를 수 없다.

둘, 서리서리. 부사 ‘서리서리’는 동사 ‘서리다’에서 나왔다. 서린다는 것은 (국수나 새끼 따위를) 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둘러서 포개 감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서리서리’는 포개어 감기는 모양과 관련 있는 부사다. 국수 뭉치를 세는 단위 ‘사리’가 ‘서리서리’와 동원어(同源語)임은 물론이다. ‘서리서리’는 사랑의 부사다. 이 낱말을 사랑의 부사로 만든 사람은 황진이라는 여자다. 이 여자의 유명한 시조 한 수는 이렇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애인과 떨어져 있는 황진이에게 겨울 밤은 한없이 길다. 그런데 그 밤은 애인과 함께라면 너무나 빨리 새버릴 밤이다. 시간의 빠르기는 각자의 심리 상태에 달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시인은 이 밤을 여투어두기로 한다. 그녀는 밤을 한 토막 잘라내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어놓기로 한다. 애인이 온 날 밤에 굽이굽이 펴기 위해서. 황진이의 놀라운 상상력은 시간을 공간으로, 물질로 바꿔놓고 있다.

셋, 그리움. 그리움은 결핍의 정서적 효과다. 프랑스어 화자들은 “나는 네가 그리워”를 “너는 내게 결핍돼 있어”(Tu me manques)라고 표현한다. 모든 사랑의 시는 그리움의 시다. 사랑은 결핍과 부재의 상태에서 가장 격렬하기 때문이다.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김영랑의 ‘내 마음을 아실 이’)나 “‘그립다’ 생각하면/ ‘그립다’ 생각하는 아지랑이”(서정주의 ‘아지랑이’) 같은 시행에서 그리움은 사사로운 감정이지만,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이성부의 ‘벼’)이나 “그러나 불현듯, 어느 날 갑자기/ 미친 듯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는/ 그리움은 있다”(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 같은 시행에서 그리움은 정치적 사랑과 이어져 있다. 그 둘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둘 다 빈 데를 채우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그 마음의 움직임을 좀더 객관적으로는 ‘기다림’이라 부른다.

넷, 저절로. ‘저절로’는 인텔리전트빌딩이나 하이테크파크의 작동 원리다. 그것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또는 노동에서 배제하는 새로운 사회의 부사다. 다시 말해 ‘저절로’의 공간은 ‘인간이 거세된 인공’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자연의 공간이기도 하다.

16세기 문신 김인후(金麟厚)는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라 노래한 바 있다. ‘저절로’는 애씀이나 집착을 넘어선, 마음과 몸의 가장 높은 단계이기도 하다. 인위와 자연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저절로’의 매력 또는 마력이다.

다섯, 설레다. 설렘은 마음의 나풀거림이다. 그것은 정서적 정신적 미숙의 증상일 수도 있다. 부동심(不動心)은 동서고금의 많은 현인들이 다다르려 애쓴 이상적 마음상태였다. 그러나 설렘이 없다면 생은 얼마나 권태로울 것인가. 소풍 전날의,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찻집에서의, 설날 해돋이 직전의 설렘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생의 정당한 사치다. 그것은 생의 밋밋함을 눅이는 와사비다.

여섯, 짠하다. 내가 늘 펼치는 한국어 사전에는 ‘짠하다’가 “지난 일이 뉘우쳐져 못내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로 풀이돼 있다. 내가 굳이 사전을 펼쳐본 것은 컴퓨터 모니터 속 활자 ‘짠하다’에 붉은 밑금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밑금이 그어지리라 지레짐작했다. 이 말을 서남 방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의 설명이 표준어 ‘짠하다’의 올바른 정의일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짠하다’는 사전의 정의와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그 뉘앙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어 화자 가운데서도 서남 지방 사람들일 것이다. 서남 사람들이 잘 쓰는 ‘짠하다’는 표준어 ‘안쓰럽다’와 뜻이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고스란히 겹치지는 않는 것 같다. ‘짠하다’에는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버무려져 있다. ‘짠하다’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연민의 형용사다.

일곱, 아내. ‘아내’라는 말이 내게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일 테다. 요즘엔 젊은 세대고 나이든 세대고 할 것 없이 ‘아내’ 대신 ‘와이프’라는 말을 즐겨 쓰는 듯하다. 힘센 언어에서 차용된 외래어는 그 비릿한 사용 맥락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들리게 마련이지만, 이 ‘와이프’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어 속에 끼여든 ‘와이프’는 그 본적지에서와 달리 천박하게 들린다. 나만 그런가?

여덟, 가을. 지방에 따라 ‘가을’이라는 말이 ‘가을걷이’ 곧 ‘추수’의 뜻으로도 쓰이고 있는 걸 보면 한국인들의 상상 속에서 가을은 무엇보다도 결실의 계절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가을은 또 조락(凋落)의 계절이기도 하다. 미국 사람들의 ‘가을’(fall)에는 그 조락의 상상력이 또렷하다. 성함의 끝과 쇠함의 시작이 맞닿아 있는 때가 가을이다.

아홉, 넋. 넋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공식 통계와 상관없이 인류의 종교적 심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뜻일 테다. 넋이 과학의 까탈스러운 눈 앞에 제 모습을 번듯하게 드러내지 못했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넋이 사라진 세상은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얼마나 납작할 것인가.

열, 술. 이 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인지 이 말이 가리키는 물질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 섞갈릴 때가 있다. 아무튼 ‘술’이라는 말만큼 술처럼 들리는 말이 내가 아는 외국어에는 없다. ‘술’의 마지막 소리인 설측음 /ㄹ/은 술의 물리적 성질을, 다시 말해 액체로서의 유동성을, 그 흐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린다. 한편 그 첫 소리인 치마찰음 /ㅅ/은 술이 예컨대 증류수 같은 무미 무취 무색의 액체가 아니라 빛깔과 향기와 맛을 지닌 매력적인 액체라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두 자음을 이어주는 원순 후설모음 /ㅜ/는, 내게, 술은 내뱉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또 마시되 예컨대 모음 /ㅏ/가 연상시켰을 수도 있듯 폭음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 있게 느릿느릿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술은 뇌세포에 상처를 낼 정도로, 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청각이 흐릿해져 서로 악다구니를 써대거나, 과장된, 또는 가장된 애상의 몸짓이 펄럭일 정도로 마실 일이 아니다. 이 말을 해 놓고 보니 쑥스럽긴 하다. 나 자신 ‘음주인’의 직업윤리를 잘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시인 김수영이 꼽은 말은?
마수걸이·에누리·은근짜·총채… 상인집안 내력에 장사 용어 많아

시인 김수영(金洙暎ㆍ1921~1968)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은 바 있다. 시인 자신이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은 아무래도 내가 어렸을 때에 들은 말들이다. 우리 아버지는 상인이라 나는 어려서 서울 아래대의 장사꾼 말들을 자연히 많이 배웠다”고도 고백하고 있거니와, 이 말들 가운데는 ‘시장 언어’가 꽤 있다. 장사꾼의 공간이라는 ‘아래대’란 동대문에서 광희문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그 맞은편의 서울 서북 지역은 ‘우대’라 불렀다.

젊은 독자들 귀에 설지도 모를 말들을 설명하자면 ‘마수걸이’는 하루나 한 해 중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뜻하고, ‘은근짜’는 몸을 파는 여자를 뜻하며, ‘서산대’는 옛날 글방에서 학동들이 책의 글자를 짚는 데 사용하던 막대기다. 먼지떨이라는 뜻의 ‘총채’도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 듯하다.

김수영이 꼽은 이 말들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이 세대(와 출신지역과 계급)에 따라, 더 나아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 젊은 세대라면, 설령 이 말들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단계로 건너가기 위해 포착해야 할 뉘앙스를 도무지 잡아낼 도리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의 뉘앙스)이 변하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운 말의 기준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수영은 이 수필에서 자신이 ‘매우 엉거주춤한 입장’에 있다며 “‘얄밉다’ ‘야속하다’ ‘섭섭하다’ ‘방정맞다’ 정도의 낱말이 퇴색한 말로 생각되고 선뜻 쓰여지지 않는 반면에, ‘쉼표’ ‘숨표’ ‘마침표’ ‘다슬기’ ‘망초’ ‘메꽃’ 같은 말들을 실감 있게 쓸 수 없는 어중간한 비극적 세대가 우리의 세대”라고 푸념하고 있다. 그렇지만 김수영 세대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는 언어의 생태학 속에서 ‘매우 엉거주춤한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중간한 비극적 세대’일 수밖에 없다. KBS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 ‘상상플러스’의 ‘세대 공감 OLD & NEW’라는 코너는 한 세대의 말이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각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자.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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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노래하고 춤춘다 뮤지컬이 온다 1
[필름 2.0 2006-07-04 17:40] 메일로 보내기  |  프린트

국내 최초 본격 뮤지컬 영화 <삼거리 극장>을 필두로, 뮤지컬 시퀀스를 적극 도입한 <구미호 가족> <다세포 소녀> 등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충무로는 뮤지컬에 열광하고 있는 걸까? 그 현장으로 들어간다.

충무로 본격 뮤지컬 영화라는 타이틀을 건 <삼거리 극장>이 빛을 보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초고를 집필한 것이 2002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전계수 감독은 번번이 뒤로 밀려난 이 프로젝트를 두고 “원래 제가 대기자 인생이에요”라며 괜한 자신 탓을 한다. 애초 메이저 영화사에서 눈독 들일 상업 영화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에 새로운 작품의 발굴 취지를 가진 공모전이나 정부의 지원작 형태로 가능성을 모색했음에도, 형식의 파격을 쉽게 받아들여주는 곳은 없었다. “재밌다. 그런데 좀 더 두고 보자”라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다 2004년, KBS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함께 주최하는 HD 장편 프로젝트에 당선된 것이 우여곡절 끝의 일이다. 지원금은 고작 3억. 황윤경 PD는 추가 예산을 위해 충무로 제작사란 제작사는 빠짐없이 노크를 했다. 역시 “재밌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결론은 “우리 영화사에서는 힘드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였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비롯 <여자, 정혜>등 저예산 영화 제작을 주로 하는 LJ필름의 참여가 있기 전까지 <삼거리 극장>은 실로 충무로에선 불가능한, '허황된' 프로젝트였다.

2006년 <삼거리 극장>은 본격 뮤지컬 영화라는 애초의 취지에 걸맞는 형식과 내용으로 완성되었으며, 올 7월 열리는 부천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충무로에선 절대 불가능한 프로젝트라던 말은 이제 완성된 <삼거리 극장> 앞에서 무색해져버렸다. 때 마침 2003년부터 오랜 기간 준비해온 <구미호 가족>, 새로운 소재와 형식으로 관심을 모아온 <다세포 소녀> 등 뮤지컬 형식을 적극 도입한 영화들까지 속속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누가 먼저 시작할 것인가?’ 서로 눈치만 보던 충무로 접근 금지 장르 ‘뮤지컬 영화 프로젝트’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나고 재미있는 도구

<삼거리 극장>의 전계수 감독을 비롯, 황윤경 PD 등 스탭들이 몇 년을 기다리면서도 승산이 없다는 뮤지컬 장르를 포기하지 못한 건 뮤지컬이 이 영화를 담아낼 새로운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랑 이야기라 해도 신파조 멜로나 건조한 드라마로 풀 수도 있지만, 제작진은 그걸 뮤지컬로 풀고자 했다. 뮤지컬 영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해서 <삼거리 극장>이 화려한 뮤지컬의 영화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영화에서의 뮤지컬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내용을 보충하고 수식하는 범위까지다. 영화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던 소녀 소단이 어느 날 활동사진을 보러 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 할머니를 찾아 낡은 삼거리 극장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소단이 들어간 극장에선 혼령들이 모여 판타스틱한 춤과 노래의 향연을 펼친다.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소녀에게 다가온 판타지는 소녀에게 일종의 모험이자, 관객에겐 짜릿한 즐거움이다. <삼거리 극장>에 사용된 8곡의 춤과 노래는 바로 이 판타스틱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 적극 개입할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 <시카고>가 뮤지컬 공연에서 출발, 그 자체로 뮤지컬을 표방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출발점이다.

<구미호 가족>과 <다세포 소녀>에서의 뮤지컬 시퀀스 역시 장르 자체가 중심이 아니라 영화의 소재와 내용에 따라 필요성이 생겨난 것이란 점에서 <삼거리 극장>과 다르지 않다. MK픽처스에서 제작하는 <구미호 가족>은 인간의 간을 구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구미호 가족의 설정을 가져온 작품이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호러 영화의 주인공 구미호를 가족 단위로 구성, 호러가 아닌 코미디를 배가하고, 구미호 가족의 직업을 서커스단으로 설정, 볼거리를 가져온다는 계획이다. 8곡, 총 25분에 달하는 뮤지컬 시퀀스는 이 같은 설정들을 보충하고 재미를 전달할 가장 적극적인 보조제다.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춤과 노래에 의해 구미호 가족의 캐릭터는 부각되며, 영화의 활기는 극대화되는 것이다.

이 감독의 <다세포 소녀> 역시 뮤지컬 시퀀스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위의 두 작품과 마찬가지다. 성적 음담패설을 거리낌 없이 사용, 인터넷을 발칵 뒤집은 B급 달궁의 원작을 영화화한 <다세포 소녀>는 SM, 원조교제 등이 난무하는 ‘무쓸모 고교’를 배경으로 한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 ‘외눈박이’ ‘안소니’ 등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한 과장된 캐릭터들이 거침없이 등장해 성장의 고민에 얽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감독은 현실과 판타지가 구별되지 않는 무쓸모 고교를 만들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난데없이 애니메이션을 삽입하거나, CG의 적극 활용 등이 좋은 예다. 초반 기획부터 생각해낸, 갑작스레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 시퀀스 역시 애니메이션이나 CG의 활용에서 얻고자 하는 효과와 같다. 이 감독은 “<다세포 소녀>는 딱히 정해진 어떤 공식을 따르기보다 자유연상에 의해 떠오르는 것들, 두 번 곱씹기보다 첫 번째 느껴지는 재미들을 주고자 노력했다. 전형적인 영화를 보고 있는데 그런 파격적이고 돌발적인 표현들이 나오면 재미가 배가된다. 이건 일반적인 정극 뮤지컬이 주는 효과와는 전혀 다른 목적이다”라며 뮤지컬 시퀀스의 활용을 설명한다. 관객들이 당황하는 그 지점이 바로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달라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B급 감성을 노래하는 메이저

높은 제작비, 관객들의 외면이라는 두 가지 숙제 때문에 충무로에서 뮤지컬 영화는 금기의 소재였다. 2003년부터 <구미호 가족>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MK픽처스 심재명 대표는 <구미호 가족> 역시 초반 선입견의 벽을 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한다. “‘한국영화에 뮤지컬 장르라니 너무 위험한 발상이다, 라는 의견이 즐비했다.” 심재명 대표는 그러나 이런 부정적 반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미호 가족>의 살 길은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뮤지컬 영화’의 재현에 있지 않았다. 화장실 유머를 표방한 <메리에겐 특별한 일이 있다>에서 난데없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 그런 정도의 유머라면 한국 관객들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초고와 재고 모두 B급 정서에 기반을 둬 써내려갔다. 지금의 웰 메이드 형식은 관객과의 최소한의 신뢰를 가져오기 위한 방책이었을 뿐, <구미호 가족>의 태생은 B급 감성에 기반을 둔다. <구미호 가족>을 연출한 이형곤 감독은 “기존 뮤지컬 영화의 화려함을 지향했었다면 선뜻 <구미호 가족>에 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정형화된 뮤지컬 영화는 일부러 참고하지 않았다. 찍으면서 노래와 춤이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정도지 이 영화를 뮤지컬 영화라 규정짓지 않았다. 오히려 B급 영화라는 의식에 입각해 전개해나갔다”며 35억 원을 들인 웰 메이드 영화 <구미호 가족>의 숨은 정체성을 밝힌다.

결과적으로 32억이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를 썼지만 <다세포 소녀> 역시 기획 단계부터 규모에 연연하지 않았다. 임지우 PD는 ‘선댄스에 출품하는 영화’ ‘<헤드윅> 같은 영화’가 초반 머릿속에 두었던 <다세포 소녀>의 그림임을 밝힌다. 물론, 스탭진이 꾸려지고 미장센을 중시하는 이 감독의 성향이 보태지면서 영화의 모양이 더 세련되지긴 했다. 그러나 <다세포 소녀>를 관통하는 기본 정서가 블랙코미디에 견줄 웃음과 역발상, 황당한 상황과 시선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임지우 PD는 “<시카고>가 버라이어티 쇼라면 우리 영화는 그것보다 <록키 호러 픽쳐 쇼>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이나 방송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이 즐기기 쉬운 춤들이 적극 사용된다”고 말한다.

두 작품에 비교해볼 때, 더 적극적으로 뮤지컬 시퀀스를 사용한 <삼거리 극장>도 전형적 뮤지컬 영화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주력했다. 뮤지컬 작품이라 해서 무조건 화려하고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는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처음 투자자를 애타게 찾던 와중, 톱스타와 거액의 제작비를 내걸고 제작을 요구한 곳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런 방식으로 제작이 된다면 <삼거리 극장>의 당초 취지와는 전혀 다른, 시류에 편승한 영화가 될 거라는 판단이 섰다. 공연에도 브로드웨이 작품과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이 있듯 비주류 감성, 독특한 감성을 잘만 활용하면 전형적이고 뻔한 스테레오 타입의 뮤지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황윤경 PD는 자신이 참여, 한국 최초의 뮤지컬 영화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미스터 레이디>의 실패를 거울삼았다. 2000년 당시 30억 규모, 안성기, 소찬휘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본격 브로드웨이 뮤지컬 형식을 도입한 영화 <미스터 레이디>는, 그러나 70% 촬영 도중 제작비 난항으로 촬영이 중단되는 위기를 맛봤다. 전문 코러스와 전문 기술이 필요한 춤, 스펙터클이 있었던 <미스터 레이디>는 지금 충무로에서 뮤지컬을 활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영화였다.

충무로 맞춤형 댄스

기존 뮤지컬 영화가 주었던 거부감의 한 요인을 ‘동작’으로 풀이, 지금의 충무로는 기존 뮤지컬 영화와는 전혀 다른 안무로 새로움을 전달하려 한다. 한국인에게 동작이 가져다주는 낯섦과 거부감은 생각보다 크다. 최민수와 신혜수가 주연한 뮤지컬 영화 <그녀와의 마지막 춤을>(1988)이 보기 좋게 흥행에 참패했으며,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1995)에서 안성기가 춤과 노래로 직장인의 비애를 설파할 때 관객들은 고개를 돌렸다. 실화 소재의 영화들을 주로 만드는 한 감독은 “대사로 할 수 있는 걸 왜 굳이 노래하고 춤춰서 전달하나. 뮤지컬 영화는 가장 필요 없는 장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남자는 괴로워> 이후 이렇다 할 뮤지컬 영화가 없었던 지난 시간과 2006년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특히 동작에 대한 대중의 포용도는 정점에 달했다 볼 수 있다. 춤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닌,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적극적 문화현상이다. 살사와 라틴 댄스, 발리 댄스 등 스포츠 댄스와 외국 전통춤을 여가로 활용하는 젊은 층의 급증, 그리고 문근영이 국민 체조를 하거나, 모 카드사에서 과소비 억제를 말 대신 동작으로 표현하는 등 CF에서도 춤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 또한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 인기 등은 춤의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MTV 문화를 접하고 자란 세대에게 더 이상 말로, 관념적으로 설명해 사람들의 머리를 귀찮게 할 것이 아니라, 몸이 가진 유희성을 활용하는 새로운 추세가 생긴 것이다.

우리에게 맞는 우리 동작은 뮤지컬 장면의 이물감을 없애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구미호 가족>의 뮤지컬 장면을 담당한 양승희 안무감독은 지금까지 뮤지컬 영화가 한국에서 거부감을 일으킨 이유가 서양 뮤지컬의 답습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의 뮤지컬 영화는 그 배우들의 신체구조, 정서에 맞게 제작되었기에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백야> 같은 댄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서양인들과 똑같은 동작을 하면 그건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한국인의 춤은 신명과 호흡이 중심이다." <구미호 가족>의 안무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서 익히 봐왔던 현란하고 매끄러운 동작들을 따르지 않는다. 선을 세우거나 몸을 세우는 서양 동작 대신 선을 구부러뜨리거나, 호흡을 뱉을 때 움직이는 한국인의 동작을 적용시켰다.

탭댄스 등 브로드웨이가 주는 화려한 볼거리 위주의 안무에서 탈피한다는 건 <삼거리 극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옛날 극장, 혼령들의 출연이라는 우울하고 컬트적인 영화의 특징을 도리어 안무에도 십분 발휘한다. 전계수 감독은 <삼거리 극장>의 춤에 대해 “엉성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싶다”고 주문했다. 주로 무대 공연의 안무를 전담해온 서병구 안무감독은 이번 작업이 “안무가로서 볼거리를 주는 장면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테크닉적으로 딱 들어맞게 짜인 안무가 아닌 즉흥성과 흥을 위주로 동작이 계획됐다. 기존 서양 뮤지컬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키치적인 움직임은 <삼거리 극장>의 뮤지컬 장면이 배우의 연기와 장면들에 보다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더불어 파란 눈의 금발이 추는 춤이 아닌 검은 눈, 검은 머리가 춤을 추는 익숙함이 바로 충무로 뮤지컬 영화의 포인트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다들 관심은 있었다. 다양성 측면으로 볼 때 충무로 영화가 많은 장르를 시도해봤는데 유독 뮤지컬 쪽은 없었다. 영화 산업도 다양해졌고, 기획력도 시스템이 갖춰졌다. 또, 스탭들이 이런 새로운 형식을 시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게 됐다. 관객 입장에서도 똑같은 영화보다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 좋지 않나.” <다세포 소녀>와 <구미호 가족>의 음악을 맡고 있는 복숭아 방준석 감독은 최근 들어 부쩍 뮤지컬 영화를 하겠다는 감독들이 늘고 있다며, 이 같은 뮤지컬 영화의 잇단 제작이 이유가 있다고 전한다. 충무로의 많은 제작진도 같은 의견이다. 이젠 충무로도 스탭들의 인프라를 비롯, 뮤지컬 영화의 기획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론 영화음악이 영화의 후반작업에 해당한다면, 프리 프로덕션에서부터 음악을 신경 써야 하는 뮤지컬 영화는 확실히 기획력 없이는 수반되기 힘든 형식이다. <구미호 가족> 이형곤 감독은 “촬영을 하면서 캐릭터가 확실히 잡혀나가는 일반 영화와 달리, 촬영 전에 녹음하는 뮤지컬 음악으로 캐릭터의 성격이 잡혀 나가기도 한다”며 일반 영화와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이렇게 뮤지컬 영화는 뮤지컬 공연과도 다른, 일반 영화와도 다른 새로운 기술적 방식들이 적용되고 활용되어야 하는 분야다. <삼거리 극장> 전계수 감독은 뮤지컬 영화의 연출을 일컬어 “연극 <살인의 추억>을 영화화할 때의 문제점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연극을 보는 관객이 마음대로 무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영화는 감정과 플롯에 따라 화면을 잘게 나누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뮤지컬 앵글은 뮤직 비디오 같아선 안 된다. 또 일반적인 영화 앵글과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 이는 사용된 곡들의 다양한 비트에 따라 장면들의 촬영 호흡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계수 감독은 빠른 곡들에 따라, 문이 닫히는 소리에 따라 화면 자체가 하나의 악기가 된 것처럼 리듬을 타게 만들었다. 또, 움직임의 역동성을 충분히 담기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를 쓰기도 했다. <다세포 소녀>의 뮤지컬 촬영 역시 리듬감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다세포 소녀>는 여러 대의 카메라 대신 지미집과 스테디캠을 사용, 배우들이 뛰고 노래할 때 같이 뛰며 움직임을 잡아냈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물랑루즈>처럼 7대의 카메라로 움직임을 담진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두 대는 계속 썼다. 물론 다각도에서 비추어야 하는 폼 나는 안무가 아니어서 넓게 보는 데 중점을 뒀다”며 뮤지컬 장면 촬영을 설명한다.

조명 역시 전혀 다르다. 판타지 공간과 무대는 자연광과는 거리가 멀다. <구미호 가족> 임재영 조명기사는 기존 극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이벤트 조명'을 많이 써 뮤지컬 영화가 전달할 수 있는 무대 느낌을 충실히 살려준다. 또 <삼거리 극장>은 1930년대 극장이란 점에 착안, 형광등을 배제한 바랜 느낌의 조명으로 무대의 느낌을 십분 살렸다. 미술 역시 일반 영화보다 비중이 큰 편이다. <삼거리 극장>은 전체 제작비의 1/4이 비주얼에 부어졌다.

촬영이나 미술이 뮤지컬 영화의 다양한 볼거리를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면 사운드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장에서 바로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상황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보니, 뮤지컬 시퀀스만 따로 떼어 녹음실에서 노래를 녹음하고 현장에선 그 음악에 맞춰 립싱크를 한다. 이 경우, 사운드의 기술력은 장면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결정타다. 현장에서 실제로 노래를 하진 않지만, 또한 현장감을 살려야 하는 숙제가 떨어지는 것이다. 마이크 앞에 바로 서 녹음하는 안정된 녹음실과 달리, 카메라가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배우들이 클로즈업되거나 멀어지는 현장에서의 소리 변화를 모두 표현해줘야 하는 것이다. <구미호 가족> 사운드 작업을 하고 있는 블루캡 김석원 대표는 “현장의 변동성을 고려, 촬영이 들어가기 전 미리 현장에서 녹음을 어떻게 하고, 배우들이 녹음할 때 믹싱을 할지 미리 계획했다. 그러나 첫 시도이다 보니 만족할 만큼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후반작업이 힘들어지고 결과물도 안 좋아진다”며 뮤지컬 시퀀스 사운드에 대한 난점을 토로한다.

뮤지컬, 장르가 아닌 선택

이명세 감독이 <남자는 괴로워>를 연출했던 당시는 뮤지컬 영화 관객은 고사하고 뮤지컬 공연 관객도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다. 그러나 최근 뮤지컬 공연의 활황과 더불어 새로운 장르나 형식, 소재에 대한 관객의 수용도는 놀랄 정도로 성장했다. 충무로 뮤지컬 바람은 바로 그 넓어진 관객의 포용력에 기반하고 있다. "공연예술로는 굉장히 활성화돼 있지만 그게 영화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많은 연출가들이 뮤지컬 영화 만들기를 꿈꾸지만, 실행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다행히 관객층이 탄탄해졌고, 다양한 시도를 하려는 제작자들이 늘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삼거리 극장> 황윤경 PD는 공연 뮤지컬과는 차별화된 뮤지컬 영화의 독특한 방식이 개발되어야 새로운 영화형식으로 뮤지컬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 말한다.

이런 면에서 뮤지컬 영화는 각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용이하게끔 음악과 카메라가 운용되어야 한다는 점이 전체적 볼거리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무대 뮤지컬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무대가 배우들의 움직임에 중점을 둔다면, 영화는 편집과 카메라가 배우 못지않은 리듬을 창조해줘야 하는 것이다. 뮤지컬 영화는 그래서 무대만큼 화려한 안무가 필요하지 않다. 배우들이 꼭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부를 필요도 없다. 캐릭터에 맞춰 캐스팅된 배우들이 어설프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매력이 된다. <구미호 가족> 정은정 미술감독은 “스타일이 관건이다. 예산이 없는데 억지로 스타일을 만들려다 균형을 깨뜨릴 수도 있다. 화려함을 보여주는 대형 뮤지컬 공연과 달리, 뮤지컬 영화에 돈은 그렇게 절대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확실한 색깔, 음악과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나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현재 충무로에선 11월 개봉을 목표로 또 한 편의 뮤지컬 컨셉 영화가 기획 중이다. 한재림, 임필성, 김지운 감독이 참여하는 <인류멸망보고서>(가제)라는 세 편의 옴니버스 프로젝트 중 한재림 감독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그것이다. 영화는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변주, 지구 멸망을 목도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15억 제작비, <카우보이 비밥> <공각기동대> TV시리즈 음악감독 칸노 요코가 음악을 맡을 예정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정영주 PD는 “결국 상업적인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에서 접점을 찾다보니 새로운 형식의 시도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 충무로의 뮤지컬 바람은 더 다양한 표현을 향한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다재다능한 화두다. 그 활용 여하에 따라 한국영화의 울타리도 한층 넓어질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구미호 가족> 제작 MK픽처스 심재명 대표

"뮤지컬, 새 기법으로 환영한다"

<구미호 가족>은 오래 전부터 기획됐다. 소재나 형식의 파격이 제작에 영향을 미쳐 오래 걸린 건가?

2003년 여름, 기획에 들어가고 10월에 초고가 나왔으니 시간이 꽤 흘렀다. 당시 충무로에 구미호 소재 시나리오가 여럿 있었다. 전통적인 구미호는 공포 장르에나 사용되는데 그걸 가지고 코미디를 하자니 생각보다 시나리오 개발이 잘 안 되더라.

뮤지컬 형식은 기획 초기부터 염두에 두었나?

한국영화와 뮤지컬 형식은 공존할 수 없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익숙한 시나리오를 변주해보자 했을 때 뮤지컬 형식이 걸맞다 생각했다. 한국 관객들도 <메리에겐 특별한 일이 있다>에서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는 정도는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초반 우려와 지금의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구미호 가족>은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다. 뮤지컬 같은 낯선 형식이 소재와 잘 어울린다. 영화의 볼거리를 뮤지컬로 충당해주고 들을 거리를 준 것이 결과적으로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효과를 발생하게 해주었다.

최근 충무로에 뮤지컬 형식을 도입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한다.

<삼거리 극장>이나 <다세포 소녀> 모두 요즘 공연 뮤지컬의 성공에 착안해 기획된 영화는 아니다. <삼거리 극장>은 판타스틱한 공간에, 또 <다세포 소녀>는 인물이나 소재의 발칙한 발상 때문에 뮤지컬 형식이 필요했다. 소재의 필요성에 의해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는 건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뮤지컬 영화들의 본격적 등장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이 작품들이 일정 호응을 얻는다면 탄력을 받아 비슷한 형식의 영화들도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뮤지컬 영화들은 <쉬리>가 액션 블록버스터의 제작을 가능하게 해주고, <조용한 가족>이나 <여고괴담>이 공포영화의 발아를 촉진시킨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장르를 유인한다기보다는 형식의 차용이라는 점이 더 맞다. 새로운 기법,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봐 달라.

개봉 이후 공연 뮤지컬로의 전환도 구상 중인가?

공연 뮤지컬 쪽은 계속 타진 중이다. 영화 개봉을 먼저하고 나서 순차적으로 뮤지컬로 무대에 올리고, TV 드라마로도 기획 중이다.

<구미호 가족> <다세포 소녀> 음악감독 복숭아 방준석, 장영규

"뮤지컬 영화, 때가 됐다"

영화음악에 많이 참여했지만, 뮤지컬 영화음악은 처음이다.

방준석 정말 시도된 적이 없었다. 들어가도 뻘쭘하게 쓰이거나 그랬던 것 같은데. <구미호 가족>은 3년 전부터 준비됐고 시나리오 받은 게 2년 전이다. 처음 단계부터 굉장히 치밀하게 많은 생각이 들어간 것 같다.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이런 생각으로 했고, 중간 결과를 보니 만족스럽다.

장영규 뮤지컬을 하고 싶어 하는 감독들은 최근 많다. 이 감독도 전부터 뮤지컬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다세포 소녀>를 하면서 몇 곡 테스트해보는 마음도 있었다. 나름대로 효과적이었다.

뮤지컬 음악 하면 대개 장중하고 화려한 게 떠오른다.

방준석 할리우드 뮤지컬 음악은 피하자고 했다. 뮤지컬이라는 게 어차피 대사를 가사로 전달하는 것이다. 여러 장르의 뮤지컬이 많다. 일반적인 틀을 벗어날 순 없지만 전형적인 뮤지컬을 피해 자유롭게 만들려 노력했다.

장영규 프랑수아 오종의 <8명의 여인들>을 보고 뮤지컬 음악도 재미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할리우드의 뮤지컬 음악은 너무 쇼에 집중한다. 그냥 생활에서 연결돼 스며 있는 것들을 접목시키고 싶었다. 연기하다 자연스럽게 노래로 연결하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거부감이 없을 것 같았다.

기존 영화음악 작업과는 공정도 달랐겠다.

방준석 굉장히 고민이 많았다. 배우들을 먼저 트레이닝시켜 노래는 촬영 전에 끝내놓고, 그걸 들으면서 연기를 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 했지만, 립싱크한 티는 날 것 같다. 현장감은 다소 떨어져도 카메라 앵글에 비친 모습은 색다를 것 같다.

장영규 <다세포 소녀>의 뮤지컬 노래는 4~5곡인데, 나머지 음악도 많이 쓰인 편이다. 곡이 나와야 콘티도 나오고 안무도 나오기 때문에 곡을 먼저 썼다. 시간이 빠듯해 촬영 직전까지 수정하고 작업했다.

충무로의 뮤지컬 영화 시도, 어떻게 보나?

방준석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제한된 환경에서 최상의 꼴을 뽑아내는 방식을 제각기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 형식이 새로운 방법, 재미를 준다. 미국 같은 경우 뮤지컬 영화하면 전체 예산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이 확실히 더 좋다고 말하긴 힘들다.

<다세포 소녀> 음악, 안무감독 안은미

"MTV 세대, 뮤지컬 낯설지 않다"

촬영 전부터 이미 안무를 비롯, 연습이 진행됐겠다.

미리 안무를 짜봤자 몇 분 안 된다. 무대 안무와 달라서 그날 현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된다. 막상 짜놓고도 슛 들어갈 때 카메라와 안 맞으면 즉석에서 바로 바꾸는 것이다. 회의 때와 현장 때가 다르다는 걸 빨리 캐치하고 감각적으로 오픈돼 있어야 한다.

교복입고 그냥 길거리에서 춤춘다. 다른 뮤지컬 영화 안무와는 많이 달라 보이는데.

영화 전반에 방해 안 되고 도움이 되는 안무여야 했다. ‘다세포 댄스’라는 걸 만들었는데 마카레나처럼 영화를 보던 관객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의 쉬운 춤이다.

무대 안무와 영화에 쓰일 안무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내가 요구한 건 하나였다. 제발 카메라 여러 대 쓰자. 사정이 안 되니까, 정정훈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춤추듯이 뛰더라. 영화에 쓰여야 하는 안무는 화면 그 자체에 리듬을 만들어줘야 한다. 안무 하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카메라, 춤, 모든 것이 리듬감을 갖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 있었나?

박자 하나하나를 다 맞춰 마디 수를 세가면서 찍었다. 그래야 영화 편집이 가능하다. 꽤 정교한 작업을 해야 한다.

주인공들이 전문으로 무용을 배우지 않은 아마추어다. 어렵지 않았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문화 자체가 MTV 문화다. 카메라만 돌아가면 리듬감은 이미 몸에 배어 있다. 주인공들은 조금 어색하고 코믹하게 가는 대신, 군무 장면에는 전문 무용수들을 기용해 프로페셔널 한 모습을 보충했다.

<다세포 소녀> 이 감독

"다양한 사회는 다양한 방식과 만난다"

<다세포 소녀>는 독특한 소재를 뮤지컬 형식으로 표현했다.

영화가 좀 자유분방, 틀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런 것들을 반영하다 보니 딱히 정해진 어떤 공식들보다 자유연상에 의해 떠오르는 것들, 두세 번 곱씹기보다 즉각적으로 오는 것들이 주가 되더라. 뮤지컬 장면들은 틀에 얽매이지 않은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 싶었다. 일반적인 정극에서 하는 뮤지컬은 굉장히 낯설지만, 우리 영화의 뮤지컬 장면은 조금 다르다. 그런 점들이 이 영화의 뜬금없고 엉뚱한 것들을 자연스레 연상시키게 해준다.

뮤지컬 영화를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다 들었다.

뮤지컬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애증이 있다. 스스로 어색해 하면서도 전형적인 영화들을 보던 와중에는 그런 파격적이고 돌발적인 표현들이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도 뮤지컬 장면을 해봤다. 물론 개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통도 없고 쉽지 않아 꺼려졌던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본격적으로 뮤지컬 영화를 표방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적 장치로만 쓰이는 정도라 부담이 덜했다.

뮤지컬 영화가 속속 충무로에 출연하고 있다.

이제 토대가 되었다. 단순히 요즘 유행하니까 그런 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사회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들이다. 사회적으로 전엔 용납 안 되던 것도 지금은 용납되는 추세다. 나 스스로도 이런 트렌드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억압했던 것들이 풀려나가는 틈이 생겼다.

뮤지컬 장면이 추가되면서 영화의 면모가 더 화려해지진 않았나?

최근 떠오르는 뮤지컬이 <물랑루즈> 같은 것들이라 그렇지, 사실 일상적인 뮤지컬이 많다. 뮤지컬 때문에 규모가 커진 것은 별로 없고, 그냥 영화의 컨셉 때문에 색깔이 현란하고 미술적 볼거리가 있고 춤과 노래가 생겼다.

새로운 시도들, 이제 펼쳐놓을 일만 남았다.

영화가 잘 되기만을 바란다. 영화 할 때마다 늘 걱정이기 때문에 같은 수위의 걱정인 것 같다. 만들 때는 내가 재밌어 하고 즐기는 것을 관객들도 즐기고 좋아하길 바란다. 이번 시도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다. 새로운 시도로 봐주길 바란다.
이화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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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음악출처: 쭈니(jooney92)님의 시간과 함께 쌓여가는 생각들.블로그에서>

http://blog.naver.com/jooney92/20001512699




올해 스물세살의 조시 그로반(josh groban)이라는 이름을 혹시 들은 적이 있을까?

 

어쩌면 그의 이름을 들었지만 기억 속에서 멀어졌든지, 알고있기는 했지만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나이 17세였던 시절에 이미 팝계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셀린 디옹(celine dion)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Quest for camelot'의 사운드트랙 수록곡 The prayer를 부를 때 바로 그옆에서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  그리고 이 노래는 지난해에 발표해 국내에도 소개된 10대 기대주 샬롯 처치(charlott church)의 데뷔 앨범 ENCHANTMENT의 마지막 트랙에 수록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도 조시그로반의 이름이 확실히 적혀 있었다.

아마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국출신의 조시 그로반의 데뷔앨범이 곧 국내에도 상륙할 예정이니까, 조시 그로반은 안드레아 보첼리 만큼 청아 하면서도 정감이 있으면서도 힘있는 보컬을 소유하고 있어 이미 더구나 한번 손길을 보내기만 하면 세계적인 뮤지션의 지위에 오르게 만드는 마법을 소유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데이빗포스터(David foster)의 애정을 한껏 받고 있어, 성공을 이미 보장받은 상태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취임식에서 노래를 부를 인물을 찾던 데이빗 포스터와 연결이 된 조시 그로반은 성곡적으로 그 행사를 치러내면서 데이빗 포스터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네기멜론의 연극영화과(musical theater department)에 입학한 그는 데이빗 포스터와 작업을  할 것인가 학업을 계속할 것인가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자신과 계약하고 싶어했던 메이저 레이블 워너 브러더스가 커다란 관심을 표명하면서 결국 워너와 계약하면서 정식으로 음악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데이빗 포스터는 조시 그로반이 가진 재능을 진작부터 알아보았고, 조시그로반의 데뷔 앨범을 자신의 레이블 143 Records에서 발표하게 했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만이 듀엣으로 Time to say goodbye를 불러 세계적으로 놀라운 반응을 얻었던 것처럼, 조시 그로반 역시 어린나이에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샬롯 처치와 함께 The prayer를 불러 마치 안드레아 보첼리/사라 브라이트만의 틴에이저 버전처럼 인식되었다. 이미 여러 행사를 통해 팝계의 거물들과 자리를 함께 한 조시그로반은 이미 차세대 안드레아 보첼리의 자리를 예약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클래시컬한 감각은 물론이고 팝적인 감각도 탁월해 크로스오버계의 거물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에서 어떤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 글의 출처: http://home.megapass.co.kr/~roki83/ 조쉬 글로반(josh groban의 한국 팬페이지)

 

Through the darkness
I can see your light
And you will always shine
And I can feel your heart in mine
Your face I've memorized
I idolize just you

어둠을 통해
나는 당신의 빛을 볼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은 항상 빛나겠죠
그리고 나는 당신의 마음을 느낄수 있겠죠
당신의 얼굴을 기억해요
나는 당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해요


I look up to
Everything you are
In my eyes you do no wrong
I've loved you for so long
And after all is said and done
You're still you
After all
You're still you

나는 당신의 모든것을 존경해요
내 눈에서 당신은 옳게만 보여요
나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해왔어요
그리고 이 말이 끝난 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에요
이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에요

You walk past me
I can feel your pain
Time changes everything
One truth always stays the same
You're still you
After all
You're still you


당신은 날 지나 걸었죠
나는 당신의 고통을 느낄수있어요
시간은 모든걸 변화시켜요
하지만 하나의 진실은 언제나 같아요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에요
이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에요

I look up to
Everything you are
In my eyes you do no wrong
And I believe in you
Although you never asked me to
I will remember you
And what life put you through

나는 당신의 모든것을 존경해요
내 눈에서 당신은 옳게만 보여요
나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해왔어요
그리고 난 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나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나는 당신을 기억해요
그리고 당신을 통해 삶을 배웠어요


And in this cruel and lonely world
I found one love
You're still you
After all
You're still you

그리고 이 잔인하고 외로운 세상에서
나는 하나의 사랑을 찾았어요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에요
이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에요

<가사 출처: http://www.mpckorea.co.kr/rsd/board/rfree000153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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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이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게 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그 어떤 것도 보상하거나 승화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당신이 없는 바로 그 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  - 롤랑 바르트

 

+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에 대한 단상을 인터넷에서 보고 한 번 옮겨 보았다.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 개념은  강박적으로 느껴질 만큼 지나치군. 저런 개념에 딱딱 맞추어 글쓰기를 정말 했을까?' 란 생각이 이 글을 처음 읽을 때만해도 지배적이었는데,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그렇게 했을 꺼 같다..란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어버리는 것이었다.

 

+ 퇴근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 퇴근하지도 않으며, 내가 퇴근하려는 행위만으로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며, 퇴근은 그 어떤 것도 보상해주거나 승화시키지 않을 것이며, 단지 퇴근은 당신이 없는 바로 그 곳에도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퇴근을 앞둔 이의 첫 마음가짐이다. -에오스

+ 퇴근 시간 10분 전이다. 얏호~ >_< (홍합탕에 백포도주야~ 기다려라)

+ 글쓰기 뭐...그 까이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흘러가는 거를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니겠수? 롤랑바르트 아저씨도 그 말 하고 싶었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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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1-16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고 뭐고간에 홍합탕에 백포도주라는데 뭐, 고민을 하겠슴꽈!
기냥, 냅다 달려가 언능 자리펴고 앉아야죠
글은?
헤밍웨이 주정뱅이도 술 진탕 먹고 노인과 바다 완성했다는데 뭘요^^

클레어 2006-11-1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포도주를 마시며 여우님의 친절한 답글을 보고 있습니다. ^^ 멀리서 여우님은 마주왕, 저는 백포도주(마트에서 8800원에 건진 녀석인데 아주 맛있습니다. 아껴가며 먹고 있어요)로 건배할까요? 바커스의 은총을 받았던 헤밍웨이 아저씨의 예술혼에도 건배를 청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