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본문과 약간 관련이 있습니다. -_-)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난, 고집장이 아이였다. 잠투정도 무척 심해서 유년기 8시만 되면 심하게 울어댔었다. 몇 번이고 달래주려던 엄니마져도 그냥 내버려 둬서 버릇을 고쳐야 한다로 '육아모드'를 급선회할만큼 심했고 길거리에서도 손잡아주지 않고 성큼 성큼 걸어가는 부모의 발자취를 종종 따라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한번의 예외도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럴 때마다 엄니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던 길을 가셨고(;;;) 나는 혼자 울다가 부모의 뒷모습마져 사라진 길을 되짚으며 끅끅거리는 울음 참는 소리를 내며 달려가야 했었다.

왜 그렇게 울어대었을까?

지금 생각 해보면 나이로는 두살 차이가 나지만 달수로 치면 거의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둘째동생이 항상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었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을 얻는 방법은 우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러나, 나의 미숙한 대처방법은 오히려 부모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방그레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동생의 전략을 흉내라도 냈으면 좋았을테지만 그게 부모의 애간장을 녹이며 사랑받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고 모든 것이 억울했고 잠든다는 것이 '죽음'과 관련된다는 것을 막연하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어두움이 너무나도 두려웠기 때문에 악을 쓰면서 울어댔었다.

결국 그렇게 울어대어도 '괜찮아.겁낼 필요가 없단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은 이쁜 햇님이 기다리고 있단다.'라고 말해주는 음성은 듣지 못했고, 결국 지쳐서 잠드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아무리 울어도 내가 기다리는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을 때, 더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다보니 아파서 끙끙 앓게 되어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열이 오르는 어느날 밤엔 서늘하고 큰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주기를 간절하게 바랬지만 피곤한 부모를 깨워 '나 아파'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쑥스러워서 혼자 앓았다. 혼자 앓으면서 내 손으로 수건에 물을 묻혀서 머리를 동여매고 잠들면서, 끅끅 거리며 작게 울면서 그렇게 온기를 그리워했었다.

그런데,수건에 물을 묻혀서 머리를 동여매고 자고 있던 어느날 밤, 아빠가 다가와 수건을 걷고 내 이마에 큰 손을 얹고 있음을 느꼈다. 안도감, 편안함, 그리고, 시원하고 서늘한 온기..

눈을 뜨지 않았다. 실눈이라도 뜨게 되면 혹시나 그 온기가 사라질까봐..

그 다음날 아침에는 열이 내렸었고,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면서 그 온기의 마술과도 같은 황홀함을 잠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의 놀이도 집중하지 않으면 전쟁놀이중에 적군의 총을 맞게 되거나 물벼락을 쓰게 될 수도 있고, 구슬치기 중 삑사리로 가장 아끼는 왕구슬을 잃게 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농후했으므로..

지금도 그 온기의 마술과도 같은 힘, 치유의 힘에 대해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내 환자들을 볼 때 나는 그들을 자주 만져본다. 아프다고 하는 부분을 만지며 내 손의 차가움을 항상 걱정하면서도 그들을 만진다. 차가운 손 너머로 그들에게 온기가 전해지는지 의심스럽지만 '나 아파..'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몸과 몸, 신체접촉을 통해서 조금씩 서로의 마음의 벽을 부수었을때에만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도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날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대리만족을 위해 직업을 선택하다니...좀 우습기는 하지만 그 치유의 힘에 대한 강한 느낌은 아직도 날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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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7-0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거야

클레어 2005-07-02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30도 되지 않은 어린 부부가 고향땅에서 뚝 떨어져나와서 연년생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녹록한 일은 아니었겠지요..
흐~ '좋은 거야..'라는 말씀이 그 서늘하고 커다란 손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듯 하네요. ^^

파란여우 2005-07-0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아부지가 그리워져요
아프다고 칭얼대면 덥썩 업어 주시던 넓은 등짝의 온기가 전 기억 납니다.

클레어 2005-07-04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넓은 등짝의 온기..오래오래 기억하시고 힘들 때마다 한 번씩 펴보시길..사랑했던 사람은 그렇게 오래오래 사랑을 다른 방식으로 여우님에게 주고 있네요.